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ader of the Demonic Cult, Zhuge Se, is reincarnated as the youngest scholar RAW novel - chapter (187)
지강백은 용봉지회가 열리는 무한 황학루에 가기 전, 천마림이 위치한 호북성 동쪽 영산(英山)으로 향했다.
“오랜만이군.”
지강백이 감격스러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큰 호수를 지고 잇는 영산은 영험한 기운이 짙게 깔려 있는 곳이라, 진을 설치하기에도 매우 좋은 장소였다.
물론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지만 말이다.
‘일단 산을 타기 전 간단히 요기나 할까.’
지강백은 산의 초입에 위치한 객잔으로 향했다.
풍조객잔이라는 이름의 작은 객잔은, 이 근방에서 제법 유명한 전통 있는 객잔이었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군.’
낡은 객잔을 바라보는 지강백은 잠시 눈을 감고 추억에 젖었다.
그때, 객잔 안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평범한 외모의 젊은 청년이었다.
지강백은 그 아이를 보자마자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풍조객잔 주인장의 아들인가. 벌써 저만큼 컸나.’
전생의 지강백은 천마림에 들를 때마다 풍조객잔에서 묵었고, 덕분에 주인장과는 제법 친한 사이였다.
대충 십일 년 전이었던가.
정마대전이 일어나기 전, 마지막으로 들렀을 때 주인장의 아들은 고작 열 살이었다.
마교의 교주를 눈앞에 두고도 어찌나 웃어대던지.
그때를 회상하자 세월이 흘렀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작던 아이가 벌써 저렇게 장성했구나.’
지강백은 복잡한 시선으로 청년을 응시했다.
마침 지강백을 발견한 청년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저희 풍조객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청년, 백두의 말에 지강백은 상념에서 벗어나 고개를 끄덕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가구도 벽면도, 심지어 곳곳에 놓은 장식들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일순, 지강백의 시선이 객잔 중앙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언월도로 향했다.
사람이 들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거대하고, 또 낡은 칼이었다.
지강백의 시선을 알아챈 백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희 아버지께서 은혜를 입었던 분이 쓰시던 물건입니다. 헤헤.”
“······그랬구려.”
언월도를 쓰다듬던 지강백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비룡언월도(飛龍偃月刀).
전생의 지강백이 쓰던 주무기 중 하나였다.
흑도 토벌 이후 더 이상은 쓰기 힘들어 주인장에게 주었던 것인데.
설마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이야.
“공자의 아버님은 지금 어디 계시오?”
지강백이 물었다.
그러자 청년이 당황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아버지는······돌아가셨습니다.”
지강백이 깜짝 놀라 물었다.
“그게 무슨?”
“한 해도 채 되지 않으셨습니다.”
어색하게 대답하던 청년이 문득, 지강백에게 물었다.
“그런데, 저희 아버지와 혹시 아는 사이신가요?”
***
백윤.
객잔 뒤쪽 봉우리에 새겨진 묘비명이었다.
지강백은 객잔에서 사온 싸구려 화주 한 병을 묘비에 부으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건강하던 사람이, 어찌 그리 갔는가.”
백윤은 용감한 사람이었다.
처음 지강백이 마교 사람인 것을 알고 아무런 힘도 없는 주제에 꺼지라고 소리치며 대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러다 이후 지강백에게 은혜를 입게 되었다.
그 고을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던 흑도 문파 하나를 지강백이 단신으로 부숴버린 것이다.
지강백이 입장에서는 천마림 근처에 쥐새끼들이 얼씬거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백윤에게는 자신이 살아온 터전을 지켜준 은인과도 같았다.
그렇게 백윤은 지강백이 천마림에 들를 때마다 극진히 대접하며 반겨주었다.
지강백 역시 올곧고 호방한 그가 싫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화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의 은인께서 억울한 죽음을 당하셨거든요.”
씁쓸한 표정으로 묘비를 응시하던 백두가 지강백에게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당시 은인의 죽음에 애통해하면서 무림을 많이도 원망하셨습니다. 당신만큼은 그 분의 의로움과 선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면서······슬퍼하시다 가셨지요.”
“그랬······구려.”
백두가 저 멀리 영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버지의 유언도 이 풍조객잔을 이곳에서 대대로 이어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저 영산에는 그분이 아끼시던 보물들이 잠들어 있다면서, 그 분의 유지를 지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신신당부하셨습니다.”
“······.”
지강백은 말없이 허공을 응시했다.
금방이라도 그가 객잔 밖으로 나와서 자신과 수하들을 맞이할 것만 같았다.
‘아이고! 교주님 오셨습니까!’하면서 말이다.
‘백윤. 그곳은 평안한가? 내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다는 것을 자네에게 알려주고 싶었는데, 그대는 기다리지 못했군. 매정한 사람 같으니.’
