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59)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60화(60/141)
제60화. 중간 평가 (5)
“아따 새끼 일어날 생각을 안 하네.”
마력 탈진으로 유렌이 기절한 지 2시간.
뺨을 툭툭 건드리거나 어깨를 흔들어 유렌을 깨워 보려 했지만, 얼마나 깊이 잠들었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 정도면 죽은 거 아냐?”
물론 하도 일어날 기미가 없길래 농담으로 해 본 말이었다.
‘원래 마력 탈진 상태에서 기절하면 깨어나기까지 엄청 오래 걸리니까.’
그건 개미 똥만 한 마력으로 인해 수시로 마력 탈진 상태에 빠져 본, 거의 마력 탈진계의 프로패셔널이라 자부할 수 있는 나였기에 더욱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나도 점수 벌려면 슬슬 움직여야 하는데.’
중간 평가가 시작한 지도 약 4시간 정도가 흘렀다.
8시간의 제한 시간 중 무려 절반이 흐르는 동안 내가 쌓은 점수는 놀랍게도 0점.
처음 잡은 늑대 마수는 우연히 외부에서 흘러 들어온 놈이었는지 점수를 주지 않았고, 일각수의 경우 유렌이 잡아 버렸기에 1점조차 얻지 못했다.
‘이대로는 또 말석이다.’
이제 그만 지긋지긋한 말석 영웅이란 꼬리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점수를 벌라면 슬슬 움직여야 하는데….”
간이침대(딱딱한 바위 위에 눕혀 두기 좀 그래서 간단하게 만들었다)에 누워 있는 유렌을 내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두고 갈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지.
“마수를 쫓는 결계나 만들어 둘까.”
예전이었다면 결계처럼 무식하게 마력을 잡아먹는 마법을 사용할 생각도 못했겠지만.
요즘엔 그래도 마력이 부쩍 늘어난 덕분에 간단한 결계 정도는 만들 수 있었다.
‘효과가 그리 좋지는 않지만.’
어차피 일각수를 잡은 이상 이제 남은 마수라고는 오안급 이하 마수밖에 없었다.
“흣차.”
검으로 손바닥을 그어 피를 낸 후 유렌을 주변으로 마법진을 그렸다.
‘드디어 소피아 선배한테 배운 마법을 제대로 활용해 보네.’
전에 아슈타로트와 싸울 때 한 번 결계를 만들어 낸 적 있었지만, 그때는 이제껏 배워 온 이론과 지식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만든 결계라기보단 그냥 무식하게 마력을 때려 넣어 만든 마력 장막에 가까웠기 때문에 ‘마법’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결계였다.
‘결계의 축은 육망성 이론을 베이스로 만들고 마력의 순환은 아르카디아의 순환 주문 이론에 따라서 구조를 조정하면….’
다른 건 몰라도 이론은 꽤 자신 있는 분야였기 때문에 마법진을 만드는 과정은 나름 재미있었다.
“좋아, 됐다.”
우우우우우웅!
전등의 전원을 켜듯 핵에 마력을 흘려 넣어 결계를 활성화한 나는 뿌듯한 표정으로 유렌의 몸을 감싸고 있는 회색 안개를 바라봤다.
‘맨날 이론 공부만 주구장창 하다가 이렇게 직접 사용해 보니 느낌이 또 다르네.’
아무리 치밀한 설정과 플롯을 짜 두고 소설을 쓴다고 한들 머릿속에서 생각한 것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것처럼.
실제로 마법을 사용해 보니 이론과 지식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감각이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직 갈 길이 멀구만.”
소피아 선배처럼 숨 쉬듯 자연스럽게 마법을 사용하기까지는 아직 넘아야 할 난관이 많았다.
“자, 그럼 슬슬 이동해 볼까.”
나는 유렌을 뒤로한 채 몸을 돌렸다.
“푸르르… 푸히이잉….”
그때, 유렌의 검기에 전신이 난자당한 채 쓰러져 있던 일각수가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뭐야, 살아 있었냐?”
