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30)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31화(31/141)
제31화. 양손에 교수 (3)
교수나 그 밑에 있는 조교들이 주로 이용하는 전용 식당.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즐기며 덕담이 오갔어야 할 식당은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살벌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뭐야,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거야 이거.’
나는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두 교수를 바라보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데일 군은 내 조교가 될 걸세.”
“헛소리. 데일은 내가 1학년 때부터 담당해 온 후보생이다. 당연히 내 밑으로 들어오는 게 맞지.”
서로 한 치도 물러날 생각 없다는 듯 날 두고 신경전을 펼치는 두 교수.
‘아니 나 조교 할 생각 없다고 이 양반들아.’
대체 어쩌다 말년 말석 후보생이던 내가 두 교수의 열렬한 러브콜을 받는 처지가 됐단 말인가.
‘뭐 그렇게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
그래, 우선 제이드 교수부터.
‘기껏해야 연구 자금 마련해 주고, 전문 교수들도 풀기 어려운 문제 좀 풀어 주고. 연구에 필요한 재료 직접 구해다 주고, 쓰레기장이나 다름없는 연구실 청소해 준 것밖에….’
어라.
잠깐만.
생각해 보니 왜 이렇게 한 게 많아.
‘그, 그래! 제이드 교수야 그럴 수 있다 쳐!’
제이드 교수의 경우 2년 전 사건 때문에 ‘제자 살인마’라 불리며 사실상 학교 내에서 퇴출당해 버렸다.
지난 2년간 후보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개인 연구를 진행하는 것도 모두 막혀 버리게 됐으니 이루어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을 얻었을 것은 당연지사.
그런 상황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데일 한’이라는 존재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건 어찌 생각하면 필연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근데 루카스 교수는 다르잖아.’
루카스 교수는 지난 2년간 뒤떨어진 날 이끌어 주느라 온갖 고생이란 고생은 도맡아 해 온 사람이었다.
조교는커녕 담당 학부생으로도 보고 싶지 않을 텐데 뜬금없이 자기 밑으로 들어오라니.
‘최근에 루카스 교수랑 있던 일이라고는… 아.’
문뜩.
루카스 교수에게 와인을 건네주며 비앙카 교수에 대한 정보를 넌지시 알려 줬던 일이 머리를 스쳤다.
“이런 X발.”
전생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겠다고 나선 일이 설마 이런 결과가 되어 돌아올 줄이야.
“데일 군. 자네 생각은 어떤가?”
“…네놈. 설마 진짜로 저 정신 나간 교수 밑으로 들어갈 생각은 아니겠지?”
날 가운데 두고 양편에 서는 제이드 교수와 루카스 교수.
구도만 놓고 보면 공화국의 싸구려 러브 코미디에 나오는 두 히로인 사이에 끼인 우유부단한 주인공과 같은 구도였지만.
‘왜 나는 히로인이 교수인 건데.’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제이드 교수와 루카스 교수.
두 교수 모두 미래에 있을 마인과의 전쟁에 반드시 필요한 인재들이었다.
‘제이드 교수는 성흔 증폭제 말고도 성흔 관련해서 여러 마법 물품을 연구, 제작해 줄 수 있고. 루카스 교수는 개인적인 강함은 물론 지휘력도 뛰어난 영웅이야.’
둘 중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
나는 일단 당장에라도 치고받고 싸울 것처럼 험악한 분위기의 두 교수를 중재했다.
“안에 들어가서 식사라도 하면서 마저 얘기하시죠.”
“식사? 하, 난 저런 놈과 같이 밥을 먹을 생각은 없다.”
“나도 동감일세.”
“그럼 식당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들 방해되게 계속 이렇게 서 계실 생각이십니까?”
“그건….”
“끄응.”
침음을 삼키며 주변을 살피는 두 교수.
그래도 사회적 체면을 잃을 정도로 머리에 열이 오른 건 아닌 모양인지 서로 눈치를 살피던 두 교수는 조용히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
“…….”
오늘의 추천 메뉴를 시킨 후 자리에 앉자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일단 한 가지는 확실히 해 두죠. 두 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 정확히 모르지만, 제게 있어선 두 분 모두 존경하는 교수님들일 뿐입니다.”
“흥. 존경은 무슨… 심심하면 교수실에 와서 짱박혀 뒹굴고 있는 놈이 누굴 존경한다는 거냐?”
“그건….”
“뭐, 됐다. 네가 날 존경하고 말고는 신경 안 쓰니까.”
하지만.
루카스 교수는 사납게 눈을 뜨며 제이드 교수를 노려봤다.
“저 인간이랑 만큼은 되도록 엮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내가 할 소리일세. 자네는 저런 야만스럽고 무식한 인간과는 맞지 않아.”
“뭐라고?”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나?”
“이 새끼가 진짜…!”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처럼 험악해진 분위기.
“그만.”
나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이 드실 만큼 드신 분들이 지금 꼴사납게 뭐 하시는 겁니까?”
후보생이 교수한테 하는 말이라기엔 너무 예의 없는 말이었지만, 지금 두 교수의 모습을 보면 거친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읏….”
“크흠. 미안하네.”
두 교수도 방금 자신들의 행동이 부끄러운 짓이었다고 자각할 수 있는 이성 정도는 남아 있는지 내 말투에 대한 별다른 지적 없이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다시 어색한 공기가 테이블에 내려앉았을 때.
“음? 두 분이 같이 있는 모습은 처음 보네요.”
짙은 갈색 머리칼을 지닌 온화한 인상의 청년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자칫하면 후보생으로 착각할 수 있을 법한 젊은 외모의 사내.
지난번 ‘정신 단련’ 수업 때 봤던 모피어스 교수였다.
