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198)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198화(198/211)
제198화. 막간 – 따듯한 겨울 (1)
라네즈를 학교로 다시 데려온 이후.
그녀는 바로 집중 치료실에 입원했다.
몸 곳곳에 얼음 파편이 박혀 만들어진 상처도 상처였지만, 다른 것보다 팔 전체가 괴사한 상처가 가장 컸다.
무리한 수련으로 인해 망가진 마력 회로에 이어 내부 장기까지 침투한 냉기, 신경 세포마저 모조리 괴사해 버린 두 팔까지.
아이리스가 ‘일곱 눈’을 사용한다고 해도 치유하기 쉽지 않은 상처였지만.
“데일, 이거 라네즈 선배에게 줘.”
유리나는 새하얀 빛무리가 서린 물약을 내게 내밀었다.
신의 은총.
죽지만 않는다면 그 어떤 상처라도 회복할 수 있다고 전해지는 성국의 비약이었다.
“…괜찮겠어?”
신의 은총은 대륙에서 가장 비싸다고 알려진 발할라 시티 중심부에 커다란 저택을 구할 수 있을 만한 고가의 비약이다.
아무리 헬리오스 가문의 영애라고 해도 선뜻 건네기 어려운 귀한 보물이었지만.
“동료가 이런 심한 상처를 입었는데 지금 안 쓰면 언제 쓰라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는 유리나.
“아.”
쿨하게 몸을 돌려 돌아가려던 유리나가 우뚝 발걸음을 멈췄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눈을 반짝인 그녀가 쪼르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데일, 나 착한 일 한 거 맞지?”
“어? 뭐… 그렇지?”
동료를 위해 선뜻 값비싼 비약을 건네주다니.
칠성교에 오래 몸을 담은 독실한 성직자라고 해도 쉽게 내리기 힘든 결정이다.
“그러면 나… ‘상’을 받고 싶은데….”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내가 뭘 원하는지 알지?’라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유리나.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피식 웃음을 삼켰다.
유리나에게 있어서 ‘상’이 될 만한 일이라면 하나뿐이었다.
“알았어.”
천천히 손을 뻗어 유리나의 머리칼 위에 올렸다.
손가락 사이로 스치는 부드러운 은발.
쓰윽, 쓰윽.
너무 강하지 않게, 반대로 너무 약하지도 않게.
적절한 힘을 담아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에헤헤….”
평소 빠릿빠릿한 모습은 어디 두고 온 건지 녹아내릴 듯한 표정으로 머릴 쓰다듬는 손에 비비적 이마를 문대는 유리나.
꼬리가 있었다면 지금쯤 강아지처럼 흔들리고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녀가 만족할 때까지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난 라네즈한테 가 볼게.”
“응. 걱정 많이 했다고 안부 전해 줘.”
유리나에게 신의 은총을 받아 든 후 라네즈가 입원한 집중 치료실로 향했다.
“아, 으.”
침대에 누운 채 가쁜 숨을 내쉬는 라네즈.
심한 동상으로 괴사한 양팔에는 치료용 마도구가 연결되어 있었다.
“데… 일?”
날 발견한 걸까.
라네즈는 고통에 눈을 찌푸리면서도 어색한 미소를 입에 머금었다.
“이거 마셔.”
“…뭔, 데…?”
“마셔 보면 알 거야.”
비약의 뚜껑을 열어 조심스럽게 그녀의 입 안에 흘려 넣었다.
앵두 같은 입술 사이로 흘러드는 새하얀 액체.
우우우우웅!
곧 비약 안에 깃들어 있던 성력이 뿜어져 나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아.”
창백했던 라네즈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며 보랏빛으로 괴사했던 그녀의 두 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건 설마…?”
“유리나가 신의 은총을 줬어.”
“시, 신의 은총이라고?!”
눈을 번쩍 뜨며 몸을 일으키려는 라네즈.
나는 피식 웃으며 라네즈의 어깨를 살짝 눌렀다.
