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194)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194화(194/196)
제194화. 마녀의 결심 (1)
수학여행이 끝난 후.
학교에는 다시 일상이 찾아왔다.
착실히 수업을 들으며 ‘영웅’이 되기 위한 경험과 지식을 착실히 쌓아 가는 후보생들.
그런 와중 나는….
“또 정학이야.”
그래.
수학여행 중 일으킨 사건 때문에 2주 정학을 맞게 된 나는 기숙사 침대에 누워 벌레처럼 몸을 꿈틀거렸다.
‘회귀하고 1년도 채 안 지났는데 정학만 4번째라니.’
솔직히 이 정도면 뭔가 세상의 악의 같은 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아. 수련이나 하러 갈까.”
어차피 방구석에 처박혀서 할 일도 없겠다, 이전에 얻은 ‘겁화’를 몸에 익히기 위해 수련장에 가려고 했을 때.
띠링.
히어로 워치의 알람이 울렸다.
라네즈에게 온 메시지였다.
[데일 오늘 나 수련 좀 도와줄 수 있어?]“음?”
갑자기 수련?
[수업은 어쩌고?] [아… 괘, 괜찮아. 오늘은… 자율 학습이니까.] [그래?] [응.] [그럼 언제쯤 만날까?] [지, 지금 바로 가자!]갑작스럽게 의욕을 불태우는 라네즈.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장했다.
[알았어. 그러면 30분 후에 만나자.] [응.]라네즈와 연락을 마친 후.
나는 간단하게 몸을 씻고 훈련용 트레이닝복을 입은 후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아… 데, 데일!”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귀엽게 붕붕 손을 흔들고 있는 라네즈의 모습이 보였다.
날 발견하고는 주인을 만난 강아지처럼 쪼르르 달려오는 라네즈.
“저번처럼 뒷산으로 가면 되는 거지? 바로 가자 데일!”
손을 잡아당기는 라네즈를 보며 피식 웃음을 삼켰다.
“그나저나 갑자기 왜 이렇게 수련에 열을 올리는 거야?”
“어? 그, 그건….”
순간 라네즈의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이내 금방 다시 미소를 지으며 고갤 저었다.
“헤헤. 별일 아냐. 그냥… 조금 더 내 가호를 잘 다루고 싶어져서 그랬어.”
“그래?”
“으, 응! 그래야 앞으로 데일한테도 많이 많이 도움이 될 수 있을 테니까!”
두 주먹을 꼭 쥔 채 의욕에 찬 목소리로 외치는 라네즈.
나는 고갤 끄덕이며 그녀의 뒤를 따라 뒷산으로 향했다.
평소 라네즈와 함께 수련하던 장소에 도착하자, 잡초 하나 없는 황무지가 되어 버린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여기서 하도 수련하다 보니 이렇게 됐네.’
울창한 숲 한가운데에 무슨 원형 탈모가 온 것처럼 뻥 뚫려 있는 모습을 보니 실소가 흘러나왔다.
‘뭐… 이러니까 학교 연무장을 피해서 여기 온 거지만.’
전처럼 힘을 제어하는 데 실패해서 학교 건물을 홀라당 불태워 버리는 것보다는 이쪽이 나으리라.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으, 응.”
고개를 끄덕이며 공터로 향하는 라네즈.
그녀를 뒤따라가려고 발걸음을 옮겼을 때.
“오늘은 호, 혼자 할게.”
“응? 혼자 한다고?”
“으, 응. 데일이 옆에 없어도 힘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하니까.”
“뭐… 그건 그렇긴 한데.”
처음과 비교하면 훨씬 나아졌지만, 아직 혼자서 혹한의 가호의 힘을 제어할 수준은 아니었다.
“데일도 혼자 수련하고 있다가 혹시… 위험해지면 그때 도와줘.”
“음. 알았어.”
걱정스럽긴 했지만.
라네즈가 원한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언젠간 결국 그녀 혼자서 혹한의 가호를 다룰 수 있어야 하니까.
“그, 그럼 나 저쪽에서 수련하고 있을게!”
그렇게 말하며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후다닥 달려가는 라네즈.
‘어디 그럼.’
