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36)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37화(37/141)
제37화. 유언 (6)
“…잿가루?”
아슈타로트는 휘날리는 회색 잿가루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화염 계열 마법을 쓴 것도 아닌데 흙먼지도 아니고 잿가루가 휘날릴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어디서 이런….”
의문이 채 이어질 새도 없이.
빠아아악!
뒤에서 날라 온 주먹이 아슈타로트의 얼굴을 거칠게 후려쳤다.
“크윽!”
뇌를 뒤흔드는 충격에 주욱 밀려나는 아슈타로트.
“무슨…?”
데일의 주먹에 얻어맞고 날아간 아슈타로트가 피가 흘러나오는 코를 움켜쥔 채 두 눈을 부릅떴다.
방금 그 상처를 입고 살았다고?
‘아니.’
가슴에 머리통만 한 구멍이 뚫렸다.
심장은 물론 폐까지 모조리 마기 방출에 휩쓸려 사라졌을 텐데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상처가 사라졌어.’
휑하니 뚫려 있던 데일의 가슴은 어느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하.”
아슈타로트의 입술 사이로 나지막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심장과 폐가 통째로 뜯겨 나간 상처를 순식간에 치유하는 힘이라.”
이 세상에 그런 터무니없는 일이 가능한 힘은 많지 않았다.
“‘가호’로군요.”
영웅 중에서도 극히 소수만이 지니고 있다는 신의 축복.
아슈타로트는 이제야 저 회색 머리 후보생이 ‘대주교’를 눈앞에 두고도 어떻게 그리도 당당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숨겨 둔 수가 하나가 아니었군요.”
아까 전 유리병 안에 든 이름 모를 푸른 액체가 숨겨 둔 수의 전부인 줄 알았건만, 설마 ‘가호’까지 지니고 있었을 줄이야.
“이거 참… 이렇게까지 재밌는 전개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 말이죠. 아, 혹시 어떤 가호를 지니고 계시는지 이름이라도 알려 주실 수 있나요? 그 정도 치명상을 순식간에 치유하는 가호는 저도 처음 봐서.”
“아까부터 주절주절 말이 참 많네.”
데일은 잡소리에 어울려 줄 생각은 없다는 듯 사납게 발을 박찼다.
‘시간이 없어.’
성흔 증폭제의 효과가 사라지기까지 앞으로 3분.
‘성흔 증폭제의 효과가 떨어지면 끝이다.’
최근 태초의 불을 흡수하며 마력이 부쩍 늘었다고는 하나 아직 다른 후보생들의 절반조차 되지 않는 마력으로는 아슈타로트와 싸우기 턱없이 부족했다.
“쓰읍.”
성흔 증폭제로 인해 늘어난 마력을 끌어모으며 움켜쥔 검 끝에 집중됐다.
한계까지 압축된 마력이 주변 빛을 빨아들이며 검은빛으로 물들었다.
태양검.
제5형, 흑점(黑點).
한 단계 위의 형인 ‘백광’보다 그 범위는 한참 작지만, 한점에 집중되는 공격력 하나만큼은 더 강력한 기술이었다.
“흐아아아아!”
포효를 터트리며 한점에 응축된 마력을 내질렀다.
검은빛으로 물든 검이 아슈타로트를 노리고 사납게 쇄도했다.
“크읏!”
아슈타로트는 다급히 물러나며 마기를 장막처럼 펼쳐 전신을 감쌌지만.
콰드드드득! 콰작!
한점에 응축된 마력은 아슈타로트의 몸을 감싸고 있는 보랏빛 장막을 사납게 찢어발기며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아니.
정확히는.
“하아. 이번 건 진짜 위험했네요.”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고 생각했다.
아지랑이처럼 일그러진 공간에 막혀 아슈타로트의 가슴 앞에서 검이 튕겨 나가기 전까지는.
“정말… 봐도 봐도 놀랍군요. 어떻게 그 한 줌밖에 되지 않는 마력으로 제 마기의 장막을 뚫어 낼 수 있는 거죠?”
푸른 액체를 마시고 난 후 폭발적으로 마력이 늘어났다고 해도, 절대적인 양으로만 따지면 데일이 지닌 마력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후보생들이 평균적으로 지니고 있는 마력의 2~3배 정도 될까.
물론 그것만 해도 원래 데일이 지니고 있는 마력에 비하면 엄청난 양이었지만, 아슈타로트의 입장에서 보면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했다.
‘만약 저 후보생이 마력까지 갖추게 되면.’
대체 어떤 괴물이 될지 상상하니 뒷골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뭐… 그건 지금 당장 걱정할 일은 아니죠.”
지금 중요한 건 ‘일곱 눈’을 손에 넣는 것이고, 데일에겐 그걸 막을 힘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 그리고 말입니다.”
싱긋 미소 짓는 아슈타로트.
“숨겨 둔 수가 있던 건 당신 혼자만이 아니랍니다?”
