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76)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77화(77/141)
제77화. 참관 수업 (3)
“그만! 둘 다 그만해요 제발!”
칼날을 목에 들이댄 듯 살벌한 분위기 속, 유렌의 다급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학교 안에서 뭐 하는 짓이에요 대체?!”
“…읏.”
유렌의 호통에 눈을 찌푸린 로잔나.
그녀 또한 본인이 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으니까 이 팔 좀 놔주지 않으련?”
“예, 아줌마.”
“아줌…!”
이마에 굵은 힘줄을 돋으며 표정을 와락 일그러트리는 로잔나.
내게 뭐라고 한 소리 하려던 그녀는 이내 쯧,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하아, 그래. 공화국 잡종에게 귀족의 예의를 바랄 순 없지.”
“귀족의 예의라는 게 남들 다 보는 앞에서 제 맘에 안 든다고 자식 뺨을 후려갈기려는 건 줄은 몰랐네요, 라고 하면 안 되겠죠?”
“너 이…!”
대놓고 비아냥거리자 로잔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신경질적으로 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로잔나가 이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황금빛 눈을 반짝였다.
“이름이 데일이라고 했니?”
“예.”
“너 부모님은 지금 어디 계시니?”
“…….”
기껏 떠올린 좋은 생각이 이거였나.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삼키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로잔나를 바라봤다.
‘진짜 유렌 어머니 맞아?’
사람이 뭐 피가 이어져 있다고 성격도 똑같으리란 법은 없다고 하지만, 이건 해도 해도 정도가 너무한 거 아닌가.
‘하긴, 따지고 보면 유렌이 별종인 거지.’
500년 전 마신을 봉인한 위대한 다섯 영웅의 리더이자, 인류 역사상 최강의 검사라 칭송받는 레이날드 헬리오스의 피가 이어진 가문.
감히 제국의 황제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막대한 권세를 지니고 있던 헬리오스 가문이 차차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던 이유는 따로 없었다.
‘옛 영광에 취한 채, 눈앞에 있는 낭떠러지조차 보지 못하는 사람들.’
어느 음유시인이 헬리오스 가문을 빗대어 한 유명한 비유도 있었다.
‘태양에 눈이 멀어 버린 가문’이라고.
헬리오스 가문 사람 중 유렌만 알고 지냈던 나로서는 그저 귀족 가문에 대한 시샘과 질투가 섞인 뜬소문이라 생각했지만.
로잔나를 만나 보니 왜 그런 조롱 섞인 비유로 불리게 됐는지 알 것 같았다.
“대답 안 하니? 네 부모 어디 있냐고 지금.”
사나운 목소리로 추궁하는 로잔나.
내가 대답하기에 앞서, 유렌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 데일은….”
“유렌 넌 조용히 있으렴. 지금 너한테 묻는 게 아니지 않니?”
로잔나는 유렌의 말을 자르며 내 쪽을 노려봤다.
나는 피식 웃음을 삼키며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제 부모님이 지금 어디 있는지는 제가 더 알고 싶네요.”
“…뭐?”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찌푸리는 로잔나.
나는 어리둥절해 있는 그녀에게 내가 공화국 보육원 출신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하.”
한층 더 험악해지는 로잔나의 눈빛.
“그러니까 지금… 애미 애비도 없는 천것이 감히 헬리오스 가문을 모욕했던 거라고?”
“말은 똑바로 하셔야죠 아줌마. 제가 언제 헬리오스 가문을 모욕했다고 그러십니까?”
내가 한 거라고는 아줌마를 아줌마라 부른 것밖에 없다.
“못 배워 처먹은 놈이 말대답 하나는 또박또박하는구나.”
“그쪽은 배울 만큼 배우신 분이 말도 제대로 못 하시네요.”
“뭐, 뭐라고? 이 무례한…!”
“거봐, 말 제대로 못 하는 거 맞네.”
“이익!”
붉으락푸르락 일그러지는 로잔나의 얼굴.
그녀는 사납게 마력을 내뿜으며 성큼 발을 내디뎠다.
