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56)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57화(57/141)
제57화. 중간 평가 (2)
“어디 그럼.”
기숙사 방으로 돌아온 난 침대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원래라면 연무장에 가서 한참 땀을 흘리며 검을 휘두르고 있어야 할 시간이지만, 최근 집중하고 있는 ‘새로운 기술’을 수련할 때는 굳이 연무장에 갈 필요가 없었다.
“쓰읍.”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눈을 감는다.
암전되는 시야.
검은 어둠만이 가득한 곳에서 거대한 불길이 솟구친다.
태초의 불.
아득한 과거, 창조의 나무를 불태웠다고 전해지는 불길이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 사납게 타오른다.
마음(心)을 빚어 만들어 낸 상(象).
심상의 세계를 거닐며 사납게 타오르는 불길을 응시한다.
‘피어라.’
사납게 타오르는 불길을 향해 손을 뻗으며 명령했다.
미동조차 하지 않는 태초의 불.
여기까지는 평소대로였다.
‘지금부터가 중요해.’
아슈타로트와의 전투 이후.
매일 밤, 자는 시간을 쪼개어 ‘태초의 불’을 다룰 방법에 대해 연구를 이어 갔다.
그렇게 연구를 거듭한 결과 알게 된 특징은 두 가지.
‘하나는 태초의 불은 대략 5~6시간 정도 간격으로 내 ‘죽음’에 반응을 보인다는 것.’
이건 마력 단련을 하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진짜 중요한 건 두 번째 특징.
‘태초의 불이 반응을 보이는 5분간, 강한 의지를 담아 명령하면 태초의 불을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
낚시에 비유하면 내 ‘죽음’이라는 미끼로 태초의 불을 자극한 뒤, ‘의지’라는 낚싯대로 태초의 불을 끌어올리는 느낌이었다.
‘뭐,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건 아니지만.’
쯧, 혀를 차며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후우.”
폐부에 가득 들어찬 숨을 천천히 토해 내며 신체 내부에 마력탄을 만들어 냈다.
쌀알보다도 훨씬 작은 크기의 마력탄.
기혈을 타고 흘러든 마력탄이 심장 안에 응축됐다.
그리고.
퍼석!
응축된 마력탄이 폭발하며 심장이 터졌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즉시 목숨을 잃을 치명상이었지만.
우우우웅!
소생의 가호가 발동되며 산산이 터져 나간 심장을 순식간에 복구하기 시작했다.
심장이 완전히 복구되기 전.
태초의 불이 내 ‘죽음’에 반응을 보이는 순간.
‘지금!’
사납게 타오르는 불길을 향해 손을 뻗으며 강렬한 의지를 담아 명령했다.
“피어라.”
내 명령에 미동조차 하고 있지 않던 태초의 불이 천천히 움직였다.
손바닥 위에 타오르는 작은 불씨.
나는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 불씨를 내 왼쪽 가슴에 가져다 댔다.
화르르르륵!
촛불 하나 크기에 불과했던 작은 불씨가 내 심장을 불태우며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됐다!’
이윽고 전신을 휘감기 시작하는 불길.
나는 감았던 눈을 뜨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아.”
내쉬는 숨결에 회색 잿가루가 섞였다.
치이이이익!
살점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전신 모공을 통해 회색 잿가루가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전에 아슈타로트와 싸웠을 때 경험한 화신(火神) 상태처럼 무한한 마력이 끓어오르는 건 아니었지만.
‘마력이 회복되고 있어.’
반쯤 비어 있던 성흔에 조금씩 마력이 차오르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렇지!”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움켜쥔 주먹 사이로 회색 잿가루가 모래알처럼 흘러내렸다.
‘드디어 움직이는구나 이 새끼!’
매번 명령을 무시한 채 도도하게 타오르던 태초의 불이 내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감각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한 전율을 선사해 줬다.
“뭐… 화신 상태였을 때랑 비교하면 아직 한참 모자라지만.”
