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88)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89화(89/141)
제89화. 흔한 일 (1)
제국 변방.
초목과 돌조각이 나뒹구는 시골길을 마차 한 대가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부우우우웅.
마차라고 해도 옛날처럼 말이 직접 끄는 형태의 마차는 아니었다.
정식 명칭은 마동차.
공화국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마차로 말이 끄는 힘 대신 마석을 동력으로 삼는 일종의 마도구였다.
처음 개발 당시에는 너무 비싼 가격 때문에 소수의 제국 귀족이나 성국 고위 사제, 공화국 재벌이 아니면 감히 끌 수 없는 차였지만, 마석의 양산이 가능해지면서 현재는 워프 게이트와 더불어 가장 대중적인 이동 수단이 되었다.
물론.
그 ‘대중’에조차 속하지 못하는 계층에게 있어서는 마동차는 외계의 신문물이나 다름없는 물건이었지만.
“후우. 역시 시골길을 운전하는 건 쉽지 않군.”
운전석에 앉은 엘리샤 교수는 창문 밖으로 연초를 털어 내며 눈을 찌푸렸다.
제국 수도나 큰 도시에는 모두 깔끔한 포장도로가 깔려 있어 운전에 불편함이 없지만, 이처럼 시골길을 달릴 때는 초 단위로 덜컹거리는 충격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힘드시면 제가 운전할까요?”
“음? 자네 마동차 면허 가지고 있었나?”
“…아.”
생각해 보니 후보생 시절엔 면허가 없었다.
생활비가 없어 매점 빵까지 쪼개 먹던 시절이었는데 무슨 마동차 면허를 따겠는가.
내가 마동차 면허를 딴 건 졸업하고 나서도 한참 후의 일이었다.
‘그때도 용병단장이 운전기사 노릇 시켜서 억지로 딴 거였지.’
어쨌든.
지금 내 수중엔 면허는커녕 면허 시험증조차 없었다.
“면허는 없지만 운전은 할 줄 압니다.”
“굉장히 신뢰가 가는 말이로군.”
“진짜 할 줄 아는데.”
“마음은 고맙지만 사양하도록 하지. 이제 마을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 말이야.”
엘리샤 교수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지금 속도면 여기서 2~3시간 정도면 도착하긴 하겠네요.”
“그래. 그 정도면 도착… 음?”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이 깃든 눈으로 날 돌아보는 엘리샤 교수.
“데일 후보생은 공화국 출신 아니었나?”
“아, 예. 그렇습니다만.”
“근데 어떻게 이런 제국 깡촌에서 차로 얼마나 걸릴지까지 알고 있는 건가?”
“…….”
엘리샤 교수의 지적에 나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공화국 출신인 내가 어떻게 제국 깡촌 지리까지 알고 있냐, 라.’
수천 년 동안 태초의 불을 찾아 대륙 전역을 떠돌아다녔는데 제국의 깡촌이건 성국의 성역이건 내가 모르는 곳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물론.
그 사실을 엘리샤 교수에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
“1학년 기초 지리 수업 때 열심히 공부해 뒀거든요.”
“그런 것 치고는 자네 성적이… 크흠. 뭐, 됐다. 중요한 일은 아니니까.”
굳이 더 자세하게 캐물을 생각은 없는지 엘리샤 교수는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바람에 흔들리는 수풀과 졸졸졸 물소리가 들려오는 평범한 시골길.
“…….”
엘리샤 교수는 그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을 바라보며 어딘가 추억에 잠긴 듯 아련한 눈빛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엘리샤 교수님도 시골 마을 출신이라고 하셨죠?”
“뭐… 그렇지.”
엘리샤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 변방 어디에나 있는, 그런 흔하디흔한 작은 마을 출신이다.”
어렸을 적 추억을 회상하는 걸까.
엘리샤 교수는 마동차의 속도를 낮추며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마을 사람을 다 합쳐 봤자 백 명도 채 되지 않은 숫자에 농사와 사냥으로 간간이 삶을 이어 가는… 그런 곳이었지.”
“지금 가는 곳도 비슷한 곳 아닙니까?”
“그렇지.”
천천히 마동차의 속도를 낮추던 엘리샤 교수가 근처 길가에 차를 멈춰 세웠다.
“여기쯤에서 간단하게 식사라도 하고 가지.”