과연 육안급 마수라고 해야 할까.
자연재해나 다름없던 금빛 해일 속에서 어찌 목숨은 부지한 모양이었다.
“푸르르, 푸르.”
일각수가 숨을 헐떡이며 내게서 도망치듯 비틀비틀 발걸음을 옮겼다.
“야야. 죽일 생각 없으니까 도망칠 필요 없어 인마.”
나는 양손을 들어 공격 의사가 없다는 걸 보여 줬다.
마수의 평균 지능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지만, ‘사역마’로 부릴 수 있을 정도의 마수라면 이런 간단한 제스쳐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히이이잉… 푸르르.”
“응?”
공격 의사가 없다는 걸 보여 줬음에도 멈추지 않는 일각수.
‘뭐야?’
나는 가늘게 눈을 뜨며 일각수에게 다가갔다.
일각수는 마치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듯 계속해서 비틀비틀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날 보고 도망치는 게 아니야.’
순간 내가 유렌 주변에 설치해 둔 결계 때문인가 싶었지만, 결계의 범위도 한참 벗어나 있을뿐더러 애초에 육안급 마수에게 통할 만한 결계도 아니었다.
‘그럼 뭐야.’
날 보고 도망친 것도, 결계의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니라면.
대체 누굴 보고 도망치고 있단 말인가?
크그그그그긍!
그때,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는 대지.
“크읏!”
머리로 판단하기에 앞서, 나는 다급하게 발을 박차며 진원지에서 멀어졌다.
콰아아아아아앙!
지면이 폭발하듯 터지며 흙먼지가 솟구쳤다.
“히이이이이잉!”
일각수가 애처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무언가에 붙잡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콰드드득!
일각수의 몸이 반으로 쪼개지며 후두둑 붉은 핏물이 쏟아져 내렸다.
“이건….”
나는 쏟아지는 핏물을 맞으며 지면을 부수고 나온 거대한 마수를 바라봤다.
악어의 머리에 인간의 몸을 지닌 마수.
녹색 비늘로 뒤덮인 몸은 갑주 같은 단단한 근육으로 들어차 있었고, 쩍 벌어진 입 사이로는 날카로운 이빨이 번들거렸다.
그리고.
“…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헛웃음.
일각수를 한입에 찢어발긴 악어 마수의 머리에는 네 쌍의 붉은 눈이 흉악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눈 8개짜리 마수가 여기 왜 있는 건데?’
이건 또 뭔 빌어먹을 상황이야.
“크르르르르르.”
낮게 깔린 울음소리.
코끝을 자극하는 비릿한 물과 이끼의 냄새.
기다랗게 돌출된 안면 절반을 채우고 있는 네 쌍의 붉은 눈동자.
‘팔안(八眼)급 마수.’
삼국 영웅 랭킹 100위 안에 드는 영웅, 소위 ‘랭커’라 불리는 영웅조차도 승부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알려진 강력한 마수였다.
아마 교수 중에서도 루카스 교수나 엘리샤 교수처럼 특출한 실력을 지닌 영웅이 아니라면 상대할 수 없으리라.
‘그런 마수가 왜 3학년 후보생 시험장에 나왔냐는 건데.’
나는 가늘게 눈을 뜨며 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덩치를 지닌 마수의 전신을 살폈다.
시험장에 오자마자 마주쳤던 늑대 마수와 같이, 악어 마수의 몸에서는 어떤 ‘표식’도 보이지 않았다.
‘교수님들의 서프라이즈 이벤트는 아니란 게 확실하고.’
그렇다면 이 악어 마수 또한 외부에서 흘러 들어온 마수라는 의미.
‘전생에 저런 놈이 시험장에 나타났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 없는데.’
추측할 수 있는 가능성은 두 가지.
전생에선 아무도 저 마수와 마주치지 않은 채 시험이 끝나 버렸거나.
‘아니면.’
모종의 이유로 인해 미래가 바뀌었거나.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네.”
지금 태평하게 어디서 저 마수가 나타났는지 생각할 상황은 아니라는 것.
