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164)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164화(164/177)
164화. 밤의 마녀 (5)
‘자, 그러면.’
천천히 고갤 돌려 주변 시선을 살폈다.
기대감에 찬 눈으로 날 바라보는 아론.
또 시작이네, 라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는 벨라.
시건방진 표정으로 팔짱을 끼는 라이오스와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라네즈까지.
저벅, 저벅.
선배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나는 일곱 개의 눈을 번들거리고 있는 도마뱀 마수를 돌아봤다.
검 끝이 땅에 닿을 정도로 늘어트려 빈틈을 유도했다.
“쉬이이이이이익!”
내 움직임을 살피고 있던 도마뱀 마수가 날카로운 괴성을 내지르며 발을 박찼다.
달려드는 도마뱀 마수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쉬익!”
도마뱀 마수가 꼬리를 지지대 삼아 급히 위로 몸을 띄워 검을 피했다.
칠안급 마수다운 재빠른 몸놀림이지만.
베럴드 무투술.
낙엽 쓸기.
바닥을 쓸 듯 낮게 휘둘러진 발이 도마뱀 마수의 꼬리를 후려쳤다.
순식간에 지지대가 사라진 도마뱀 마수의 몸이 기우뚱 쓰러졌다.
그리고 그 마수가 쓰러진 방향에는.
촤악!
처음 도마뱀 마수가 피했던 검이 날을 세우고 기다리고 있었다.
“키에에엑….”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잘려 나가는 마수의 목.
“…….”
“…….”
“…….”
장막처럼 내려앉은 침묵.
아론과 벨라, 라이오스는 경악에 부릅뜬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지, 지금 너… 무슨….”
벨라가 혼란스럽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하.”
아론 또한 복잡한 시선으로 잘려 나간 도마뱀 마수의 머리를 내려다봤다.
그는 방금 전 전투를 떠올리듯 턱을 쓰다듬으며 내 검과 도마뱀 마수의 시체를 번갈아 돌아봤다.
“일부러 빈틈을 보여서 돌진을 유도하고… 거기에 무투술까지 활용하다니… 아, 그리고 아까 마수가 달려들었을 때 검을 휘두른 것도 꼬리로 몸을 지지하도록 유도한 거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가볍게 겸양을 떨자 아론이 피식 웃으며 고갤 저었다.
“아니, 운이 좋았던 게 아니야. 쓰러진 마수의 목 위치에 정확히 검을 대고 있었으니까.”
아론은 들뜬 목소리로 고갤 저으며 눈을 반짝였다.
“그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무슨 소문이요?”
“네가 유렌 헬리오스와 견줄 만한 실력자라는 소문이 있었거든.”
“…….”
하긴.
유렌과 같이 수련을 시작한 지도 꽤 오래됐으니 그런 소문이 퍼지는 것도 당연했다.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헛소문이 아니었던 모양이네.”
“유렌과 비교하면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하하하! 겸손하기까지. 우리 후배님 이거 엄청 마음에 드는데?”
아론은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빛냈다.
“혹시… 졸업 후에 어디 갈지 생각해 둔 곳 있어?”
“아뇨. 아직은 없습니다만.”
“하하. 그러면 혹시 우리 파티에 들어오는 건 어때? 안 그래도 믿을 수 있는 전열이 한 명 더 필요했던 참인데.”
방금 전까지 ‘어디, 이놈 괜찮은지 간 좀 봐 볼까?’라는 느낌으로 있다가 이젠 대놓고 스카우트 제안까지 하는 아론.
하기야.
최근 ‘류’ 가문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가세가 기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니만큼 어렵게 발견한 인재를 놓치고 싶지 않으리라.
“우리 파티에 온다면 멘토링 수업과 무관하게 내가 개인 코치를 해 줄 수도 있어.”
“…개인 코치요?”
“응.”
자신에 찬 표정으로 고갤 끄덕이는 아론.
“나한테 배우면 졸업 때쯤엔 유렌 헬리오스보다도 더 뛰어난 영웅이 될 수 있을 거야.”