“그럼, 전 자리를 비켜드리겠습니다. 두 분께서 밀린 말씀 천천히 나누시지요.”
“고맙소.”
백두는 깍듯이 고개를 숙이고 돌아갔다.
홀로 남은 지강백은 화주를 병째 들이켰다.
싸구려 술이 목구멍을 데우며 넘어갔다.
“백윤. 그곳에서 날 보고 있겠지? 보고 있을 것이야.”
지강백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중얼거렸다.
“하늘에서 편히 구경하고 있게. 내가 어떻게 그들에게 복수하는지 말일세. 그동안 천마림을 지켜줘서 정말 고맙네. 이제 내게 맡기게.”
지강백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긴 숨을 내뱉었다.
숨결이 마치 향처럼 하늘 위로 천천히 솟았다.
***
그날 저녁, 백두는 직접 요리를 해서 술과 함께 지강백을 대접했다.
지강백이 마교 교주인 것은 모르지만, 선친과 연이 깊은 사람임을 짐작한 것이다.
“한 잔 받으십시오.”
“고맙네.”
술도 음식도, 예전에 먹던 맛 그대로였다.
지강백은 음식을 하나하나 다 맛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술병을 들어 백두의 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요즘 장사는 잘 되는가?”
지강백의 말에, 백두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그는 술을 들이키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안 그래도 요즘 죽을 맛입니다. 근처에 녹림도로 보이는 자들이 대거 들어왔거든요.”
“녹림도?”
녹림도라 함은, 산적을 일컫는 말이었다.
전국의 산을 떠돌며 납치와 도둑질을 일삼는 도적들.
도적 주제에 자기들끼리의 연합이나 방파를 만들어 행동했으며, 나름 위계나 질서도 잡혀 있었다.
지강백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이 말썽을 일으키는 모양이군.”
“말도 마십시오. 요 근래 풍산채라고, 새로운 산채가 등장했는데, 아주 가관입니다.”
백두가 치를 떨며 말했다.
“영산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노역을 시키지를 않나, 매일같이 행패란 행패는 다 부리고, 밤에는 자기들끼리 축제를 벌여서 다들 치를 떱니다.”
“흐음.”
지강백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감히 천마림이 숨겨진 산을 헤집고 다녀?
괘씸해서라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알았다.”
지강백은 의자를 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걸음을 옮겨 객잔 밖으로 걸어나갔다.
백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 어디 가세요?”
“영산.”
지강백의 말에, 백두는 깜짝 놀라며 그를 만류했다.
“공자님! 제 말 못 들으셨습니까? 여긴 공자님처럼 유약하신 분이 가실 데가 아니라구요! 십중팔구 풍산채 잡것들의 표적이 될 겁니다!”
“괜찮네. 염려 말고 기다리게.”
지강백은 백두의 어깨를 토닥여주고는 뒷짐을 진 채 어두컴컴한 산 속으로 들어갔다.
백두는 그런 지강백을 걱정스런 눈길로 응시했다.
***
환마진(換魔鎭).
마교의 진법가, 환마가 설치한 최고의 진법으로서, 천마림을 수십 년 째 수호하고 있는 무적의 진법이었다.
일단 진 안으로 들어오면, 절정고수라 해도 죽음을 각오해야만 한다.
애초에 살려 돌려보내기 위해 설치한 진이 아니었다.
터벅.터벅.
지강백은 어두운 산 속을 거침없이 올라갔다.
강산이 변할 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마치 어제 온 것처럼 생생했다.
“도착했군.”
한참을 걷던 지강백이 멈춰선 곳은, 작은 사당이었다.
이곳이 바로 천마림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지강백이 천천히 사당으로 걸음을 옮길 때였다.
파삭!
풀숲을 가르는 소리와 동시에, 검은 그림자 두 채가 불쑥 튀어나왔다.
둘 다 사내였는데, 재빠른 몸놀림에 가죽 의복. 손에 박도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이놈들이 백두가 말한 풍산채인가.’
두 사내는 지강백을 가운데 두고 살기를 흘리며 포위망을 형성했다.
그들은 기분이 좋은 듯 클클거리며 웃었다.
그 중 한 사내가 입을 열었다.
“오오, 이게 웬 떡이야. 입은 걸 보아하니 아주 대단하신 집의 공자님 같으신데?”
사내는 혀를 내밀어 박도를 핥으며 킬킬거렸다.
다른 한 명의 사내가 그 말을 받았다.
“그러게 말이야. 요 근래 수입이 없어서 짜증나던 차였는데, 잘하면 크게 한 몫 챙기겠어. 클클클.”
사내가 박도를 들이밀며 말했다.
“우리가 누군지는 대충 짐작이 가지?”