“크르르르르르.”
악어 마수가 낮은 울음소리를 흘리며 한 걸음 내디뎠다.
쿠웅.
한 걸음 내딛는 것만으로 묵직한 충격이 땅을 울렸다.
“크아아아아아!”
사나운 괴성과 함께 돌진하는 악어 마수.
나는 옆으로 발을 박차며 악어 마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아앙!
비늘에 막혀 튕겨 나가는 검.
마치 쇳덩이를 벤 것처럼 손바닥이 짜르르 울렸다.
“쯧.”
역시 일반적인 공격은 안 통하는 건가.
‘급소를 노려야 해.’
깊게 숨을 들이쉬며 악어 마수를 향해 발을 박찼다.
악어 마수가 달려드는 날 바라보며 기다란 꼬리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지금!’
태양검 제5형 변형식, 흑점(黑點)-흡(吸)
마력을 응축하는 흑점의 특성을 이용해 주변 기운을 빨아들여 검에 깃들도록 변형한 기술이었다.
슈우우우욱!
진공청소기를 켠 듯 검을 중심으로 주변 바람이 빨려 들어왔다.
나는 사나운 파공성을 흘리며 휘둘러지는 꼬리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정면으로 부딪치면 안 돼.’
단단한 비늘로 뒤덮인 꼬리와 정면으로 부딪친다면 그대로 검이 박살 나 버리리라.
‘어디까지나 가져다 댄다는 느낌으로.’
검의 날 반향이 아닌 면 방향으로 휘둘러지는 꼬리를 향해 휘둘렀다.
슈우우우욱, 착!
검면이 꼬리에 닿자 흑점으로 인해 만들어진 장력으로 인해 검면이 마수의 꼬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크읏!”
채찍 끝에 묶은 추가 된 것처럼 부웅 날아오르는 몸.
‘바람 걸음.’
꼬리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검을 잡아당기며 허공을 박차듯 발을 뻗었다.
발끝에서 뿜어지는 마력을 추진력 삼아 악어 마수의 등 뒤에 올라탔다.
“흐읍!”
검을 역수로 돌려 잡은 후, 붉은빛으로 번들거리는 네 쌍의 눈동자 중 하나를 향해 검을 내려찍었다.
하지만.
카아앙!
눈꺼풀에 막혀 튕겨 나가는 검.
‘이런 미친.’
얼마나 몸이 단단하면 검으로 눈꺼풀조차 뚫을 수 없단 말인가.
“크아아아아!”
검을 튕겨 내긴 했었어도 충격 자체는 있었는지 악어 마수가 끔찍한 괴성을 터트리며 거칠게 몸을 흔들었다.
“크읏.”
비늘을 붙잡으며 어떻게든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텨 봤지만, 마수의 힘이 너무 강했다.
몸이 부웅 뜨는 감각과 함께 흙바닥에 거칠게 몸이 부딪쳤다.
쿠웅!
“커헉!”
등을 타고 전해지는 아찔한 충격.
내부 장기가 짓이겨지는 감각과 함께 팔다리가 기이한 각도로 뒤틀렸다.
“크르르르르!!!”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 악어 마수가 날카로운 이빨을 카득카득 부딪치며 승리의 포효를 내질렀다.
“크르륵.”
몸을 돌려 유렌이 누워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가는 악어 마수.
악어 마수는 사납게 꼬리를 휘둘러 유렌의 몸 주변에 펼쳐진 마수를 쫓는 결계를 부숴 버렸다.
“크르르르르.”
악어 마수가 누워 있는 유렌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낮은 괴성을 흘리고 있을 때.
“야, 악어 대가리.”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크륵…?”
악어 마수는 네 쌍의 눈동자를 껌뻑이며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에는 아까 분명 바닥에 부딪혀 전신이 으스러졌던 인간이 어느새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아직 안 끝났는데 어디 가냐?”
사납게 번들거리는 녹색 눈동자.
치이이이이이익!
살이 타들어 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피어라.”
잿빛 연기가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