“음? 어차피 조금 있으면 마을에 도착하는 거 아닙니까?”
2~3시간 후면 마을에 도착하는데 굳이 이런 길바닥에서 밥을 먹을 필요는 없었다.
“그건 그렇지만….”
엘리샤 교수는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런 작은 마을 사람들일수록 외지인에 대해선 공포와 경외심을 갖기 마련이지. 특히 지금처럼 본인들이 도움을 받는 처지라면 필요 이상의 대접을 하려 할 거야.”
필요 이상의 대접이라.
“안 그래도 부족한 마을 창고를 비우게 만드실 생각은 없으시다는 거군요.”
“우리가 어디서 굶고 다니는 처지는 아니지 않나.”
“하하. 뭐, 그렇죠.”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차가운 인상과 어울리지 않는 세심한 배려였다.
‘개인적으로 재단까지 운영하고 있다고 했던가.’
빈센트 조교에게 들었던 말들을 떠올리며 차에서 내렸다.
“먹을 건 뭘 챙겨 오셨나요?”
“하나도 안 챙겨 왔다.”
“…하나도 안 챙기셨다고요?”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엘리샤 교수를 바라봤다.
‘아니, 이럴 거면 나보고 챙겨 오라고 하지,’
엘리샤 교수가 몸만 오라고 했기에 나도 따로 먹을 건 챙겨 오지 않았다.
“뭐, 사방이 먹거리 천지인데 굳이 귀찮게 챙길 필요 있나?”
엘리샤 교수는 피식 웃으며 길가 옆에 흐르는 개울가 쪽으로 내려갔다.
딱.
그녀가 가볍게 손을 튕기자 가느다란 은사 몇 가닥이 개울물로 쏘아졌다.
촤악! 촤르르르륵!
사납게 개울물 안을 휘젓는 은사.
순식간에 뒤엉킨 은사가 작은 그물 형태로 만들어졌다.
“흣차.”
퍼득, 퍼득!
은사로 이뤄진 그물을 잡아당기자 팔뚝만 한 크기의 물고기 두 마리가 딸려 나왔다.
“어때? 내 말대로지 않나?”
엘리샤 교수는 그물 안에서 펄떡이는 물고기 두 마리를 들어 올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순식간에 물고기를 잡아 온 엘리샤 교수를 보며 피식 웃음을 삼켰다.
“요즘엔 거미가 물고기도 낚는군요.”
“진화는 생물의 가장 위대한 강점이지.”
그물에 담긴 물고기를 뾰족한 나뭇가지에 꽂은 엘리샤 교수는 날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불 좀 피워 주겠나?”
“예.”
나는 근처 나뭇가지를 모아 작은 모닥불을 피웠다.
그사이 엘리샤 교수는 근처 수풀을 뒤적이고 있었다.
“거기서 뭐 하십니까?”
“식사가 있으면 디저트도 있어야지.”
그렇게 말하며 모닥불 쪽으로 돌아온 그녀의 손에는 엄지손톱 크기만 한 알록달록한 과일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간단하게 입가심으로 먹기 좋은 과일이다. 어렸을 적에 집 근처에서 자주 따 먹던 거지.”
“…생각 이상으로 생활력이 넘쳐 나시네요.”
깔끔한 검은 정장 차림의 미녀가 수풀에서 과일을 따 오는 광경은 어디 귀족 가문 귀부인이 밭을 갈고 있는 듯한 위화감을 줬다.
“후후. 어때, 색다른 매력이 느껴지나?”
어깨를 으쓱이는 엘리샤 교수를 보며 나는 피식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뵀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좋긴 하네요.”
“이거 곤란하게 됐군.”
“뭐가요?”
“설마 새파란 후보생에게 프러포즈를 받게 될 줄이야.”
“아니.”
뭔 소리 하는 거야 이 여자.
“농담이다.”
엘리샤 교수는 차가운 인상에 어울리지 않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머금은 채 먹기 좋게 구워진 물고기를 한 입 베어 물었다.
* * *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나와 엘리샤 교수는 다시 마동차를 타고 마을로 향했다.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따라 2시간 정도 더 운전하자 저 멀리 마을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마을 밖에는 초로의 노인 한 명이 지팡이를 짚고 서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이번에 마수를 토벌하러 와주신 영웅분들입니까?”
