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200)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200화(200/211)
제200화. 배신자들 (1)
화려한 방 안.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한 그림들이 벽에 걸려 있었고,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에서는 화사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고급 호텔을 연상케 하는 방에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방이라면 마땅히 있어야 할 ‘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벽 어디를 둘러봐도 문은커녕 창문조차 없는 방.
중앙에 놓인 원형 테이블에는 사람 없는 의자가 3개 놓여 있었다.
우우웅.
그중 한 의자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그와 함께 허공에 만들어지는 홀로그램.
반투명한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얼굴의 주인은, 대륙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으음. 아직 다 안 오신 건가요?]현 영웅 랭킹 2위.
성국을 다스리는 영웅, 교황 마리안.
그녀는 느긋한 미소를 입에 머금은 채 텅 빈 방 안을 둘러봤다.
우우웅.
그사이 다른 의자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허공에 만들어지는 허허로운 노인의 얼굴.
현 영웅 랭킹 3위.
‘뇌신’ 라오넬 류였다.
마리안은 라오넬을 향해 가볍게 고갤 숙였다.
[오랜만이에요, 라오넬 총장님.] [늦어서 미안하네.] [후훗. 저도 방금 막 왔습니다.]마리안은 자애로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이번 수학여행 때 본교의 후보생들에게 여러 편의를 봐줘서 고맙네.] [어머, 앞으로 대륙을 책임질 미래의 영웅들에게 그 정도 투자는 당연하지요.]어깨를 으쓱이며 답하는 마리안.
라오넬은 그런 마리안을 보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후보생 한 명이 사고를 좀 쳤다는 얘길 들었는데….] [아아. 그거라면 신경 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조사 결과 성모님의 무덤이 훼손된 흔적은 없었으니까요.] [미안하게 됐네.] [후후. 괜찮습니다.]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둘.
[그나저나….]라오넬은 슬쩍 눈을 찌푸리며 남은 한 자리의 의자를 바라봤다.
[오늘도 늦는군.] [후후. 매번 있는 일이잖아요?] [끄응.]나지막한 숨을 내쉬는 라오넬.
그때.
우우웅.
남은 한 자리 의자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흐음. 호랑이라….]방 안에 울려 퍼지는 나른한 목소리.
맥 빠질 정도로 나른한 목소리였지만, 그 목소리에는 듣는 것만으로 절로 한쪽 무릎을 꿇어야 할 것처럼 근엄함과 카리스마에 가득차 있었다.
[여(余)를 그런 한낱 미물과 비교하는 것이냐?]화사한 백금발.
살이 비칠 것처럼 얇은 잠옷용 드레스를 입은 채, 기다란 의자에 반쯤 누워 있는 여인.
대낮부터 잠옷을 입은 채 의자에 누워 뒹굴거리는 모습은 백수 한량이나 다름없었지만, 여인에게서 흘러나오는 강렬한 카리스마와 독특한 분위기가 그런 생각을 가볍게 지워 냈다.
현 영웅 랭킹 1위, ‘여제’ 카멜리아 파드샤.
제국의 여황이자, 영웅들의 정점에 서 있는 존재였다.
[한낱 미물이라니. 호랑이가 공화국에서 영물로서 여겨진다는 걸 모르는 겐가?] [알고 있느니라. 하나….]카멜리아는 당장에라도 잠에 빠져들 것처럼 나른한 눈빛으로 라오넬을 돌아봤다.
[여 앞에서 세상 만물의 모든 생명체는 미물이니라.] […자네도 여전하군.]질린다는 표정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라오넬.
카멜리아는 마리안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번 시험의 결과는 어떻게 됐지?] [놀라웠어요.] [호오.]마리안이 마도구를 조작하자 테이블 중앙에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영상에서는 금발의 미남자가 칠성 기사단원들을 상대로 사납게 검을 휘두르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헬리오스 가문의 아이로군.]알고 있는 얼굴이라는 듯 고갤 끄덕이는 카멜리아.
그녀는 검을 휘두르는 유렌의 모습을 보며 하품을 내쉬었다.
[어머, 놀랍지 않으신가요? 아직 졸업도 안 한 후보생이 칠성 기사단원을 어린아이처럼 다루고 있는데.] [유렌 헬리오스가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는 건 예전부터 들어 알고 있었느니라. 하나….]가늘게 뜬 눈으로 유렌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는 카멜리아.
[못 본 사이 꽤 성취가 있긴 했구나.] [호오… 자네로서는 흔치 않은 칭찬이군.] [후후. 여라고 하여 칭찬에 인색한 건 아니니라.] [글쎄… 그런 것치고는 영 마땅찮다는 표정이네만?] [성취가 있었다고 한들 아직 애송이 아니더냐?]카멜리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영상을 쭉 훑어봤다.
[그래도… 이번 후보생 중에 몇몇 옥석들이 보이긴 하는구나.]영상에서는 아이리스와 카밀라, 베럴드, 소피아, 라네즈의 모습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음?]당장에라도 잠이 들 것처럼 나른했던 카멜리아의 눈동자가 이채가 설렸다.
[잠깐 멈춰 보거라.] [왜 그러시나요?]멈춘 영상에서 보인 것은 짙은 회색 머리를 지닌 후보생의 모습.
그 후보생은 달려드는 칠성 기사단원에게 잿빛 불꽃에 휘감긴 검을 휘둘러 가볍게 그를 제압하고 있었다.
[아, 저 후보생이라면….] [알고 있느냐?] [이번에 수학여행에서 소란을 좀 일으켰던 후보생이에요.] [소란?] [큰일은 아니고….]마리안은 이번에 있었던 무덤 무단 침입 사건에 대해서 카멜리아에게 설명했다.
