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58)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59화(59/141)
제59화. 중간 평가 (4)
오빠가 죽은 지 벌써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매일 생각한다.
매번 후회한다.
차라리 오빠 대신 내가 죽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그랬으면.
이렇게 죄책감에 짓눌린 채 하루하루 살아갈 일도 없지 않았을까.
하지만 바람은 바람일 뿐.
내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돌이킬 수 없는 나날을 곱씹으며 마음을 깎아 내는 일뿐이었다.
강해져야 한다.
더 높은 곳으로.
더 아득한 곳으로.
저 하늘 드높이 빛나는 태양이 될 때까지.
‘유렌 헬리오스’의 이름을 대신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물러설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건… 내가 지은 죄에 대한 ‘대가’였으니까.
그렇기에.
매일 손바닥에 핏물이 배어 나올 정도로 검을 휘둘렀다.
매번 속을 게워 내며 쓰러질 정도로 검을 단련했다.
아무리 괴롭고,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내 노력을 하늘이 알아준 걸까.
내 검술 실력은 하루가 다를 정도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나날이 성장하는 실력에 나는 희망을 꿈꿨다.
내가 ‘유리나 헬리오스’가 아닌, ‘유렌 헬리오스’가 될 수 있다면.
어머니는 다시 예전처럼 날 사랑해 주실 거라 믿었으니까.
-대단합니다! 불과 15살의 나이에 쟁쟁한 영웅들을 제치고 제국 검술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다니, 역시 ‘태양의 검사’의 후예다운 실력입니다!
노력의 결실은 3년 만에 찾아왔다.
현역 영웅도 참여하는 검술 대회에서 아직 영웅 학교에 들어가지도 않은 내가 준우승을 거머쥔 것이다.
이 정도면 어머니도 날 인정해 주실 거야.
들뜬 걸음으로 저택으로 돌아갔다.
넓은 저택의 방 안.
기대에 부푼 채 문을 열고 들어온 나를 향해 어머니는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준우승을 했다고?
-네! 마지막에 간발의 차로 지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 고작 준우승하고서 호들갑을 떠는 거니?
실망에 가득 찬 눈빛으로 어머니는 쯧, 혀를 찼다.
-유렌이었다면 우승했을 거란다.
어머니는 오빠의 사진을 쓰다듬으며 아련한 목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 아이만 살아 있었어도….
나지막이 들려오는 중얼거림에 나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파르르 떨리는 주먹을 움켜쥐며 입술을 짓씹었다.
-죄송…합니다.
-사과할 필요 없다. 어차피 처음부터 너한텐 아무 기대 안 했으니까.
-…….
-헬리오스 가문의 혈통이면서 ‘태양신’의 성흔조차 가지지 못한 네가 뭘 할 수 있겠니?
어머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을 헤집었다.
-할 말 끝났으면 나가렴.
쾅.
거칠게 닫히는 문.
나는 굳게 닫힌 문 앞에 주저앉아 갈라진 목소리로 하염없이 용서를 구했다.
미안해요.
다음에는 더 잘할게요.
더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해서.
1등이 될게요.
아무한테도 지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엄마.
제발… 제발 날….
“히이이이잉!”
“읏…!”
상념에 잠겨 있던 정신이 마수의 괴성 소리에 깨어났다.
나는 이쪽을 향해 잔뜩 흥분에 찬 콧김을 뿜으며 달려오는 마수, 일각수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기회야!’
활시위를 당기듯 검을 쥔 팔을 당기며 마력을 검 끝에 집중했다.
검 끝에 모여드는 금빛 빛무리.
태양검 제6형, 백광(白光).
검 끝에 응축한 검기를 멀리 쏘아 기술이자, 지금 내가 사용할 수 있는 태양검의 ‘형’ 중 가장 높은 난도와 위력의 기술이었다.
우우우우웅!
검 끝에 모인 금색 빛무리가 공기를 찢어발기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쏘아졌다.
금색 빛무리가 일각수의 목에 걸린 방울을 꿰뚫어 버리려고 했을 때.
“어딜!”