아슈타로트의 성흔에서 불길한 빛무리가 뿜어져 나오며 성흔을 중심으로 흉측하게 혈관이 도드라졌다.
마치 나무뿌리처럼 아슈타로트의 상반신 전체를 뒤덮은 혈관.
아슈타로트에게서 흘러나온 보랏빛 마기가 거미줄처럼 펼쳐져 주변 공간을 잠식했다.
마기에 잠식된 공간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일그러졌다.
“왜곡의 가호.”
아슈타로트는 마기에 잠식되어 일그러진 공간을 바라보며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마신님께서 제게 내려 주신 은총의 이름이죠.”
마기에 닿은 공간 자체를 일그러트리는 가호.
파괴적인 위력을 지닌 만큼 많은 대가를 요구하는 가호였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적은 그런 걸 따지며 싸울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설마 교수도 아닌 후보생을 상대로 전력을 다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아슈타로트 본인도 지금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은지 자조 섞인 웃음을 흘리며 양팔을 넓게 펼쳤다.
“당신의 가호와 제 왜곡의 가호.”
딱.
아슈타로트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둘 중 누가 더 신의 사랑을 받았는지 확인해 볼까요?”
일그러진 공간의 파도가 데일을 덮쳤다.
우드드득! 콰직!
팔다리가 뒤틀린다.
우그러진 두개골 사이로 뇌수가 비산한다.
짓이겨진 내장이 부러진 갈비뼈 사이로 쏟아진다.
“꺄아아아아악! 데, 데일 씨이이이!”
아이리스의 절규가 다시금 몽환의 장막 안에 울려 퍼졌다.
의심의 여지도 없는 즉사.
한 줌의 살덩이가 돼 버린 데일의 시체가 허망하게 바닥을 굴렀다.
“자, 어디 이것도 한번 되살아나 보시죠?”
아무리 치유와 관련된 ‘가호’를 지니고 있다고 한들 전신이 한 줌 살덩이가 된 상태에서 되살아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느긋이 짓이겨진 데일의 시체에서 시선을 돌렸을 때.
“얼마든지.”
촤악!
흩날리는 잿가루와 함께 데일의 검이 아슈타로트를 노리고 휘둘러졌다.
“무슨…!”
경악에 찬 표정으로 두 눈을 부릅뜨는 아슈타로트.
“하… 당신 무슨 불사의 가호라도 지니고 있는 겁니까?”
“글쎄.”
정확히는 소생의 가호지만.
무슨 짓을 해도 죽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불사의 가호나 다를 바가 없었다.
“어이가 없군요.”
아슈타로트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심장과 폐가 통째로 뜯겨 나간 상처가 순식간에 재생될 때부터 심상찮은 가호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설마 진짜로 죽지 않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니.
‘하지만.’
차가운 조소를 머금은 채 손을 들어 올리는 아슈타로트.
“죽지 않는다고 해서… 절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죠.”
콰드드드득!
일그러진 공간이 데일의 상반신과 하반신을 반으로 쪼갰다.
“크윽!”
상처 자체는 소생의 가호로 인해 순식간에 재생됐지만, 몸이 둘로 쪼개지는 끔찍한 통증이 잔향처럼 남아 그를 옥죄였다.
“과연 언제까지 되살아날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
아슈타로트드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아지랑이처럼 일그러진 공간이 다시 한번 데일의 몸을 으스러트렸다.
“제길…!”
데일은 나지막한 욕설을 내뱉으며 아슈타로트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지만, 주변 공간 전체가 뒤죽박죽 뒤틀린 상황에서 그의 공격을 피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흐읍!”
데일은 일그러진 공간 틈으로 몸을 집어넣으며 아슈타로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터엉!
전력을 쥐어 짜내어 휘두른 검격이 허무하게 마기 장막에 막혀 튕겨 나왔다.
‘성흔 증폭제의 효과가 끝난 건가.’
데일은 전신에 들끓던 마력이 차갑게 식어 가는 걸 느끼며 입술을 짓씹었다.
그나마 성흔 증폭제를 통해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던 힘의 균형이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콰드드득! 콰작! 우드득!
성흔 증폭제의 효과가 사라지고 이어지는 전투는 일방적.
왜곡의 가호가 섞인 공격이 쏘아질 때마다 데일의 몸이 처참히 부서지고 재생되고를 반복했다.
“커헉!”
문뜩, 전생의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무력했던 시절의 기억들.
‘항상 이랬었지.’
누군가는 죽어도 순식간에 되살아나는 가호를 보며 사기적인 능력이라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저 ‘죽지 않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건 지난 전생의 경험으로 그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죽지 않는 개미가 있다고 해 봤자 결국 개미에 불과하니까.’
압도적인 힘의 격차 앞에 불사의 능력은 지나치게 무력했다.
“아, 으.”
잇따른 죽음이 데일의 정신을 점차 갉아먹었다.
누적된 고통이 이성을 장작 삼아 활활 타올랐다.
