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94)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95화(95/141)
제95화. 막간 2 – 잿불
영웅 학교로 돌아가는 마동차 안.
마석으로 구동되는 엔진 소리가 천둥처럼 느껴질 정도로 어색한 침묵이 차 안에 내려앉아 있었다.
“…….”
운전대를 잡은 엘리샤 교수는 최대한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창문 쪽으로 살짝 돌린 채 운전을 이어 가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아 그녀의 붉게 달아오른 뺨과 귀를 지켜보고 있던 나는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피하실 생각입니까?”
“피, 피하다니? 데일 후보생이 무슨 소릴 하는지 전혀 모르겠군.”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엘리샤 교수.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세 시간째 같은 배경이 이어지고 있는 창문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다 사고 납니다.”
“흥. 면허도 없는 데일 후보생이 할 걱정은 아니다.”
“저도 운전할 줄 안다니까요.”
“면허를 따고 오면 인정해 주지.”
잡담을 나누는 사이 살짝 긴장이 풀린 걸까.
엘리샤 교수의 시선이 나와 마주쳤다.
“읏…!”
눈을 마주치자마자 다급히 고개를 돌리는 엘리샤 교수.
나는 한숨을 내쉬며 아직 부드러운 감촉이 잔향처럼 남아 있는 입술을 매만졌다.
“잊어라. 어제 일은 사고였다.”
“…알겠습니다.”
“아니, 역시 잊지 마라.”
“…….”
잊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하아. 미치겠군. 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엘리샤 교수는 운전대 위에 이마를 대며 연신 한숨을 내뱉었다.
“잠깐 바람 좀 쐬지.”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걸까, 엘리샤 교수가 차를 멈춰 세웠다.
밖에 나온 엘리샤 교수가 품속에서 연초를 하나 꺼내 물었다.
나는 그녀가 라이터를 꺼내기 전에 가볍게 손을 튕겼다.
화르륵.
손끝에 타오르는 불길.
‘태초의 불’은 본디 성흔을 불태우는 불이기에 실제 불과는 개념적으로 많이 다르지만, 어느 정도 출력을 조정하면 이렇게 일반적인 불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그 불.”
엘리샤 교수는 내 손가락 끝에서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며 가늘게 눈을 떴다.
“데일 후보생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힘이군. 최근 급격하게 성장한 이유가 그 불을 다룰 수 있게 되면서부터인가?”
“…알고 계셨던 겁니까?”
나는 놀란 눈으로 엘리샤 교수를 바라봤다.
그녀가 소생의 가호를 눈치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 ‘태초의 불’까지 알고 있었을 줄이야.
“정확한 정체는 모른다. 그냥 어떤 거대한 힘이 데일 후보생 내면에 잠들어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을 뿐.”
“그건….”
태초의 불에 대해서 그녀에게 말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을 때.
엘리샤 교수는 고개를 나지막이 저으며 말을 이었다.
“굳이 알려 줄 필요는 없다. 데일 후보생에게도 사정이란 게 있을 테니.”
“…감사합니다.”
“다만 하나 물어보고 싶은 건 있군.”
엘리샤 교수는 내 손끝에 타오르는 불꽃에 연초를 대며 깊게 한 모금 들이쉬었다.
“이번에 데일 후보생이 마수를 잡을 때 사용했던 불꽃 섞인 회색 오러… 그건 대체 뭐지?”
이번에 ‘잿불검’을 깨우치며 얻은 건 단순히 새로운 검술만이 아니었다.
기존에 극도로 마력을 제한해서 오러를 만들어내던 걸 바꿔 전력으로 마력을 태우며 오러를 만들어내자 전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빛깔의 오러로 변해 버렸다.
‘전에도 오러를 만들 때 불꽃 나오긴 했지만 이런 느낌은 아니었지.’
