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196)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196화(196/211)
제196화. 마녀의 결심 (3)
발할라 시티.
영웅 학교 앞에 만들어진 큰 도시에는 이른 아침에도 삼국에서 모인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여기… 사람이 이렇게 많았구나.”
라네즈는 북적이는 거리를 보며 움찔 몸을 떨었다.
워낙 소심한 성격이다 보니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것만 봐도 현기증이 올 것 같았다.
‘그래도… 가야 해.’
당연하지만.
정식으로 자퇴 신청서가 받아들여지고 학교 밖으로 나온 게 아니었다.
애초에 영웅 학교에서 ‘자퇴’라는 건 생각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앞으로는 절대 영웅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이랑 여러 감시용 마도구를 차야지만 자퇴할 수 있으니까.’
자퇴한 후보생, 즉 정식 영웅 자격증은 없지만 ‘성흔’은 지닌 사람의 경우 남은 평생을 철저한 감시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정식 영웅 자격증 없이 활동하는 영웅은 대부분 높은 확률로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대기 마련이니까.
라네즈는 그런 복잡한 과정을 모두 넘긴 채 자퇴 신청서 하나만 달랑 제출하고 몰래 학교 담을 넘었다.
즉, 영웅 학교 교칙상 폭행과 절도 이상의 중범죄로 취급받는 ‘무단 자퇴’를 저지른 것.
군대로 치면 탈영을 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곧 추적대가 따라붙을 거야.’
무단 자퇴 자체가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대처가 빠르진 않겠지만, 그래도 곧 몇몇 교수를 중심으로 추적대가 편성되어 그녀를 쫓을 것이다.
‘그때까지 최대한 멀리 도망쳐야 해.’
워프 게이트는 이용할 수 없다.
게이트 출입 기록으로 금방 꼬리가 잡힐 테니까.
“…….”
라네즈는 정처 없이 거리를 거닐며 어제의 기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자신을 걱정해서 모인 동료들.
데일과 만나기 전이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너무나 따듯한 시간.
“…아.”
학교 밖으로 나온 지 고작 몇 시간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그리움이 가득 마음을 채운다.
그냥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갈등과 후회가 무겁게 발목을 붙들었다.
‘안 돼.’
질끈 눈을 감으며 고갤 저었다.
‘혹한의 가호를 완벽하게 다루기 전까지…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해.’
자신의 전생에 관해 들었을 때.
‘밤의 마녀’가 되어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게 되는 미래를 알게 됐을 때.
라네즈는 결심했다.
‘같이 있으면 안 돼.’
데일과… 다른 동료들과 멀어져야 한다고.
‘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나 마찬가지니까.’
자신이 가호의 힘을 제어하지 못하는 순간, 수많은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
“헤헤… 데일이랑만 알고 지냈다면 이런 생각도 안 했을 텐데.”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데일은 소생의 가호를 지니고 있기에 죽어도 되살아난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동료들은?
만약 자신이 가호의 힘을 제어하지 못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다치게 한다면?
‘소중한 사람들….’
라네즈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데일과 만나기 전, 그녀의 삶에 소중한 사람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세계는 지독히도 차갑고, 숨 막히게 춥웠다.
그랬던 삶에.
따스한 불이 피어올랐다.
소중한 사람이… 아니, 소중한 사람‘들’이 생기게 됐다.
‘소피아, 아이리스, 유리나, 베럴드, 엘리샤 교수님….’
그 밖에도 이번 수학여행 중에 알게 된 카밀라와 줄리엣, 알버트 등.
예전이었다면 감히 상상조차 해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과 친해졌다.
아무도 자신을 ‘마녀’라 부르지 않는 세상에 살게 됐다.
그렇기에.
‘망치고 싶지 않아.’
자신의 손으로 그들을 해치고 싶지 않았다.
어렵게 손에 쥔 따스한 불씨를 차가운 입김으로 꺼트리고 싶지 않았다.
“…가자.”
라네즈는 무거운 발걸음을 떼며 앞으로 나아갔다.
* * *
그렇게 몇 시간을 더 걸었을까.
발할라 시티 밖으로 나온 그녀는 다음 행선지를 고민했다.
“동쪽은 공화국, 서쪽은 제국, 북쪽은 성국….”
하지만 그 어디를 가더라도 추격대가 따라붙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삼국과 영웅 학교는 긴밀하게 이어져 있었으니까.
