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44)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45화(45/141)
제45화. 특임 교수 (2)
대련을 위해 야외 연무장으로 이동한 후보생들.
그 속에서 유독 창백하게 질린 표정을 한 후보생이 바들바들 떨며 중얼거렸다.
“왜… 왜 나야? 왜 맨날 나만 불리는 건데?”
설움이 가득 찬 목소리로 흐느끼는 알버트.
그런 그를 향해 엘리샤 교수가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알버트 후버 후보생 맞나?”
“아… 예, 옙! 맞습니다!”
엘리샤는 히어로 워치를 켜 홀로그램 위에 떠 오른 후보생 명부를 살폈다.
“3학년 후보생 종합 평가 순위 472명 중 237위. 전사부 소속이며 주 무기는 검. 성흔은 대지 신의 성흔이며 보유한 가호는 없음. 맞나?”
“마, 맞습니다!”
긴장한 건지 꿀꺽 침을 삼키며 대답하는 알버트.
“흐음.”
엘리샤는 품속에서 연초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찰칵, 퐁!
옆에 서 있던 은발 꽁지머리의 청년, 빈센트 조교가 라이터를 꺼내 그녀의 연초에 불을 붙였다.
“평범하군.”
명부상으로 보이는 알버트의 수준은 정확히 후보생 평균 정도였다.
“그… 교, 교수님. 저처럼 평범한 놈보다는 더 성적 좋은….”
“아니. 딱 좋다.”
후우. 연기를 내뿜으며 엘리샤는 히어로 워치를 껐다.
“지금 3학년 후보생 평균이 딱 어떤 수준인지 알고 싶은 거니까.”
“아… 예.”
그런 이유라면 자기 말고 다른 후보생도 많지 않냐, 는 변명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자, 연무장 중앙으로 나와라.”
“…예.”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힘없이 연무장 중앙으로 걸어가는 알버트.
“대련은 마력과 진검을 사용하는 실전 방식으로 한다.”
“시, 실전 말입니까?”
“그래. 상대방을 죽일 각오로 싸우도록.”
“그러다가 혹시 사고라도 나면…”
“그럴 일은 없으니 걱정 마라.”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엘리샤.
그녀는 옆자리에 선 빈센트 조교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빈세트 조교.”
“예, 교수님.”
빈센트 조교가 연무장 중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엘리샤는 멀어지는 빈세트 조교를 향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살살 해라.”
“…명심하겠습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빈센트.
“…살살?”
엘리샤 교수의 말이 알버트의 귀에까지 들렸던 걸까.
연무장 중앙에 선 채 검을 꼬나쥐고 있던 알버트의 표정에 살며시 노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자신에겐 상대방을 죽일 각오로 싸우라 해 놓고 정작 조교한테는 살살하라고 하다니.
직접적으로 말만 하지 않았을 뿐 대놓고 무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않은가.
“후우. 그래… 뭐, 제가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후보생인 건 사실이지만.”
알버트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며 자세를 취했다.
“그래도 저도 영웅 후보생이라고요!”
성흔이 빛을 뿜으며 알버트의 전신을 마력이 감쌌다.
대련 시작을 알리는 호각 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발을 박차며 빈센트 조교를 향해 달려드는 알버트.
날카로운 검격이 아직 허리춤에서 검을 뽑지조차 않은 빈센트를 노리고 파고들었다.
“호오. 기습인가.”
실력 차가 나는 강자와 싸울 때 약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 중 하나.
일반적인 대련이라면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실전’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가산점을 받을 만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엘리샤의 입가에 차가운 조소가 서렸다.
“어설프군.”
카앙!
번뜩이는 은빛 섬광.
빈센트 조교를 노리고 쏘아지던 알버트의 검이 맑은 쇳소리와 함께 튕겨 나갔다.
“읏…!”
알버트는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아찔한 반동을 억누르며 가까스로 손에 쥔 검을 부여잡았다.
흔들어진 중심을 잡으며 마력을 일으켰다.
전신에 퍼져 있던 마력이 알버트의 검에 집중됐다.
“흐아아아아압!”
거친 기합을 내지르며 다시 한번 도약.
