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48)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49화(49/141)
제49화. 태양의 검사 (1)
아이리스에게 공화국의 매운맛을 보여 준 다음 날.
[앞으로 당분간은 연락하지 마세요.]나는 히어로 워치 위에 떠 오른 메시지를 보며 혀를 찼다.
“아무리 그래도 생강차는 좀 심했나?”
뒤늦게 살짝 후회가 들었지만, 당시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걸 어떻게 참아.’
평소 다른 사람의 고통을 즐기는 취미 따위는 없다고 생각해 왔지만.
이 정도 매운맛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으스대던 아이리스가 눈물 콧물 짜내며 엉엉 우는 모습을 보니 괴롭혀 주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 없었다.
‘뭐,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까.’
그녀의 화가 풀리기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게 최선이리라.
“어디 보자 그럼….”
오늘 수업으로는 원래 전사부 후보생들만 듣는 대련 수업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루카스 교수의 건강상의 이슈로 인해 휴강한다는 공문이 어젯밤 막 내려온 참이었다.
“아니, 어제만 해도 멀쩡하던 양반이 갑자기 뭔 건강상의 이슈야?”
궁금해서 히어로 워치로 메시지를 보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뭐, 별일 아니겠지.’
다른 사람도 아닌 그 루카스 교수가 아닌가.
몸 상태가 어지간히 나쁘다고 해도 금방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져서 돌아오리라.
“베럴드는 저녁에 만나기로 했으니까….”
지금부터 저녁까지는 시간이 통째로 비게 되는 셈이다.
‘연무장이나 갈까.’
딱히 할 일도 없이 기숙사 방 안에 죽치고 있는 것보단 몸이라도 움직이는 게 나으리라.
‘휴학 기간 때처럼 내 맘대로 연무장을 쓰긴 어렵겠지만.’
원래 계획대로라면 휴교 기간이 끝나기 전에 줄리엣에게 돈을 뜯어… 아니, 빌려서 개인 연무장을 신청할 생각이었지만.
한참 작업(?)을 치고 있던 도중 베럴드와 마주치는 바람에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다.
‘뭐, 어쩔 수 없지.’
어제 있었던 빈센트 조교와의 대련 때문에 평소보다 주변의 이목이 더욱 쏠리겠지만, 그렇다고 좁은 기숙사 방 안에 틀어박혀 검을 휘두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끙차.”
나는 검을 챙겨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래도 아직 휴교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공용 연무장을 사용하고 있는 후보생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어?”
“걔 맞지? 그… 실전 전투 훈련 C반에 있다는 말석.”
“야, 조교도 꺾은 놈이 말석은 무슨 말석이냐? 저놈 이제까지 X신 연기한 거라잖아.”
“대체 왜? 일부러 꼴찌가 돼서 좋을 게 없잖아?”
“이유는 나도 모르지. 여하튼 C반 애들 중애서는 ‘유렌 헬리오스’랑 비교하는 놈들도 있더라고.”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오바지.”
“그치? 하여간 C반 새끼들 유렌이랑 같이 수업도 받아 본 적 없으면서 괜히 호들갑이란 말이지.”
물론.
후보생 숫자가 많지 않다고 해서 내게 이목이 쏠리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난리가 났네 아주.’
나는 내가 들어가자마자 서로 속닥거리기 시작하는 후보생들을 돌아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후보생들을 지나쳐 넓은 공용 연무장 구석으로 향했다.
가져온 수건과 물통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가볍게 준비 운동 삼아 무투술을 펼쳤다.
후웅! 훙! 파앙!
주먹과 발이 허공을 가르며 울려 퍼지는 파공성.
마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한 소리였다.
‘이 정도면 몸도 어느 정도 좋아졌고.’
처음 회귀했을 당시에는 ‘뭣도 모르는 놈이 무식하게 노력만 한’ 수준에 불과했던 몸도 꾸준한 단련으로 두 달 남짓한 짧은 시간 만에 큰 변화가 이뤄졌다.
쫙 갈라진 복근과 군살 하나 없는 잔근육으로 뒤덮인 상체.
허리부터 허벅지, 정강이로 이어지는 하체 근육 또한 마치 고양잇과 맹수를 연상시킬 정도로 발달해 있었다.
어차피 육체야 마력으로 강화하면 그만인데 이렇게까지 빡세게 몸을 단련할 필요가 있냐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그건 마력을 외계(外界)로 방출해 마법으로만 쓰는 골방 마법사들이나 할 법한 안일한 생각이었다.
‘나뭇가지에 마력을 흘려 넣어 강철처럼 강화할 바에, 그냥 강철로 만든 무기를 사용하면 되니까.’
육체도 마찬가지.
같은 마력을 사용한다고 해도 부실한 육체를 강화하는 것과 단련된 육체를 강화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아직 부족해.’
베럴드에게 배운 짬밥이 있어서 그런지 들인 시간에 비해서는 빠르게 몸이 좋아지긴 했지만.
전생에서처럼 흠잡을 곳 하나 없는 완벽에 가까운 육체를 가지기 위해서는 단련을 게을리할 수 없었다.
“후우.”
슬슬 몸이 달아올랐을 때.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본격적으로 검술 수련에 들어갔다.
“쓰읍.”
깊게 숨을 들이쉬며 손에 쥔 검을 휘두른다.
우선 태양검의 1형부터 4형까지.
올려 베기, 내려 베기, 횡 베기, 찌르기.
검술의 기초이자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네 가지 동작이 차례대로 펼쳐진다.
후웅! 훙! 촤악!