“…….”
누가 누구를 가르치겠다는 건지 헛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뭐, 아론 입장에선 당연히 자기 실력이 더 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으리라.
‘제대로 뭐 보여 준 게 없으니까.’
딱히 힘을 숨길 생각은 없었지만, 애초에 상대가 워낙 약했다 보니 보여 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뭐, 당연히 아론의 파티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지만.
‘일단 여기선 좀 밀당을 해 볼까.’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은 결정하기 어렵네요.”
“하하. 너무 조급해 마. 아직 생각할 시간은 많으니까.”
아론은 시원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내 어깰 두드렸다.
“그나저나 슬슬 배고프지 않아? 수업도 좋지만 밥부터 먹고 하자고.”
그렇게 말하며 라네즈 쪽을 슬쩍 돌아보는 아론.
주변에 널브러진 마수 시체를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라네즈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아, 으, 응! 바로 식사 준비할게!”
등에 짊어지고 온 배낭을 열어 조리 도구를 꺼내는 라네즈.
잠깐 앉아 쉰 거로는 체력이 다 회복 안 된 걸까.
요리를 만드는 라네즈의 표정에는 짙은 피로가 가득했다.
“도와….”
땀까지 송골송골 흘려 가며 요리를 만드는 라네즈를 보며 도와주겠다고 말하려 한 순간.
‘도와준다고?’
문뜩.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끝없이 펼쳐진 새하얀 설원.
휘몰아치는 눈보라.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하얀 입김.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발.
장막처럼 내려앉은 고요.
새하얗고.
새하얀 세계.
“…….”
참을 수 없는 증오심이 끓어올랐다.
까득. 이를 갈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동정하지 마.’
눈앞에 있는 괴물은 세계의 절반을 멸망시킨 마녀다.
물론, 아직 그 일은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넘어갈 수는 없었다.
네가 잊어도.
내가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 끔찍한 재앙을, 바닥 없는 절망을, 끝나지 않는 악몽을.
나는.
잊지 않고 있으니까.
‘…그리고.’
라네즈가 진짜 위험한 이유는 그녀의 안에 세상의 절반을 얼어붙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만약 그것만으로 문제가 됐다면 태초의 불을 지닌 나는 뭐가 되겠는가.
라네즈가 그토록 위험한 존재인 이유는 ‘혹한의 가호’를 지녔기 때문이 아니라.
‘그걸 전혀 컨트롤 못 한다는 점이지.’
라네즈가 인류를 배반하고 밤의 마녀가 되었을 때조차 그녀는 자신의 힘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했다.
같은 아군을 죽여 버리는 건 일쑤였고, 심지어 마인들이 염원하던 마신 해방 계획도 그녀 때문에 망하기 직전까지 갔다.
적에게 있어서도, 아군에게 있어서도 재앙이나 다름없던 존재.
그게 바로 밤의 마녀, 라네즈 말람이었다.
‘역시 죽이는 게 맞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가만히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하하. 라네즈의 요리 실력은 꽤 훌륭하니까 기대할 만하다고?”
“…예. 참 기대가 되네요.”
아론의 말을 흘려들으며 라네즈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곧이어 구수한 스프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와, 완성했어! 금방 떠서 줄게!”
라네즈는 그릇에 스프를 떠서 파티원들 한 명, 한 명에게 쪼르르 달려가 건넸다.
같은 파티원이라기보단 하녀 한 명을 파티에 데려온 듯한 느낌.
파티원들에게 뜨거운 스프가 담긴 그릇을 돌린 라네즈가 마지막에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을 때.
턱.
“꺄악!”
마수의 시체에 걸려 넘어지는 라네즈.
그릇에 담긴 뜨거운 스프가 내 허벅지를 향해 쏟아졌다.
라네즈는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미, 미안! 미안해! 내, 내가 한눈을 팔아서…!”
“…….”
“다, 닦아 줄게!”
“…아뇨, 괜찮습니다.”
어차피 스프가 쏟아지기 직전 피했기 때문에 살짝 튄 게 전부였다.