일각수의 뒤를 따라 쫓아온 데일이 금빛 검기를 튕겨 냈다.
카아아아앙!
“크윽…!”
침음을 삼키며 주르륵 뒤로 밀려나는 데일.
금빛 검기 안에 담겨 있던 마력이 워낙 무지막지했기 때문일까.
거대한 쇳덩이를 검으로 후려친 듯한 충격에 손바닥 살점이 찢겨 나갔다.
데일은 핏물이 철철 흘러내리는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쯧, 혀를 찼다.
“새끼 하여간 마력 하난 진짜 무식하게 세네.”
평소였다면 마력을 미세하게 조정해 충격을 분산시켰을 테지만, 워낙에 허겁지겁 달려온 탓에 그럴 여유도 없었다.
“데일…!”
“말했잖아. 쉽지 않을 거라고.”
나는 손바닥에서 흐르는 핏물을 대충 바지춤에 닦아 내며 검을 겨눴다.
“비켜, 데일.”
“싫다면?”
“…….”
굳게 입을 다문 채 사납게 날 노려보는 유렌.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유렌의 몸 주변으로 금빛 마력 폭풍이 휘몰아쳤다.
거리가 꽤 떨어져 있음에도 피부가 따끔해질 정도로 강력한 마력 폭풍.
‘이거 대련했을 때보다 더한 거 같은데?’
그때도 무식한 마력량이라 생각했는데 설마 거기서 더 마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 줄이야.
헛웃음을 흘리는 나를 향해 유렌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다쳐도 난 몰라.”
유렌이 거칠게 진각을 밟으며 검을 휘둘렀다.
쿠르르르릉! 콰과과광!!
천둥이 내려치는 듯한 굉음.
금빛 오러에 휘감긴 검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깊은 크레이터가 만들어지며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뒤흔들렸다.
수십 미터에 달하는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바닥을 뒹굴었고, 사람 크기보다 큰 암석이 자갈이 되어 조각났다.
“히이이이잉!”
마치 신화 속 거인이 난동을 부리는 것 같은 무식한 파괴의 향연에 거센 콧김을 뿜으며 유렌에게 달려들었던 일각수조차 다급히 거리를 벌렸다.
쿠르르릉! 콰앙! 쿠구궁!
대체 누가 이걸 보고 ‘검’을 휘두르고 있다 생각할까.
주변 대지가 뒤집히며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크읏!”
나는 ‘바람 걸음’을 사용해 유렌의 검격을 피해 내며 눈을 찌푸렸다.
‘원래부터 무식한 마력을 가지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해도 해도 정도가 있지, 이 정도면 거의 검으로 자연재해를 일으키고 있는 수준이지 않은가.
‘하지만 뭔가….’
나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금빛 검기를 피하며 가늘게 눈을 떴다.
‘너무 조급한데?’
위력이 강하긴 하지만 딱 그것뿐.
유렌의 검은 마치 귀신에 쫓기기라도 하듯 조급함에 가득 차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탄성을 자아냈던 유려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교묘하게 사각을 파고들던 섬세함은 무식한 힘에 묻혀 버렸다.
‘오히려 더 상대하기 쉬운데 이건?’
뭐가 대체 유렌을 이토록 조급하게 만들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유렌을 상대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아, 하아! 읏… 제길!”
요리조리 날파리처럼 공격을 피하는 내 모습이 짜증 났던 걸까.
유렌은 숨을 헐떡이며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언제까지 도망만 칠 생각이야?!”
“네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내가 제정신이 아니기라도 한다는 거야?”
“지금 네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걸?”
“그건….”
정곡을 찔린 듯 말끝을 흐리는 유렌.
“…어쩔 수 없잖아.”
유렌은 고개를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1등을 뺏길 순 없어.’
검자루를 움켜쥔 손에 힘을 더하며 입술을 짓씹었다.
이제껏 시험을 보면서 이렇게 초조함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수석으로 영웅 학교를 입학한 한 후, 그에게 있어 ‘1등’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와 1위 자릴 놓고 경쟁할 수 있는 후보생은 여태 2년간 한 명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데일이라면….’
