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75)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76화(76/141)
제76화. 참관 수업 (2)
시간은 흘러 참관 수업 당일.
이른 아침부터 북적거리는 학교를 기숙사 창문 너머로 바라보며 나는 침대에 털썩 몸을 뉘었다.
“하아.”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나른한 한숨.
‘이맘때는 참 할 게 없단 말이지.’
학부모 참관 수업이라는 행사 이름답게 후보생과 그 학부모 위주로 진행되는 일정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나처럼 찾아올 학부모가 없는 후보생들은 행사 내내 시간이 붕 뜨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상 공짜 휴강일이 생기는 것과 비슷하기에 오히려 부모가 찾아오지 않는 걸 더 반기는 후보생도 있었지만.
‘예전에는 참관 수업 날을 엄청 싫어했었지.’
지금에야 찾아올 부모가 없다는 것에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지만, 전생에만 해도 부모 없는 고아라는 사실에 굉장한 열등감을 지닌 채 살아갔었다.
부모와 함께 하하호호 행복하게 웃는 그들을 보며 불행해졌으면 좋겠다고 내심 바랐을 정도로.
“아오, 지금 생각하니 존나 부끄럽네 진짜.”
낯 뜨거운 전생의 기억에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참관 수업 구경이라도 하러 갈까.’
예전이었다면 밖에 나갈 일이 있어도 의도적으로 참관 수업이 치러지고 있는 쪽은 피해서 다녔지만,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었다.
부모의 공백이 만들어 낸 빈자리에는 이미 차고 넘칠 정도로 다른 사람이 들어차게 됐으니까.
“좋아.”
어차피 이대로 침대에 누워 시간을 죽이고 있어 봤자 할 일 없는 건 매한가지.
그럴 바에는 전생에서는 쳐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참관 수업’을 구경하는 게 나으리라.
“흣차.”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제복으로 갈아입은 후 밖으로 나갔다.
벌써 학부모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는지 학교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우리 아들~ 잘 지냈어? 학교생활은 좀 어때? 수업은 들을 만하고?”
“아, 엄마. 제발 남들 보는 데 앞에서 끌어안지 좀 마요. 제가 뭐 어린애예요?”
“어머 요놈 새끼 말하는 거 봐라? 네 기저귀 갈아 줄 때가 엊그제였어.”
“내 나이가 이제 스물인데 뭔 엊그제야.”
사이 좋게 티격태격하는 학부모부터.
“이번 중간 평가 결과가 그게 뭐니? 어? 영웅이 될 생각이 있는 거야?”
“아니 그… 이번이 첫 실전이라 좀 긴장해서 그래.”
“하. 그럼 지난 2년간 배운 건 대체 뭔데? 누가 너보고 여기 놀라고 보낸 줄 아니?”
“…미안.”
“하여간. 너 그딴 성적이면 네 아빠 길드에 추천 입단서 못 써 주니까 그런 걸로 알아.”
“아, 안 돼! 나 거기 꼭 들어가야 한단 말이야!”
자식 얼굴을 보자마자 우다다 잔소리를 내뱉는 학부모까지.
‘평화롭구만.’
마신의 군세가 본격적으로 활개치기 전 영웅들의 모습은 헛웃음이 새어 나올 정도로 태평했다.
‘이럴 수 있는 날이 얼마나 이어질까.’
글쎄.
그건 전생을 겪은 나도 확신할 수 없었다.
이미 미래는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했으니까.
“어디 보자….”
북적거리는 학교 광장을 거닐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혹시 아는 얼굴이 있나 싶어 찾아봤지만, 눈에 띄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리스도 보육원 출신이라고 했지.’
카밀라도 보육원 출신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성녀의 호위 기사라는 직책상 있어도 부모가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베럴드도 부모님이 안 오신다고 했었고.’
베럴드의 경우 ‘류 가문의 망나니’라 불리며 본가 쪽 사람에게 단단히 미운털이 박힌지라 본인 스스로 부모님에게 오지 말아 달라 부탁했다고 한다.
아마 오늘 이 자리에는 류 가문의 본가 쪽 사람들도 와 있을 테니까.