“수, 수건… 수건을 어디에 뒀더라? 아, 으. 지, 진짜 미안. 금방 닦아 줄 테니까….”
“라네즈.”
허겁지겁 배낭을 뒤지는 라네즈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는 아론.
라네즈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데일이 닦아 줄 필요 없다고 하잖아?”
“하, 하지만….”
“앉아 있어.”
“으, 응. 알았어.”
라네즈는 바들바들 다릴 떨며 자리에 앉았다.
아론이 내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괜찮아?”
“아, 예. 괜찮습니다.”
“하하. 미안.”
“……?”
미안?
지금 이 상황에서 아론이 내게 사과할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자, 여기.”
“감사합니다.”
아론이 새 그릇에 스프를 담아 내밀었다.
그가 말한 대로 라네즈의 요리 실력은 훌륭했다.
“그럼 배도 두둑하게 채웠겠다 다시 마수 사냥을 시작해 볼까?”
식사를 마친 후.
아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황급히 뒷정리를 마친 라네즈가 배낭을 등에 메려고 했을 때.
“배낭 줘.”
아론이 그녀에게 다가가 배낭을 대신 멨다.
“아론…?”
“라네즈도 많이 지쳤잖아?”
“하, 하지만.”
“하하. 괜찮아. 나 힘세니까.”
무거운 배낭을 가볍게 들어 보이는 아론.
“으, 응. 고마워 아론.”
라네즈는 아론에게 고갤 꾸벅 숙였다.
“출발하자.”
그렇게 밀림 속으로 조금 더 걸어가자.
“크르르륵!”
아까 싸운 도마뱀 마수가 다시 한번 나타났다.
숫자는 한 마리.
적당히 처리하려고 검자루에 손을 올렸을 때.
“잠깐.”
벨라가 라네즈를 슬쩍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라네즈. 이번엔 네가 싸워 봐.”
“어? 내, 내가 싸우라고?”
“너도 같은 파티원 아냐? 혼자 찌그러져 꿀 빨고 있지 말고 뭐라도 해야 할 거 아냐?”
“그, 그래서 배낭을….”
“배낭? 그거 지금 아론이 메고 있잖아?”
“……!”
라네즈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몸을 떨었다.
“아, 아니. 그건… 그, 그러니까.”
“뭐, 내가 싸우다가 뒤지래? 위험하면 도와줄 테니까 너도 뭐라도 좀 하라고.”
“그게….”
“왜, 혹시 네 사촌이라 싸우기 좀 그래?”
“사, 사촌이…라니?”
“푸흡. 왜? 너도 마인의 피가 흐르고 있잖아? 그러면 마수랑 사촌 사이 아냐?”
입꼬리에 조소를 띤 채 어깨를 들썩이는 벨라.
“…아.”
라네즈는 겁에 질린 얼굴로 반쯤 떠밀리듯 마수를 향해 다가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아론에게 고갤 돌렸다.
“…….”
아론은 그런 라네즈의 모습을 팔짱을 낀 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론 선배.”
“응?”
“안 말리십니까?”
“아아.”
싱긋 미소 짓는 아론.
“라네즈가 오늘 너한테 실수를 했잖아?”
“…아까 스프 쏟은 거 말입니까?”
“응응. 그거.”
아론은 고갤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이게 다 긴장을 놓고 있어서 생기는 일이거든.”
“…….”
기묘한 위화감이.
질척한 불쾌감이.
등골을 타고 퍼진다.
“개나 고양이 교육할 때랑 비슷해. 적당히 벌을 주지 않으면, 꼭 나중에 또 실수하더라고.”
“……흐.”
태연하게 이어지는 아론의 말에, 비틀린 실소가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문뜩.
마녀와 나눴던 대화가 머릴 스쳤다.
-응…. 나, 추웠어.
아아, 그렇구나.
그랬던 거였어.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 많이… 추웠어.
너도.
악몽에 살고 있었구나.
끝나지 않는.
끊이지 않는.
지독하게, 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