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72)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73화(73/141)
제73화. 마검을 찾아서 (5)
핏빛 안개가 사라진 공동.
쓸쓸함이 느껴질 정도로 적막이 내려앉은 공동 중앙에 서서 고민을 이어 가던 난 이내 쯧, 혀를 찼다.
“뭐… 얼마나 강해졌는지는 나중에 확인하고.”
지금은 애써(라고 하기엔 생각보다 너무 쉽게 얻었지만) 손에 넣은 전리품의 성능을 확인할 차례.
“어디 보자.”
섬뜩한 핏빛으로 번들거리는 마검을 들어 올렸다.
마검에서는 아까 막 봉인에서 풀려났을 때와 같은 막대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피가 떨어졌나 보네.’
나는 마검으로 손바닥을 살짝 그었다.
흘러내리는 핏물이 검날을 타고 마검에 스며들었다.
쿠르르르르륵!
부글부글 요동치는 마검.
피를 머금은 칼날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한층 강해졌다.
“그렇지.”
마검 안에 봉인되어 있던 베스칼의 의식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그 안에 깃든 힘은 고스란히 유지되어 있었다.
“하아.”
핏물이 흘러내리는 손으로 마검을 쥐자 짜릿한 힘이 전신에 퍼져 나가는 게 느껴졌다.
마검 베스칼이 지닌 효능.
사용자의 ‘피’를 대가로 막대한 힘을 부여하는 효과가 전신에 활력을 더했다.
‘아이리스의 축복을 받았을 때랑 비슷한 느낌이네.’
기본적인 근력부터 시작해서 체력과 순발력까지 훌쩍 늘어난 게 느껴졌다.
‘뭐, 이 상태를 유지하는 데 지속적으로 피가 소모되긴 하지만.’
마검이 괜히 마검이라 불리겠는가.
마검이 가져다주는 힘에 취해 생각 없이 검을 휘두르다 보면 눈 깜짝할 사이 전신의 피가 모두 말라붙어 죽음에 이르게 된다.
‘물론.’
나한테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이 정도면 성흔 증폭제를 더 이상 못 쓰게 된 정도는 신경 안 써도 되겠네.”
마검의 버프 효과가 마력 자체의 양을 늘려 주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신체가 강화되는 만큼 마력을 아낄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공짜 마력이 추가로 생겨난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즉.
마력을 늘려 주는 게 아니라, 적게 사용해도 되도록 만들어 주는 아티팩트라는 것.
‘마력을 아껴 주는 효과만 있는 것도 아니지.’
나는 손에 쥔 마검을 수평으로 눕힌 채 팔을 높게 들어 올렸다.
손날을 세워 수평으로 눕힌 마검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베럴드 무투술.
칼 부수기.
콰드드득!
마력도 머금지 않은 마검을 전력으로 내려치니 그대로 검날이 두 동강 나며 핏빛 파편이 바닥에 흩어졌다.
“여전히 강도는 그저 그렇네.”
후보생에게 보급해 주는 보급용 철검과 비교해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내구도.
‘마검’이라는 흉악한 이름을 붙이기에는 많이 부족한 내구도였지만.
쿠르르르륵.
전신의 피가 쑥 빠져나가는 감각과 함께 두 동강으로 박살 났던 마검이 멀쩡하게 재생됐다.
“그렇지.”
마검 베스칼의 또 다른 장점.
아무리 부서지고 박살 나더라도 피만 공급해 주면 무한히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어떤 의미에선 나랑 비슷한 놈이지.’
순식간에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마검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피식 웃음을 삼켰다.
“어쨌든 이걸로 이제 싸우는 도중에 검이 박살 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네.”
영웅에게 있어 무기의 내구도라는 건 생각 이상으로 중요한 요소였다.
산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초인들의 싸움에서 무기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박살 나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었으니까.
‘전에 악어 마수랑 싸웠을 때도 도중에 검이 박살 났었지.’
내가 무투술을 익히고 있어서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무기가 박살 나는 순간 전력이 거의 반 토막으로 뚝 떨어져 버렸을 것이다.
“슬슬 교대 시간도 됐으니까 돌아가 볼까.”
나는 마검을 역수로 쥐고 내 손바닥을 푸욱 찔렀다.
마검은 내 손바닥을 관통하지 않고 그대로 피에 녹아들어 내 몸 안으로 흡수됐다.
“역시 편하다니깐.”
이렇게 따로 들고 다닐 필요 없이 내 ‘피’ 안에 검을 수납할 수 있다는 것도 마검의 소소한 강점이었다.
“…….”
공동을 나가기 전.
전투의 여파로 처참하게 부서진 비밀 공간 내부를 돌아보며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이곳에서 죽은 옛 용병 시절 동료들의 기억을.