전에 사용하던 오러가 회색 오러 위에 덧씌워지듯 아지랑이 같은 불꽃이 타올랐다면, 이번에는 둘이 뒤섞여서 하나가 되어 타오르는 느낌이라 해야 할까.
“뭐라 설명해 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고작해야 며칠 전에 깨우친 기술이다.
아직 나 자신도 정확히 이 오러의 힘과 효과를 잘 모르는데 그녀에게 설명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흐음. 그럼 이름은 따로 있나?”
“이름이라….”
따로 정한 이름은 없었지만.
질문을 듣는 순간 바로 떠오른 단어 하나가 있었다.
“잿불.”
재 속에 남아 있는 여린 불꽃.
물론 아득한 과거 창조의 나무를 불태워 버린 태초의 불에 과연 ‘여리다’는 표현이 어울리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지만, 외관만 놓고 봤을 때 가장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잿불이라… 과연, 잘 어울리는 이름이군.”
길게 연기를 내뿜는 엘리샤 교수.
“중간 평가 때만 해도 못 보던 기술이었는데 최근 새로 익힌 건가?”
“맞습니다.”
“흐음.”
연초를 비벼 끄며 가늘게 눈을 뜨는 엘리샤 교수.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 문제라고 할 건 아니다.”
엘리샤 교수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다만, 약간 불안정한 느낌이 들더군.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랄까….”
“뭐, 최근에 익힌 거니까요.”
잿불의 기운을 검에 담아 펼치는 ‘잿불검’만 해도 이번에 처음 사용해 보는 기술이었다.
“제 내면에 있는 ‘불’이 그렇게 쉽게 다뤄지는 놈이 아니라서요. 아마 불의 기운이 제가 본래 지닌 힘보다 워낙 강하다 보니 균형이 안 맞는 걸 겁니다.”
“…….”
내 말에 엘리샤 교수는 깊게 생각을 이어 가더니 이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반대다.”
“예?”
“그 불의 기운이 워낙 강해서 균형이 안 맞는 게 아니라, 데일 후보생이 지닌 힘이 너무 강해서 균형이 안 맞게 된 거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생각지도 못한 엘리샤 교수의 말에 나는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엘리샤 교수는 내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 목을 끌어당겨 입술을 겹쳤다.
어젯밤과 달리 어떤 설렘도, 떨림도 느껴지지 않는 키스.
엘리샤 교수의 흉안이 보랏빛으로 번들거렸다.
“역시.”
그녀는 입술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는 긴가민가했지만, 이젠 확실히 알겠군.”
“…뭘 말입니까?”
“두 개다.”
엘리샤 교수는 손가락 두 개를 펼치며 말을 이었다.
“데일 후보생 내면에 잠들어 있는 거대한 힘. 하나가 아니라, 두 개다.”
“…….”
내 내면에 잠들어 있는 힘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라고?
그게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자네가 사용한 불은 그중 ‘약한 쪽’이다. 그래서 균형이 맞지 않았던 거지.”
“자, 잠깐만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내 안에 ‘태초의 불’보다 강한 힘이 깃들어 있다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그게.’
만약 그런 힘이 나한테 있었다면 내가 괜히 전생에 ‘말석 영웅’이라 불렸겠는가?
“앞서 말했듯 나도 정확한 건 모른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그런 게 있다’ 정도지.”
“…….”
“당장은 신경 쓸 필요 없다. 약한 쪽이건 강한 쪽이건 아직 둘 다 데일 후보생이 제대로 다룰 수 없는 힘이라는 건 마찬가지니.”
엘리샤 교수는 그렇게 말하며 마동차에 다시 탔다.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추스르며 그녀의 뒤를 따라 차에 타자.
“흐음. 그나저나 궁금하군.”
내 쪽을 돌아보며 눈을 빛내는 엘리샤 교수.
“과연 데일 후보생이 그 두 개의 힘을 모두 다룰 수 있게 됐을 때, 대체 어떤 존재가 되어 있을지 말이야.”
