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Seat Hero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97)
말석 영웅이 회귀했다 98화(98/141)
제98화. 과열(過熱) (3)
영웅 학교 내에 위치한 치료소.
잦은 대련 및 실전 수업으로 다칠 일이 많은 고학년 후보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장소로서, 내부에는 일정한 기부금(이라 쓰고 입원료라 부른다)을 내면 이용할 수 있는 개인 치료실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런 개인 치료실 중에서도 가장 값비싼 기부금을 요구하는 최고급 치료실.
어지간한 제국 귀족이나 성국의 고위 성직자, 공화국의 재벌가도 이용하기 꺼리는 호화로운 치료실에.
“데, 데일 씨!”
연분홍색 머리칼을 지닌 여인이 다급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이리스.
그 이름보다는 ‘성녀’라는 호칭으로 더 유명하며, 일곱 신의 축복을 한 몸에 받았다고 전해지는 여인.
“허업!”
아이리스는 침대에 누워 있는 데일의 얼굴을 보자마자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데… 데일 씨….”
퉁퉁 부르튼 입술과 초점을 잃은 눈동자.
당장에라도 끊어질 듯 가쁜 호흡과 입가 주변에 튄 붉은 액체.
“아, 안 돼! 정신 차리세요!”
그가 죽어도 되살아나는 ‘소생의 가호’를 지니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초췌해진 얼굴로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을 본 순간 소생의 가호고 뭐고 까맣게 머리에서 지워졌다.
“대체 누가 데일 씨를 이렇게….”
데일을 부여잡은 채 울먹이는 아이리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 걸까.
힘없이 축 늘어져 있던 데일이 바들바들 손을 떨며 한쪽을 가리켰다.
“저… 씹, 새….”
그의 손이 가리킨 방향에 있는 건 2미터에 가까운 덩치를 지닌 거한.
아이리스는 베럴드를 돌아보며 눈을 찌푸렸다.
“…베럴드 씨가 왜요?”
“하하. 너무 걱정 마시오, 아이리스 누님. 형님은 지금 너무 수련을 과하게 한 탓에 과로로 쓰러진 것뿐이니.”
“단순 과로라기엔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데요.”
“원래 약이라는 게 먹고 난 직후는 몸 상태가 더 안 좋아지곤 하지 않소? 지금 약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거니 걱정 마시오.”
“…그런가요?”
그제야 걱정을 좀 덜었는지 안도에 찬 숨을 내쉬는 아이리스.
그녀는 누워 있는 날 찌릿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과로라니… 대체 어떻게 수련을 했길래 몸이 이 모양이 될 때까지 한 거예요?”
“아니, 이게 수련 때문이 아니라….”
나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상황을 설명하려 했지만.
구차한 변명이 끝까지 이어지기도 전에 유렌이 말을 잘랐다.
“흥. 뭐가 수련 때문이 아니야? 데일 너 잠도 제대로 안 자고 매일 새벽 2~3시까지 연무장에 혼자 남아 있었잖아?”
“새, 새벽 2~3시까지요?”
“응. 그러고는 아침 6시에 왔다니까? 그것도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
아이리스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그녀는 유렌과 베럴드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죄송한데 다른 분들은 나가 주실 수 있을까요? 데일 씨에게는 따로 집중 치료가 필요할 것 같아서요.”
“집중 치료라면 치료사를 부르는 게….”
“어머, 제가 누군지 잊으셨나요?”
아이리스는 방긋 미소 지으며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
“아.”
유렌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나지막한 탄성.
영웅 학교에 상주하고 있는 치료사도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감히 성국의 ‘성녀’와 비교할 수는 없었다.
“음, 알았어. 그럼 데일을 부탁할게.”
“후후! 아이리스 누님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지! 형님을 잘 부탁하오!”
유렌과 베럴드가 치료실 밖으로 나갔다.
“…….”
“…….”
치료소 안에 내려앉은 침묵.
