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208)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208화(208/211)
제208화. 막간 – 붉은 달 (1)
“커헉… 크륵….”
단말마의 신음과 함께.
가면 사이로 비치는 늑대 가면의 눈에서 빠르게 빛이 사라졌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헐떡이며 늑대 가면의 심장을 꿰뚫은 검을 뽑아 드는 유리나.
“…아.”
쓰러진 늑대 가면의 시체를 보고 나지막한 탄성을 흘리더니, 이내 흠칫 어깨를 떨었다.
“미, 미안 데일.”
“응? 뭐가?”
“발할라 시티에서 뭘 하고 다니는 건지 심문부터 해야 했는데… 그만….”
“아아, 그거라면 괜찮아.”
나는 쓴웃음을 삼키며 고갤 저었다.
처음엔 놈들을 붙잡아 심문할 계획이었지만, 전투를 지켜보던 도중 생각이 바뀌었다.
‘아마 심문한다고 해도 알아낼 수 있는 게 많지 않을 거야.’
딱 봐도 늑대 가면과 비교해 한참 급이 떨어지는 여우 가면, 토끼 가면은 붙잡아 심문한다고 해도 알아낼 수 있는 정보 자체가 너무 적을 게 뻔했고.
그나마 뭔갈 건질 수 있을 것 같은 늑대 가면은 심문이 통할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리고 꼭 입을 통해서만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나는 쓰러진 늑대 가면에게 다가가 그의 가면을 벗겼다.
벗겨진 가면 안에 드러난 얼굴은 각진 사각턱과 굵은 눈썹을 지닌 중년 사내의 얼굴.
얼마나 많은 전장을 겪어 온 건지 얼굴 전체에 흉터가 없는 부분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흉터가 새겨져 있었다.
‘이 정도면 사람을 기워 붙인 수준인데.’
대체 어떻게 숨이 붙어 있는 건지 의아할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흉터.
나는 쓰러진 늑대 가면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며 눈을 찌푸렸다.
‘전생에는 본 적 없었던 얼굴이네.’
물론 전생의 기억이라고 해 봐야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내 기억 속에는 남아 있지 않은 얼굴이었다.
“누굴까? 실력은 랭커 중에서도 상위권에 가볍게 들 만한 실력이었는데….”
“글쎄… 지금 랭커 상위권 중에선 비슷한 얼굴도 없는데.”
애초에 ‘랭커’라는 것 자체가 무슨 정확한 측정을 해서 뽑히는 게 아닌, 삼국 각지에 있는 호사가들의 입맛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보니 랭킹에 이름을 올리지 않는 영웅 중 의외의 실력자가 나타나는 건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일단 사진부터 찍어 두고.’
히어로 워치로 늑대 가면과 여우 가면의 얼굴을 촬영(토끼 가면은 시체가 불에 타 버려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했다.
“음… 그럼 결국 이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알 수 없는 건가?”
“그래도 학교 측에 알아보면 뭐라도 건질 수 있을 거야.”
“학교 측에?”
“이놈들은 마인이 아니라 ‘영웅’이니까.”
“아.”
성흔을 지닌 영웅이라면 영웅 학교 출신일 가능성이 컸다.
“정식 자격증 없이 활동한 영웅이면?”
“뭐… 그것까진 알아내기 어렵지.”
아쉽지만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추적이 불가능했다.
“일단 학교로 돌아갈까?”
그 뒤로도 늑대 가면과 여우 가면의 시체를 샅샅이 뒤져 봤지만 딱히 그들의 정체를 짐작할 만한 단서는 찾지 못했다.
“역시 죽이면 안 됐던….”
“애초에 가면까지 쓰면서 작정하고 정체를 숨기려 했던 놈들이잖아.”
건질 게 많이 없으리란 건 예상했던 일이다.
“하, 하지만.”
시무룩한 표정으로 쓰러진 시체들을 내려다보는 유리나.
문뜩, 그 시체를 만든 게 본인이라는 사실이 다시금 떠오른 걸까, 유리나의 표정에 짙은 그늘이 내려앉았다.