일주일에 2번.
데일에게 검술을 배우며 그가 단순히 ‘검술’만 뛰어난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도저히 후보생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 노련함.
마치 목숨이 여러 개라도 되는 듯한 과감함.
빠른 판단력과 실행력까지.
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힘을 숨기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데일’이라는 존재는 경이롭기 그지없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데일에게 앞서는 거라곤 마력량 말고 없어.’
그렇기에.
이번에 ‘1등’을 노린다는 데일의 말에 가슴이 철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라면 1등 자릴 뺏기게 될 거야.
긴장은 초조함이 됐고, 초조함은 공포가 되었다.
‘한 번이라도 1등을 못 하면….’
악몽이 떠오른다.
8년 전 그날.
‘유렌 헬리오스’라는 태양이 떨어진 날의 기억.
-너만… 너만 없었으면! 너마아아아안!!!
찢어질 듯한 비명.
화분이 깨지는 소리.
목을 조르는 어머니의 손.
숨이 쉬어지지 않는 고통.
나를 내려다보던 핏발 선 눈, 눈, 눈.
“…안 돼.”
유렌은 검을 쥔 채 울부짖듯 외쳤다.
“나는… 절대 져서는 안 된다고!”
한 번의 패배도 용납되지 않는다.
한 번의 실수도 용서되지 않는다.
저 드높은 하늘 위에 빛나는 태양, ‘유렌 헬리오스’란 그런 존재였으니까.
쿠구구구구구궁!
휘몰아치는 마력 폭풍에 주변 대지가 뒤흔들렸다.
내가 데일에게 앞서는 거라곤 마력량뿐.
‘그렇다면.’
압도적인 마력량으로 찍어누를 수밖에 없다.
“흐아아아아아!”
세찬 기합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태양검 제6형 변형식, 백광(白光)-파(波).
검 끝에 응축된 금빛 검기가 거대한 해일이 되어 대지를 휩쓸었다.
“…유렌.”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유렌을 지켜보던 데일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덮쳐오는 금빛 해일을 바라보며 고민에 잠긴 듯 미간을 좁혔다.
“하아.”
잠시 고민을 이어 가던 데일의 입술 사이로 나지막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데일은 덮쳐오는 금빛 해일을 피해 발을 박찼다.
몸을 움직인 곳은 바로 일각수의 뒤.
그와 마찬가지로 금빛 해일을 피해 몸을 움직이려던 일각수의 다리를 검으로 베어 버리고 일각수를 방패 삼아 금빛 검기를 막았다.
“히이이이잉!”
일각수는 애처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금빛 검기의 해일에 전신이 난자당했다.
그리고.
파직!
일각수의 목에 걸려 있던 방울이 박살 났다.
-띠링!
[후보생 ‘유렌 헬리오스’가 보너스 목표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보너스 목표 달성에 성공한 후보생은 점수와 상관없이 중간 평가 1등이 됩니다.]“아.”
히어로 워치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두 눈을 크게 뜨는 유렌.
“…다행이다.”
마력을 너무 많이 사용한 탓일까, 아니면 긴장이 한 번에 풀렸기 때문일까.
유렌은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엄마… 나… 해 냈….”
바닥에 쓰러진 채 힘겹게 말을 잇던 유렌이 스르륵 눈을 감았다.
“…….”
데일은 기절한 유렌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유렌을 안아 들어 근처 바위 위에 눕힌 데일은 쯧, 혀를 찼다.
“…유렌.”
유렌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생각했다.
소중한 동료이자 둘도 없는 친구였으니까.
그렇기에.
유렌이라면 아무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깟 1등 자리 빼앗겨도 하하 웃으며 넘어갈 거라 예상했다.
오히려 좋은 자극을 받아 그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 믿었다.
“잘 알고 있긴 개뿔.”
멋대로 판단하고.
멋대로 재단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 아는 척 으스댔다.
“…너는 스스로 빛났던 게 아니라, 빛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던 거였구나.”
지독한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끊어질 듯 희미한 목소리로 ‘지면 안 돼’라고 중얼거리는 친구를 내려다보며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