‘아파.’
벌써 몇 번이나 죽은 거지?
뼈는 몇 번이나 부러졌고, 살은 몇 번이나 찢겨 나간 거지?
“하, 하하! 놀랍군요! 벌써 백 번은 족히 넘게 죽은 것 같은데 아직도 재생할 수 있다니!”
아슈타로트가 광기에 찬 웃음을 터트리며 발을 굴렀다.
“자, 어디 그럼 이것도 한번 되살아나 보시죠!”
콰르르르릉!
보랏빛 마기가 회오리치며 데일의 전신을 갈가리 찢어발겼다.
수십 조각으로 찢겨 나간 육체가 회색 잿가루로 변하며 성흔이 새겨진 심장을 중심으로 다시 재생되기 시작했다.
“하, 뭐 이런….”
경악을 넘어 질린다는 표정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아슈타로트.
그가 다시 한번 데일을 향해 마기를 방출하려고 했을 때.
“그만! 그만하세요 이제!”
아이리스가 데일을 지키듯 서며 아슈타로트를 가로막았다.
“그쯤 하셨으면 이제… 충분하잖아요.”
“흐음. 그렇다고 하기엔 아직 데일 후보생의 목숨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만?”
“당신의 목적은 데일 씨를 죽이는 거였나요?”
“그건….”
정곡을 찔렸다는 듯 침음을 삼키는 아슈타로트.
그는 쓰러진 데일을 내려다보며 쯧 혀를 찼다.
“당신의 가호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실험해 보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다음 기회에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네요.”
아슈타로트는 데일에게서 시선을 돌려 아이리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 서… 아직.”
수십 조각으로 찢겨졌다가 되살아난 데일이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지만, 이내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 자리에 다시 쓰러졌다.
데일은 아이리스를 향해 다가가는 아슈타로트를 보며 까득 이를 갈았다.
마력은 이미 진즉에 고갈됐고, 누적된 피로로 인해 더 이상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제기, 랄.”
회귀하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될 줄 알았는데.
전생과는 다른 길을 걷자고 결심했는데.
‘결국 이 모양 이 꼴인가.’
강가에 널브러진 조약돌처럼 목숨을 버려 가며 발악해 봐도.
우그러지고, 짓뭉개지고, 짓이겨진 두 다리로 발버둥 쳐도.
‘이번에도, 또.’
아무것도 구하지 못한 채.
그 누구도 지키지 못한 채.
똑같이.
변함없이.
소중한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만 봐야 하는가.
“데일 씨….”
아이리스는 데일을 뒤로한 채 자신에게 다가오는 아슈타로트를 바라보며 휴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녀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행이다.”
아무런 미련도, 후회도 없다는 듯.
너무나 평안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
벼락이 친 듯.
머릿속이 새하얗게 점멸했다.
‘다행이라고?’
대체 뭐가.
뭐가 다행이란 말인가.
아이리스는 지금 ‘일곱 눈’은 물론 목숨까지 잃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차라리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눈만 잃고 끝났을 것을.
나 때문에.
나로 인해.
그녀는 전생보다 더욱 끔찍한 지옥을 경험하게 됐다.
그런데.
‘어떻게… 다행이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납득할 수 없었다.
전생에 그녀는 왜 도망치지 않고 돌아왔던 걸까?
지금 그녀는 왜 가만히 있지 않고 아슈타로트의 앞을 막아선 걸까?
어차피 내가 죽어도 되살아난다는 건 직접 눈으로 봐서 알고 있었을 텐데.
내 목숨 따위.
강가에 널린 조약돌만큼 하찮다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
‘왜, 왜, 왜, 왜.’
마지막으로 ‘다행’이라는 말을 남길 수 있었을까.
“아, 으.”
비틀비틀 몸을 일으킨다.
더 이상 몸 안에 남아 있는 마력은 없지만.
정신은 이미 찢긴 헝겊처럼 너덜너덜해졌지만.
숨을 쉬는 것만으로 폐부가 찢어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럼에도.
“다행…이라고?”
일어선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땅을 딛고, 바들거리는 손으로 검을 쥐며.
“누구 멋대로… 다행, 이래?”
그녀가 왜 마지막에 다행이라는 말을 남겼는지.
나는 모른다.
아마 앞으로도 영영 그 이유를 알 수 없겠지.
‘하지만.’
한 가지.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아이리스는 내 목숨을 구했다.’
비록 그게 수천, 수만 번의 죽음 중 하나의 삶에 불과할지라도.
강가에 널린 무수한 조약돌 중 하나에 불과할지라도.
그녀는 내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그러니까.
화르르르륵!
성흔을 감싸며 타오르기 시작한 불길이 전신을 휘감았다.
바닥을 보이고 있던 마력이 용암처럼 사납게 들끓어 올랐다.
“이번엔 내 차례야.”
쿠웅!
거친 굉음과 함께 손에 쥔 검에서 불길이 폭발하듯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