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73)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74화(74/141)
제74화. 막간 – 괴… 괴물!
발할라 시티 시내에 있는 24시간 목욕탕.
다 쓰러져 가는 목조로 지어진 낡은 목욕탕은 고요한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드르륵.
목욕탕의 문을 열며 탕 안으로 입장했다.
“어라? 우리밖에 없네?”
“시간이 꽤 늦지 않았소.”
“하긴, 우리가 오래 마시긴 했지.”
시간은 벌써 자정을 넘어 새벽 1시.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목욕탕도 아니고 이런 낡아빠진 동네 목욕탕에 지금 이 시각까지 손님이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오, 그래도 꼴에 노천탕까지 있네?”
밖으로 향하는 유리문을 여니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자그마한 노천탕이 있는 게 보였다.
“그나저나 유렌 형님은 어디 있소?”
“아까 화장실 좀 다녀온다고 하던데.”
“으음. 설마 여기까지 와서 도망친 건….”
“흐흐. 내가 누구냐? 그럴 줄 알고 유렌의 옷을 몰래 다른 칸에 숨겨 놨지.”
“오오! 역시 형님이오!”
솔직히 오기 싫다는 놈을 너무 억지로 끌고 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유렌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야.’
전생에서 유렌과 무려 10년이란 시간을 같이 지내며 둘도 없는 친우이자, 가족 같은 관계가 됐지만.
유렌에게서는 어딘가 ‘벽’ 같은 게 계속 느껴졌었다.
남에게 다가가는 걸 뭔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두려워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냥 혼자 있는 걸 좋아해서 그런 느낌은 아니었어.’
나와 베럴드가 함께 노는 모습을 보며 종종 부러움에 찬 눈빛을 보내던 유렌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면서도 남과 어울리는 데 계속 거리를 뒀던 이유는 나도 끝내 알 수 없었지만.
‘이번에도 전생에서처럼 벽을 치도록 가만 냅둘 순 없지.’
이번 기회에 유렌의 마음에 존재하는 ‘벽’을 조금이라도 허물어 볼 생각이었다.
드르륵.
그런 생각을 하며 유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목욕탕의 문이 열리며 수건으로 몸을 가린 유렌이 안으로 들어왔다.
“다… 다른 사람은 없어?”
물가에 내놓은 고양이처럼 쭈뼛거리며 주변을 살피는 유렌.
“어. 우리가 전세 냈다 여기.”
“그, 그래?”
최악은 면했다는 듯 살짝 풀어진 표정을 짓는 유렌.
나는 그런 유렌을 데리고 베럴드와 함께 노천탕으로 향했다.
“크으, 좋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자 짜릿한 전율이 등골을 타고 퍼졌다.
두툼한 이불 속에 들어온 듯 따스한 하반신과 싸늘한 밤공기에 노출된 상반신.
탁 트인 야외에서 이런 온기에 감싸여 있다는 것 자체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사치스러운 기분을 느끼게 했다.
“크으! 피로가 싹 녹아내리는 기분이오!”
“뭐, 이번에 네가 제일 고생했으니까.”
다들 파티 내에서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긴 했지만.
그중에서도 선봉대 역할을 맡았던 베럴드가 육체적으로는 가장 힘든 포지션이었다.
“어허. 그게 무슨 소리오? 제일 고생한 건 우리 유렌 형님이지. 그렇지 않소?”
“어… 어? 나?”
노천탕 구석(이라고 해 봤자 워낙 욕탕이 좁아서 바로 옆이지만)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유렌이 퍼뜩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전투부터 지휘까지 거의 혼자 도맡아 하지 않았소?”
“아… 그야 내가 선두였으니까.”
“그런 걸로 치면 형님이나 나나 같은 선두였잖소.”
베럴드는 씨익 웃으며 유렌을 향해 주먹을 내밀었다.
“고맙소. 형님들이랑 함께한 덕분에 많은 걸 배운 느낌이 드오.”
“…응.”
유렌은 조심스럽게 주먹을 뻗어 베럴드의 주먹과 부딪혔다.
“그나저나 데일 형님. 전에 어디 다른 파티에 속해 있기라도 하셨소?”
“다른 파티?”
“이번에 형님이 가르쳐 준 내용들을 보면 어디 경험 많은 파티에 있다 온 것 같아서 말이오.”
