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39)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40화(40/141)
제40화. 한결같은 새끼 (1)
봉인제가 끝났다.
마수의 습격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인해 영웅 학교 창립 이래 최악의 축제로 기록된 이번 봉인제.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일반인 관광객과 후보생 측 인명 피해는 없었다는 점일까.
부상자는 다수 나왔지만 교수들과 몇몇 후보생들의 발이 빠른 대처로 최악의 사태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명 피해가 없었다고 해도 학교 안에서 마수가 날뛴 사건이 단순한 헤프닝으로 넘어가겠는가.
학교 측은 무기한 휴교를 선포하고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뭐, 총력을 기울이니 어쩌니 거창한 표현을 쓰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밝혀진 진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축제의 총괄자이자 책임자였던 모피어스 교수의 정체가 마인이었다는 것.
그가 마인들을 상인으로 위장해 학교 안에 잠입시킨 후 이번 소동을 일으켰다는 것.
소동이 일어난 직후 모피어스 교수는 자취를 감추고 학교 밖으로 도망쳤다는 것.
이상이 학교 측에서 발표된 내용이었다.
당연하지만.
사건의 개요가 발표된 이후 학교 측을 향해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마인이 교수로 위장해 학교에 잠입해 몇 년을 교수로 활동했음에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
모피어스 교수로 위장한 마인의 정체가 누구인지, 어떤 목적으로 이번 소동을 일으켰는지 전혀 밝혀내지 못했다는 점.
사건의 주동자를 결국 놓쳐 버렸다는 점 등등.
갖은 문제점들로 인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던 여론은 현 영웅 학교의 교장이자 삼국 영웅 종합 랭킹 3위에 빛나는 ‘뇌신’ 라오넬 류의 중재로 가까스로 진정될 수 있었다.
“이번 사건은 그동안 학교를 비운 내 잘못이니 내게 죄를 물어라.”
물론.
삼국 영웅 종합 랭킹 3위이자 공화국 최고 명가라 알려진 ‘류’ 가문의 영웅에게 죄를 묻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라오넬 류의 복귀로 인해 마수 소동은 일단락됐고.
영웅 학교는 2주간의 휴교를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 * *
학교 치료소 안에 있는 연무장.
다친 후보생들이 재활 훈련을 위해 이용하는 연무장이었다.
‘개인용 회복실을 이용하는 사람한텐 따로 개인 연무장도 있네.’
역시 돈이 좋긴 좋구만.
띠릭.
[영웅 후보생 ‘데일 한’. 신원 확인되었습니다.]히어로 워치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20평 정도 넓이의 연무장이 나타났다.
“어디 보자.”
연무장 중간에 앉아 지그시 눈을 감는다.
성흔 안에 잠들어 있는 마력을 기혈을 통해 넓게 퍼트린다.
‘역시, 아슈타로트랑 싸운 이후 마력이 늘어났어.’
물론 태초의 불에 휘감겼을 때처럼 무한에 가까운 마력을 지니게 된 건 아니었다.
지금 성흔 안에 깃들어 있는 마력은 후보생 평균 보유 마력량과 비교해서 딱 절반 정도.
아슈타로트와 싸우기 전과 비교하면 약 1.5배 정도 마력이 늘어난 셈이다.
‘이게 꾸준히 쌓여서 이렇게 된 게 아니라 한 번에 늘어났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마력이란 매일 호흡법을 통해 차근차근 쌓아 가는 게 기본이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마력을 늘려 주는 영약을 복용하거나 일종의 깨달음을 얻으면서 한 번에 확 마력이 늘어나기도 하지만 그건 극히 드문 경우였다.
“그럼 그때와 같이 태초의 불을 몸에 휘감을 수 있으면 또 마력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건데….”
몸 전체를 휘감은 채 사납게 타오르던 태초의 불은 아슈타로트와의 전투가 끝난 이후, 다시 성흔 깊숙한 곳으로 스며들어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내 의지에 따라 화신(火神) 상태가 될 수 있으면 앞으로 마력 걱정은 없을 것 같은데 말이지.’
화신 상태.
태초의 불이 몸 전체를 휘감으며 타올랐던 현상에 내 나름 이름을 붙인 거였다.
