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25)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26화(26/141)
제26화. 개미굴 (1)
주말 아침.
평소보다 이른 새벽에 일어난 나는 이제는 일과가 된 마력 연공(남들이 보면 절대 마력 연공이라고 생각 못 하겠지만)을 마치고 거울 앞에 섰다.
“흠.”
거울 속 비친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절로 드는 생각.
“나 정도면 괜찮지 않나?”
이런저런 각도로 얼굴을 돌리며 흡족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는다.
물론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있는 양심의 목소리가 ‘유렌이랑 비교하면?’이라 건방진 물음을 내게 날렸지만, 가볍게 무시해 주도록 하자.
“머리도 어제 깔끔하게 정리했고.”
입고 나갈 그럴싸한 외출복도 내 소중한 ‘친구’를 통해 무상으로 빌릴 수 있었다.
‘아이리스와 데이트라.’
전생에 그녀와 데이트를 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후보생 신분으로 그녀와 데이트를 하는 건 처음이었다.
“슬슬 출발해 볼까.”
나는 한껏 기대에 부푼 표정으로 아이리스와의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약속 장소에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던 것은 성국 사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이리스와….
“뭐냐, 그 눈은.”
“…….”
어디 전쟁터라도 나가는 것처럼 풀 무장을 하고 나온 카밀라였다.
“네가 왜 여기 있냐?”
“왜 여깄냐니? 당연히 성녀님을 호위하기 위해서지.”
“…후우.”
그래.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아이리스를 혼자 학교 밖으로 외출하게 내버려둘 리가 없지.
심지어 가려는 장소가 발할라 시티 내에서도 가장 치안이 안 좋기로 유명한 ‘개미굴’이라면 더더욱.
“흥. 설마 성녀님이랑 단둘이 외출할 수 있을 거란 착각을 한 건 아니겠지?”
팔짱을 낀 채 사나운 눈빛으로 날 쏘아보는 카밀라.
“우으… 왜 하필 오늘 아침에 들이닥쳐서는….”
그런 그녀의 옆에 한창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어깨를 떨구고 있는 아이리스의 모습이 보였다.
저 모습을 보아하니 카밀라 몰래 외출을 나가려다가 딱 걸린 모양이었다.
“왜 하필, 이라뇨! 성녀님! 제가 호위 없이는 절대 학교 밖으로 외출하셔선 안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데일 씨가 있잖아.”
“하, 저런 말석 후보생 따위가 어떻게 성녀님을 지키….”
코웃음을 치며 슬쩍 나를 돌아본 카밀라의 표정이 굳었다.
아무래도 전에 나한테 검 한번 뽑아 보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던 일이 떠오른 모양.
카밀라는 괜스레 헛기침을 흘리며 내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크흠. 어쨌든 성녀님께서 혼자 외출하셨단 사실이 알려지면 저도 곤란해집니다.”
“후우. 알았어. 카밀라도 같이 가자.”
“그나저나 개미굴 쪽으로 가시는 거라면… ‘그곳’에 가시려는 겁니까?”
“응, 맞아.”
“하아. 성녀님도 참… 못 말리겠네요.”
한숨을 내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카밀라의 표정은 행동과는 달리 꽤 느슨해 보였다.
“왜~ 카밀라도 거기 가는 거 좋아하잖아?”
“흥. 누가 좋아한다는 겁니까?”
“에이, 가면 제일 들떠서 놀 거면서.”
“그, 그런 적 없습니다!”
“흐응~ 과연 그럴까?”
이미 전에도 자주 갔던 곳인 듯 둘만의 대화를 나눠 가는 두 여인.
“거기가 어딘데 그래?”
“음? 성녀님에게 못 들은 거냐?”
“응.”
“흐음.”
카밀라가 말해도 되냐는 듯 아이리스를 돌아봤다.
아이리스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가서의 즐거움으로 남겨 둬요.”
가서의 즐거움이라.
‘대체 어디지?’
전생의 기억을 지닌 나조차도 그녀가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전혀 짐작하기 어려웠다.
‘뭐, 가 보면 되겠지.’
설마 그녀가 나처럼 마신교의 아지트를 찾아 개미굴로 갈 리도 없지 않은가.
“아 참, 가기 전에 사야 할 게 있어요.”
“뭔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내게 아이리스는 방긋 미소 지었다.
“라면이요.”
“……?”
그렇게.
전생 후 옛 연인과의 첫 데이트(?)가 시작됐다.