나도 놀고만 있을 순 없지.
“쓰읍.”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심장 깊이 잠들어 있는 태초의 불을 깨웠다.
화르르륵.
불씨를 흡수했을 당시 목줄 풀린 야수처럼 날뛰던 모습은 어디갔는지, 온순한 양처럼 내 의지에 따라 타오르는 불꽃.
‘확실히 불씨를 흡수한 이후 다룰 수 있는 태초의 불의 양이 확 늘었어.’
회귀했을 당시에는 고작해야 촛불 정도 크기만의 태초의 불을 다룰 수 있었다면, 지금은 내 몸 크기를 훌쩍 넘어 주변을 뒤덮을 정도의 불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화르르르륵!
‘아직 태초의 불을 100% 다루기까진 한참 멀었지만.’
나는 내 의지에 따르지 않은 채 저 멀리서 사납게 타오르고 있는 불길을 바라봤다.
언젠가 저 불까지 다 내 의지대로 다룰 수 있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과연 나는 어떤 존재가 되어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마신보다 더 터무니없는 존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지.’
마신의 힘의 근원이 태초의 불이었다고 한다면 내 안에는 태초의 불 말고도 또 다른 힘이 깃들어 있다.
‘불을 꺼트리는 힘.’
아직 그 힘의 정체가 뭔지, 왜 내 안에 그런 힘이 깃들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그 모든 걸 내 손에 움켜쥔 순간.
‘바꿀 수 있어.’
지독히도 하얗던 그 미래를.
“후우.”
나지막이 숨을 내쉬며 천천히 불을 끌어올렸다.
몸을 뒤덮으며 타오르는 잿불.
모공 사이로 뿜어져 나온 회색 연기가 안개처럼 깔렸다.
‘처음에는… 10미터 정도로.’
화르르륵!
‘겁화’를 사용하자 날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 불꽃이 둘러쌌다.
“크윽…!”
미친 듯한 속도로 빠져나가는 마력.
댐의 물을 방류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마력이 줄어들었다.
‘이거 마력 소모가 상상 이상인데?’
주변 공간의 물리 법칙 자체를 바꿔 버리는 기술이다 보니 마력 소모가 심할 건 예상했지만, 이건 그 예상치보다도 훨씬 더 마력 소모가 극심했다.
‘점화로 회복되는 마력보다 소모되는 속도가 더 빨라.’
여기서 격화까지 사용해서 마력의 양을 늘린다면 지금보다야 더 오래 유지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결국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확실히… 심상 세계에서 쓰는 거랑 실제 써 보는 거랑은 다르네.”
겁화의 위력이나 효과 자체는 심상 세계에서 사용했을 때처럼 막강했지만.
‘문제는 숙련도지.’
실제 사용해 보니 쓸데없이 소모되는 마력이 너무 많았다.
구멍 뚫린 그릇에 물을 떠서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
‘겁화’에 소모되는 마력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많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마력이 더 컸다.
‘일단 1미터 정도로 범위를 줄여 볼까.’
꼴랑 주변 1미터 반경을 바꾸는 정도로 영역 전개라는 거창한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괜히 어설프게 범위를 넓히려다가 얼마 못 가 픽 사라지는 것보다야 나았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
화르르륵!
물음에 응답하기라도 하듯, 잿불이 사납게 타올랐다.
* * *
그렇게 겁화 수련에 매진한 지 몇 시간.
‘라네즈는 잘하고 있으려나?’
라네즈가 수련하고 있는 쪽으로 다가가니 전신에 땀을 뻘뻘 흘리며 혹한의 가호를 제어하고 있는 라네즈의 모습이 보였다.
“라네즈. 수련은 잘돼 가?”
“아, 으, 응.”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갤 끄덕이는 라네즈.
나는 수건을 들어 그녀의 이마에 흥건한 땀을 닦아 줬다.
“좀 쉬고 하자.”
“아, 아냐! 더 할 수 있어!”
“그래도 밥은 먹고 해야지.”
“그건….”
“자, 어서.”
라네즈의 손을 잡아끌며 나무 그루터기로 향했다.
“어디 보자. 오늘 점심은….”