“아직 일어나지 마. 상처는 다 치료됐다고 해도 피로 자체는 그대로 남아 있을 테니까.”
그 점은 수도 없이 죽음과 소생을 반복해 온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 하지만….”
“고맙다는 인사는 나중에 하고. 일단…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얘기해 줄 수 있어?”
그녀를 찾은 곳에 보였던 건 분명 전투의 흔적이었다.
그것도 그녀가 폭주할 때까지 ‘혹한의 가호’의 힘을 끌어올렸어야 할 만큼 격렬한 전투.
“…….”
쭈글쭈글한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이던 라네즈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습격이 있었어.”
“습격? 누구한테서?”
“모르겠어.”
나지막이 고갤 젓는 라네즈.
그녀는 그때의 상황을 천천히 내게 설명했다.
“발할라 시티 밖으로 나가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늑대 가면을 쓴 괴인이 나타났다, 라.”
나는 가늘게 눈을 떴다.
‘처음부터 라네즈를 노리고 있던 거군.’
그렇다면 두 가지 의문이 남는다.
‘누가, 왜?’
늑대 가면이 말했다는 ‘그분’이라는 건 누굴 말하는 걸까?
그리고, 그가 라네즈를 노리는 이유는 또 뭘까?
“라네즈.”
“으, 응?”
“마인이 아니라 영웅이라고 했었지?”
“…맞아.”
라네즈는 늑대 가면과의 전투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마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
“…….”
마인이 아닌 영웅.
자연스럽게, 자칼이 남겼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영웅 중에… 메피스토와 내통하고 있는 배신자가 있다.’
그리고 그 배신자는.
‘한 명이 아니다.’
깊은 한숨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우으….”
내 표정이 워낙 어두웠기 때문일까.
도둑질하다 걸린 아이처럼 겁에 질린 표정으로 쭈굴거리는 라네즈.
나는 일단 배신자들에 대한 생각을 접고 그녀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어디 보자… 일단 열은 없네.”
“데, 데일….”
“뭐 필요한 거 없어?”
“필요한 거?”
겁에 질린 표정으로 쭈글거리고 있던 라네즈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녀는 이불을 턱 끝까지 올린 채 꼬물꼬물하더니, 이내 슬쩍 시선을 피하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배….”
“응?”
“배, 배고파.”
“아.”
하긴.
무단 자퇴를 하고 학교 밖으로 나간 후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식사조차 못 했을 테니 배가 고플 만도 하리라.
“잠깐 기다리고 있어.”
나는 치료소 측에 요청해 환자가 먹기 좋은 따듯한 양송이 스프를 받아 왔다.
“스프 가져왔어. 자, 여기 숟가락.”
“으, 응. 고마워.”
“…왜?”
영 표정이 석연찮은데.
“아, 아니! 아무것도 아냐!”
숟가락을 받아들며 허겁지겁 양송이 스프를 비우는 라네즈.
그때.
“아.”
처억!
아직 완벽히 몸이 회복되지 않은 탓일까.
라네즈의 손에서 떨어진 그릇이 바닥에 떨어졌다.
치료소에서 사용하는 그릇답게 바닥에 떨어져도 그릇이 깨지진 않았지만, 스프가 튀어 오르며 내 옷에 살짝 묻었다.
“미, 미, 미안 데일! 나, 나… 그, 그러려고 한 게…!”
“괜찮으니까 당황하지 말고. 어디 다친 곳은 없어?”
“나, 난 괜찮은데… 데, 데일이….”
“나도 멀쩡해.”
스프가 살짝 옷에 튄 정도다.
“데, 데일! 옷 줘! 나중에 빨아서 돌려줄게!”
“괜찮아. 스프 조금 튄 거로 뭘 그렇게까지….”
“아, 아냐! 제발… 부탁할게!”
혼날 걸 걱정하기라도 한 걸까.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외치는 라네즈를 보며 나는 속으로 피식 웃음을 삼켰다.
‘그래도 역시 라네즈는 라네즈네.’
혹한의 가호를 혼자서 제어하며 조금 성격이 바뀌었나 싶었더니.