‘유렌은 어딨지?’
유렌을 찾아 광장 주변을 빙 둘러봤지만, 다른 곳에 있는지 이 주변에는 보이지 않았다.
“후우.”
그렇게 한참을 하릴없이 교내를 돌아다니다 보니 갈증이 밀려왔다.
‘아직 6월도 안 됐는데 겁나 덥네.’
자판기에서 음료수라도 하나 뽑아먹을 생각으로 학교 건물 뒤편으로 걸어 나왔을 때.
“…오시는 데 불편하신 건 없으셨나요?”
저 멀리 유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고개를 갸웃거리며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한눈에 보더라도 ‘귀부인’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고풍스러운 드레스 차림의 금발 여인과 그녀의 뒤편에 그림자처럼 선 채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는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유렌의 어머니인가?’
유렌의 아버지는 그가 한창 어렸을 적 돌아가셨다고 들었으니 저 사내는 그녀의 수발을 들기 위해 온 호위 기사쯤 될 것이다.
‘분명 유렌 어머니 이름이… 로잔나 헬리오스였었지.’
섬광의 로잔나.
전생에 직접 그녀를 보거나 얘기해 본 적은 없었지만, 그 이름은 몇 번 들은 적 있었다.
‘몰락해 가던 헬리오스 가문에 가까스로 호흡기를 달아 준 영웅이라고 했었지.’
그만큼 현역 시절에 꽤 이름을 날리던 영웅이었다.
그렇게 옛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 때, 로잔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래. 잘 왔단다.”
“그… 갑자기 왜 오신 건가요?”
“나는 아들 얼굴 보러 오면 안 되는 거니?”
차가운 눈으로 유렌을 바라보는 로잔나.
유렌은 당황한 표정으로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그… 어머니는 가문 일로 많이 바쁘시잖아요.”
“따로 할 얘기가 있어서 왔단다.”
“할 얘기라면…?”
유렌이 긴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그 전에.”
로잔나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거기 계신 분은 누구죠?”
“…….”
딱히 기척을 숨기고 있던 건 아니라고 해도 이렇게 쉽게 들킬 줄이야.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유렌이 있는 쪽으로 성큼 걸어갔다.
“반갑습니다. 유렌의 친구 데일 한이라고 합니다.”
“데, 데일? 네가 왜 여기에…?”
날 보며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는 유렌.
“…친구?”
로잔나는 날카로운 눈으로 날 노려보더니 이내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유렌 너 설마 이런 공화국 잡종을 만나고 다녔던 거니?”
“…….”
공화국 잡종.
주로 제국 귀족들이 공화국인들을 낮춰 부를 때 사용하는 멸칭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 공화국이 공식적으로 옛 화폐 단위와 이름 표기를 폐지하고 대륙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붙여진 나름 유서(?) 깊은 멸칭이었다.
‘오랜만에 듣네.’
공화국이 처음 문호를 개방하고 원래라면 ‘성+이름’ 순으로 이어지던 이름 표기를 대륙식에 맞게 ‘이름+성’으로 바꿨을 당시만 하더라도 저 잡종이라는 멸칭이 아주 흔했다고 하지만.
그것도 300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나서는 일부 고지식한 제국 귀족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부르지 않는 사어(死語)가 된 지 오래였다.
‘이제야 왜 유렌이 자기 어머니 얘기를 자주 안 했는지 알겠네.’
로잔나 헬리오스는 전생에 유렌이 가장 혐오했던 ‘고지식한 제국 귀족’의 딱 전형적인 표본 같은 사람이었다.
“어머니! 제 친구에게 그게 무슨 망언입니까?”
아니나 다를까.
시종일관 위축된 모습을 보여 주던 유렌이 사납게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앞으로 나섰다.
“…뭐?”
내 앞을 가로막듯 선 유렌을 보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는 로잔나.
“너 지금 뭐 하는 짓이니?”
“읏….”
유렌은 싸늘하게 식은 어머니의 목소리에 흠칫 어깨를 떨었다.
뱀과 마주친 개구리처럼 딱딱하게 굳은 유렌.
