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90)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91화(91/141)
제91화. 흔한 일 (3)
“하아.”
날숨에 섞이는 잿빛 연기.
한 번에 폭발적인 마력을 쏟아 낸 기혈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잘려 나간 마수의 꼬리를 바라보며 나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등골을 타고 흐르는 전율.
평생 다이어트 식단을 하던 사람이 생에 처음으로 리미트를 풀고 폭식을 하게 되면 딱 이런 기분일까.
들뜬 고양감과 짜릿한 쾌감이 전신에 퍼졌다.
‘이런 기분이었나.’
습관처럼 마력을 아끼던 것을 멈추고 전력을 다해 휘두른 검격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의 파괴력을 보여 줬다.
‘확실히 마력이 무식하게 빠져나가긴 하네.’
최근 육체가 ‘화로’로 재구성되며 마력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지 않았다면 감당하기 어려웠으리라.
‘하지만 그만큼 위력 하나는 확실해.’
‘점화’를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 정도 위력이다.
만약 점화를 사용한 상태였다면 지금보다 두 배 이상 강력한 위력이었으리라.
‘점화 상태면 마력이 빠르게 회복되니 마력 부담도 덜할 거고.’
여러모로 이쪽이 ‘나와 어울리는’ 방식의 검술이었다.
“하.”
나지막한 실소가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마력의 소모를 의식하지 않고 검을 휘둘러 본 후에야 유리나가 했던 말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수천 년 검을 수련해 왔으면서 이런 것도 스스로 깨닫지 못했다니.’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수천 년 검을 수련해 왔기에 스스로 깨달을 수 없었던 것이리라.
‘지금 내게 어울리는 새로운 검술.’
이 검술의 이름을 똑같이 ‘태양검’이라 칭하는 건 어울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용하는 검술의 형태가 완전히 달라졌는데 이름이 같다면 나도 모르게 예전 습관을 떠올리게 될 테니까.
‘그렇다면.’
나는 손에 쥔 검을 내려다봤다.
일렁이는 잿빛 오러에 섞여 타오르는 불씨.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그 어떤 영웅에게서도 볼 수 없던 독특한 빛깔의 오러에서 어렵지 않게 새로운 검술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크아아아아!!!”
잘린 꼬리를 내려다보며 한동안 충격에 잠겨 있던 악어 마수가 이내 거친 포효를 내지르며 발을 박찼다.
강철 같은 비늘로 전신이 뒤덮인 수 톤의 거구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쏘아졌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스치는 것만으로 온몸이 으스러질 파괴의 화신을 향해.
검을 겨눈다.
“쓰읍.”
성흔에 깃든 마력을 전신에 퍼트린다.
거칠게 발을 내디디며 폭발하듯 마력을 끌어올린다.
극도로 마력을 제어해 정확히 필요한 순간에만 힘을 담았던 태양검과 달리 남은 한 줌의 마력까지 모조리 불태워 펼치는 일격.
잿불검.
제1형, 회절(灰絶).
다른 누구도 아닌, 오롯이 ‘데일 한’ 만을 위해 만들어진 검술이 달려드는 악어 마수의 몸을 갈랐다.
쿠우우웅!
묵직한 굉음과 함께 5미터에 달하는 마수의 몸이 정수리부터 반으로 쪼개져 두 쪽으로 갈라졌다.
벌어진 살점에서 코를 자극하는 탄내와 함께 메케한 회색 연기가 새어 나왔다.
“후우.”
숨을 토해 내며 마력을 거둬들이는 순간 몸이 살짝 휘청거렸다.
‘순간적으로 마력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그런가.’
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지탱하며 반으로 갈라진 악어 마수의 시체를 살폈다.
‘마석은 없나.’
하긴.
전이 워낙 운이 좋았을 뿐 원래 팔안급 이상의 마수에게서 마석이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못내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고갤 돌렸을 때.
“…이게 무슨.”
경악에 찬 엘리샤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일 후보생 자네 대체 어떻게….”
그녀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렵다는 듯 떨리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하긴.
