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2)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3화(3/141)
제3화.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2)
레이날드 영웅 학교.
500년 전 마신을 봉인한 위대한 다섯 영웅.
그중 파티의 리더이자, 전설적인 검사로 추앙받는 레이날드 헬리오스가 직접 세운 학교로서 일곱 신의 축복을 받아 ‘성흔’을 각성한 18살 청년들을 모아 4년간의 교육을 통해 어엿한 한 명의 영웅으로 만드는 교육 기관이었다.
영웅이란 그 한 명 한 명이 국가의 국력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존재.
현재 대륙을 삼분하고 있는 세력인 제국, 성국, 공화국에서는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더 우수한 영웅을 손에 넣기 위해 너 나 할 것 없이 성흔을 각성한 인간이라면 묻지도 따지지 않고 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제가 발생했다.
국가도, 신분도, 배경도 다른 청년들을 좁다란 학교에 욱여넣으니 서로 간의 분쟁이 끊이질 않았던 것이다.
결국 여러 영웅들과 삼국의 협의 끝에 레이날드 영웅 학교는 완전한 ‘중립 지대’로 선포됐다.
즉.
“적어도 학교 부지 내에서는 그 어떤 국가 간, 신분 간 차별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죠.”
“…그래서?”
“아이리스가 아무리 성국의 성녀라 할지라도 이곳에선 일개 후보생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
“한 달은 너무 깁니다. 4일 정도로 줄이죠.”
“야 이…!”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루카스 교수가 뒷목을 부여잡았다.
“너 원래 일주일 정학이었잖아!”
“예, 그랬죠.”
“근데 정학 중 사고를 치고는 뭐, 4일로 줄여 달라고?”
“원래 협상할 때는 세게 부르라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사고 치고 정학 기간을 깎아 달라는 미친놈이 어디 있나! 그리고 뭐? 협상? 협사앙? 지금 자네가 나랑 협상할 처지라 생각하나?”
루카스 교수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나는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비앙카 교수님의 생신이죠?”
마법부 담당 비앙카 교수.
루카스 교수와는 사이가 나쁘기로 소문난 여교수였다.
“…갑자기 비앙카 교수의 생일이 왜 나오는 거지?”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저 들짐승 같은 루카스 교수가 남몰래 비앙카 교수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앙카 교수님이 좋아하실 만한 물건,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
“하. 그딴 걸 내가 왜 알아야 하지?”
“그런가요? 아쉽네요. 아마 그걸 생일 선물로 받으시면 평소 아무리 사이가 나빴던 이성이라도 조금은 다르게 보일 텐데 말이죠.”
“…….”
루카스 교수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떨리는 모습이 보였다.
드륵.
나는 의자를 뒤로 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 근데 딱히 관심 없으신 것 같으니 어쩔 수 없네요. 제가 지은 죄가 있으니 얌전히 벌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점잖게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려 교수실 밖으로 걸어 나가려 했을 때.
“…잠깐.”
루카스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무슨 일이시죠?”
“정학 기간을 줄여 주는 대신 조건이 있다.”
“비앙카 교수님이 좋아하시는 물건이라면….”
“아니, 그거 말고.”
루카스 교수는 마치 날 꿰뚫어 보듯 날카로운 눈으로 말을 이었다.
“내일 전사부 대련 수업에 참여해서 이겨라. 그게 조건이다.”
“흐음. 대련 상대는 누군데요?”
“그건 알려 줄 수 없지.”
뜬금없게까지 느껴지는 대련 제안.
루카스 교수가 왜 그런 제안을 건넸는지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겠지.’
갑작스러운 급습이었다고는 하나 ‘피에 굶주린 사냥개’라 불렸던 자신이 자다 깨어난 후보생 주먹에 맞아 꼴사납게 날아간 것.
차기 성국의 검으로까지 거론될 정도로 후보생 중에서도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카밀라 베디체가 검조차 뽑지 못한 채 제압당한 것.
평범한 후보생이 해도 믿지 못할 일을 종합 순위 꼴찌의 말석 후보생이 해냈으니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으리라.
“좋습니다.”
“…자신만만하군.”
“고작해야 대련인데 걱정할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흐음.”
루카스 교수는 낮은 침음을 삼키며 팔짱을 꼈다.
대체 이놈이 뭘 잘못 처먹기에 하루 만에 사람이 이렇게 바뀐 건가, 하는 생각이라도 하는 걸까.
그렇다면 애석하게도 대답해 주기 어려웠다.
내가 어째서 회귀하게 됐는지는, 나조차 알지 못하니까.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잠깐.”
“하실 말씀이 더 있으십니까?”
“크흠! 큼!”
고개를 돌려 루카스 교수를 바라보자 그는 괜한 헛기침을 연신 내뱉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그래서 아까 그 비앙카 교수님이 좋아하실 만한 물건이라는 건 뭐냐?”
“…….”
역시.
생긴 거랑 달리 순정파인 양반이라니까.
* * *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뜬 나는 침대에 누운 채 한동안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죽기 전에 본 주마등…이었던 건 아닌 거 같네.”
태초의 불을 쫓아 홀로 대륙을 떠돌았던 시간이 너무 길었던 걸까.
아직 회귀했다는 실감이 들지 않았다.
“후우.”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가볍게 세안을 마치고 물기에 젖은 거울을 바라봤다.
타고 남은 재처럼 짙은 회색빛 머리칼에 녹색 눈동자.
실로 오랜만에 보는 자신의 얼굴이었다.
‘얼굴은 바뀐 거 없네.’
소생의 가호를 각성한 뒤로는 자연스럽게 노화도 멈추게 됐으니 당연한 일이라.
물끄러미 거울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후보생 정복으로 갈아입고 학교로 향했다.