“…….”
경험 많은 파티라.
뭐, 그런 걸로 치면 최고의 파티에 속해 있다가 오긴 했지.
나는 속으로 쓴웃음을 삼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그냥 강의서에 배운 대로 알려 준 거야.”
“…형님이 그 말을 하니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구려.”
“시끄러 인마.”
손을 휘휘 저으며 대답을 피했다.
“흐흐. 뭐, 그래도 형님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오.”
“다행이라고?”
“형님이 아니면 누가 나 같은 놈을 파티에 끼워 주겠소? …10년 넘게 마법을 배우고도 마력 탄조차 제대로 못 쓰는 반푼이를.”
쓴웃음을 지으며 자책 섞인 한숨을 내쉬는 베럴드.
“마법을 못 쓰긴 누가 못 써?”
“으음?”
“왜, 이번에도 ‘스톤 애로우’인가 뭔가 잘만 마법 썼잖아.”
“그건….”
“원래 고도로 발달한 물리력은 마법이랑 분간할 수 없는 법이야.”
예전에 베럴드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그에게 들려줬다.
“허.”
나지막한 헛웃음을 삼키며 낄낄 어깨를 들썩이는 베럴드.
“…고맙소, 형님.”
베럴드는 씨익 웃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좋아! 그럼 형님의 인정도 받았으니 앞으로 더 팍팍 나만의 ‘마법’을 익혀 가겠소!”
“그래, 그래.”
시무룩하게 풀 죽어 있는 모습은 베럴드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베럴드 류’는,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라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던 영웅이었으니까.
“흐음.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갑자기 가늘게 눈을 뜬 채 내 쪽을 빤히 바라보는 베럴드.
“형님, 최근 몸이 엄청 좋아진 것 같소?”
“응?”
“아니 탐사 중에는 옷을 입고 있어서 긴가민가했는데… 대체 뭘 먹고 그런 몸을 만드신 거요?”
드러난 내 상반신을 보며 연신 탄성을 내뱉은 베럴드.
아마 ‘화로’가 되며 새롭게 만들어진 내 육체를 알아본 것이리라.
“그냥 뭐 열심히 단련한 결과지.”
“으음. 그 정도 몸은 단련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닐 텐데.”
“뭐 어떻길래 그래…?”
베럴드의 반응에 호기심이 생긴 걸까.
노천탕에 들어온 이후 줄곧 내 쪽을 보길 피하던 유렌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허업!”
날 보며 두 눈을 크게 부릅뜨는 유렌.
유렌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연신 ‘와아’라는 탄성을 내뱉었다.
탄성을 내뱉는 중간에 꿀꺽 침을 삼키기까지.
‘아니 이건 기분이 좀 그런데.’
같은 사내새끼들이 뚫어지라 내 몸을 바라보는 경험은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음?’
화제를 돌릴 거리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중.
유렌의 목에 걸린 펜던트가 눈에 띄었다.
“그 펜던트는 뭐야?”
“…어? 이, 이거?”
어째서인지 다급하게 목에 건 펜던트를 손으로 감추는 유렌.
유렌은 어색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그… 여, 여동생의 유품이야.”
“…그래?”
유렌의 여동생이라면 8년 전 사고로 죽은 유리나 헬리오스를 말하는 것이리라.
여동생의 유품을 1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시울을 붉힐 만한 사연이었지만.
‘뭐지?’
미래의 유렌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유렌이 펜던트를 찬 모습은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전생에 유렌과 함께한 시간이 무려 10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함께 지내면서 유렌이 저 ‘여동생의 유품’을 목에 차고 있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나랑 파티가 되기 전에 잃어버린 건가?’
졸업 후 유렌과 파티가 되기까지 10년간의 공백이 있었으니 그사이 잃어버렸을 가능성도 있긴 했지만.
‘근데 유렌 성격상 그럴 리가 없는데…?’
후보생 시절 사용하던 제복도 어디 버리지 않고 꼼꼼하게 챙겨 둔 사람이 바로 유렌이다.
그런 유렌이 여동생의 유품처럼 소중한 걸 잃어버렸다고?
내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뭐… 지금 유렌에게 물어봤자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닐 테니까.’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지워 내며 노천탕에 느긋이 몸을 뉘었다.