아이리스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날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아가리 물어.”
“옙.”
어색한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입을 열려고 하자마자 들려오는 낮게 가라앉은 아이리스의 목소리.
그녀는 주먹을 쥔 손을 파르르 떨며 입술을 짓씹었다.
“진짜… 제가 데일 씨가 쓰러졌다는 말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
“그런데 뭐? 과로? 매일 새벽 3시까지 연무장에 처박혀 있었다고?”
콰앙!
아이리스는 움켜쥔 주먹으로 나 대신 내 옆의 선반을 내려쳤다.
“제가 전에 말했죠? 좀 더 자기 몸을 소중하게 생각해 달라고!”
“…….”
눈을 글썽이는 아이리스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미안.”
잿불에 그런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지 모르고 한 일이라고 해도, 최근에 너무 몸을 혹사시킨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당신 정말…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는 아이리스.
아이리스는 조심스럽게 내 이마에 손을 올렸다.
이마를 타고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졌다.
“열이 심하네요.”
“좀 쉬면 금방 나을 거야.”
아이리스의 걱정을 덜기 위해 금방 나을 거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이 ‘과열’ 상태가 언제쯤 회복될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가만히 쉬니까 처음보단 나아진 거 같은데.’
처음보다 나아졌다 뿐이지 아직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든 상태였다.
“피로 해소에 좋은 치유 마법을 걸어 드릴게요.”
“아니, 걸어도 별 효과 없을 거야.”
아까 베럴드가 만들어 준 보양식(?)을 먹은 후 학교 치료사가 와서 치유 마법을 걸어 줬지만 ‘과열’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성녀’의 치유 마법이면 좀 다를지.”
“뭐… 그럴 수도 있지만.”
솔직히 큰 기대는 되지 않았다.
아무리 아이리스가 일곱 신의 축복을 받은 성녀라고 해도 태초의 불로 인해 과열된 기혈을 치유하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
“그럼 가만히 누워 계세요.”
아이리스는 내 쪽으로 손을 뻗으며 나지막이 축문을 외웠다.
“일곱 신이시여. 지쳐 쓰러진 당신의 아이를 부축해 주소서.”
우우우웅!
그녀의 눈동자가 무지갯빛으로 변하며 새하얀 빛무리가 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시원한 냉수를 들이켠 듯 불덩이처럼 뜨거웠던 몸이 조금 식은 게 느껴졌다.
‘어, 뭐야? 효과가 있잖아?’
나는 두 눈을 크게 뜨며 아이리스를 바라봤다.
내심 이건 아이리스라고 해도 치유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설마 진짜 효과가 있을 줄이야.
‘이게 일곱 눈의 힘인가.’
나는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보며 속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후우.”
무지갯빛으로 빛나던 아이리스 눈동자가 원래의 푸른색으로 돌아왔다.
‘일곱 눈’까지 사용해서 치유 마법을 쓴 탓일까.
아이리스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어때요? 이번에도 효과 없었나요?”
“아니, 효과 있었어.”
나는 그렇게 말하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까 전만 해도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던 몸에 살짝 활력이 돋았다.
그대로 침대에서 내려와 두 발로 서려고 했을 때.
“크읏!”
몸이 휘청이며 다리에 힘이 풀렸다.
“데일 씨!”
아이리스가 다급히 날 부축했다.
“으… 아직 걷기는 힘드네.”
그녀의 치유 마법으로 과열됐던 기혈이 살짝 진정되긴 했지만, 아직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일곱 눈을 사용한 치유 마법을 받아도 이 정도라니.’
과연 완치까지 얼마나 걸릴지 생각하면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음….”
날 다시 침대에 눕혀 주며 짧은 침음을 흘리는 아이리스.
가만히 고민을 이어 가고 있던 아이리스가 꿀꺽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크흠!”
말끝을 흐리며 크흠 헛기침을 내뱉는 아이리스.
