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ader of the Demonic Cult, Zhuge Se, is reincarnated as the youngest scholar RAW novel - chapter (242)
후두두둑-.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장대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전생의 지강백은 정마대전을 시작하고 몇 년이 지난 후, 마지막으로 팽연화를 보기 위해 수하들 몰래 팽가로 향했다. 전쟁은 패색이 짙었고, 지금이 아니면 팽연화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팽연화는 정마대전이 시작한 이후, 지강백과의 관계를 가주에게 들켜 방에 구금되어 있었다.
지강백은 마음 같아서는 그녀를 데리고 마교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만약 전쟁에서 패한다면 그녀 역시 처참한 최후를 맞을 터였다. 지강백은 그걸 바라지 않았다.
지강백은 팽연화가 구금된 방 앞에 등을 기대고 앉은 채 한참을 앉아있다가 돌아갔다.
그때 팽연화가 했던 중얼거림은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사모합니다······. 가가······.”
***
지강백이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뭔가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다행히 성공했군. 후우······.”
두 번이나 겪기에는 너무도 끔찍한 고통이었다. 지강백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볍게 몸을 돌린 다음, 내공을 운용하며 단전을 확인해보았다.
우우웅.
내공이 움직일 때마다 단전에 충만한 뇌기가 반응했다. 내공이 더욱 깊어졌을 뿐 아니라 힘과 속도, 모든 면에서 몇 단계는 더 강해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달라진 점이 있었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이 흰 백발로 바뀌어 있었다. 제석천의 혼을 받아들이며 일어난 신체의 변화 중 하나인 듯했다. 지강백은 백발을 길게 묶어 올렸다.
검은 교룡갑 위에 푸른 장포를 걸친 지강백은 무기가 걸려있는 곳으로 향했다. 제갈세가의 가주들이 사용하는 보검, 옥영은 아무래도 천마림의 보검에 비해 질이 떨어지다보니 주무기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홍매검은······사실 지강백이 화산파로 향하는 이유가 홍매검을 그들에게 돌려주기 위함이었다. 그동안 쓸 만큼 썼고, 천마림에는 홍매검보다 더 훌륭한 보검도 많았다.
잠시 고민하던 지강백은 손을 뻗어 백색의 검집을 쥐었다. 검은 검집부터 검의 손잡이까지, 전부 새하얀 백색에 연꽃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이 검은 먼 과거에 강호를 주유했던 선녀, 전설의 월하선녀(月下仙女)가 썼다는 보검, 월영검(月影劍)이었다.
지강백은 검을 뽑아들었다. 검신이 마치 보석처럼 어두운 동굴 안에서도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확실히 보검은 보검인지, 검면이 매우 얇고 부서지기 쉬울 것 같은데도 강기를 무리없이 주입시킬 수 있을 만큼 단단했다.
가볍게 허공에 대고 몇 번 휘둘러본 지강백은 만족하며 월영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걸음을 돌려 천마림을 나섰다.
***
화산파는 구파일방 중 하나이며 섬서성 화음현에 자리한 오악 중 하나인 화산에 터를 잡고 있다.
화산파의 상징은 뭐라해도 검(劍)이라고 할 수 있다. 무당파로 비견되기도 하지만, 무당이 심신 수양과 태극의 묘리를 깨우치는 데 중점을 둔 반면, 화산파는 오로지 검과 검의 경지만을 추구한다.
“어서 오시게. 미리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던 참이네.”
화산파의 장문인이자 매화검선이라 불리는 고수, 천운자는 쌍수를 벌리고 지강백 부부를 환영했다. 지강백은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불쑥 찾아와 실례를 끼쳐드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강남의 지배자이자 젊은 신예 고수의 상징인 옥룡을 누가 싫어하겠는가? 안 그래도 제갈 가주가 온다는 소식에 본문의 제자들이 눈을 빛내며 기뻐하고 있다네.”
천운자는 남궁미향에게도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폐월수화, 침어낙안의 칭호를 잇는 당대의 미녀가 이곳에 있었구려. 남궁 부인. 무당논검대회 이후로 처음인가? 화산파에 온 것을 환영하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대협.”
“자자, 일단 안으로 들어가지.”
장문인이 거주하는 옥청궁으로 안내한 천운자는 두 사람에게 차를 손수 따라주었다.
“서찰에 쓴 내용은 보았네. 한동안 이곳에 묵고 싶다고?”