편의상 태양검이라 부르고 있다고 해도 내 손에서 펼쳐지는 검술은 더 이상 그 원형이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저번에 경지가 올라가고 난 뒤에는 더 달라졌지.’
아마 이 정도면 전생의 유렌이 살아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알려 준 검술이라고는 생각 못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괜찮아.’
더 이상 원형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달라졌다고 해도, 내 검의 뿌리가 유렌이었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그러니까.’
후웅!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
잿빛 오러를 머금은 검이 사납게 주변 공간을 찢어발겼다.
‘걱정 마라, 유렌.’
네가 잊어도.
내가 기억한다.
-검을 휘두를 때 너무 초조해하지 마.
-머리를 비우고, 천천히.
-네가 아니라 검이 어딜 향하고 싶은지 생각해.
네게 배운 가르침을.
네가 알려 준 깨달음을.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생생하게,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후우.”
살짝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검을 검집에 넣었다.
‘뭐, 기억하고 있다 뿐이지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솔직히 ‘네가 아니라 검이 어딜 향하고 싶은지 생각하라’는 말은 지금 생각해도 무슨 개소리인가 싶다.
‘하여간 새끼 매번 있어 보이는 말만 하고 말이야. 어? 그렇게 말하면 누가 알아듣냐?’
유렌에게 검술을 배웠을 시절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흘리고 있을 때.
짝짝.
그때, 맑은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인 것은.
“놀랍네요.”
태양처럼 찬란히 빛나는 금발을 지닌 청년.
“넌….”
“아, 허락도 없이 수련하시는 모습을 훔쳐봐서 죄송합니다.”
금발의 청년은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3학년 전사부 후보생 유렌 헬리오스라고 합니다.”
“…….”
생각지도 못했던 유렌의 등장에 나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딱딱하게 굳은 내 표정으로 보고 오해라도 한 걸까.
유렌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렇게 말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아, 응. 아냐, 괜찮아. 근데 왜 날 찾아온 거야?”
“어제 우연히 데일 씨가 대련하는 모습을 보게 됐는데요.”
“아.”
빈센트 조교랑 대련한 걸 본 건가.
“대련을 보고 꼭 데일 씨와 검을 한번 겨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개인 연무장도 가지고 있는 놈이 나를 찾아 공용 연무장까지 온 거로구만.
‘하여간 새끼 여전하다니까.’
예전부터 어디 누가 검을 잘 다룬다는 소문만 들리면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눈에 불을 켜고 찾아가던 놈다운 짓이었다.
나는 피식 웃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안 그래도 유렌에게 어떻게 말을 걸고 친분을 쌓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차였는데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아… 감사합니다!”
“말 편하게 해. 같은 학년끼리.”
“응, 알았어. 말 편하게 할게.”
“대련은 여기서 하게?”
“아니. 내 개인 연무장이 있으니까 거기서 하자. 여긴… 보는 눈이 좀 많으니까.”
유렌은 고개를 돌려 웅성거리는 후보생들을 돌아봤다.
유렌이 왔기 때문일까.
아까 전만 해도 몇 명 보이지 않았던 후보생들이 연무장을 가득 채울 기세로 모여들어 있었다.
“사람들 더 모여들기 전에 후딱 가자고.”
“응.”
유렌이 앞장서 걸어가자 무슨 일곱 신의 기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인파가 반으로 쫙 갈라졌다.
‘이야, 그래도 나도 요즘 주목을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유렌이랑 같이 있으니 비교가 안 되네.’
하긴.
지금 눈앞에 있는 후보생은 그 유명한 ‘태양의 검사’ 레이날드 헬리오스의 후예였으니까.
이 정도 주목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하리라.
“여기가 내 연무장이야.”
“캬아! 시설 좋구만.”
크기 자체는 공용 연무장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내부와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훈련 장비, 개인용 샤워실과 사우나까지.
공용 연무장과는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좋은 시설이었다.
‘직접 보니까 더 탐나네.’
나는 시골에서 갓 상경한 촌놈처럼 유렌의 개인 연무장을 두리번거리며 꿀꺽 침을 삼켰다.
“대련은 어떤 방식으로 할까?”
“네가 원하는 대로.”
“음… 처음엔 그럼 마력을 사용하지 않고 한번 해 볼래?”
유렌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제안했다.
‘내가 마력이 적다는 걸 알고 있나 보군.’
유렌의 경우 후보생은커녕 어지간한 교수들보다도 훨씬 많은 마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마력을 사용한 대련으로는 나와 제대로 된 승부를 가르기 어렵다고 판단했으리라.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성흔 증폭제라도 사용하면 모를까.
단순한 마력량 차이만 해도 10배 이상 날 텐데 마력을 사용한 대련에서는 내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 그럼 우선 마력을 안 쓰고 한번 붙어 보자고.”
“고마워.”
나는 훈련용 목검을 손에 쥔 채 유렌 앞에 섰다.
유렌이 히어로 워치를 조작하자 연무장 중앙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대련 모드 설정이 확인되었습니다.] [대련 시작까지 5초.] [4, 3, 2, 1.]허공에 떠오른 숫자가 사라진 순간.
파앗!
나와 유렌이 동시에 발을 박차고 질주했다.
그리고.
* * *
“허억, 허억, 헉!”
가쁜 숨을 내쉬며 털썩 주저앉은 유렌.
“마, 말도 안 돼….”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닥에 널브러진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며 몸을 떨었다.
나는 근처에 둔 물통을 마시며 유렌의 충격이 가시길 기다렸다.
“데일!”
유렌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며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는 내 손을 꽉 움켜쥐며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대체 누, 누구한테 그런 검술을 배운 거야?!”
누구긴 인마.
‘너한테 배운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