그녀는 중간 평가 때 나와 악어 마수가 싸우던 장면을 지켜본 유일한 목격자였다.
중간 평가로부터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때 안간힘을 써서 겨우 이겼던 악어 마수를 단 두 번의 검격으로 썰어 버린 걸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겠지.
“뭐, 후보생 시절에는 빨리빨리 성장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어깨를 으쓱이며 너스레를 떠니 엘리샤 교수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건가?”
영웅들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기가 후보생 시절이라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어지간한 교수들도 상대하기 꺼리는 팔안급 마수를 무슨 동네 들개 잡듯이 잡아 버리다니.
이건 하루아침에 뱀이 용으로 변한 수준이 아닌가?
“하… 데일 후보생에게 숨겨 둔 힘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엘리샤 교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루카스 교수랑 얘기를 나눴을 때 데일 후보생은 장래에 ‘위대한 다섯 영웅’보다도 더 강한 영웅이 될 거라 말하긴 했었지만.’
어쩌면 그때 말한 ‘장래’라는 게 생각 이상으로 가까운 미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생존자들 상태는 좀 어떻습니까?”
“…다행히 무사한 것 같군.”
전투의 여파로 인해 생존자들이 피해를 입을까 봐 미리 보호해 둔 덕분도 있지만, 애초에 ‘전투의 여파’라는 게 생길 여지조차 없이 빠르게 전투가 끝난 영향이 더 컸다.
“그래도 많이 쇠약해진 상태다. 빠르게 마을로 옮기지.”
“예.”
그렇게 나와 엘리샤 교수는 생존자들을 데리고 마을로 이동했다.
“루, 루미! 루미야!!!”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입구 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중년 여인이 허겁지겁 다가왔다.
그녀는 엘리샤 교수에게 안겨 있는 자신의 딸을 바라보며 펑펑 눈물을 쏟아 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영웅님들!”
“감사 인사는 나중에. 상태가 위독한 사람도 있으니 빨리 침대에 눕히고 죽을 만들어 먹여라.”
“예, 예! 알겠습니다!”
중년 여인의 외침이 마을 주민들에게도 들린 걸까.
집 안에 숨어 있던 마을 주민들이 우르르 나와 환호성을 내질렀다.
“여, 영웅님들이 마수를 처치해 주셨다!”
“이제 우린 다 살았어!”
“와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영웅님!”
“일곱 신의 가호가 함께하실 겁니다!”
눈물을 흘리며 기쁨을 표출하는 마을 주민들.
물론 그중에는 다른 의미의 눈물을 흘리는 자들도 있었다.
“저… 여, 영웅님. 혹시 저희 남편은 못 보셨나요?”
“저희 어머니는 어디에…!”
“아, 안 돼! 필립! 필리이이입!”
마수에게 납치된 일곱 중 생존자는 넷.
바꿔 말하면 살아 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
엘리샤 교수는 씁쓸한 표정으로 울부짖는 마을 주민들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괜찮으십니까?”
“…흥.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냐?”
“후보생이 교수 걱정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시끄럽다.”
차가운 대꾸와 달리 엘리샤 교수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던 어둠이 살짝 걷혔다.
“일단 조사는 내일 이어서 하고 오늘은 좀 쉬지.”
“예, 그러죠.”
안 그래도 ‘잿불검’을 사용하며 마력을 꽤 많이 사용한 터라 휴식이 필요하던 참이었다.
엘리샤 교수와 나는 근처 빈집에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했다.
똑똑.
그때 들려오는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
“영웅님들 안에 계십니까?”
올리버 촌장이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엘리샤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이번에 마수를 토벌해 주신 보답… 이라고 하기엔 많이 부족합니다만, 오늘 저녁에 마을 주민들이 모여 작은 축제를 열기로 했습니다.”
“축제?”
“예. 살아 돌아온 이들을 축복하고, 떠나간 자들을 위로하는 자리지요. 그 자리에 꼭 영웅님들도 함께 참석해 주셔서 자리를 빛내 주셨으면 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관심 없다.”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엘리샤 교수.