“예. 강호도 유람하면서 화산의 검을 견식하고 싶습니다.”
“아주 잘 선택했네. 사실 무당이나 소림은 제약이 많잖은가? 고기나 술도 함부로 못 마시게 하고 말이야. 허허. 그에 비해 우린 그런 제약이 없거든.”
허허롭게 웃은 천운자가 남궁미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침 본문의 일대제자들이 연화봉에 모여 수련을 하고 있는데, 구경이라도 가 보겠는가?”
“그럴 기회를 주시면 저야 감사하지요.”
남궁미향은 눈을 빛내며 기쁨을 드러냈다.
천운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묵을 거처는 나중에 제자를 시켜 안내해주겠네. 마침 날씨도 좋고 매화도 예쁘게 피었으니 온 김에 화산의 정경을 마음껏 감상하시게.”
천운자는 매화검수 중 한 명인 연홍이라는 검수를 불러 두 사람을 안내하라 지시했다.
젊은 연홍은 화운사신을 쓰러뜨린 지강백을 깊이 흠모하고 있던 사내였다. 그는 얼굴까지 붉히며 지강백을 보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아, 이걸 어떡하지······아직 마음의 준비가······.”
지강백은 허둥거리는 연홍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반갑군, 연홍. 앞으로 잘 부탁하네.”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 바로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연화봉으로 향했다. 수련장에 가까워지자 호쾌한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수백에 가까운 화산의 제자들이 무예를 수련하는 광경은 매우 장관이었다.
“잠깐만······.”
“저기 저 사람, 설마?”
일대제자들은 수련장에 나타난 지강백 부부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남을 제패한 옥룡의 명성은 화산파에도 익히 알려져 있었다.
안내를 맡은 연홍은 뿌듯한 표정으로 외쳤다.
“여기 계신 두 분은 제갈세가의 가주이신 제갈빈 대협과 남궁 부인이시다. 한동안 화산에 계실 예정이시니 예를 갖춰 대해야 할 것이다!”
파팟!
화산의 제자들은 일사불란하게 자세를 다잡고 포권을 취했다.
“화산의 제자들이 대협을 뵙습니다!”
지강백은 여유롭게 인사를 받았으나 남궁미향은 살짝 부끄러운 기색이었다.
사실 지강백의 무위야 강호에 널리 퍼져 있었지만, 그에 비해 남궁미향은 많이 묻힌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지강백은 알고 있었다. 남궁미향의 무위는 여기 있는 제자들이 아니라 매화검수들에 비해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이번 기회에 호야 뿐 아니라 남궁미향 또한 천하제일의 고수로 키울 준비를 할 생각이었다.
남궁미향은 지금껏 실전을 그닥 겪어보지 않았다. 연습 대상이라고 해봐야 지강백과 호야 정도였다.
그녀에게는 자신과 비슷한 경지에 오른 자들끼리의 대결과 경험이 필요했다. 이번 화산파 나들이는 그녀의 눈을 넓게 만들어줄 것이라 확신했다.
이에 지강백은 연홍에게 부탁해 일대제자들과 남궁미향의 비무를 주선했고, 연홍은 흔쾌히 수락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실력을 발휘해봐.”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답지 않게 겸손은. 남궁세가의 검은 능히 최상승의 검예라 불릴 만 해. 그리고 조금 전에 연홍에게 들어보니 이번 일로 남궁세가를 얕잡아보는 놈들도 여럿 있다더군.”
지강백은 일부러 남궁미향의 성질을 살짝 건드렸다. 혼인 후 많이 얌전해지고 여느 아가씨처럼 밝아졌지만, 지강백이 기억하는 그녀는 호전적이고 화끈한, 조금은 포악할 정도로 완전히 무인이었다.
“그 바보들에게 제대로 본때를 보여주라고.”
역시나, 지강백이 성질을 조금씩 건드리자 남궁미향의 예전 성격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한껏 사나워진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건방진 애송이들에게는 매가 답이지.”
“좋아.”
남궁미향은 위풍당당하게 목검을 들고 비무장으로 올라왔다. 지강백이 조금 전 말했던, 소위 남궁세가를 만만하게 보는 일부 제자들이 비웃음을 흘리며 반대편에서 올라왔다.
‘흥. 제갈세가 정도에 밀릴 정도면 끝물이라 이거지.’