“어라? 그때 수업에서 봤던 후보생도 같이 있었네요.”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는 모피어스 교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
“두 교수님과 잠깐 면담할 일이 있어서 같이 식사 중이었습니다.”
“아하. 그렇군요. 아, 혹시 실례가 안 되면 같이 합석해도 될까요?”
대답도 하기 전에 자연스럽게 제이드 교수와 루카스 교수 사이에 앉은 모피어스 교수.
“안 그래도 한번 얘기해 보고 싶었거든요.”
“저랑 말씀입니까?”
“예. 어떻게 제 환영 마법을 한 번에 부숴 버릴 수 있었던 건지 궁금해서요.”
모피어스 교수는 점잖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날카로운 눈빛으로 꿰뚫어 보듯 날 살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그거야 뭐, 교수님께서 적당히 힘 조절을 해서 마법을 써 주셨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흐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벗어날 수 있는 마법은 아닌데 말이죠. 특히… 데일 후보생처럼 보유한 마력량이 극히 적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모피어스는 의심스럽다는 듯 가늘게 눈을 뜨며 나를 바라봤다.
이대로 있다가는 ‘태초의 불’의 정체가 새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내심 똥줄이 타고 있었을 때.
“지금 데일이 우리와 면담 중이라는 얘기 못 들었나?”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데일 군이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추궁하는 모습은 썩 보기 좋지 않구만.”
루카스 교수와 제이드 교수가 동시에 모피어스 교수를 노려봤다.
모피어스 교수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서 시선을 돌렸다.
“하하. 두 분 다 진정하세요. 데일 후보생을 나무랄 생각이 있던 건 아닙니다.”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잇는 모피어스 교수.
“그나저나 면담 내용이 뭔지 궁금하네요.”
“자네가 알 필요는 없는 내용이네.”
“에이, 그러지 마시고 알려 주세요. 전에 정신 단련 수업도 도와드렸잖아요?”
“흐음.”
루카스 교수는 침음을 삼키며 잠시 고민에 잠겼다.
같은 교수라고 해도 모피어스 교수야 자신보다 한참 경력이 적은 교수이니 수업 좀 도와준 거 가지고 괜히 생색내지 말라며 역으로 쏘아붙일 수도 있었지만.
“쯧.”
아무래도 그건 아니라 생각했는지 가볍게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나와 제이드 교수, 둘 중 누구 조교가 될지 상의하고 있었네.”
“호오. 이거 생각보다 재밌는 자리였네요.”
모피어스 교수는 두 교수 사이에 낀 나를 보며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데일 후보생은 어느 쪽에 더 흥미가 있으세요?”
“둘 다 흥미 없습니다만.”
“흐음. 그렇다는데요?”
“그거야 이제 막 조교 얘기를 꺼내서 그런 거고. 앞으로 졸업까지 2년이나 남았으니까 천천히 생각해 봐도 될 일이네.”
아니.
천천히 생각해도 할 생각 없어요 이 양반아.
“하하하! 까다롭기로 유명한 두 분께서 탐내는 후보생이니… 이거 저도 흥미가 생기는데요? 아, 물론 처음부터 관심이 있긴 했지만요.”
모피어스 교수는 방긋 미소 지으며 다시 내 쪽을 돌아봤다.
‘아니, 그만 좀 해 이 사람들아.’
루카스 교수와 제이드 교수도 모자라서 모피어스 교수까지.
전생에선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조교 제안이 왜 사방에서 쏟아진단 말인가?
“모피어스 교수.”
“방금 우리가 한 말 못 들었나?”
“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두 교수님이 미리 점찍어 둔 후보생을 어찌 감히 제가 탐내겠습니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날 미리 선점(?)해 둔 두 교수의 텃세에 모피어스 교수는 금방 백기를 들어 올렸다.
‘하긴.’
루카스 교수와 제이드 교수라면 교수 경력만 따져도 올해 10년 차가 되는 교수들이었다.
같은 교수라고 해도 아직 3년 차도 되지 않은 모피어스 교수가 감히 비빌 수 있는 짬이 아니었다.
“어차피 요즘 봉인제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다른 곳에 신경 쓸 틈도 없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번 봉인제 운영 담당이 자네였군.”
“예. 상인들 노점 허가증 발급부터 행사 일정까지… 어우, 죽겠네요.”
모피어스 교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럴 때야말로 자네와 같은 젊은 교수의 실력을 보여 줄 기회지. 이번에 봉인제 준비도 자네가 자진해서 맡은 게 아닌가?”
“이렇게 정신없이 바쁜 줄은 몰랐죠.”
모피어스 교수는 한숨을 내쉬며 싱긋 웃었다.
“그래도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만큼 모쪼록 교수님들도, 후보생분들도 모두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됐으면 좋겠네요.”
“흥. 매년 하는 건데 즐기고 뭐고가 뭐 있겠나?”
“하하. 그렇긴 합니다만, 이번에는 여러 깜짝 행사들도 준비했으니 평소보다 훨씬 재밌을 겁니다.”
자신에 찬 표정으로 가슴을 두드리는 모피어스 교수.
“모두 잊지 못할 최고의 축제가 될 테니 기대해 주십쇼.”
호기로운 젊은 교수의 선언에 루카스 교수와 제이드 교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허허…젊음이란 좋구만.”
“뭐, 기대하고 있겠네.”
“그럼, 더 이상 면담에 방해되지 않도록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모피어스 교수는 꾸벅 머리를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그럼 데일 군 아까 하던 얘기를 마저… 응?”
“어? 뭐야? 이 새끼 어디 갔어?”
모피어스 교수가 떠나간 자리.
테이블에는 어느새 두 교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