‘지금으로서는 애초에 왜 화신 상태가 됐는지도 알 수 없으니까.’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몇 가지 가설을 세워 보긴 했다.
‘첫 번째 가설은 단시간 안에 많은 죽음을 겪는 것.’
태초의 불이 내 ‘죽음’에 반응한다는 건 매일 4번씩 이뤄지는 마력 수련으로 익히 알고 있었기에 가장 가능성이 높은 가설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때처럼 정신이 고갈될 때까지 죽어 봐도 화신 상태가 되지는 않았지.’
아이리스 몰래 회복실을 빠져나와 죽고 되살아나고를 쉬지 않고 반복해 봤지만 태초의 불은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두 번째 가설은 마력을 고갈될 때까지 모두 써 보는 거였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태초의 불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지막 세 번째 가설은….”
솔직히 이게 맞는지 가설을 세우면서도 의문이 들었지만.
‘강렬한 의지에 반응해 태초의 불이 움직였다는 것.’
아이리스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머릿속이 가득 찼을 때.
갑자기 태초의 불이 전신을 휘감으며 사납게 타오르기 시작했었다.
“순서상으로는 이게 맞는데….”
진짜 그 이유로 태초의 불이 움직이게 된 건지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
“무슨 소년 만화도 아니고.”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쨌든.
여러 시험을 해 보며 확실해진 것은 하나.
‘내 의지대로 화신 상태가 될 수 있는 방법은 현재 없다.’
그렇다면 화신 상태는 일단 전력 외 힘이라고 생각하는 게 옳았다.
‘의지대로 다룰 수도 없는 힘을 전력에 넣을 수는 없으니까.’
나는 화신 상태에 관한 생각을 접어 둔 채 검을 쥐었다.
화신 상태가 내 전력 외 힘이라고 치면 결국 이번에 얻은 건 마력밖에 없냐?
‘그건 또 아니지.’
검을 쥔 손을 타고 짜르르 전율이 퍼졌다.
마치 검과 내 손이 하나로 이어진 듯한 생소한 감각.
수천 년간 대륙을 떠돌며 검을 휘두르면서도 느껴 본 적 없었던 감각이었다.
‘검술의 경지가 올라갔어.’
항상 머릿속으로 상상만 해 오던 기술을 제대로 펼쳐 보니 오랜 세월 제자리걸음이던 검술 실력이 막힌 혈이 뚫린 듯 한 번에 확 상승하게 됐다.
“뭐… 제대로 펼쳐 봤다고 해도 꼴랑 한 번이지만.”
심지어 화신 상태가 풀린 지금은 다시 사용할 수도 없는 기술들이었다.
그래도 0과 1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듯.
‘극의’에 도달해야지만 사용할 수 있다는 태양검의 9번째 형을 사용해 본 경험은 내 검에 녹아들어 경지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덕분에 무투술 실력도 전보다 훨씬 좋아졌고,’
만류귀종이라고 했던가.
검술의 경지가 상승했다고 해서 검술 실력만 늘어난 게 아니었다.
기본적인 움직임부터 베럴드에게 배운 무투술까지 모두 전과 확연히 차이가 느껴질 정도로 성장한 상태였다.
“마법은… 솔직히 좀 애매하다만.”
아슈타로트와 싸울 때 결계술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마법은 이론 위주로 배웠기 때문에 실제 실전에서 사용하는 건 아직 어색했다.
‘이젠 마법도 써 버릇해야지.’
예전에야 절대적으로 마력이 부족한 터라 마법까지 사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지만 이젠 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검술과 무투술에 이어 마법까지 자연스럽게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전보다 훨씬 강한 힘을 거머쥘 수 있게 되리라.
“어디 보자… 지금이라면 성흔 증폭제 없이도 루카스 교수랑 한번 붙어 볼 만할 것 같은데 말이지.”
당장에라도 루카스 교수에게 달려가 다시 한번 대련하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아이리스가 가만히 있지 않겠지.’
그렇게 쓴웃음을 지으며 개인 연무장에서 홀로 수련을 이어 가려고 했을 때.
쾅!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했던가.
연무장 문이 벌컥 열리며 잔뜩 흥분한 표정의 성녀님이 안으로 난입했다.