나는 그런 유리나를 보며 쓴웃음을 삼켰다.
‘뭐, 이번 일로 그래도 유리나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
검에 피를 묻히는 것.
그건 앞으로 그녀가 영웅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일이었다.
“가자, 유리나. 여기 시체들은 학교 측에 보고해서 가져가라고 하고.”
“으, 응.”
유리나가 고갤 끄덕이며 뒤따라왔다.
* * *
학교로 돌아온 후.
나와 유리나는 보고를 위해 곧바로 엘리샤 교수의 교수실로 향했다.
“둘 다 수고 많았다.”
히어로 워치로 전송한 늑대 가면과 여우 가면의 사진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엘리샤 교수.
“설마 수사 하루 만에 찾을 줄은 몰랐는데….”
“현지인의 도움을 좀 받았죠.”
“현지인?”
“예. 빈민가에 사는 아이인데, 돌아오면서 같이 데려왔으니 당분간 학교 측에서 보호해 주셨으면 합니다.”
루카와 렌은 혹시나 가면 집단의 잔당이 남아 있으면 표적이 될 수도 있으니 일시적으로 학교에 데려온 상태였다.
“알겠다. 내가 책임지고 보호하지.”
“부탁드리겠습니다.”
“근데 언제까지고 학교에 두긴 어려울 텐데… 나중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아이리스가 아는 보육원에 부탁해 맡길 생각입니다.”
“호오. 성국에서 관리하는 보육원이면 믿을 만하겠군.”
엘리샤 교수가 고갤 끄덕였다.
“그럼, 일단 자네가 찍은 사진을 토대로 조사를 해 보겠다.”
“예. 나중에 뭐 알아내신 거 있으면 연락 주십쇼.”
“후후. 물론이다. 아, 그리고 그와는 별개로 총장님께서 자네와 한번 식사하고 싶다고 하시더군.”
“라오넬 총장님이요?”
말석 후보생과 학교 총장님과의 식사 자리라니.
상상만 해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그래. 이번 일은 총장님께서 직접 지시하신 일이었으니, 아마 식사 자리에서 보수와 관련된 얘기도 있을 거다.”
“아….”
하긴.
라오넬 총장이 후보생에게 이런 위험한 일을 시켜 놓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입을 싹 씻을 만한 성격은 아니었다.
“어쩌면 자네 징계가 철회될 수도 있겠군.”
“하하.”
징계라….
일단 보상에 대한 건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나저나….”
엘리샤 교수는 내 옆에 가만히 서 있는 유리나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리나 후보생은 무슨 일 있었나? 표정이 좋지 않군.”
“음… 뭐, 일이 있긴 했죠.”
“혹시 데일 후보생이 데이트 중에 무슨 실수라도 저지른 건가?”
의심의 눈초리로 날 바라보는 엘리샤 교수.
유리나는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고갤 저었다.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러면?”
“…….”
잠시 대답을 망설이던 유리나가 가늘게 떨리는 손을 등 뒤로 감추며 말을 이었다.
“그 사람들… 마인이 아니었어요.”
“아….”
그제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짐작이 간다는 듯 나지막이 탄식을 내쉬는 엘리샤 교수.
“후우. 처음엔 다들 충격이 큰 법이지. 특히 유리나 후보생처럼 심성이 착한 후보생이라면 더더욱.”
엘리샤 교수는 유리나를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풀 죽은 표정으로 고갤 숙이고 있는 유리나를 살피던 엘리샤 교수가 내 쪽으로 고갤 돌렸다.
“마침 잘됐군. 그럼 데일 후보생은 오늘 유리나 후보생 방에서 하룻밤 같이 자도록.”
“예?”
아니, 뜬금없이 유리나 방에서 자라고?
“안 그래도 데일 후보생이 데려온 두 아이를 어디에 재울지 고민이었는데, 데일 후보생 방을 애들이 쓰고 데일 후보생이 유리나 후보생이랑 같은 방을 쓰면 되겠군.”
“아무래도 그건 좀….”
“흐음. 그럼 데일 후보생은 저렇게 풀이 죽어 있는 유리나 후보생을 홀로 둘 생각인가?”