마동차에서 내리자 노인이 다가왔다.
“그렇다.”
“오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영웅님들!”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노인.
“자네는?”
“아, 죄송합니다.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이 마을의 촌장인 올리버라고 합니다.”
“그렇군. 잠깐 마을 안을 살펴봐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아, 혹시 식사는 하셨습니까? 말씀해 주시면 바로 식사 준비를….”
“아니. 밥은 이미 먹고 왔으니 따로 준비할 필요 없다.”
“그, 그렇습니까? 영웅님들의 노고에 대접해 드리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군요.”
아쉽다는 말과 달리 올리버의 눈에는 안도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올리버의 뒤를 따라 들어간 마을 안.
주민이 100명도 채 돼 보이지 않는 작은 마을에는 음울한 분위기가 짙게 내리깔려 있었다.
낡은 창문 틈으로 눈만 내민 채 이쪽을 훔쳐보는 사람.
눈을 마주치자 황급히 집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
초췌해진 얼굴로 길바닥에 멍하니 앉아 있는 사람.
마을이 아니라 무슨 묘지에 들어온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하… 죄송합니다. 원래는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슬픈 눈으로 마을 돌아보는 올리버.
“마수 때문인가요?”
“…예.”
하긴.
팔안급 마수가 마을 주민들을 납치해 가고 있는데 마을 분위기가 음울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으리라.
“마수가 나타난 건 언제부터지?”
“한… 일주일 정도 지났습니다.”
“지금까지 납치된 인원이 총 몇 명이지?”
“일곱 명입니다.”
“일곱 명이라.”
엘리샤 교수는 눈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하루에 한 명씩 납치해 가고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주먹을 움켜쥐며 입술을 짓씹는 올리버.
“그 사악한 마수는 마치 저희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매일 밤 한 명씩 주민을 납치해 가고 있습니다!”
분노에 떨리는 눈가.
올리버의 주름진 뺨이 파르르 떨렸다.
“…그런데도 마을에 가만히 남아 있던 건가?”
“저, 저희 같은 무지렁이들이 도망갈 곳이 제국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마을을 잃게 되면 저희는….”
농사와 사냥으로 간간이 삶을 이어 나가는 마을 주민에게 있어 삶의 터전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라는 것은 사실상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흐음.”
엘리샤 교수는 팔짱을 낀 채 낮은 침음을 삼켰다.
“마수를 목격한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아… 예. 그렇습니다.”
“어디 있지?”
“이,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하며 근처 집 안으로 들어간 올리버.
낡은 목재로 이뤄진 집 안에는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나이는 마흔 정도 됐을까.
이런 촌구석 마을에 사는 사람답지 않게 꽤나 깔끔한 인상의 사내였다.
“헤, 헤리스라고 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춤주춤 몸을 일으키는 헤리스.
“자네가 마수를 목격한 사람인가?”
“예, 옙!”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헤리스.
“당시 상황과 마수의 외형에 대해서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해라.”
“보, 보고서에 쓴 대로입니다. 오전 1시경에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서 잠깐 나가 봤는데… 두 발로 선 악어처럼 생긴 마수가 마을 주민 한 명을 기다란 꼬리로 감싸서 끌고 가고 있었습니다.”
“산 채로 끌고 간 건가?”
“그, 그렇습니다.”
“끌고 간 방향은?”
“마을 뒤편에 있는 산입니다.”
“다른 목격자는?”
“저 말고도 본 사람은 여럿이지만… 다들 무서워서 집 안에 숨어 있었습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고개를 끄덕이는 엘리샤 교수.
“알겠다. 그럼 우린 이만 나가지.”
“부, 부탁드립니다! 제발 그 끔찍한 마수를 토벌해 주십시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조아리는 헤리스.
“노력하지.”
엘리샤 교수는 짧게 답하며 고갤 돌렸다.
“헤, 헤리스 자네. 조금 진정하게나.”
올리버가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는 헤리스를 달래는 사이, 나와 엘리샤 교수는 헤럴드의 집 밖으로 나왔다.
“후우.”
엘리샤 교수는 품속에서 연초 한 대를 꺼내 입에 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저 헤리스라는 남자.”
찰칵.
라이터의 불빛이 연초 끝을 태웠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
엘리샤 교수는 보랏빛 흉안을 빛내며 연기를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