엘리샤 교수의 보랏빛 눈동자가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어쩌면 그 ‘마신’조차 가볍게 찢어 죽일 수 있는 괴물이 될지도 모르지.”
“…….”
“후훗. 농담이다.”
그녀는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올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다시 출발하지.”
우렁찬 엔진 소리와 함께 마동차가 출발했다.
* * *
늦은 저녁이 돼서야 도착한 영웅 학교.
엘리샤 교수와 인사를 마치고 기숙사 방으로 돌아온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눈을 찌푸렸다.
“하나가 아니라 두 개라.”
엘리샤 교수의 말이 잔향처럼 머릿속에 맴돌았다.
화르르륵!
나는 손바닥을 펼쳐 ‘잿불’을 피워올렸다.
손바닥 위에 회색 오러와 뒤섞인 불꽃이 타올랐다.
타오르는 잿불에서 아찔한 힘이 느껴졌다.
‘마력 소모가 심하긴 하지만, 확실히 위력적이야.’
유리나에게 얻은 깨달음을 토대로 기존 내 마력에 태초의 불을 뒤섞어 새롭게 만들어 낸 기운.
이 기운을 담아 펼쳤던 ‘잿불검’은 사용한 나조차도 깜짝 놀랐을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아직 사용하는 데 좀 어색하긴 하지만.’
수천 년에 걸쳐 몸에 밴 습관이 마력을 아껴 쓰는 거였는데 성흔의 마력을 바닥까지 긁어모아 폭발하듯 끌어올려야 사용할 수 있는 기운이라니.
평소 꼼꼼히 가계부를 작성하며 골드 한 푼 허투루 쓰지 않던 짠돌이가 명품샵에 들어가 눈에 보이는 대로 명품을 쓸어 담는 느낌이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마음속 한편에서 ‘이래도 되나?’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고 해야 할까.
‘차차 익숙해져야겠지.’
잿불의 위력을 몸소 체감한 이상, 예전처럼 무작정 마력을 아껴 사용하는 방식만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그나저나 엘리샤 교수님이 말한 건 대체 뭐였지?”
내 안에 ‘태초의 불’ 말고도 또 다른 힘이 깃들어 있다니.
기나긴 전생을 겪으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일이었다.
‘나한테 그런 힘이 있을 리가 없….’
문뜩.
전에 심상 세계에서 봤던 광경이 머리를 스쳤다.
마치 ‘겁에 질린’ 것처럼 다급히 내 손을 피해 심상 세계를 무너트렸던 태초의 불.
뒤바뀐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
“…아.”
그리고 떠오른 또 한 가지의 의문.
‘왜 내 성흔은 멀쩡했던 거지?’
전승에 따르면 태초의 불에는 성흔을 불태우는 힘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성흔’이라는 것은 성흔 안에 깃든 마력과 가호를 모두 포함한 개념이었다.
‘근거 없는 전승이 아니야.’
실제로 태초의 불은 몽환의 대주교가 사용한 왜곡의 가호를 불태웠고.
짐승의 대주교의 힘으로 만들어진 독약을 불태웠다.
그런데, 왜.
‘내 소생의 가호는 불태우지 못했던 거지?’
전생에 태초의 불을 몸에 받아들였을 때, 태초의 불에 성흔이 집어삼켜지며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라 생각했지만.
내 왼쪽 가슴에 새겨진 성흔은 멀쩡했다.
멀쩡한 걸 넘어 그 안에 태초의 불을 ‘가둬’ 버리기까지 했다.
-하나가 아니라, 두 개다.
엘리샤 교수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하나가 아니라… 두 개.”
그렇다면.
태초의 불마저 집어삼켜 버린 그 두 번째 힘이라는 건 대체 뭐란 말인가?
“…….”
풀리지 않는 의문 속.
창밖에 내리깔린 밤의 장막은 점차 짙어져 가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