“그러면 남은 건….”
남쪽을 향해 고갤 돌리는 라네즈.
대륙의 남쪽.
마인들의 도시인 ‘게헨나 시티’가 있는 방향.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곳이니 만약 혹한의 가호가 폭주한다고 해도 피해가 덜했다.
‘남쪽으로 가자.’
전에 멘토링 수업 때의 기억을 되살려 대륙 남쪽으로 향하는 라네즈.
괜히 마경이라 불리는 곳이 아니라는 듯.
대륙 남쪽으로 향하는 길은 사람 한 명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한산했다.
“…데일 보고 싶다.”
라네즈는 히어로 워치에 찍어 둔 데일의 사진들을 보며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데일의 온천 직후 사진… 가지고 싶었는데.”
미처 아이리스에게 받지 못한 사진을 떠올리며 한적한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스륵, 스르륵.
귓가에 들려오는 불길한 소리.
마수인가 싶어 고갤 돌린 곳에 보인 것은….
“…누, 누구세요?”
늑대 형상의 반 가면을 쓴 정체불명의 괴인.
코 아래로 보이는 각진 턱선으로 보아 남자였다.
“라네즈 말람, 맞나?”
“…….”
대답하지 않았지만, 늑대 가면의 사내는 이미 그녀가 라네즈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따라와라. 그분이 널 원하신다.”
“그분…이라뇨? 누군데요 그게?”
“네가 알 필요 없다.”
마치 감정이 도려내진 것처럼 메마른 목소리로 말을 잇는 사내.
라네즈는 경계심 어린 표정으로 고갤 저었다.
“싫어요.”
“뭐, 그렇겠지.”
예상했던 반응이라는 듯 고갤 끄덕이는 늑대 가면.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스릉.
늑대 가면의 사내는 등에 멘 검집에서 대검을 뽑아 들었다.
우우우웅!
성흔이 빛을 뿜으며 검날을 타고 오러가 맺혔다.
“…어?”
오러를 바라보던 라네즈의 눈동자가 커졌다.
수상쩍기 그지없는 외형에 내심 늑대 가면 사내의 정체가 마인일 거라 짐작하고 있었는데.
‘영웅?’
늑대 가면의 사내에게선 마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마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을 텐가?”
“읏…!”
라네즈의 의문이 끝까지 이어지기 전에, 사내가 발을 박차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두 손으로도 들기 어려울 것 같은 대검을 한 손으로 가볍게 휘두르는 늑대 가면.
섬뜩한 파공성이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하앗!”
휘이이잉!
라네즈가 짧은 기합을 터트리며 두 손을 뻗자 새하얀 눈의 벽이 허공에 만들어졌다.
카아앙!
벽에 막혀 튕겨 나가는 대검.
“얼어붙어라!”
라네즈는 가호의 힘을 더욱 끌어올리며 늑대 가면을 향해 눈덩이를 발사했다.
사나운 눈보라가 휘몰아치며 수십 개의 눈덩이가 늑대 가면을 노리고 쏘아졌다.
“흐읍!”
날렵한 동작으로 매섭게 쏟아지는 눈덩이를 피하는 늑대 가면.
눈덩이가 부딪힌 자리가 순식간에 얼어붙으며 주변 대지가 얼음에 뒤덮였다.
“어딜!”
날렵하게 도망치는 늑대 가면을 향해 라네즈가 팔을 뻗었다.
휘이이이잉!
눈보라가 뾰족하게 뭉쳐 만들어진 눈의 창이 늑대 가면을 노렸다.
늑대 가면은 눈의 창을 보자마자 재빠르게 피하려고 했지만.
콰드드득.
“음?”
눈덩이에 맞아 얼어붙어 있던 대지에서 얼음이 솟구쳐 오르더니 그의 발을 붙들었다.
푸욱.
눈의 창이 늑대 가면의 복부를 꿰뚫었다.
“호오.”
늑대 가면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이게 혹한의 가호로군.”
흥미롭다는 듯 고갤 끄덕이는 늑대 가면.
눈의 창에 꿰뚫린 복부가 순식간에 괴사하며 철철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콰득.
복부를 꿰뚫은 창을 손으로 붙잡은 채 뽑아내는 늑대 가면.
“아직 어설퍼.”
뻥 뚫려 있던 복부의 상처가 빠른 속도로 재생됐다.
“어, 어떻게…?”