이런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라네즈 그 자체였다.
‘뭐, 저런 쭈글쭈글한 모습이 귀여운 거지만.’
겁에 질린 설치류 같다고 해야 할까.
보고 있다 보면 묘하게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모습에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자, 여기.”
나는 그 자리에서 스프가 묻은 셔츠를 벗어(안에 내복을 입고 있다) 그녀에게 내밀었다.
“아… 고, 고마워.”
“그럼 바닥에 흘린 스프부터 닦고 새 스프 가져다줄게.”
“…응.”
그렇게 라네즈의 병간호가 끝난 후.
라네즈는 곧바로 집중 치료실에 퇴원했다.
“방까지 데려다줄게.”
“아, 아냐! 괜찮아! 혼자서 갈 수 있어!”
기숙사 방까지 데려다준다는 내 제안을 거절하고 혼자 방으로 향하는 라네즈.
그렇게.
파란만장했던 그녀의 무단 자퇴 사건은 일단락됐다.
‘아직… 뒤처리가 남아 있긴 하지만.’
나는 학교 본관을 돌아보며 씁쓸한 미소를 입에 머금었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며 루카스 교수의 교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불가하다.”
루카스 교수의 교수실.
의자에 앉은 루카스 교수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갤 저었다.
“라네즈 후보생은 영웅 학교 내에서도 손에 꼽는 중죄를 저질렀다. 징계를 피할 순 없어.”
“하루 만에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런 논리라면 훔친 물건을 다시 돌려놓으면 절도죄도 사라지는 건가?”
“…….”
이어지는 루카스 교수의 말에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넘어가는 건 힘든가.
“어떤 징계를 받게 되죠?”
“뭐, 징계위원회가 열려 봐야 확실히 정해지겠지만… 최악의 경우, 후보생 자격을 박탈당하고 퇴학 처분이 내려질 수도 있다.”
“…….”
영웅 학교에서의 퇴학은 단순히 학교에서 쫓겨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앞으로 남은 평생.
성흔의 힘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마법 서약을 강제로 맺어야 하며 감시용 마도구를 착용한 채 범죄자처럼 살아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없다. 이미 상부까지 보고가 올라갔어.”
루카스 교수는 입술을 짓씹으며 말을 이었다.
“차라리 전에 네놈이 했던 것처럼 그냥 아무 말 없이 학교 밖으로 뛰쳐나간 거라면 내 선에서 정학 정도로 징계를 낮출 수 있지만….”
하아.
땅이 꺼지라 깊은 한숨을 내쉬는 루카스 교수.
“그러게 왜 자퇴서 같은 걸 써 가지고….”
루카스 교수의 말마따나.
라네즈가 떠나면서 남겼던 자퇴서가 학교 측에 보고되면서 사태가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렸다.
전에 내가 유리나를 구하기 위해 학교를 무단으로 이탈해 외박한 거라면 교수 쪽에서 ‘외박 허가서 발급 과정에서 착오가 생겼다’라는 식으로 수습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물증이 너무 확실하니까.’
라네즈가 명백한 무단 자퇴 의사를 가지고 학교 밖으로 나갔다는 게 확실해진 상황.
같은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의도가 있었냐, 아니었냐를 가지고 죄의 경중이 나뉘는 것처럼, 지금 라네즈가 남긴 자퇴서는 그녀의 발목을 붙잡는 족쇄가 되어 버렸다.
“일단… 학교로 돌아오긴 했으니 나도 최선을 다해서 변호해 보겠지만….”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며 지그시 눈을 감는 루카스 교수.
“안 그래도 라네즈 후보생을 좋지 않게 보는 교수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중징계를 피하긴 어려울 거다.”
“…….”
라네즈는 마인의 피를 이어받은 존재.
그런 그녀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건 후보생만이 아니었다.
“미안하다. 이건 어쩔 수 없….”
“제가 시킨 일입니다.”
“…뭐?”
나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느긋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제가 라네즈 선배를 협박해서 억지로 자퇴서를 쓰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