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192)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192화(192/196)
제192화. 막간 – 초야(初夜) (2)
그날 저녁.
전시관 견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보생들이 수학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해 각자 숙소로 흩어졌을 때.
“…뭐?”
나는 아이리스를 돌아보며 눈을 크게 떴다.
“엘리샤 교수님이 빈방을 준비해 주셨다고?”
“예. 원래라면 알버트 씨가 써야 할 방인데, 알버트 씨가 본관에 가시게 되면서 방이 하나 남았데요.”
“음… 그 방을 우리가 맘대로 써도 되는 거야?”
“교, 교수님이 괜찮다고 하셨으니까요!”
주먹을 꼭 쥔 채 외치는 아이리스.
“내일이면 수학여행도 끝나니까 마지막으로 가볍게 술이라도 한잔해요!”
원래라면 수학여행 도중 후보생들끼리 방에 모여 음주를 하는 건 금지된 일이긴 했지만.
무슨 미성년들을 데리고 여행에 온 것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이다 보니 학교 측에서도 그리 적극적으로 잡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이번 수학여행에서 사고를 좀 쳤다는 건데.’
안 그래도 학교에 찍힌 상황이기 때문에 괜히 교칙을 어기는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엘리샤 교수의 허락을 받았다면 큰 문제 없으리라.
“그럼 다른 애들도 부를까?”
“아, 아뇨! 둘이서 마셔요!”
“…둘이서?”
“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에 찬 표정을 짓는 아이리스.
‘그러고 보니 최근 둘이서 있을 기회가 거의 없었지.’
마수 군단이 쳐들어왔을 때는 엘리샤 교수와 수학여행 도중에는 유리나와 둘만 있을 기회가 있었지만, 아이리스와는 영 둘만의 시간을 보낼 기회가 없었다.
‘그전에 기회가 있긴 했는데….’
아이리스의 초대를 받고 그녀의 기숙사 방에 찾아갔을 때 일어났던 참사를 떠올리자 얼굴이 뜨거워졌다.
고갤 저어 그날의 기억을 떨쳐 내며 입을 열었다.
“알았어. 그러면 오랜만에 둘이서 술 한잔하자.”
“저, 정말요?”
“응. 아, 그럼 잠깐 매점에 가서 술 좀 사 올게.”
“술이라면 엘리샤 교수님한테 받은 게 있어요!”
“…그래?”
전시관 견학을 하러 간 사이 그녀 나름 둘만의 시간을 보낼 준비를 마친 모양.
“그럼 바로 가자.”
“…이, 이쪽이에요.”
원래 알버트가 쓸 예정이었던 방으로 안내하는 아이리스.
달칵.
“…….”
“…….”
방 안에 들어가 문을 닫자 내려앉은 어색한 침묵,
아이리스는 괜히 헛기침하며 놓인 테이블로 걸어가 앉았다.
엘리샤 교수에게 받았다는 고급스러운 와인을 따자 향긋한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좋은 와인인가 보네.”
“아, 네. 그… 교수님께서 어렵게 구하신 술이라며 선물해 주셨어요.”
“평소엔 싸구려 술만 찾아 드시더니 웬일이래.”
잔을 들어 아이리스와 짠 건배했다.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은은한 달빛.
기분 좋게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와 코를 자극하는 향긋한 와인까지.
분위기만으로 취할 것 같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 정도로 로맨틱한 분위기 속, 아이리스가 입을 열었다.
“견학은 좀 어떠셨나요?”
“뭐, 지루했지.”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한 전시관 견학이 재밌기는 어려운 법이다.
“후후. 그래도 이번에 직접 그레이스 님과 만나서 얘기를 나누셨다면서요? 좀 특별한 느낌 아니었나요?”
아이리스는 우아하게 와인을 한 모음 마시며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레이스 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그건….”
“저도 그림으로만 봤지만… 분명 마리안 교황님처럼 나긋나긋한 말투에 상냥한 분이셨겠죠?”
“…….”