“데일 씨! 제가 분명히 얌전히 침대에서 쉬라고 했죠? 언제 또 여기 오신 거예요?!”
“아니 이게 땀도 좀 흘려 줘야 오히려 회복이 빠르….”
“시끄러워요!”
나는 그렇게 아이리스에게 붙잡혀 다시 회복실로 질질 끌려갔다.
* * *
아이리스의 닦달로 개인용 회복실에 처박혀 지내길 며칠.
나는 마침내 회복실 탈출(?)의 기쁨을 누리며 내리쬐는 햇살을 올려다봤다.
“휴교가 끝날 때까지 쭉 계셔도 좋은데….”
아이리스는 내가 치료소 밖으로 나가는 게 못내 불만이라는 듯 뾰로통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딱 하루만 더 있기로 했잖아. 그리고 아이리스 너도 슬슬 내 간병만 하고 있기 힘든 거 아냐?”
“그건….”
아이리스는 말끝을 흐리며 뒤에서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카밀라를 힐끗 돌아봤다.
카밀라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 사건으로 성녀님의 안위에 이상이 없는지 성국 측에서 조사대가 왔습니다. 오늘은 꼭 기숙사에 돌아가 보셔야 합니다.”
“히잉. 하루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돼?”
“안 됩니다.”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카밀라.
아이리스는 못내 아쉽다는 듯 내 쪽을 힐끔거리더니 이내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기숙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데일.”
“응?”
카밀라가 내 쪽을 향해 슬쩍 다가왔다.
“고맙다.”
그녀는 나를 향해 거의 90도가 될 정도로 깍듯이 허리를 숙였다.
이번에 아슈타로트의 ‘몽환’으로 인해 사건 전후 대부분의 기억을 잃어버린 카밀라지만, 아이리스를 통해 내가 마수의 습격에서 그녀를 지켜 줬다는 얘기는 전해 들은 모양.
평소 내게 못마땅한 눈빛을 보내기 일쑤였던 그녀는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나는 허리를 숙인 카밀라를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안 어울리게 뭐 하냐?”
“읏… 시, 시끄럽다!”
카밀라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어쨌든. 고맙다는 건 진심이다.”
“말로만?”
“으음? 사례가 필요한 거냐? 혹시 원하는 게 있다면….”
“야야, 농담이야, 농담.”
전생의 연인을 지키는 일에 무슨 사례가 필요하겠는가.
“아니, 이렇게 말로만 넘어가는 건 나도 마음이 편치 않다. 사례로 원하는 게 있다면 뭐든 말해라.”
“으음.”
카밀라에게 원하는 사례라.
애초에 사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라서 그런지 머릿속에 떠오른 게 하나도 없었다.
“그냥 뭐… 적당히 줘, 적당히.”
“어허. 적당히라니! 성녀님을 지켜 준 대가로 주는 사례다. 적당히 고를 순 없다!”
“아따 세상 힘들게 사는 아가씨네. 그럼 네가 생각하기에 내가 가장 좋아할 것 같은 걸 사례로 줘.”
“네, 네놈이 가장 좋아하는 거라고…?”
어째서인지 뺨을 붉히며 뒷걸음질 치는 카밀라.
그녀는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며 (가릴 것도 없는) 가슴께를 손으로 감췄다.
“여, 역시!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뭐?”
“크읏. 네놈… 즉, 사내놈들이 가장 좋아할 거라면 뻔하지 않은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치는 카밀라.
“그, 그런 거지? 후후, 입으로는 싫다고 해도 몸은 솔직하군… 이라던가! 아니면 검술 실력을 일류지만 아래쪽은 삼류로군… 같은 상황을 내게 강요하려는 거지?!”
“뭔 소리 하는 거야 이 여자.”
“이, 이… 천박한 놈!”
“아니.”
천박한 건 당신 머리고요.
“크읏…! 아, 알았다! 사내놈을 만족시킬 만한 사례… 주, 준비하도록 하마!”
그 말을 남긴 채 후다닥 아이리스의 뒤를 따라 달려가는 카밀라.
“……하아.”
나는 깊은 한숨을 흘리며 기숙사로 발걸음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