유렌의 중재로 진정됐던 분위기가 다시 험악해지고 있을 때.
“데일? 여기서 뭐 하냐?”
그림자가 드리워질 정도로 커다란 덩치.
사람이라고 하기보다 맹수라고 부르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은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루카스 교수님?”
“아, 유렌 후보생도 있었군. 그쪽은….”
루카스 교수의 시선이 로잔나를 향했다.
유렌의 입에서 나온 ‘교수님’이란 호칭 때문일까.
방금 전만 해도 히스테릭하게 일그러져 있던 로잔나의 표정이 눈 깜짝할 새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로잔나 헬리오스입니다.”
드레스 자락을 살짝 잡아 올리며 우아하게 머리를 숙이는 로잔나.
“아, 유렌 후보생의 어머님이셨군요.”
“예. 루카스 교수님이라면… 분명 3학년 전사부 담당 교수님 맞으시죠?”
“맞습니다.”
루카스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여기서 뭘 하고 계셨던 겁니까? 참관 수업 집합 장소는 이쪽이 아니라 광장 쪽인데.”
“안 그래도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잘 오셨네요.”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은 채 루카스 교수에게 다가가는 로잔나.
“루카스 교수님, 이 데일이라는 후보생과 아는 사이신가요?”
“예. 제가 담당하는 후보생인데 당연히 알죠.”
“그래요? 그거 잘됐네요.”
로잔나는 우아하게 팔짱을 낀 채 내 쪽을 돌아봤다.
“부모도 없는 저 천것이 감히 저희 가문을 모욕….”
“음? 부모가 없다뇨?”
처음 듣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루카스 교수.
그런 루카스 교수의 반응에 되레 당황한 건 로잔나였다.
“예? 하지만 분명 자기 입으로 공화국 보육원 출신이라고….”
“아아, 그렇죠. 공화국 보육원 출신인 건 맞지만 나중에 데일을 거둬 준 양부가 있습니다.”
루카스 교수는 씨익 웃으며 내 어깨에 팔을 올렸다.
“지금은 제가 이놈 아버지입니다.”
“……예?”
입을 쩍 벌린 채 어버버 당황하는 로잔나.
루카스 교수는 내 어깨에 두른 팔을 꽉 잡아당기며 내 쪽을 돌아봤다.
“그렇지, 아들?”
“…….”
한쪽 눈을 찡긋거리는 루카스 교수를 보며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삼켰다.
‘아까 얘기를 들었나 보네.’
어째 껴든 타이밍이 절묘하다 했더니 나와 로잔나 사이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모양.
가만히 듣고 있다가 상황이 격해질 거 같으니 움직인 것이리라.
‘거참, 오지랖 넓은 양반이라니까.’
친구 가정사에 껴든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예, 아버지.”
능청스럽게 고개를 끄덕이자 로잔나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나와 루카스 교수의 관계가 사실이든 아니든, 그녀의 입장은 난처해질 수밖에 없었다.
전사부 담당 교수가 무려 ‘아들’이라고까지 말하는 후보생을 눈앞에서 대놓고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니까.
“제 아들놈이 무례를 끼쳤다면 제가 대신 사과하겠습니다.”
“아… 예.”
“원래 이놈이 좀 무식하거든요. 괜히 학년 말석이겠습니까?”
“…….”
솥뚜껑만 한 손바닥으로 내 등을 두드리며 껄껄 웃음을 터트리는 루카스 교수.
루카스 교수 쪽에서 나를 깎아내리며 나오자 대답이 궁해진 로잔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초리로 날 노려봤다.
“그럼, 슬슬 참관 수업 시작할 시간이니 다들 강의실 쪽으로 움직이시죠.”
루카스 교수는 내 어깨에 팔을 두른 채 나를 질질 끌고 강의실로 향했다.
나는 루카스 교수에게 끌려가는 와중 로잔나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도 가는 겁니까?”
“당연히 너도 가야지.”
“참관 수업은 학부모가 참석한 후보생만 받는 거잖아요.”