[흐음.]반쯤 누워 있던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뚫어지라 영상을 바라보는 카멜리아.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라오넬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데일 후보생이 칠성 기사단원을 제압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유렌 후보생도 마찬가지 아닌가?]오히려 더 인상적인 실력을 뽐낸 건 데일이 아닌 유렌 쪽이었다.
고작 한 명의 기사단원을 제압한 데일과 달리, 유렌은 동시에 10명 가까이 되는 칠성 기사단원을 상대로 밀리지 않고 싸웠으니까.
[이상하지 않으냐?] [뭐가 이상하다는 겐가?] [벽이 부서진 것 말이느니라.]카멜리아는 천천히 손을 들어 데일이 휘두른 검에 맞고 칠성 기사단원이 날아간 자리를 가리켰다.
튕겨 나간 칠성 기사단원이 부딪힌 벽은 살짝 금이 간 채 부서져 있었다.
[저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라오넬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을 찌푸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저렇게 벽에 금이 갈 정도의 충격을 만들어 내기 어려웠지만, 영웅 사이의 전투에서 저 정도는 흔한 일이었다.
오히려 벽에 살짝 금이 간 정도라면 지금 수준의 전투치고는 별 피해가 없는 수준이었지만.
[아.]무언가 깨달은 듯 크게 눈을 뜨는 마리안.
[어, 어떻게…?]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마리안 자네까지 왜 그러는 건가?] [흐음. 아직도 이해 못 했느냐?]쯧.
혀를 차는 카멜리아.
[저 유적에는 강력한 보호 결계가 펼쳐져 있느니라.]시험이 치러진 유적은 바로 그레이스의 무덤과 이어진, 일종의 통로 역할을 하는 장소였다.
유적이 붕괴라도 하면 바로 아래 지어진 그레이스의 무덤이 훼손되기 때문에 유적 전체에 걸쳐서 강력한 보호 결계가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 영상에서는 분명 튕겨 나간 칠성 기사단원의 몸이 유적 벽에 ‘금’이 가도록 만들었다.
[즉.]카멜리아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원 계열이 많은 성국의 특성상 보호 결계의 수준은 삼국 중 단연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무엇보다 그 결계는….
[마리안이 펼친 보호 결계를 일개 후보생이 뚫었다고?]현 랭킹 2위.
교황 마리안이 막대한 성물을 사용해 펼친 보호 결계였다.
[이건…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할 것 같네요.]마리안 또한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카멜리아는 영상 속 데일의 모습을 보며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흐음. 저 후보생의 이름이 데일 한…이라고 했느냐?] [그렇네.] [관심이 가는구나.]백옥처럼 하얀 다리를 관능적으로 꼬며 팔짱을 끼는 카멜리아.
그녀는 라오넬을 돌아보며 특유의 느긋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라오넬. 저 후보생에 대한 정보를 여에게 보내거라.] […후보생의 개인 정보를 외부에 유출하는 건 엄격하게 금지된 일이네.] [신경 쓰지 말거라. 여의 말이 곧 법이니까.] […….]뻔뻔할 정도로 당당하게 후보생의 개인 신상 정보를 요구하는 카멜리아의 태도에 라오넬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그대가 주지 않더라도 곧 내 손에 들어올 정보이니라. 굳이 일을 번거롭게 만들 필요가 없지 않으냐?]그녀의 말마따나.
카멜리아가 데일의 정보를 원하는 이상 어떤 수단과 방법을 쓰더라도 손에 넣을 것이다.
그게 바로 현 영웅 랭킹 1위, ‘여제’ 카멜리아의 방식이었으니까.
[하아.]라오넬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데일의 정보가 적힌 파일을 전송했다.
[후후. 현명하구나.]카멜리아는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손목에 찬 황금 팔찌를 쓰다듬었다.
곧 홀로그램이 떠오르며 데일의 정보가 적힌 문서가 떠올랐다.
[자아, 어디 보자… 음?]쭉 문서를 읽어 내려가던 그녀는 눈을 찌푸렸다.
[…말석? 말석이라고?]이게 맞냐는 듯 찌푸린 눈으로 라오넬을 돌아보는 카멜리아.
라오넬은 피식 입꼬리를 올린 채 고갤 끄덕였다.
[정확한 정보네.] [여를 우롱할 생각이라면 그에 합당한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것이니라.] [우롱하다니? 자네 성격을 뻔히 알고 있는데 내가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하겠나?] […그렇다면 여기 적힌 정보가 정확하단 말이느냐?] [그렇다네.]라오넬은 고갤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참고로 지금 데일 후보생은 정학 중 또 사고를 쳐서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라네.]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는 카멜리아.
[마리안의 결계를 부술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를 숨기고 있다…, 라.]카멜리아의 눈동자가 이채가 서렸다.
[이거… 잘하면 이용할 수 있겠구나.] [이용하다니?] [안 그래도 최근 발할라 시티 안에 기어들어 온 ‘배신자’들 때문에 골치가 아픈 상황 아니더냐?] […….]라오넬의 표정의 딱딱히 굳었다.
카멜리아는 느긋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여는 이 아이가 적격이라고 생각하는데….]뛰어난 무력을 지녔음에도 세간에 그 정보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존재.
이만큼 ‘사냥개’로 이용하기 좋은 존재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배신자들의 목을 물어뜯어 죽일, 그 누구보다도 사나운 사냥개로.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카멜리아는 라오넬 총장을 바라보며 짙은 미소를 입에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