마신을 앞에 두고도 떨리지 않았던 그의 두 다리가 사시나무처럼 애처롭게 떨렸다.
“그, 그러니까 그게….”
“하아. 이래서 기숙사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했던 건데….”
깊은 한숨을 내쉬며 사납게 유렌을 노려보는 로잔나.
“어디서 그딴 건방진 말버릇을 배운 거니?”
“…….”
“저기 공화국 잡종이 가르쳐 주던?”
“읏…!”
까득.
애처롭게 다리를 떨고 있던 유렌이 이를 악물며 로잔나를 노려봤다.
“영웅 학교 내에서는 타 국가를 차별하는 어떤 발언도 불가합니다! 어머니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 지금 나한테 훈계하는 거니?”
“훈계가 아니라 ‘중립 지대’의 규정을 알려 드리는 겁니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또박또박 외치는 유렌.
“규정을 어겼다가는 헬리오스 가문의 명예가 실추될 겁니다!”
“명예? 지금 명예라고 했니?”
사납게 일그러지는 로잔나의 표정.
그녀의 성흔이 빛을 뿜으며 황금빛 마력이 몸을 감쌌다.
“어디서 감히…! 감히 네가 내 앞에서 헬리오스 가문의 명예를 입에 담아?!”
후웅!
사납게 바람을 가르며 휘둘러지는 팔.
로잔나의 손바닥의 유렌의 뺨을 후려치기 전.
탁!
나는 사납게 휘둘러지는 로잔나의 팔을 낚아챘다.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아주 생지랄을 하네 지랄을.”
유렌의 개인 가정사에까지 개입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 꼬라지를 보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낚아챈 팔을 잡아당기며 로잔나의 앞에 섰다.
“적당히 좀 해요, 아줌마.”
“…뭐?”
입을 쩍 벌린 채 부릅뜬 눈으로 날 바라보는 로잔나.
“아, 아줌마…? 지금 나보고 아줌마라고 한 거니?”
“아니 뭐 그럼 아줌마 아니면 뭔데? 누나는 아니잖아?”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스무 살 아들이 있는데 누나라고 불리길 바라는 건 좀 그렇지.
“이 무례한…!”
아줌마라는 노골적인 호칭에 꽤 심한 타격을 입은 걸까.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른 얼굴로 로잔나는 내게 붙잡힌 팔을 거칠게 뿌리쳤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뿌리치려고 했다.
“읏?!”
안간힘을 써도 팔이 빠지지 않자 표정을 일그러트리는 로잔나.
지금은 현역에서 은퇴했다고 한들 한때 ‘섬광의 로잔나’라고 불렸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닌 영웅이었던 만큼 나름 실력에 자신이 있었겠지만.
‘어설퍼.’
그녀가 예전에 이름을 날렸던 영웅이라고 한다면, 나는 전생에 ‘최후의 다섯 영웅’에 꼽힌 영웅이다.
심지어 지금은 그 당시보다 실력적인 면에서 월등한 성취를 이뤄 낸 상태.
내가 이룩한 경지와 비교하면 그녀의 경지는 태양 빛 아래 반딧불이나 다름없었다.
“이익!”
로잔나가 사납게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한층 마력을 일으켰다.
어디 유렌의 어머니 아니랄까 봐 순수한 마력의 양만 놓고 본다면 나보다 훨씬 많은 마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힘이란 결국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중요한 요소.
절묘하게 무게 중심을 바꿔 가며 그녀의 팔을 계속 붙들고 있자, 로잔나의 표정이 점차 거칠게 구겨졌다.
“로버트!”
로잔나의 날카로운 외침에 그림자처럼 뒤에 서 있던 사내가 허리춤에 찬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허리춤에 찬 검에서 검이 반쯤 뽑혀 나오고 있을 때.
“야.”
스르르륵, 터엉!
손바닥으로 검자루를 후려치자 반쯤 빠져나오던 검이 다시 검집에 들어갔다.
로버트라 불린 사내가 당황한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뽑지 마, 그거.”
뽑으면 너 뒤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