“매, 매점에서 빵… 사 왔어.”
챙겨온 배낭에서 주섬주섬 빵을 꺼내는 라네즈.
나는 빵을 꺼내는 라네즈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도시락이 아니라 빵이라고?’
이제껏 라네즈와 수련할 때는 꼭 그녀가 직접 만들어 온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는데.
‘오늘은 좀 바빴나?’
하긴.
매번 도시락을 만들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도시락… 못 만들어 와서 미안.”
“아냐. 매번 얻어먹는 처진데 뭘.”
여기서 불평을 할 정도로 양심이 없진 않다.
“매점 빵도 오랜만에 먹으니 맛있네.”
“…응.”
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오물오물 빵을 먹는 라네즈.
“…라네즈.”
“으, 응? 왜?”
“무슨 일 있어?”
아까부터 그녀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느낌이었다.
“아, 아무것도 아냐. 좀 피곤해서 그래.”
“음…. 그러면 오늘 수련은 여기까지 할까?”
“아, 아냐! 더 하고 싶어! 아니, 더 할 거야!”
다급하게 외치는 라네즈.
나는 눈을 찌푸리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전에 말했잖아. 너무 무리하면 오히려 수련 성과가 떨어진다고.”
“…….”
라네즈는 굳게 입을 다문 채 머릴 숙였다.
“…잖아.”
“응?”
“데일은, 매번 무리하잖아.”
“그건….”
“데일은… 안 죽으니까?”
“아니, 그렇다기보단.”
“그래도 고통은 똑같이 느끼잖아? 다치면 아프고, 상처 입으면 괴롭잖아?”
“…….”
잘 못 만지면 그대로 부서질 것처럼.
어딘가 위태롭게 느껴지는 라네즈의 목소리.
그녀는 내 손을 두 손으로 꼭 움켜쥐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데일도… 아프기 싫으면서… 괴롭고, 힘들면서… 계속 노력하잖아.”
“라네즈.”
“나도… 조금만 더 노력해 보면 안 돼…?”
“…….”
어째서일까.
지금 라네즈를 가만히 둬서는 안 된다는 직감이 들었다.
“돌아가자.”
“…데일.”
“대신, 내일도 같이 수련하자. 그러면 괜찮지?”
어차피 정학 기간 중이라 수업도 없겠다.
라네즈의 수련을 도와줄 시간은 충분했다.
“응, 알았어.”
옅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갤 끄덕이는 라네즈.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내 손을 감싸고 손을 풀었다.
“역시 데일은… 상냥하네.”
“갑자기 뭔 소리야?”
“헤헤. 아무것도 아냐.”
그렇게 간단한 점심을 먹은 후, 나랑 라네즈는 학교로 돌아왔다.
“내일 연락할게.”
“응. 내일 봐 데일.”
가볍게 손을 흔드는 라네즈를 뒤로한 채 나는 방으로 향했다.
“…….”
그런 내 뒷모습을 라네즈가 빤히 지켜보고 있는 눈치채지 못한 채.
* * *
데일과 헤어진 후.
라네즈는 기숙사가 아닌, 데일과 수련했던 학교 뒷산 쪽으로 향했다.
-데일… 호, 혹시 전생의 나는… 어떻게 됐어?
며칠 전 그날.
데일과 나눴던 대화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니, ‘떠올랐다’라는 표현은 맞지 않을 것이다.
그날 이후부터.
머릿속에는 그 생각만 가득했으니까.
-라네즈는….
-소, 솔직하게 말해 줘. 부탁할게!
그러지 말걸.
차라리 모른 채로 있을걸.
“밤의… 마녀.”
데일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미래는 바뀌었고, 내가 마녀가 될 일은 없을 거라 말해 줬다.
나도 알고 있다.
미래는 바뀌었다는 걸.
더 이상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된다는 걸.
하지만.
‘나는… 지금 이 모양인걸.’
천천히 가호의 힘을 일으킨다.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날 감싼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
꽉 깨문 입술에서 피가 새어 나올 정도로 정신을 집중해 봐도, 혹한의 가호는 내 뜻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아, 으….”
눈가에 맺힌 눈물이 땀방울과 섞여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