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68)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69화(69/141)
제69화. 마검을 찾아서 (1)
“유적 탐사를 가고 싶다고?”
야생에서 천막 치고 살 것처럼 생긴 주인의 외모와 달리 꽤나 깔끔하게 정리된 교수실.
사자 갈기와 같은 거친 머리칼을 지닌 거한이 사나운 눈초리로 날 응시했다.
“예. 임시 영웅 자격증과 금요일 오후부터 해서 2박 3일 외출 허가증을 받고 싶습니다.”
“허….”
나지막한 탄식을 내뱉는 루카스 교수.
그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너 유적 탐사 경험은 있냐?”
“아뇨, 없습니다.”
실제로는 수백 개에 달하는 유적을 공략해 본 경험이 있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탐사 경험도 없는 놈이 뭔 유적이야? 유적이 뭔지나 알어 인마?”
“당연히 알고 있죠.”
유적 혹은 던전이라 불리는 장소.
500년 전 마신 전쟁 시절… 아니, 그보다도 훨씬 더 전에 만들어진 곳으로 마신을 비롯한 여러 초월자의 힘으로 변형이 이뤄진 공간이었다.
어떤 곳은 시간이 다르게 흐르거나.
어떤 곳은 중력이 거꾸로 작용하거나.
어떤 곳은 용암과 빙하가 뒤섞여 흐르거나.
물리 법칙을 초월한 기현상들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유적이었다.
‘물론 그 정도로 뒤틀린 곳은 극히 소수지만.’
대부분 유적은 그냥 마수 몇 마리가 어슬렁거리거나 함정 몇 개가 있는 게 전부였다.
“어디 유적을 가려고?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미발견 유적은 임시 영웅 자격증으로는 출입 불가다.”
“발할라 시티 서쪽에 있는 ‘붉은 눈물의 동굴’을 가려고 합니다.”
“아아, 거기.”
익히 알고 있는 장소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루카스 교수.
섬뜩한 이름과 달리 유적 위험도 평가에서는 C등급을 받은 평범한 유적이다.
“거긴 근데 이미 발견된 지 수십 년 지난 곳이라 가 봐도 마수 몇 마리 말고 없을 텐데?”
“그 마수를 잡으러 가는 거죠. 전에 실전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게 경험이라고 하셨잖아요?”
“흐음.”
루카스 교수는 침음을 삼키며 의심에 찬 눈으로 날 바라봤다.
“너…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 아니냐?”
“…….”
제길.
이럴 때만 괜히 눈치 빠르다니까 이 인간.
‘간단하게는 허가 안 내줄 거 같은데.’
루카스 교수 말고 엘리샤 교수를 찾아가 봐야 하나 고심하고 있을 때.
“후보생 유적 탐사 신청은 최소 5인 이상의 파티로만 신청할 수 있는 건 알고 있지?”
“…예, 알고 있습니다.”
“파티로는 누구 데려갈 생각이냐?”
“음. 아마 아이리스나….”
“그럼 그렇지 요놈 이 새끼!”
자리에 벌떡 일어나며 껄껄껄 웃음을 터트리는 루카스 교수.
“요즘 어째 아이리스 후보생이랑 자주 붙어 다니는 것 같더만 유적 탐사를 핑계로 같이 외박하고 올 생각이지?”
“…….”
눈치가 빠르단 말은 취소다.
“흐흐흐. 하여간 새끼, 꼴에 사내놈 아니랄까 봐. 네놈이 그런다고 내가 모를 거 같냐? 내가 이래 봬도 후보생 시절에는 발할라의 카사노바라고 불렸….”
“그러고 보니 요즘 비앙카 교수님이랑은 어떠십니까?”
“가, 갑자기 비, 비앙카 교수는 왜?”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는 루카스 교수.
“아뇨. 봉인제 때 오붓하게 데이트하려고 했던 계획이 마수 소동으로 말짱 도루묵이 됐으니까요.”
“크윽…!”
“하하. 그런 표정 짓지 않으셔도 조만간 또 기회가 올 겁니다.”
“…….”
루카스 교수는 굳게 입을 다문 채 내 시선을 피해 획 고개를 돌렸다.
저 뚱한 표정을 보니 최근 비앙카 교수와의 사이가 영 시원찮은 모양.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허가증은 내주실 겁니까?”