* * *
발할라 시티 내에 위치한 대륙 최대 규모의 빈민촌, 개미굴.
대륙 최대 규모의 빈민촌인 만큼 개미굴 내에서도 최악과 차악의 지역이 나뉘어 있었다.
아이리스가 가자고 한 곳은 그중 ‘차악’에 속하는 개미굴 외곽 지역.
성국의 지원으로 운용되고 있는 보육원이 위치한 곳이었다.
“꺄아아아악!”
“아이리스 누나아아아아아!!”
“애들아! 빨리 나와 봐! 누나들 왔어!”
“허억, 허억… 카밀라 언니… 제 머리채 잡고 엉덩이 한 대만 때려 주시면 안 돼요?”
“우리를 잊어버린 줄 알았다구우!”
보육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우르르 달려드는 아이들.
달려오는 아이들의 눈동자는 숨길 수 없는 흥분과 반가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 이놈들을! 방 안에서 얌전히 있으라 했어, 안 했어?!”
우르르 달려오는 아이들의 뒤편에서 초로의 사제가 사납게 호통쳤다.
“헉, 사제님이 나왔다!”
“모두 도망쳐어어어!”
우르르 몰려들었던 아이들이 물벼락 맞은 개미 떼처럼 흩어졌다.
“하아. 정말….”
칠성교 사제복 차림의 노인이 아이리스에게 다가오며 성호를 그었다.
“죄송합니다 성녀님. 제 교육이 미숙하여 이런 일이….”
“후후. 아녜요 안토니오 사제님. 애들이 건강해 보여서 오히려 보기 좋은걸요?”
아이리스는 온화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간 강녕하셨나요?”
“허허, 물론이죠. 제가 이래 보여도 아직 젊은이 못지않게 힘이 넘쳐난답니다.”
안토니오 사제는 헐렁한 사제복 소매를 슬쩍 거둬들이며 씨익 웃었다.
젊은이 못지않게 힘이 넘친다는 말이 허풍은 아닌 듯, 걷은 소매 사이로 안토니오 사제의 팔은 마치 단련된 무인의 팔처럼 군더더기 없는 근육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카밀라 님. 이렇게 두 분이 가끔 찾아와 주시는 것만으로도 이 노인네에게 아주 큰 힘이 됩니다. 근데… 그쪽 분은?”
안토니오 사제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두 사람과 같은 수업을 듣고 있는 데일 한이라 합니다.”
“안토니오 사제님께서도 아시다시피 3학년이 되면 파티 수업이 부쩍 많아지잖아요? 앞으로 저희랑 ‘고정’ 파티를 짜게 된 데일 씨라고 해요.”
뭐야.
나 언제부터 고정이었어?
“오오, 그렇군요.”
안토니오 사제는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봤다.
“이제까지 성녀님께서 이곳에 다른 분을 데려오신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놀랍군요.”
“데일 씨는 믿을 수 있는 분이시니까요.”
“흐음?”
아이리스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는 안토니오 사제.
의뭉스러운 눈으로 아이리스를 바라보던 안토니오 사제의 입에서 ‘허허’하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거 참… 오래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게 되는군요.”
“…그게 무슨 소리세요?”
“어렸을 적부터 봐 왔던 꼬꼬마 아가씨가 어느새 이렇게 늠름하게 자라 남자까지 데려오시고….”
“자, 잠깐! 그렇게 말씀하시면 무슨 결혼 상대라도 데려온 거 같잖아요?!”
아이리스가 벌겋게 달아오른 오른 얼굴로 빼액 소리쳤다.
“어렸을 적부터…?”
“아, 제 소개가 아직이었군요. 저는 성녀님께서 아직 ‘성녀’가 되시기 전에 작은 인연이 있었던 안토니오라 합니다.”
점잖은 동작으로 성호를 긋는 노사제에게서는 깊은 연륜과 지혜가 느껴졌다.
‘안토니오 사제라.’
이 역시 전생에서는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아이리스는 자기 과거 얘기는 잘 안 했으니까.’
넌지시 물어봐도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돌리기만 할 뿐.
과거 일들에 대해서는 일부러 피하는 것처럼 입에 담지 않았다.
‘회귀했다는 놈이 어째 죄다 모르는 것밖에 없네.’
나는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지만, 사실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전생의 내가 알지 못했던 것.
본 적 없는 광경.
듣지 못한 이야기.
그것들을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실감이 느껴졌으니까.
“세 분 다 보육원 안으로 들어오시죠. 봄이라고는 해도 아직 날이 쌀쌀합니다.”