그렇게 몸을 담근 채 쌓인 피로를 녹여 내고 있을 때.
“아, 맞다. 데일 형님. 여기 아까 들어오기 전에 보니 구운 계란도 팔고 있던데 드실 생각 있소?”
“오, 여기 주인장이 공화국인인가 보네.”
“…구운 계란?”
우리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유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목욕탕에서 왜 구운 계란을 파는 거야?”
“흐흐. 이 제국 촌놈 자식. 한번 먹어 보면 너도 반할걸?”
씨익 웃으며 베럴드를 돌아봤다.
베럴드는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다는 듯 재빠르게 노천탕 밖으로 나가며 외쳤다.
“금방 사 올 테니 기다리고 있으시오!”
“식혜도 3잔 사 와.”
“흐흐. 물론이오!”
후다닥 밖으로 달려 나간 베럴드가 구운 계란이 든 바구니와 식혜 3잔을 쟁반에 담아 가져왔다.
원래라면 탕 안에 들어가 있는 도중 먹거리를 먹는 건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 행동이었지만.
‘어차피 우리밖에 없는데 뭐 어때.’
그렇게 시작된 깜짝 야식 타임.
“마, 맛있어!”
“그치?”
“응! 삶은 거랑 달리 되게 쫄깃하네! 이 식혜란 음료수도 엄청 달달하고.”
눈을 빛내며 구운 계란과 식혜를 먹는 유렌.
‘나도 어쩔 수 없는 공화국 사람인가.’
이맘때쯤 공화국 내에서 성국이나 제국 사람들에게 본토 음식을 대접하며 과장된 반응을 관찰하는 컨텐츠가 한창 유행을 탔던 걸로 기억하는데.
공화국인들이 왜 그 하등 쓸데없는 컨텐츠에 열광했는지 조금은 이해되는 부분이었다.
“그럼 슬슬 일어날까?”
간식도 배불리 먹고 몸도 충분히 데웠겠다.
슬슬 숙소로 돌아가 잘 시간이었다.
“후후. 알았소 형님!”
“응. 그러자.”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듯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는 유렌.
그 모습을 보니 괜히 장난이 치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한 번에 너무 몰아붙이는 것도 안 좋으니까.’
마음의 벽이라는 게 그리 쉽게 허물 수 있다면 누가 거기 ‘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겠는가.
“자, 그럼.”
나는 욕탕에서 일으켰다.
“허업…!”
그때, 갑자기 뜬금없이 경악성을 내뱉는 베럴드.
고개를 갸웃거리며 베럴드를 보니 그의 시선이 내 하반신 쪽에 쏠려 있는 게 보였다.
“이, 이거 형님… 몸만 좋아졌던 게 아니었던 모양이구려.”
“아니.”
어딜 쳐다보는 거야 이 새끼야.
“크흠! 이거 참… 나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강호에는 숨은 고수들이 많이 있구려.”
“고수는 지랄.”
헛소리를 내뱉는 베럴드에게 시원하게 중지를 치켜올려 준 후 나를 뒤따라 욕탕에서 몸을 일으킨 그를 슬쩍 위아래로 살폈다.
‘흠.’
그래, 뭐.
내가 더 크긴 하네.
“크흠.”
괜히 멋쩍은 기분이 들어 베럴드를 피해 유렌 쪽으로 몸을 돌렸을 때.
“…아.”
두 눈을 부릅뜬 채,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유렌.
“…유렌?”
이름을 불러 봤지만, 유렌은 그 자리에 석상처럼 딱딱하게 굳은 채 바들바들 몸을 떨고 있을 뿐이었다.
“왜 그래?”
“히익!”
유렌이 수건으로 몸을 가린 채 기겁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났다.
“오, 오지 마!”
“뭐?”
“오지 말라고!”
무슨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유렌.
“아니 갑자기 왜 그….”
“아, 으. 아아.”
유렌의 상태가 걱정되어 다가가니 토막 난 비명을 내지르며 눈을 새하얗게 뒤집는 유렌.
“괴… 괴물! …꼬로록.”
그 말을 끝으로 탕 안으로 첨벙 쓰러진 유렌.
“야! 유렌! 정신 차려 인마!”
달빛이 내리비치는 노천탕.
태양이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