몸에 짝 달라붙는 정복이 아직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마치 내게 새롭게 주어진 삶처럼.
* * *
“하, 정말 저보고 저놈이랑 대련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꼬부랑거리는 청발을 지닌 곱상한 외모의 후보생 한 명이 불쾌하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펠릭스 오드먼.
나와 같은 전사부이자, 3학년 후보생 종합 순위 100위 안에 드는 나름 상위권의 후보생이었다.
“불만 있나?”
“아뇨. 그, 그런 건 아니지만….”
시종일관 찡얼거리던 펠릭스는 루카스 교수의 눈빛 한 방에 깨갱 꼬리를 말았다.
“하아. 알겠습니다.”
펠릭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대련용 목검을 집어 들었다.
“야, X신. 후딱 끝내게 빨리빨리 검 들어.”
신경질적인 눈으로 날 노려보는 펠릭스.
다른 반 수업을 들었던 그는 어제 있었던 ‘실전 전투 훈련’에서 내가 루카스 교수를 날려 버린 일이나 카밀라를 제압했던 모습은 직접 보진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워낙 화제가 된 탓에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는 봤을 텐데도 딱히 날 경계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하긴.
만년 꼴찌가 갑자기 교수 중에서도 쟁쟁한 실력자로 유명한 루카스 교수를 주먹 한 방에 날려 버렸다거나 차기 성국의 검을 한 손으로 제압했다는 말을 들었다 한들 쉽게 믿을 수 있겠는가.
“야, 들었어? 데일 저 자식이 어제 무슨 짓을 했는지?”
“아아, 그거? 그냥 헛소문 아냐?”
“아냐! 내가 직접 봤다니까!”
나와 펠릭스의 대련 소식에 몰려온 후보생들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눈을 빛냈다.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네.’
나는 주변에 모여든 후보생들을 돌아보며 쓴웃음을 삼켰다.
전생에는 후보생 시절 4년 내내 받아보지 못했던 뜨거운 관심이었다.
‘아니, 그때도 나름 관심을 모으긴 했나.’
지금처럼 뜨거운 관심이 아닌,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은 관심이었지만.
“후우.”
낮은 숨을 토해 내며 목검을 움켜쥐었다.
체감상 수천 년 만에 잡아 보는 대련용 목검의 감촉이 썩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던 추억의 장난감을 오랜만에 다시 만진 느낌이랄까.
“이번 대련 중에는 서로 마력의 사용을 금한다.”
“하, 제가 마력 없이는 저놈 하나 못 이길 것 같아서 그러십니까?”
펠릭스는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삼켰다.
마력.
신의 숨결이라고도 불리며, 성흔을 각성한 영웅만이 다룰 수 있는 힘이었다.
“다행이네? 어차피 너한텐 금지할 마력도 없잖아?”
펠릭스는 조롱의 빛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나를 쏘아보며 낄낄 어깨를 들썩였다.
그의 말마따나.
내가 지닌 마력은 후보생들의 평균 마력의 10퍼센트도 채 되지 않았다.
‘마력이 적은 건 내 고질적인 문제였으니까.’
오죽하면 용병으로 활동하던 시절 토끼가 싸는 것만큼 빠르게 마력이 고갈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 ‘래빗 한’이었을 정도였지 않은가.
나는 부족한 마력 탓에 겪었던 온갖 수모와 고생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삼켰다.
‘자,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한다.’
대련용 목검 끝으로 바닥을 툭툭 때리며 생각에 잠겼다.
어제는 워낙 정신이 없어 앞뒤 재지 않고 날뛰어 버렸지만.
지금은 다르다.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살지를 정해야지.’
목검 끝이 툭, 툭 바닥을 때리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야, 덤벼.”
한평생을.
남의 뒤만 쫓으며 살아왔다.
등만 바라보며 걸어왔다.
“덤비라니까? 내 말 안 들려 새끼야?”
말석 영웅 데일 한.
한 번 지어진 꼬리표는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녔다.
기나긴 용병 시절을 거쳐 나름 실력을 갖추고 인류 마지막 희망이라고 불렸던 ‘최후의 다섯 영웅’에 꼽히게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 참. 이 새끼 봐라. 쫄았냐? 어? 쫄았어?”
나는 언제나 다른 이들의 뒤만 쫓기 바빴다.
그들이 걸어간 길을.
그들이 지나간 발자국을.
어떻게든 따라잡기 위해 헉헉대며 뛰어갔을 뿐이다.
“그래, 네가 안 오면 내가 간다 이 새끼야.”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결국 나만이 남았다.
나 혼자, 나 홀로.
더 이상 아무도 남지 않게 된 차가운 설원 위에서 목 놓아 울었다.
“뒤져 X신아!!!”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이끌어 준 적 없이.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손을 뻗어 준 적 없이.
그렇게 살았다.
그게 이제껏 ‘데일 한’이 살아온 인생이었다.
-탁.
사납게 휘둘러지는 펠릭스의 검을 가볍게 흘렸다.
내딛는 발은 오른발.
오른발을 축으로 회전하듯 빙글 몸을 돌리며 움켜쥔 목검을 아래서 위로 올려 벴다.
태양검.
제1형, 초휴(初虧).
콰아앙!
목검을 휘둘렀다고는 믿기 어려운 굉음과 함께 펠릭스의 몸이 거칠게 튕겨 나가 바닥을 굴렀다.
“꺼억, 컥, 우웨에에엑!”
바닥을 나뒹굴던 펠릭스가 정통으로 얻어맞은 배를 움켜쥐며 토사물을 토해 냈다.
나는 길게 늘어트린 목검 끝으로 툭, 툭 바닥을 찍으며 입을 열었다.
“뭐 해? 먼저 오겠다며? 안 와?”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
“내가 가지 뭐.”
이젠.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