“······풍산채.”
“오호! 설마 거기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사내는 짐짓 놀라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 순순히 우릴 따라 가줘야겠다. 물론 반항하면······알지?”
사내는 박도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해보였다.
“귀하신 옥체에 상처나기 싫으면, 반항하지 않는 게 좋아.”
“그러게 왜 혼자 겁도 없이 야밤에 산을 타? 원망하려면 네 부주의함을 탓하거라.”
가만히 듣고 있던 지강백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대꾸조차 하지 않은 채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사내가 얼굴을 찡그리며 박도를 들어 지강백을 멈춰세웠다.
“가도 된다고 말한 적 없······.”
“꺼져라.”
직후, 지강백은 옷소매 사이에 감춰두었던 두 팔을 꺼내 휘둘렀다.
파팟! 파바밧!
손끝에서 터져 나간 작은 돌풍이 단번에 사내들에게 짓쳐들었다.
“크악!”
“으아악!”
두 사내가 돌풍에 휩쓸려 나가떨어졌다.
풍신환원공. 청풍명월 초식이었다.
“흥.”
한 수에 두 산적을 제압한 지강백이 출수한 손을 집어넣으며 걸음을 옮겼다.
곧 그의 신형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환마진의 입구를 통과하자 사방이 석벽으로 막힌 기다란 복도가 나왔다.
화륵.
지강백이 지나가는 길에 저절로 불이 붙었다.
한 달 간 익힌 화접공으로 간단히 불을 일으킨 것이다.
터벅.터벅.
지강백은 복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가 끝나는 곳에는, 거대한 신전이 있었다.
이곳은 본래, 역대 천마들 중 한 사람의 묘를 보관하는 곳이었다.
마교의 오래된 고서를 찾던 도중, 지강백이 우연히 발견한 곳이었다.
천마림은 여전했다.
거대한 제단을 중심으로 끝이 보이지 않게 뒤덮인 황금의 산.
그동안 지강백이 온갖 이민족들과 흑도들을 토벌하며 쌓은 재산이었다.
다 합치면 중원의 성도를 살 수도 있을 터였다.
지강백은 걸음을 옮겨 제단 위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천마의 시체가 든 관과, 비석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터억.
지강백은 왼편에 있던 비석을 가볍게 눌렀다.
그러자 바닥이 우르르 진동하며 그곳에서 수많은 병장기들이 튀어나왔다.
전부 긴 세월 동안 보관되어 온 강호의 신병이기들이었다.
하나하나가 천만금을 줘도 사지 못하는 보물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터억.
이번에는 오른편에 놓인 비석을 가볍게 눌렀다.
그러자 이번에는 양쪽 벽면이 우르르 진동했다.
왼쪽 벽면이 접히며 그곳에서 각종 고서들이 꽃혀 있는 책장이 나열되었다.
또한 오른쪽 벽면에는 강호에 알려진 수많은 영약들이 잘 보관된 채로 나열되었다.
찬찬히 그것들을 살펴본 지강백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머금었다.
아마 이 광경을 무림인이 보게 된다면 그 자리에서 눈이 뒤집혀 혼절했을 터였다.
“멀쩡하군. 이대로면 무리없이 계획을 진행시킬 수 있겠어.”
그러나 지강백이 정말로 찾는 건 그곳에 없었다.
스윽.
지강백은 고개를 돌려 천마의 관을 응시했다.
그렇다. 그가 가장 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천마의 관 안에 있었다.
‘평생 꺼낼 일이 없을 줄 알았건만······.’
지강백은 이곳에 올 때까지도 계속해서 고민했다.
정녕 금기를 깨고 이 관을 열어야 하는 것인지.
허나 이 관을 열어 그 안에 든 것들을 취하지 않고서는, 현경에 도달할 수는 있어도 절대 생사경의 경지까지는 도달할 수 없을 터였다.
“그래. 뭘 망설이고 있나, 지강백. 마교는 멸교당했고 난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교의 후손이다. 이 정도면 선조님께서도 허락해 주실 거야.”
지강백은 먼저 관의 앞에 세 번 절을 올렸다.
금기를 깨기 전, 선대에게 갖추는 예였다.
‘죄송합니다. 허나 아수라의 혼도, 아수라파천신공도, 천마신공도 없는 제게 천유성을 이길 수 있는 마지막 방도는 선조님의 힘을 취하는 것입니다. 부디 용서하시길.’
지강백은 침을 꿀꺽 삼키며 관에 손을 대었다.
드르륵.
오래 된 석관의 뚜껑을 열자, 안쪽이 드러났다.
지강백은 관의 안을 살펴보다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찾았다.”
다행히도 있었다. 생사경에 들 수 있는 전설의 신물(神物)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