올리버 촌장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영웅님들을 참석을 많이 바라고 있습니다. 저희 마을의 특산품인 사과주도 꼭 한번 대접해 드리고 싶은데 참석해 주실 수 없습니까?”
“으음.”
올리버 촌장의 간곡한 부탁에 엘리샤 교수는 침음을 삼켰다.
마을 주민들의 삶에 영향이 갈 정도의 대접을 받는 게 영 부담스럽다는 듯 망설이는 눈치였다.
‘하여간 사람이 너무 좋아도 탈이라니까.’
나는 피식 웃음을 삼키며 그녀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마을은 나중에 헬리오스 가문 쪽에 부탁해서 구호물자를 보내 달라고 할 테니 맘 편히 참석하세요.”
“…헬리오스 가문에?”
어떻게? 라는 의문이 담긴 눈빛.
“제가 또 나름 헬리오스 가문 가주님이랑 친분이 좀 있거든요.”
“데일 후보생이 로잔나 헬리오스가 친분이 있다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끔뻑이는 엘리샤 교수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하… 데일 후보생은 정말 알면 알수록 의문만 늘어나는 사람이군.”
한숨을 내쉬고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엘리샤 교수.
“알았다. 참석하지.”
“감사합니다 영웅님들!”
올리버 촌장은 화색이 돈 표정으로 연신 허리를 숙였다.
“축제 준비가 끝나면 부르러 오겠습니다!”
문을 닫고 나가는 올리버 촌장.
그렇게 엘리샤 교수와 함께 짧은 휴식을 취하며 몇 시간 정도를 기다렸을까.
밖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축제 준비가 끝났습니다 영웅님들!”
올리버 촌장의 부름과 함께 나와 엘리샤 교수는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 보이는 커다란 모닥불.
코를 자극하는 먹음직스러운 고기의 냄새와 달콤한 과실주의 향기가 작은 마을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와아아아아! 영웅님들이다!”
“저희 마을을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웅님들을 위해! 일곱 신을 위해!”
마을 주민 중에서는 이미 얼큰하게 취한 사람까지 있었다.
“저… 여, 영웅님. 여기 잔 가져왔어요.”
자리에 앉은 나와 엘리샤 교수를 향해 다가오는 작은 소녀.
“너는….”
“에헤헤. 제 이름은 루미라고 해요!”
주황색 머리와 주근깨를 지닌 소녀가 해맑게 미소 지었다.
“벌써 정신을 차린 건가?”
“네! 이게 다 영웅님들이 구해 주신 덕분이에요!”
그래도 마수에게 납치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소녀의 상태는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다행이군.”
엘리샤 교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소녀에게서 달콤한 사과주가 든 술잔을 받아들였다.
“자, 영웅님들도 오셨으니 본격적으로 축제를 시작하겠습니다!”
올리버 촌장이 모닥불 앞에 서며 높이 술잔을 들어 올렸다.
“저희 마을을 지켜 주신 영웅님들을 위해!”
“일곱 신을 위해!”
마을 주민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사과주가 든 술잔을 기울였다.
“다들 떠들썩하군.”
“뭐, 마을 주민들 입장에선 죽다 살아난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나는 피식 웃음을 삼키며 엘리샤 교수를 향해 술잔을 내밀었다.
짠.
맑은 소리를 내며 술잔이 부딪쳤다.
“사과주라… 확실히 향은 좋군.”
엘리샤 교수가 찰랑이는 사과주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그리고.
“푸훕!”
입 안에 든 사과주를 뿜어내는 엘리샤 교수.
“교수님?”
“데일 후보생! 술을 마시지 마라!”
엘리샤 교수가 내 손에 든 술잔을 다급하게 쳐냈다.
쨍그랑.
술잔이 박살 나며 사과주가 바닥을 적셨다.
“네놈….”
자리에서 일어난 엘리샤 교수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올리버 촌장에게 다가갔다.
“술 안에 대체 뭘 탄 거지?”
올리버 촌장의 멱살을 거칠게 틀어쥔 엘리샤 교수의 흉안이 사납게 번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