안토니오 사제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보육원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이리스를 돌아보며 물었다.
“온다는 곳이 여기였어?”
“네, 맞아요. 가끔 카밀라랑 같이 아이들을 돌봐 주러 오곤 했거든요. 이번에 데일 씨도 같이 오시면 좋을 것 같아서 불러봤어요.”
조심스러운 눈치로 나를 살피는 아이리스.
“그… 역시 좀 실망하셨나요?”
“응? 뭐가?”
“주말에 시간 내서 놀러 나올 만한 곳은 아니잖아요.”
“음….”
그녀의 말마따나.
처음 그녀에게 외출하자는 말을 들었을 때 상상했던 곳과는 굉장히 거리가 먼 장소에 오게 됐지만.
“난 좋은데?”
“…진짜요?”
“응. 사실, 뭐 어느 정도 익숙한 장소기도 하고.”
“익숙한 장소라고요?”
“나도 공화국 보육원 출신이거든.”
“…아.”
이곳처럼 하하 호호 행복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나도 나름 보육원에서 자란 천생 고아였다.
‘이제 보육원 시절 기억은 거의 나지도 않지만.’
영웅 학교 시절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그보다 더 전의 기억이 날 리가 없지 않은가.
“데일 씨도 보육원 출신이셨군요.”
“…도?”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흠흠. 그보다 빨리 안으로 들어가요. 애들이 기다리고 있을걸요?”
“알았어.”
아이리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밀라 누나! 같이 검술 대련하자 검술!”
“나도 할래!”
“하읏… 카밀라 언니… 언니의 늠름한 검으로 절 혼내 주세요…!”
“이번에는 꼭 이길 거야!”
“자, 잠깐. 다들 진정해라…!”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채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카밀라.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카밀라가 보육원 한쪽 구석에 놓인 나뭇가지를 손에 쥐며 입을 열었다.
“하아. 어쩔 수 없군. 다들 밖으로 나와라.”
“와아!”
아이들이 카밀라를 따라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나는 흥미로운 눈으로 카밀라의 뒤를 따라 나가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애들이 카밀라를 잘 따르네.”
“후후. 겉으로는 엄한 척하지만 사실 아이들과 놀아 주는 걸 엄청 좋아하거든요.”
“그래 보이네.”
피식 웃으며 애들과 검술 대련을 하는 카밀라의 모습을 지켜봤다.
“악!”
“너, 너무 빨라!”
“꺄아악!”
어디서 배운 건 있는지 그럴싸한 포위진까지 펼치며 우르르 달려드는 아이들이었지만, 애초에 카밀라를 상대로 싸움이 될 리가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이들을 제압한 카밀라는 씨익 웃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후후.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오거라 이 꼬맹이들아!”
어.
잠깐.
여기서 그런 말을 하면….
“우리 엄마 없는데!”
“츄릅… 대신 언니의 젖을 먹을 순 없나요?”
“엄마의 젖이란… 무슨 맛일까?”
“…허억!”
그제야 치명적인 말실수를 깨달은 카밀라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다! 이, 이건 그러니까…!”
“으히히히!”
“언니 너무 귀여워!”
당황하는 카밀라를 보며 깔깔 웃음을 터트리는 아이들.
그 환한 미소만 보더라도, 이곳 보육원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사랑 속에 만들어졌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저 형도 검사야?”
한 아이가 내 허리춤에 있는 검을 가리키며 물었다.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뭐, ‘검사’라고 부르기엔 검술 말고도 할 수 있는 게 많지만.
일단 여기선 검사라고 해 두자.
“그럼… 누나랑 형이랑 싸우면 누가 이겨?”
무구한 호기심에 가득 차 있는 질문.
아이의 입장에서는 생각 없이 툭 던진 질문이었겠지만, 그 파급력은 상당했다.
“에이, 당연히 카밀라 언니가 이기지!”
“그걸 질문이라고 해?”
“누나는 나중에 ‘성국의 검’이 될 영웅이라고!”
“아니, 그래도 저 형도 엄청 강할 거 같은데?”
“맞아, 맞아! 애초에 아이리스 언니가 누굴 데려온 건 이번이 처음이잖아? 보통 사람일 리가 없다고!”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보육원 마당.
“…….”
“…….”
서로 반으로 나뉘어 치열한 언쟁을 펼치는 아이들을 보며 나와 카밀라는 직감했다.
‘이건.’
빠져나갈 구석이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