아이리스는 무슨 도둑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 치유 마법의 효과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뭔데?”
“그건… 크, 크흠!”
아이리스는 뺨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제가 쓰는 치유 마법의 경우 좀 특별해서 모, 몸이 밀착해 있을수록 효과가 좋아지거든요!”
“…뭐?”
몸이 밀착해 있을수록 치유 마법의 효과가 좋아진다니.
‘전생에는 그런 말 들은 적 없었는데.’
하긴.
생각해 보면 전생에서는 ‘일곱 눈’ 없이 신의 가호를 사용해야 했던 그녀의 부담을 줄여 줘야 한다는 이유로 치유 마법 자체를 받지 않았으니 들을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었다.
“그럼, 옆으로 돌아누워 주세요.”
“…뭘 어떻게 하려고?”
“말했잖아요? 몸이 밀착해 있을수록 치유 마법의 효과가 좋아진다고.”
아이리스는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더니 침대 위로 올라왔다.
그녀는 돌아누운 내 등을 뒤에서 꼬옥 끌어안았다.
“그러니까 이렇게 데일 씨를 끌어안고 치유 마법을 쓰면 더 효과가 있을 거예요.”
“…….”
나는 굳게 입을 다문 채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압박감.
가느다란 그녀의 팔이 허리를 감싸며 하얀 스타킹을 신은 늘씬한 다리가 내 다리 사이에 얽혀 들었다.
‘아니, 이거 치유 마법이고 뭐고 문제가 아닌데.’
나는 들끓는 욕망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리 그녀와 전생에 서로 몸까지 섞은 연인 사이였다고 해도… 아니, 오히려 그런 사이였기 때문에 더더욱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럼… 한 번 더 치유 마법을 걸어 드릴게요.”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곧 그녀의 몸에서 새하얀 빛무리가 뿜어져 나오더니 내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아.’
찌는 듯이 더운 여름 시원한 냉수로 샤워를 한 듯한 감각.
과열된 기혈이 빠르게 식어 가는 걸 느끼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포근함이 몸을 가득 채웠다.
포근한 감각과 함께 참기 힘든 졸음이 쏟아졌다.
‘뭐… 그래도 아이리스가 있으면 앞으로 잿불의 후유증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밀려오는 수마에 몸을 맡겼다.
* * *
어둠이 내려앉은 치료실 안.
문이 열리며 기다란 군청색 머리칼을 포니테일로 묶은 여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성녀님 곧 기숙사 통금 시간입니다. 데일 그놈이 걱정되시는 건 알지만 슬슬 기숙사로 돌아가….”
아이리스를 부르기 위해 치료실 안에 들어온 카밀라의 두 눈이 부릅 뜨였다.
침대 위에 찰싹 달라붙어 누워 있는 데일과 아이리스의 모습.
카밀라는 입을 쩍 벌린 채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서, 성녀님?”
“아, 카밀라 왔어?”
아이리스가 부스스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하암. 나도 모르게 데일 씨랑 같이 잠들어 버렸네. 역시 ‘일곱 눈’을 쓰면 엄청 피곤하다니깐.”
“지, 지,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계셨던 겁니까?”
“아직 데일 씨 자고 있으니까 목소리 좀 낮춰.”
아이리스가 눈을 찌푸리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네가 걱정할 만한 일은 없었으니까 안심해. 이건 어디까지나 ‘치료’ 때문에 한 일이니까.”
“치료…라뇨?”
“너도 알잖아? 내 치유 마법은 몸을 밀착한 상태에서 사용하면 효과가 늘어난다는 거.”
“…….”
카밀라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거 그냥 손만 잡은 상태에서 사용해도 효과가 늘어나는 거 아닙니까? 굳이 끌어안으면서까지 사용할 필요는….”
“카밀라.”
낮게 가라앉은 아이리스의 목소리에 카밀라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쉬잇.”
아이리스는 싱긋 미소 지으며 입가에 검지를 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