대련을 지켜보던 엘리샤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힘이 과하게 들어갔군. 마력의 분배도 엉망이야.”
카앙! 카가가각!
빈센트는 마력이 응축된 알버트의 검을 흘린 후 알버트의 무릎을 가볍게 툭, 걷어찼다.
“어, 어어?”
전신에 퍼트렸던 마력을 몽땅 검에 쏟아부은 알버트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철퍼덕 정면으로 엎어졌다.
“크으으….”
코피가 흘러나오는 코를 부여잡으며 신음을 흘리는 알버트.
척.
엎어진 알버트의 목에 은빛 검날이 닿았다.
“져, 졌습니다.”
“…….”
단 두 합 만에 알버트를 제압한 빈센트 조교는 검을 다시 허리춤에 꽂고 무심하게 몸을 돌렸다.
“흐음.”
옆에서 대련을 지켜보던 엘리샤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눈을 찌푸렸다.
그녀의 시선이 주변에 대련을 지켜보고 있던 후보생들에게 향했다.
“다음.”
“읏….”
엘리샤에게 지목된 후보생이 쭈뼛쭈뼛 주변 눈치를 살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대련.
카앙! 카각!
“아악!”
이번에도 역시 대련이 시작된 지 30초도 채 지나지 않아 후보생은 검을 손에서 놓은 채 연무장 바닥에 엎어졌다.
“다음.”
그렇게 다섯 번쯤 비슷한 구도의 대련이 이어졌을 때.
“그만.”
엘리샤가 가볍게 손을 들어 올리며 대련을 중지시켰다.
“하아.”
깊은 한숨을 흘리며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는 엘리샤.
“형편없군.”
그녀는 사나운 눈초리로 루카스 교수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3학년 후보생이 이 정도 수준이라면 마수 소동 때 사상자가 한 명도 없었던 건 순전히 운이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겠어.”
쯧. 혀를 차는 엘리샤 교수.
“루카스 교수.”
“예, 선배님.”
“자네가 담당하는 후보생들 수준이 이렇게 형편없는 이유는 후보생들 문제라고 생각하나, 아니면 자네 교수로서 자질 문제라고 생각하나?”
“그건….”
루카스 교수가 침착한 목소리로 답했다.
“제 자질 문제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얘기가 빠르겠군.”
엘리샤 교수는 싸늘한 조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책임지고 교수직을 사퇴해라.”
“……!”
충격적인 선언에 루카스 교수의 눈동자가 부릅뜨였다.
“자, 잠깐만요. 제가 사퇴하면 후보생들은 누가….”
“자네 빈자리는 빈센트 조교가 대신하도록 하지.”
“그는 교수가 아니라 조교입니다!”
“그래서? 빈센트 조교가 비록 자네보다 무력적인 면에서는 다소 떨어질지 몰라도, 후보생들은 훈육하는 능력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데.”
“…….”
루카스 교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그건 아닙니다!”
그때.
후보생 한 명이 바들바들 떨리는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섰다.
“…알버트?”
앞으로 나선 후보생을 보며 루카스 교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비, 비록 루카스 교수님이 사납고, 괴팍하고, 성격 더럽고, 특제 주스니 뭐니 이상한 것만 만들고, 맨날 심심하면 저를 괴롭히지만…!”
“야 이 새끼야.”
“그, 그래도 좋은 교수님입니다!”
알버트의 외침에 엘리샤 교수는 실소를 흘렸다.
“…방금 말한 것 중 대체 어떤 부분에서 ‘좋은 교수’를 연상시킬 수 있는 거지?”
“그, 그건… 그러니까. 어… 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합니다!”
알버트는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쥐어짜듯 외쳤다.
“루카스 교수님은 어떤 영웅이 진정한 ‘영웅’이라 불릴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시는 분입니다!”
“…….”
알버트의 외침과 함께 적막이 내려앉았다.
“하.”
엘리샤 교수 입에서 흘러나오는 헛웃음.
“진정한 영웅이라… 자네 아직도 그런 헛소리를 하고 돌아다니나?”
루카스 교수를 돌아보며 차가운 조소를 날리는 엘리샤.