“여기 참석했잖아, 학부모.”
씨익 웃으며 자신을 손으로 가리키는 루카스 교수.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 설정 계속 끌고 가시는 겁니까?”
“새끼가 설정은 무슨. 원래 스승은 제2의 부모님이나 다름없다는 말 못 들었냐?”
“…….”
루카스 교수가 내 ‘부모’역을 자처해 주려는 마음은 고맙지만.
‘이 사실이 알려지면 루카스 교수한테 피해가 가겠지.’
그가 담당하고 있는 후보생은 나 혼자만이 아니다.
학부모가 오지 않아 참관 수업에 끼지 못한 다른 후보생들도 있을 텐데, 나만 특별 대우를 받아 참여하게 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루카스 교수의 평판에 흠이 생길 터.
‘특정 후보생만 편애한다는 소문이 나돌겠지.’
그렇게 되면 나중에 곤란해지는 건 루카스 교수였다.
“새끼, 언제부터 그렇게 남을 신경 썼다고 그러냐?”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챘는지 루카스 교수가 낄낄 웃음을 터트리며 내 머리를 헝클였다.
“자식이 부모 걱정하는 거 아니다, 이 건방진 꼬맹아.”
“…….”
이어지는 루카스 교수의 말에 나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어째서일까.
전생을 겪으며 ‘부모’라는 존재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게 됐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먹구름이 낀 듯 가슴이 먹먹했다.
조금만 마음을 놓으면 먹구름에서 쏟아진 빗물이 눈을 타고 흘러내려 버릴 것처럼.
“진짜 오지랖은….”
그렇기에 더더욱.
루카스 교수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돌려 유렌 쪽을 돌아봤다.
로잔나의 뒤편에 선 채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그의 표정은 마치 형장에 끌려가는 사형수처럼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와 떨어져(유렌과 나는 분반이 다르다) 어머니와 함께 참관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견디기 어려우리라.
“쯧. 어쩔 수 없네 이거.”
루카스 교수의 호의를 받지 않으면서도 유렌을 어머니에게서 떼어 낼 방법은 하나뿐.
“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냐?”
“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아버지.”
“엉?”
나는 손가락을 세워 루카스 교수의 옆구리를 푸욱 찔렀다.
“커헉! 이, 이 새끼가 지금 무슨…?!”
내 목을 단단히 옥죄고 있던 루카스 교수의 팔이 풀렸다.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유렌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데, 데일?”
당황해하는 유렌의 팔을 붙잡아 당겼다.
“째자.”
“째, 째다니 뭘…?”
“뭐긴 뭐야 인마.”
당연히 수업이지.
쿠웅!
나는 유렌의 팔을 잡아끈 채 발을 굴렀다.
베럴드 무투술.
바람 걸음.
등에 날개가 돋친 듯 몸이 가벼워지며 주변 배경이 빠른 속도로 쭈욱 밀려났다.
“야 이 새끼야! 어디가 너?!”
“유, 유렌! 너 지금 하는 짓이니?”
뒤에서 들려오는 외침들.
나는 그 외침을 가볍게 무시한 채 학교 밖을 향해 발을 박찼다.
“데, 데일 잠깐! 잠깐 기다려 보라니까!”
팔을 붙잡힌 채 끌려오고 있던 유렌이 다급한 표정으로 외쳤다.
“왜? 째기 싫어?”
“아니 그게….”
유렌은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거리가 꽤 멀어진 학교의 전경이 눈에 담겼다.
‘허락도 없이 수업을 빠지다니.’
3년 내내 학년 수석 자리를 지키며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온 그에게 있어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탈이었다.
“…….”
멀어지기 전 보았던 일그러진 어머니의 얼굴이 머리를 스쳤다.
이후에 있을 어머니의 분노를 생각하면 절로 등골이 서늘해졌지만.
“그럼 돌아갈래?”
“…….”
어째서일까.
그의 물음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이 짜릿한 일탈의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
“좋아, 그럼 같이 째는 걸로.”
데일은 씨익 웃으며 유렌과 함께 학교 담장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