나는 회색 잿가루가 피어오르고 있는 몸을 내려다보며 쯧, 혀를 찼다.
전신이 불길에 타오르며 주변 전체에 회색 잿가루가 폭풍처럼 휘몰아쳤을 때와 달리, 지금 내 몸에 피어오르고 있는 잿가루는 꺼진 모닥불에서 올라오는 연기처럼 희미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움직였다는 게 어디야.’
내 명령에 미동조차 하지 않았던 때와 비교하면 이 정도만 하더라도 장족의 발전 아닌가.
“일단 마력이 자동으로 차오르는 효과는 확인했고.”
그다음 확인해야 할 거라면.
스릉.
검을 뽑아 쥔 채 천천히 마력을 흘려 넣었다.
기름을 바른 검에 불을 붙인 것처럼 검날을 타고 불길이 타올랐다.
물론 ‘화신’ 상태였을 때처럼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 거대한 불길이 타오른 건 아니었지만, 검날을 타고 일렁이는 불길은 그 자체만으로 사나운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마력 자체에 태초의 불의 힘이 깃들었어.’
태초의 불이 내 마력에 녹아든 느낌이랄까.
따로 태초의 불을 컨트롤할 필요 없이, 평소 하는 것처럼 마력을 움직이면 태초의 불의 힘이 자연스럽게 섞여 나왔다.
‘방 안이라서 어느 정도 위력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아슈타로트와의 일전을 생각하면 태초의 불이 깃든 마력이란 건 그 자체만으로 강력한 아티팩트나 다름없었으니까.
“좋아… 그러면 최종적으로는 마력이 자동으로 차오르는 효과랑 마력에 태초의 불의 힘이 깃드는 효과. 이 두 가지인가?”
‘화신’ 상태처럼 마력의 총량 자체가 늘어나는 효과는 없었지만.
회복과 강화, 이 두 가지 효과만으로 이 기술을 익힐 이유는 차고 넘쳤다.
“지금 당장은 화신 상태의 열화판 기술… 이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열화판이라고 해도 그 효과는 어지간한 신화급 아티팩트조차 비빌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어디 보자 이름은… 그래, ‘점화(點火)’라 부르면 되겠네.”
불을 붙인다는 의미에서 점화.
기술을 사용했을 때 전신에서 살이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회색 연기가 피어오른다는 점에서 꽤나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기술에 어울리는 이름을 붙이는 것도 중요하니까.’
특히 지금처럼 심상(心象)에 연관된 기술이라면 더더욱.
‘여기서 성흔 증폭제까지 사용한다면.’
성흔 증폭제로 마력의 ‘양’을 늘리고, 점화를 통해 늘어난 마력의 ‘질’을 높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대주교랑도 붙어 볼 만할 거 같은데?”
물론 성흔 증폭제도 그렇고 이번에 새로 익힌 ‘점화’ 또한 5분이라는 제한 시간이 있는 기술이었지만.
적어도 그 지속 시간 내에서는 대주교와 맞붙어도 꿀리지 않을 만한 막대한 힘을 거머쥘 수 있게 될 것이다.
“뭐… 이번 중간 평가에선 둘 다 쓸 일 없겠지만.”
고작 육안급 마수를 사냥하는데 굳이 밑천까지 끌어다 쓸 필요가 있겠는가.
‘애초에 성흔 증폭제는 시험에서 쓰지 않겠다고 약속하기도 했고.’
점화의 경우는 사용해도 상관없지만, 그렇게 하면서까지 1등 자리가 탐나는 건 아니었다.
‘아직 태초의 불을 완벽히 다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태초의 불이라는 것 자체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은 힘인 만큼 사용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어디 그럼.”
피쉬이익.
시간이 지나고,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몸에서 피어오르는 회색 연기가 멈췄다.
그리고 남은 건.
“…일단 방 정리부터 할까.”
잿가루에 뒤덮인 방을 돌아보며 나는 주섬주섬 청소 도구를 챙겼다.
* * *
다음 날.