“자고로 영웅이란 보다 많은 마수와 마인들을 쳐 죽일 수 있으면 그만이다. 뭐가 진정한 영웅이니 어쩌니 하는 얘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상론에 불과하지.”
“힘없는 영웅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지킬 수 없다.”
그렇기에.
“강한 영웅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다. 그 외에는 영웅이라 불릴 자격조차 없는 쓰레기에 불과하지.”
엘리샤 교수는 날카로운 눈으로 후보생들을 쏘아봤다.
“그런 의미에서 너희들은 영웅 후보생이라 불릴 자격조차 없는 쓰레기들이다.”
“…….”
엘리샤 교수의 신랄한 말에 후보생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채 침묵했다.
“…지금 제 제자들보고 쓰레기라고 말씀하신 겁니까?”
그때.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루카스 교수가 까득 이를 갈았다.
“그래,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나?”
“…….”
루카스 교스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주먹을 움켜쥐었다.
움켜쥔 주먹이 파르르 떨리던 것도 잠시.
“아.”
무슨 좋은 아이디어라도 번뜩인 걸까.
루카스 교수가 내 쪽을 돌아보더니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뭔데.’
갑자기 날 왜 보면서 웃는 건데.
“흐흐흐. 뭐… 선배님도 ‘조교’를 내세웠으니 나도 내 조교를 불러도 되겠지.”
나 당신 조교 아니라고 이 양반아.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내 마음속 외침이 들리지 않았던 걸까.
루카스 교수는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기더니 내 어깨에 척. 손을 올렸다.
“이 후보생과 한번 대련해 보는 건?”
“그 후보생은…?”
엘리샤 교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후보생 명부를 살폈다.
“이름 데일 한. 종합 순위 472위 중 472위. 주 무기는 검. 숲의 신의 성흔을 지니고 있으며 가호는 없음… 맞나?”
“그렇습니다.”
“…자네 지금 나랑 장난하나?”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루카스 교수를 바라보는 엘리샤.
종합 순위가 훨씬 더 높은 후보생들도 빈센트 조교의 검 한번 제대로 받아 내지 못하고 픽픽 쓰러졌는데 말석 후보생과 대련을 시키자니?
“헛소리는 그만하고 굳이 대련을 더 하고 싶다면 이 반에서 가장 순위 높은 후보생을 내보내라.”
“아뇨. 데일 이놈이 사정이 있어서 순위는 좀 낮게 평가받았지만 실력 하나는 확실한 놈입니다.”
“하.”
엘리샤는 같잖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아무리 순위가 낮게 평가받았다고 해도 말석 후보생이 강해 봐야 얼마나 강하겠는가?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서 험한 말은 안 하고 싶었는데… 슬슬 짜증 나는군.”
“그래서, 대련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포기하시겠습니까?”
“대련이고 자시고 말석 후보생 따위와 무슨 대련을 한단….”
“쫄?”
“…….”
엘리샤는 품속에서 연초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지 않은 채 질겅질겅 껌처럼 연초를 씹던 엘리샤가 빈센트 조교를 돌아봤다.
“빈센트 조교.”
“예, 교수님.”
“사냥개 머리가 좀 아픈 거 같으니, 정신 좀 차릴 수 있게 도와주도록.”
“알겠습니다.”
빈센트 조교는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연무장 중앙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흐흐흐.”
루카스 교수는 연무장으로 나오는 빈센트 조교를 바라보며 짙은 미소를 지었다.
“데일.”
“…뭡니까?”
“이기면 내 특제 주스 10잔을 만들어 주마.”
“필요 없….”
“물론 마시는 건 알버트다.”
“오.”
그건 좀 솔깃한데?
“뭐… 알겠습니다. 저도 인제 와서 교수님 바뀌는 건 맘에 안 드니까요.”
루카스 교수가 교수직을 사퇴하게 되면 평소 아지트로 삼고 있는 그의 교수실도 사라지지 않겠는가.
“데일.”
“또 뭡니까?”
고개를 돌리니 팔짱을 낀 채 낄낄 웃고 있는 루카스 교수의 모습이 보였다.
“살살 해라.”
“…….”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