무덤에서 그레이스를 만났다는 건 얘기했지만, 그녀가 어떤 성격이었는지까지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성국에서 자라온 그녀에게 그레이스의 이미지는 한없이 자비롭고 자애로운 ‘성모’ 그 자체였을 테니까.
“어… 뭐, 그, 그랬지.”
“역시 그랬군요.”
눈을 반짝이며 고갤 끄덕이는 아이리스.
“저도 직접 뵙고 싶었는데… 사라지셨다니 아쉽네요.”
“뭐, 영혼의 일부만 남아 있는 상태였으니까. 그래도….”
“음?”
“아, 미안. 아무것도 아냐.”
“뭐예요, 사람 궁금하게.”
지금 그녀에게 그레이스가 남기고 간 성물을 전해 줄까 잠깐 고민했지만.
이건 나중에 제이드 교수에게 먼저 보여준 후 아티팩트로 만들어 전해 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아이리스는 숙소에서 뭐 했어?”
“뭐… 다 같이 밥 먹고 온천도 가고… 그리고….”
“그리고?”
“크, 크흠. 몰라요.”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는지 얼굴을 붉힌 채 시선을 피하는 아이리스.
가슴에 손을 올린 채 심호흡을 하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데일 씨.”
“응?”
“오늘, 엘리샤 교수님이랑… 유리나 씨랑 라네즈 씨랑 다 같이 얘기를 좀 했어요.”
“……!”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름에 나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다들 데일 씨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는… 데일 씨도 알고 계시죠?”
“그건….”
“후후. 그렇게 죄지은 표정 지으실 필요 없어요. 전에도 말했잖아요? 남들이 보면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전 이런 관계도 그리 나쁘지 않다 생각한다고.”
“…….”
“하지만….”
아이리스는 술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 옆으로 다가왔다.
스륵.
내 무릎 위에 조심스럽게 걸터앉는 아이리스.
맞닿은 살결을 통해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지며 향긋한 살 내음이 코끝을 자극했다.
“아, 아이리스…?”
“하지만… 저도 가끔은… 욕심쟁이가 되고 싶어요.”
아이리스는 술에 취한 듯 몽롱한 눈빛을 지으며 손끝으로 내 입술을 매만졌다.
“전에 약속한 거 잊지 않으셨죠? 제가… 데일 씨의 ‘첫 번째’라고.”
천천히 겹치는 입술.
달콤한 과실주의 향과 함께 말캉한 혀의 감촉이 입 안을 휘저었다.
“…아이리스.”
“헤헤.”
아이리스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혀를 살짝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약속도 했었죠?”
“다른 약속?”
“어머, 인제 와서 모른 척하시기에요? 보물찾기에서 이기면 소원 하나를 들어주기로 하셨잖아요.”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약속도 했었지.
“제 소원은….”
말끝을 흐리며 얼굴을 붉히는 아이리스.
나는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은 채, 아이리스와 다시 한번 입술을 포갰다.
“으읍….”
그녀가 말하는 ‘소원’이 뭘지는, 굳이 입으로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으니까.
“데, 데일 씨….”
“…먼저 씻을까?”
“아, 아뇨. 괜찮아요.”
아이리스는 더 이상 참기 어렵다는 듯 뜨거운 눈으로 날 바라봤다.
“데일 씨… 호,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응?”
“데일 씨도… 처음…인가요?”
“…….”
엄밀하게 말하면 ‘처음’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전생에도 아이리스 말고는 경험 없으니까.’
나는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응, 처음이야.”
“헤헤. 그, 그렇군요.”
아이리스는 안도에 찬 숨을 내쉬며 배시시 미소 지었다.
나는 무릎 위에 앉은 그녀를 안고 침대로 향했다.
아이리스는 침대에 누운 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내 손을 꼬옥 쥐었다.
“그레이스 님의 무덤이 있는 곳에서 이렇게 있으니… 뭔가 죄짓는 기분이네요.”
“그럼 다음에 할까?”