“…….”
엘리샤 교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이럴 때야말로 가장 의지가 되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 하는 법이다.”
“끄응.”
나는 침음을 삼키며 유리나를 돌아봤다.
“괜찮겠어?”
“으, 응! 전에도 데일이랑은 자주 같은 방에서 잤으니까!”
힘차게 고갤 끄덕이는 유리나.
그렇게.
교수실을 나온 나는 유리나와 함께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달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익숙한 방 풍경이 보였다.
A동 기숙사답게 넓은 내부를 자랑하는 방.
“…….”
“…….”
어색하게 내려앉은 침묵.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저녁이라도 먹을까?”
“으, 응.”
고개를 끄덕이며 주방으로 향하려는 유리나.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당기며 나지막이 고갤 저었다.
“유리나는 쉬고 있어.”
“하지만….”
“뭘 만들 기분도 아니잖아?”
“…….”
유리나는 말없이 고갤 끄덕이더니 얌전히 소파에 가서 앉았다.
허리춤에서 검을 풀어 테이블 위에 올려 둔 그녀는 어딘가 멍한 시선으로 피 묻은 검을 내려다봤다.
그사이, 나는 간단하게 먹기 좋은 요리를 만들어 그녀에게 가져다줬지만.
“…….”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요릴 앞두고 가만히 멈춰 있는 유리나.
나는 쓴웃음 삼키며 만든 요리를 치웠다.
“뭘 먹을 기분도 아닌가 보네.”
“…미, 미안.”
“아냐.”
유리나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맞닿은 살결을 통해 희미한 떨림이 전해졌다.
“…데일.”
“응.”
“나, 사람을 죽였어.”
“알고 있어.”
“잘…한 걸까?”
맞잡은 손에 힘을 더하며 묻는 유리나.
“글쎄.”
이게 잘한 일인지, 아닌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필요한 일이었어. 언젠가는 꼭.”
“…그래?”
“응.”
유리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꼭 필요한 일이었다면… 나 잘한 거네?”
“뭐… 그렇게 따지면 잘한 일이긴 하지.”
“그럼… 따로 ‘상’은 없어?”
기대감에 찬 눈으로 날 바라보는 유리나.
언제 시무룩해 있었냐는 듯 들뜬 그녀의 표정을 보며 나는 피식 웃음을 삼켰다.
“당연히 상을 줘야지.”
반쯤 억지로 그녀의 등을 떠민 거긴 하지만.
결국 검에 피를 묻힐 ‘각오’를 한 건 유리나 본인의 의지였다.
“자, 그럼 머릴 이쪽으로 내밀….”
“자, 잠깐만.”
유리나가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 전에 그… 먼저 씻으면 안 될까?”
“아.”
하긴.
전투 이후 씻지도 않았으니 몸에서 나는 땀 냄새가 신경 쓰이리라.
“알았어.”
“그, 금방 씻고 올 테니 어디 가면 안 돼?!”
후다닥 샤워실 안으로 들어가는 유리나.
곧 쏴아아아 물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그래도 엘리샤 교수님 말대로 같이 와서 다행이네.’
밥 한 숟갈도 먹지 못한 채 덜덜 몸을 떨고 있던 유리나의 모습을 생각하니 그녀 혼자 방에 보냈다면 나중에 크게 후회했으리라.
‘뭐, 이렇게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얼마든 옆에 있어 줘야지.’
소중한 이들을 이끌어 주고, 다독여 주는 게 내 역할이었으니까.
툭.
“음?”
그때, 유리나의 짐을 풀어 둔 곳에서 무언가 바닥에 떨어졌다.
고갤 갸웃거리며 바닥에 떨어진 걸 집어 들자.
“이건….”
텅 빈 쇼핑백.
이 안에 들어 있던 건 분명….
달칵.
조심스럽게 열리는 문.
“…데, 데일.”
열린 문 사이로 커다란 배스 타올을 망토처럼 몸에 두른 유리나가 걸어 나왔다.
“나, 다… 다, 씻었… 어.”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당장에라도 터질 듯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