“뭐… 딱히 위험도 평가가 높은 유적도 아니니 말릴 이유는 없지. 다만….”
애초에 유적 탐사는 3, 4학년 후보생 ‘실전 전투 훈련’ 수업에서 필수 코스로도 들어가 있었다.
일종의 예습을 하러 가겠다는 건데 굳이 말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물론, 이렇게 후보생들끼리 유적 탐사를 나섰다가 인명 피해가 일어난 사례도 종종 있었지만.
“너도 알고 있겠지만 학교 외부에서 발생하는 인명 피해에 관해서는 학교 측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이곳은 일반적인 교육 기관이 아닌, 인류 최전선에 나가 싸울 영웅을 양성하는 영웅 학교였다.
아무리 후보생이라고 할지라도 일곱 신에게 성흔을 부여받은 초월자인 이상.
선택에 따른 책임은 본인에게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날카롭게 빛나는 루카스 교수의 시선을 정면에서 응시하며 나지막이 답했다.
루카스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랍에서 몇 장의 종이를 꺼냈다.
“좋아. 그러면 같이 갈 파티원들의 동의서를 제출해라.”
“예.”
나는 루카스 교수에게서 받아 든 동의서를 가지고 교수실 밖으로 나섰다.
* * *
동의서를 모두 모아 제출한 뒤 며칠 후.
나는 금요일 오후 교문 앞에 서서 이번 유적 탐사에 함께할 파티원들을 기다렸다.
모이기로 한 약속 시간까지 아직 30분 정도가 남았을 때.
“아, 먼저 와 있었구나 데일.”
날 발견한 유렌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나는 유렌을 향해 마주 손을 흔들며 그를 반겼다.
“나도 방금 왔어.”
“하하. 데일 너도 기대돼서 빨리 나온 거야?”
“아니 뭐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유적 탐사 파티를 모은 당사자가 지각하면 영 모양새가 빠지지 않는가.
“그나저나 갑자기 유적 탐사라니… 데일이 그런 제안을 할 거라고는 솔직히 상상도 못 했어.”
“유적 탐사는 처음이야?”
“음… 입학하기 전에 가문 사람들이랑 가 본 적은 있는데, 학교 들어와서는 처음이야.”
하긴.
수업으로 가는 게 아니면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유적 탐사를 후보생이 자발적으로 신청해서 가는 건 드문 일이었다.
“너무 긴장하지는 말고.”
“하하. 긴장하긴. 오히려 첫 유적 탐사를 데일이랑 갈 수 있게 돼서 엄청 두근거리는데?”
유렌은 소풍 가기 전 들뜬 어린아이처럼 환한 미소를 지었다.
‘뭐, 유렌 입장에서 보면 붉은 눈물의 동굴쯤은 진짜 소풍 가는 느낌일 테니까.’
어지간한 교수보다도 강한 힘을 지닌 게 유렌인데 위험도 평가 C등급에 불과한 유적을 두려워할 리가 없었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절대 방심해선 안 되는 게 유적 탐사긴 하지만.’
아직 유적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그에게 압박감을 심어 줄 필요는 없었다.
“…그나저나 오늘 아이리스도 오는 거지?”
“아, 응. 당연히 불렀지.”
“…….”
뭔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눈을 찌푸리는 유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유렌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뭐… 지원 계열이 한 명 필요하긴 하니까.”
“누가 필요하다고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했던가.
어느새 도착한 아이리스가 유렌을 돌아보며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도 파티 구성에 지원 계열이 필수라는 건 알고 계셔서 다행이네요.”
“그 정도는 1학년 수업에서 다 배우는 거니까.”
유렌은 이미 아이리스가 다가오고 있는 걸 기척으로 알고 있었는지 당황하지 않고 아이리스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파티 구성에 필수라는 것과 실제 도움이 되는 건 다른 얘기겠지? 특히 이런 낮은 등급 유적에서 지원 계열은 소위 말해 ‘잉여’가 되곤 하니까.”
“어머나, 지원 계열을 잉여 취급하는 파티는 오래 못 가 전멸하게 된다는 건 못 배우신 모양이네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설마 그 대~단하신 ‘성녀’님께서 설마 하는 일 하나 없이 업혀 가기만 하겠어?”
“호호호.”
“하하하.”
아니.
너희는 왜 만나자마자 또 싸우는 건데.