장난스럽게 물으니 아이리스가 삐쭉 입술을 내밀었다.
“여기까지 와서 그만두시면 저 화낼 거예요?”
“농담이야.”
나는 피식 웃으며 긴장한 표정으로 누워 있는 아이리스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손끝을 타고 희미한 떨림이 전해졌다.
오늘 이 시간을 위해 그녀가 얼마나 용기를 냈을지 생각하면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원래라면 내가 먼저 기회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녀가 뭘 원하는지는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 애써 외면했다.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핑계로 그녀를 피했다.
‘무서웠으니까.’
그래.
무서웠다.
애써 손에 넣은 행복이 모래알처럼 부서져 흩어져 버릴까 봐.
전생에 그러했듯.
또다시 모든 걸 잃게 될까 봐.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겁에 질린 아이처럼 도망쳤다.
‘한심한 새끼.’
시간을 거슬러 돌아온 그날, 미래를 바꾸기로 결심했으면서.
이번엔 모두를 지키겠노라고 맹세했으면서.
정작 잃어버리는 게 두려워서 도망치는 꼴이라니.
“…데일 씨?”
아이리스는 가만히 멈춰선 날 향해 손을 뻗었다.
“후훗. 뭐가 무서워서 그렇게 떨고 계신 거예요?”
덜덜 떨고 있는 날 보며 오히려 긴장이 좀 풀렸는지 짓궂은 미소를 짓는 아이리스.
“혹시 잘 못하실까 봐 걱정되시나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괜찮아요. 전에 들어 보니 원래 처음엔 실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
등을 토닥이며 날 달래는 그녀를 보자 속에서 뭔가 울컥 감정이 치솟아 올랐다.
‘아니 진짜 그런 거 아닌데.’
괜히 옛날 생각이 떠올라 감정을 좀 잡고 있었더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오해를 받게 될 줄이야.
억울한 기분과 함께 묘한 오기가 생겼다.
‘좋아, 어디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 보여 줄게.’
경험한 인원수 자체는 전생을 포함해도 아이리스 한 명이었지만.
그래도 그녀에 대한 거라면 꽤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어디가 약점인지부터 어떤 자세를 좋아하는지까지.
모두 다.
스륵, 스륵.
조심스럽게 아이리스의 옷을 벗겼다.
“데, 데일 씨….”
내 등을 토닥이면서 지었던 여유로운 표정은 어디갔는지 다시 긴장한 눈빛으로 날 올려다보는 아이리스.
나는 그런 그녀의 몸을 쓰다듬으며 씨익 웃었다.
“걱정 마.”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기분 좋게 만들어 줄 테니까.
* * *
차가운 겨울바람조차 식힐 수 없을 정도로 방 안이 뜨겁게 달아오른 지 6시간.
전생의 노하우(?)를 총동원해 성공적으로 초야를 치른 결과.
쨍그랑!
벽에 부딪혀 박살 나는 술잔.
“너, 너 이 새끼…!”
아이리스는 잔뜩 성난 표정으로 내 목을 틀어쥐었다.
“커헉! 아, 아이리스….”
“처, 처음이라며…! 처음이라며 이 나쁜 새끼야!”
“처음 맞….”
“처음? 처음이라고?”
사납게 표정을 일그러트리는 아이리스.
“처, 처음 하는 사람이 어? 어, 어떻게 그렇게 잘하는데!!!”
“아니… 그게….”
여기엔 다 사연이….
짜악!
“이, 이 나쁜 놈! 믿었는데… 믿고 있었는데…!”
아이리스는 눈물까지 흘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언년이야! 어? 언년이랑 한 거냐고 이 나쁜 놈아아아아아아!!!”
“자, 잠깐! 진정해 아이리스!”
“진정?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입술을 짓씹은 채 서글프게 우는 아이리스.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에.
“너, 너야!”
나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외치고 말았다.
“너랑 해 봐서 알고 있던 거라고!”
“…예?”
주먹을 휘두르던 아이리스가 우뚝 멈춰선 채 날 바라봤다.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