제자들은 지강백이 보고 있으니 함부로 할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하고, 대충 가볍게 받아주다가 쓰러뜨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비무가 시작되고 눈 한 번 깜빡할 사이 사라지고 말았다.
퍼퍼퍼퍽!
단숨에 접근한 남궁미향이 첫 번째 비무 상대에게 단숨에 몇 번이나 검격을 명중시켰다. 사내는 어떻게 당했는지 인지조차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엎어졌다.
“다음.”
남궁미향이 목검을 가볍게 빙글 돌리며 말했다.
화산파의 제자들이 입을 쩍 벌린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화산파의 일대제자 쯤 되면 어지간한 후기지수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아니, 오히려 그들을 넘어서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압도적으로 차이가 날 줄이야!
“풋!”
지강백은 저도 모르게 소리내어 웃었다. 부부는 닮는다더니, 꼭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래서 좋았다.
“이번에는 내가 나가겠소!”
자존심이 한껏 상한 다른 사내가 빠르게 올라왔다. 그는 앞선 사내가 방심하다가 당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 또한 비무가 시작되자마자 어깨와 다리에 힘이 풀린 채 주저앉고 말았다.
“어어?”
“비무 끝.”
연홍은 놀랍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매화검수 중 한 명인 그는 알 수 있었다. 남궁미향의 실력은 겨우 일대제자 따위가 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녀는 지금 매화검수와 겨룰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옥룡의 부인이라더니······하긴, 옥룡의 명성에 가려지긴 했지만 원래도 후기지수들 사이에서 검술이 뛰어나기로 유명햇지.’
지강백은 흐뭇한 표정으로 부인을 쳐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소식을 듣고 어느새 화산의 매화검수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남궁미향을 구경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감탄을 흘리며 흥미로운 표정으로 남궁미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강백은 연홍을 불러 그에게 말했다.
“내자의 무공이 생각보다 더욱 뛰어나니, 이번에는 매화검수들과 대련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저도 마침 그 생각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연홍은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강백이 고개를 돌리자, 살짝 흥분된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미소를 보내는 남궁미향이 보였다.
그래. 너는 검을 들었을 때 가장 아름답고 멋있는 여자야.
지강백은 흐뭇한 미소로 화답했다.
***
그날 밤, 지강백은 천운자와 함께 차를 마셨다.
남궁미향은 매화검수들과 밤늦게까지 대련을 하다가 그들과 얘기를 나누느라 저녁도 잊고 집중했다. 시녀들과 담소를 나눌 때보다 즐거워보이고, 무엇보다 그녀의 표정이 진지해 굳이 부르지 않았다.
달칵.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은 지강백이 천운자를 향해 말했다.
“사실 제가 화산파에 온 이유는 하나 더 있습니다.”
지강백은 옆에 내려놓은 홍매검을 들어 천운자에게 건넸다.
“이 검을 돌려드리려고 합니다.”
“천화가 자네에게 승계한 검일세. 나 또한 그것을 인정했고. 굳이 이러지 않아도 되네.”
“생각해보니 천화 진인께서도 당신의 제자에게 검을 잇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제가 홍매검을 천화 진인의 제자에게 승계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강백이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차후 제가 흑무림맹을 무너뜨릴 때, 화산파에서 누구보다 힘을 보태주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으음······.”
천운자가 수염을 쓸며 고개를 끄덕였다.
“흑무림맹을 무너뜨리는 과업은 천화만의 일이 아니라 정파인들의 숙명이기도 하네. 당연히 자네를 도와줄 것이야.”
그러나 그는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천화의 제자들 중 홍매검을 승계할 만한 재목이 딱히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란 말이지······. 다들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절정조차 넘지를 못했으니 말이야. 딱 하나, 재목이 있기는 한데······.”
“있기는 한데?”
“다른 쪽으로 자질이 부족하네. 홍련(紅蓮)이라고, 천화가 마지막에 거두었던 제자 한 녀석이 있는데, 성격이 포악하고 성정이 불같이 사납네.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를 못하고 누굴 따를 그릇이 못 되네. 꼭 야상 늑대 같은 아이지.”
“그렇군요.”
“그래도 무재 하나만큼은 출중하네. 자네와 비슷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절정을 넘어섰고 천부적으로 전투에 관한 재능이 뛰어나네.”
지강백은 그 홍련이라는 여자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말 안 듣는 야상마를 길들이는 건 내 전문이지.’
그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천운자에게 말했다.
“그 홍련이라는 아이를 만나고 싶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