전사부 후보생들은 각자 무장을 마치고 시험장으로 이동했다.
“제한 시간은 8시간! 그 안에 누가 더 많은 점수를 쌓았는지로 너희들 이번 중간 평가 성적이 결정될 거다!”
루카스 교수의 외침과 함께 후보생들은 각자 선택한 구역대로 나뉘어 줄을 섰다.
내가 출발점으로 고른 구역은 산악 지형.
가장 무난한 지형답게 다른 구역보다 2배 가까이 되는 긴 줄이 만들어져 있었다.
“자, 그럼 10명씩 워프 장치 앞으로 나와라.”
줄 서 있던 후보생 10명이 워프 장치 위로 올라갔다.
“워프 장치가 가동하면 각자 선택한 구역 내에서 랜덤한 장소로 이동하게 될 거다.”
루카스 교수는 워프 장치의 전원을 켜며 말을 이었다.
“재수 없어서 마수 바로 앞에 이동하게 될 수도 있으니 정신 바짝 차려라.”
“예!”
“아, 그리고 위급할 때는 히어로 워치로 구조 요청을 보내는 거 잊지 마라. 괜히 주제 모르고 나대다가 뒤지지 말고. 알겠나?”
“명심하겠습니다!”
우렁찬 대답과 함께.
“그럼, 무운을 비마.”
워프 장치가 가동했다.
푸른 빛무리와 함께 사라지는 후보생들.
“데일.”
나와 같이 산악 지형을 고른 유렌이 워프 장치에 올라가기 전, 나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절대 지지 않을 거야.”
“쉽지 않을 텐데.”
피식 웃으며 유렌의 뒤를 따라 워프 장치 위에 올라갔다.
우우우우웅!
푸른 빛무리와 함께 구름 위에 올라선 것 같은 부유감이 내 몸을 감쌌다.
* * *
“으… 워프는 오랜만이구만.”
나는 살짝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우거진 수풀. 15미터 넘게 자란 나무들.
코를 자극하는 자연의 냄새.
“하.”
주변을 둘러보던 내 입에서 나지막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설마 전생이랑 똑같은 곳에 떨어질 줄이야.”
어딘가 익숙한 광경이다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전생에 중간 평가를 치렀을 때 떨어진 장소였다.
‘우연인지, 아니면 운명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다시 오게 되니 전생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이날이었지.”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떠올리던 내 입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이 장소가 유독 눈에 익었던 이유.
‘여기서 처음으로 죽음을 경험했지.’
공포에 떨면서 발걸음을 옮기던 도중.
수풀에서 튀어나온 마수에게 목덜미가 물어뜯겼다.
‘그때만 해도 내 인생은 거기서 끝일 줄 알았는데.’
‘소생의 가호’를 각성해 되살아난 것도 모자라, 시간까지 거슬러 과거로 회귀하게 될 줄이야.
지금 생각하면 참 파란만장한 인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그럼 부지런히 움직여 볼까.”
‘일각수’가 산악 지형에서 처음 발견됐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정확한 위치까지는 나도 알지 못했다.
당시 나는 왜 머리가 떨어져 나갔음에도 멀쩡히 살아 있는지 생각하는 것만으로 머리가 가득 차 있었으니까.
바스락, 바스락.
수풀을 헤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크아아아앙!”
사나운 괴성과 함께 검은 형체가 수풀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어이쿠.”
가볍게 몸을 틀어 마수의 공격을 피한 후, 거리를 벌려 수풀에서 튀어나온 마수를 살폈다.
늑대와 흡사한 외견.
침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흉악한 이빨과 칼날처럼 날카로운 발톱.
핏빛으로 번들거리는 3개의 눈동자.
“어라?”
수풀에서 튀어나온 마수를 본 나는 다시 한번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야, 오랜만이다?”
눈앞에 나타난 마수는 전생에 내게 처음으로 ‘죽음’을 경험하게 해 줬던 마수였으니까.
“잘 지냈어?”
나는 낄낄 웃음을 터트리며 늑대 마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