살벌한 입담을 주고받는 유렌과 아이리스를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젓고 있을 때.
“…하아.”
어쩐지 눈 밑에 퀭한 그늘이 진 채 피로에 전 한숨을 내쉬는 카밀라의 모습이 보였다.
“어제 잠이라도 설쳤어?”
“크읏… 이게 다 네놈 때문이다!”
“아니.”
내가 뭘 했다고.
“네놈이 갑자기 유적 탐사니 헛소리를 하는 바람에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고 있나?”
카밀라는 당장에라도 날 찢어 죽일 듯 살벌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성녀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 한다고 떼쓰지… 성국 측에서는 절대 허가할 수 없다고 난리지… 하아. 진짜 중간에 낀 나만….”
“어, 음.”
듣고 보니 좀 미안할 짓을 하긴 했네.
“그래서 어떻게 성국 쪽 허가는 받았어?”
“어차피 정규 과정에 있는 수업을 예습 차원에서 다녀오는 거라고 간신히 설득했다.”
“잘했네.”
“하아. 이게 뭔 고생인지….”
카밀라는 피곤 가득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뭐, 실제 도움이 될 테니까 너무 그러지 마.”
이번 유적 탐사에 굳이 아이리스와 유렌을 부른 이유도 그들에게 ‘실전’ 경험을 쌓게 해 주기 위해서였다.
‘수련만 해서는 실력이 느는 데 한계가 있으니까.’
이번 유적 탐사에선 마검을 찾으러 간다는 목적 말고도 동료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려 준다는 목적도 있었다.
“이제 한 명만 더 오면 되네.”
나는 유렌과 아이리스, 카밀라를 돌아보며 약속 시간을 확인했다.
모이기로 약속한 시각까지 남은 시간은 1분.
슬슬 마지막 파티원이 도착할 시간이었다.
“그나저나 다른 한 명은 누굴 부른 거야?”
유렌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내가 대답하기 전에, 아이리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줄리엣 씨 아닌가요?”
“줄리엣?”
“데일 씨 친구분이에요. 전에 한 번 만난 적 있어요.”
“아아. 왜, 그 공화국에서 잘나가는 집안 도련님이라는 후보생 맞지?”
“네, 맞아요.”
“으음. 전에 듣기로는 평판이 썩 좋지 않던데.”
유렌은 지나가며 들은 줄리엣의 소문들을 떠올리며 눈을 찌푸렸다.
“이제 막 입학한 여후보생들을 건드리고 다닌다거나….”
“아아, 그거라면 잘못된 소문이니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아이리스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분이 좋아하시는 건 여자가 아니라… 크흠. 아무튼! 절대 여후보생들 건드리실 만한 분은 아니에요.”
“그래?”
언제 싸웠냐는 듯 도란도란 대화를 이어 나가는 아이리스와 유렌을 돌아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다들 뭔가 착각하는 거 같은데, 마지막 파티원은 줄리엣이 아니야.”
“예?”
“그러면 누군데?”
동그랗게 눈을 뜬 채 내 쪽을 바라보는 유렌과 아이리스.
내가 마지막으로 모은 파티원의 이름을 밝히기도 전에.
“헤이스트으으으으으!”
쿵! 쿵! 쿵!
지축이 뒤흔들리는 듯한 묵직한 소리와 함께 2미터가 넘는 거한이 전력으로 달려왔다.
“으하하핫! 늦어서 미안하오 형님! 챙길 짐이 워낙 많아서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렸소!”
쿠웅!
당장에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는 베럴드.
“…아니 뭘 그렇게 바리바리 챙긴 거냐?”
“뭐, 먹을 거랑 마실 거랑 잘 때 필요한 거랑… 생각나는 건 일단 싹 다 챙겼소!”
“야 이 미친놈아. 배낭 무게만 해도 100킬로가 넘을 거 같은데 이걸 들고 유적 탐사를 가겠다고?”
“아아, 걱정하지 마시오! ‘레비테이션(Levitation)’ 마법을 걸어 뒀으니 무게 걱정은 할 것 없소!”
베럴드는 새끼손가락 하나로 100킬로가 넘어 보이는 배낭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씨익 웃었다.
“보시오. 이렇게 가볍지 않소?”
“…….”
나는 벙찐 표정으로 굳어 있는 유렌과 아이리스, 카밀라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봤지?”
이 새끼가 우리 5번째 파티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