라네즈는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재생되는 늑대 가면의 상처를 바라보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치유 마법을 받은 것도, 회복 물약을 사용한 것도 아닌데 저렇게 빠르게 상처를 치유하다니?
그것도 동상으로 세포가 모두 괴사해 버린 상처를.
“재롱은 끝인가?”
늑대 가면의 눈동자가 섬뜩하게 번들거렸다.
쿠웅!
발을 박차고 돌진하는 늑대 가면.
사납게 타오르는 오러에 휘감긴 대검이 라네즈를 노렸다.
“읏!”
라네즈는 다시 눈의 벽을 만들어 그의 검을 튕겨 내려고 했지만.
“아, 으… 악…!”
요동치는 눈보라.
혹한의 가호가 그녀의 제어를 벗어나 날뛰기 시작했다.
“흐음.”
늑대 가면은 그녀 몸 주변에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보며 휘두르던 검을 멈췄다.
“역시 가호를 아직 제어하지 못하는군.”
“하아, 하아! 시, 시끄러워…요!”
라네즈는 피가 흘러나오도록 입술을 세게 짓씹으며 늑대 가면을 향해 손을 뻗었다.
휘이이잉!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한 점에 모여들어 눈의 창을 만들었지만.
“아윽!”
쩌저저적!
이내 눈의 창이 산산이 부서지며 흩어졌다.
“아아아악!”
창이 부서지며 흩날린 얼음 파편이 라네즈의 몸을 난자했다.
얼음 파편에 난자당한 몸에 붉은 핏물이 새어 나왔다.
“아, 으… 흐윽.”
라네즈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흐느꼈다.
적과 싸우지는 못할망정 제 몸에 자해하는 꼴이라니.
‘한심해.’
밀려드는 자괴감에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가호를 다루고 싶나?”
늑대 가면은 라네즈를 내려다보며 메마른 목소리로 물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늑대 가면은 품속에서 녹색으로 반짝이는 마석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던졌다.
툭.
바닥을 구른 마석이 그녀의 손에 닿는 순간.
“…어?”
순식간에 잠잠해진 눈보라.
라네즈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초록빛으로 반짝이는 마석을 쥐었다.
“뭐, 뭐야 이거…?”
단순히 혹한의 가호의 힘을 억제하거나 사라지게 만드는 게 아니다.
녹색 마석을 손에 쥔 순간, 말 그대로 혹한의 가호를 ‘제어’할 수 있게 됐다.
휘이이이잉!
그녀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는 눈보라.
쩌적!
방금 전 만들자마자 부서져 버렸던 눈의 창이 완벽한 형태로 허공에 만들어졌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수십 개의 창이.
“그분의 힘이 담긴 마석이다.”
“…….”
“그 마석이 있으면 네 가호를 제어할 수 있다.”
라네즈는 멍한 표정으로 손에 쥔 마석을 내려다봤다.
그토록 그녀를 괴롭게 만들었던 혹한의 가호를.
이렇게 쉽게, 이토록 간단하게 제어할 수 있다니.
“날 따라와라.”
귓가에 들려오는 중저음의 목소리.
감정의 편린조차 느껴지지 않은 그 메마른 목소리가, 어째서인지 너무나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러면 네 고민을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늑대 가면의 말을 의심할 필요는 없었다.
그가 건네준 마석을 손에 쥐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혹한의 가호를 제어할 수 있게 됐으니까.
“…….”
라네즈는 손에 쥔 녹색 마석을 내려다보며 굳게 입을 다물었다.
“고민할 필요가 있나? 가호의 힘을 제어하는 게 네 목적이었을 텐데.”
그래.
그의 말마따나, 그녀가 무단 자퇴를 결심하면서까지 학교에서 도망쳐 나온 것은 모두 혹한의 가호의 힘을 제어하기 위해서였다.
이 마석만 있으면.
그녀는 마녀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데일과… 소중한 동료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
“그러네요.”
라네즈는 마석을 손에 쥔 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저는….”
라네즈는 전력으로 가호의 힘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파삭!!!
한 점에 그 힘을 집중해 손에 쥐고 있던 마석을 부쉈다.
“무슨…!”
경악한 표정으로 눈을 부릅뜨는 늑대 가면.
휘이이이이잉!
마석을 부수자마자 다시 날뛰기 시작한 가호의 힘.
“저는… 당신을 따라가지 않을 거예요.”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
마녀는 자신의 ‘결심’을 입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