-제길! 여긴 내가 맡을 때니까 다들 도망쳐라!
성질머리는 더러웠지만 단원만큼은 목숨 걸고 챙겼던 단장.
-야! 토끼 새끼!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움직여 인마!
내게 ‘래빗 한’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붙여 줬던 부단장.
-주, 죽고 싶지 않아… 제, 제발… 커헉!
우리 용병단의 홍일점으로 뭇 단원들의 마음을 훔쳤던 행동대장 등등.
이제는 그 이름조차 잘 생각나지 않는 그들을 떠올리며 가볍게 묵념을 올렸다.
비록 그것이 전생의 일이었을지라도.
나만이 간직하고 있는 빛바랜 기억이라 할지라도.
“고맙다.”
너희들이 있었기에.
나는 이곳에 있다.
* * *
유적 탐사 2일 차.
어제에 이어 파티원들은 유적 안을 돌아다니며(비밀 통로가 있던 쪽은 일부러 피해서 움직였다) 마수를 사냥했다.
아무리 위험도 평가가 그리 높지 않은 유적이라지만, 야영까지 곁들인 이틀 연속 강행군을 했음에도 파티원들은 지치기는커녕 오히려 처음보다 더 활기에 가득 차 있었다.
‘본인들도 느꼈겠지.’
한 번 전투를 경험할 때마다 호흡이 맞아 가는 고양감.
옆 파티원과 눈빛 하나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자그마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을 때의 짜릿함.
‘파티’로 움직였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이 쾌감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결코 알지 못 하리라.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음? 벌써 그만하는 거요? 이제 막 몸이 좀 풀리려던 참인데!”
아직 더 할 수 있다는 듯 주먹을 쥐어 보이는 베럴드.
“나도 더 해도 괜찮아.”
“저도요. 이렇게 파티를 짜서 호흡을 맞춰 보는 건 처음인데… 생각 이상으로 재밌네요.”
“크흠. 뭐, 그리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베럴드에 이어 유렌과 아이리스, 카밀라까지 더 하고 싶다는 의욕을 보였다.
나는 피식 웃음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면 됐어. 이미 다들 손발은 충분히 맞는 거 같으니까.”
개개인 실력이 워낙 출중했기 때문일까.
유적 탐사를 시작한 지 고작 이틀 차지만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쩍 성장해 있었다.
‘진짜 가르치는 맛이 있구나 이게.’
하나를 알려 주면 열을 깨닫고 열을 알려 주면 백을 깨달아 가는 그들의 모습에 ‘아, 이게 누굴 가르쳐 주는 재미였구나’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재미에 나도 더 강행군을 이어 나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머리에 열이 올라서 지쳤다는 생각을 못 할 텐데, 좀 쉬다 보면 확 피로가 몰려올 거야.”
한창 내 몸을 만들어 줄 당시 베럴드가 했던 말이 있다.
원래 운동이라는 게 열심히 하는 것만큼 충분히 쉬는 것도 중요하다고.
그리고 한마디 더 덧붙였더랬지.
근데 형님은 어차피 빡세게 굴려도 금방 회복하니 굳이 쉴 필욘 없을 거 같다고.
‘이 새끼 지금 생각하니 좀 열받네.’
아무리 그래도 그게 사람한테 하루 턱걸이 500개와 푸쉬업 1,000개, 스쿼트 1,000개를 시켜 놓고 할 소리란 말인가?
‘후우. 참자, 참아.’
악몽 같았던 그 시절의 기억을 애써 머리에서 지워 내며 말을 이었다.
“이번 유적 탐사는 여기까지 하고 그만 돌아가자.”
“으음. 형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알겠소.”
“근데 외박 신청은 내일까지 낸 거 아니었어? 오늘 학교로 돌아가려고?”
“아니, 학교는 내일 가고.”
나는 묵직한 주머니를 들어 올리며 씨익 웃었다.
“오늘은 돌아가는 길에 적당한 여관이나 들러서 시원하게 한잔하자고.”
제철 과일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주머니 안에 든 것은 지난 이틀간 마수를 사냥하며 모은 마석.
물론 대부분이 양산 가능한 하급 마석이기에 그리 비싼 값을 받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성공적인 유적 탐사를 기념하며 축배를 들 만큼의 소득은 있었다.
“크하핫! 역시 형님이오! 센스가 남다르구만!”
“음… 하긴. 기껏 파티를 이뤘는데 탐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학교로 돌아가는 것도 좀 그렇지.”
“데일 씨! 저 안주로는 데일 씨가 끓여 주신 라면이 먹고 싶어요!”
돌아가며 한잔하자는 제안에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유렌과 베럴드, 아이리스.
“하! 어디서 그런 정신머리 빠진 소릴!”
들뜬 분위기 속.
시원하게 찬물을 끼얹는 성국의 검(후보)양.
그녀는 양팔을 허리에 착 올린 채 당찬 표정으로 외쳤다.
“잘 들어라! 마음의 수양은 곧 육체의 수양! 성공적으로 탐사를 끝냈다고 해서 바로 축배를 드는 건 마음을 해이해지게 만드는….”
“꽝꽝 얼린 얼음 잔에 나온 시원한 맥주.”
“…….”
“갓 튀긴 치킨과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소시지.”
“크, 크윽!”
“바짝 말린 오징어에 땅콩….”
“네, 네놈! 그 입 다물지 못할까!”
버럭 소리치며 고개를 획 돌리는 카밀라.
그녀는 시선을 피한 채 크흠, 헛기침을 흘렸다.
“어, 어쩔 수 없군. 성녀님의 호위 된 몸으로서 나 혼자 빠질 수도 없는 노릇. 같이 가겠다.”
“입가에 침이나 닦고 말하쇼.”
“으읏!”
여하튼.
그렇게 카밀라까지 모두 동의를 받아낸 후 우리는 ‘붉은 눈물의 동굴’을 나와 발할라 시티로 돌아왔다.
시내에 있는 여관에 방을 잡은 후(이번에도 유렌은 개인실을 잡았다) 1층에 딸린 술집에 모여 술잔을 기울였다.
“자, 건배!”
“크으으으! 역시 전투 후에 마시는 맥주는 최고구려!”
“우우. 데일 씨가 끓여 준 라면을 먹고 싶었는데.”
“아니 술집까지 와서 내가 라면을 끓일 순 없잖아.”
“그래도요!”
“크읏…! 나, 나는 결코 유혹에 굴복하지 않을…!”
“얘 또 이런다. 아이리스, 카밀라 입에 치킨 좀 넣어 봐.”
“후후. 저만 믿으세요 데일 씨.”
카밀라의 입에 닭다리를 푹 쑤셔 넣는 아이리스.
“허업…! 그, 그렇게 큰 건 들어가지 않… 하읏!”
“아니.”
“읏… 부드럽고, 짭짤해… 아아. 이, 이런 황홀한 맛이라니….”
“저기요? 치킨 드시는 거 맞죠?”
“크읏… 나는 분명 시, 싫다고 했는데… 하아. 더, 더 이상… 나… 참을 수 없어.”
“야 이년아.”
누가 치킨 먹는데 그딴 소리를 내.
* * *
왁자지껄했던 술자리가 끝난 후.
우리는 각자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베럴드가 무언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아, 형님! 그러고 보니 여기 여관 바로 옆에 24시간 운영하는 목욕탕이 있다고 하더이다!”
“오, 진짜?”
여관에 짐을 풀자마자 가볍게 샤워를 하긴 했지만.
뜨끈하게 데운 욕탕에 몸을 담그는 것과 비교할 수 없었다.
“그럼 자기 전에 몸이라도 한번 지지러 갈까?”
“후후. 좋소! 아, 물론 유렌 형님도 같이 가는 거요.”
“당연하지 인마.”
나와 베럴드의 시선이 유렌을 향했다.
“어… 어? 나, 나는 목욕탕은 조금….”
유렌은 당황한 표정으로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거까지 뺀다고?”
텐트도 개인용으로 써, 여관도 1인실로 따로 잡아.
거기에 더해서 목욕탕까지 빠진다고?
‘새끼 아무리 귀족 도련님이라고 해도 정도가 있지!’
지금 따끔하게 손보지 않으면 유렌은 계속해서 세상 모르는 도련님인 채로 살 수밖에 없을 터!
“야, 막상 가서 뜨신 물에 몸 담그면 생각이 싹 달라진다니까?”
“미, 미안! 진짜 목욕탕만큼은…!”
“허어! 유렌 형님! 사나이의 우정은 목욕탕에서 비로소 꽃을 피운다는 말을 들어 본 적 없소?”
“그건 나도 처음 듣는데.”
누가 말을 한 놈이 누구야 대체.
“방금 내가 지어냈다오.”
“…….”
“뭐, 어쨌든!”
쿠웅!
베럴드는 유렌의 팔을 잡아끌며 목욕탕으로 향했다.
“이번에 빠지는 건 사나이로서 용서할 수 없소!”
“옳소!!!”
“자, 잠깐! 아악!”
나는 유렌의 반대편 팔을 잡고 베럴드와 같이 끌어당겼다.
“아니 둘 다 무슨 힘이…! 아, 안 돼! 멈춰! 꺄아아아아악!”
그렇게 유렌은 나와 베럴드에게 질질 끌려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