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ader of the Demonic Cult, Zhuge Se, is reincarnated as the youngest scholar RAW novel - chapter (289)
식사 자리가 끝나고 천유성이 침소로 가기 위해 복도로 나왔을 때였다.
“아버지!”
그의 막내아들 천지후가 비단 장포를 펄럭이며 복도를 가로질러왔다.
“오늘 구파일방과 명문세가의 사람들을 모아 만찬회를 여셨다면서요? 맹주 선거 때문이지요? 유태 형님을 후보로 추천하게 만드시려고요. 그렇지요?”
“네가 무슨 관심이냐. 무림의 일에는 신경도 안 쓰던 녀석이.”
“아버지. 제가 예전에 말씀드렸잖습니까! 저에게도 기회를 달라고요! 저도 맹주 후보로 나서겠다고 말입니다.”
천지후의 말에 천유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천운자, 그 망할 영감탱이 덕분에 골치가 아팠는데, 막내아들마저 떼를 써대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시끄럽다. 네가 네 형에게 덤빌 자격이 된다고 보느냐? 허구한 날 술에 여색에, 재주도 인품도 없는 놈이 어딜. 쓸데없이 나서서 설치다 네 형에게 방해나 되지 말고 가만히 있거라.”
천유성은 천지후를 향해 경고를 날리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어차피 널 추천해줄 사람도 없을 것이다.”
“······!”
천지후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어졌다. 천유성은 그런 천지후를 둔 채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천지후는 아버지가 지나간 자리를 노려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때, 건너편에서 천유태가 팽연화와 함께 이쪽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천지후는 형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얼굴이 구겨졌다.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자신에게 열등감을 주는 존재. 천지후는 천유태를 만날 때마다 자신이 짓눌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후 네가 여긴 무슨 일이냐?”
천유태의 물음에, 천지후는 대수롭지 않은 양 말했다.
“맹주 후보로 나도 넣어달라고 어버지께 부탁드리러 왔어.”
“뭐?”
천유태는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아서라. 네가 쓸데없는 데에서 나와 경쟁심을 불태우는 건 알고 있지만 이번만큼은 네가 장난으로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누가 장난이라는 거지? 난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그래? 그럼 열심히 해 보거라. 누가 널 추천할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는 천유성과 천유태의 발언에 천지후는 극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그런데 순간, 천지후는 기발한 묘안을 하나 떠올렸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추천할 사람이야 있지. 그것도 아주 대단한 인물이 말이야.”
천지후는 천유태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그를 지나쳤다.
천유태는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제갈 가주 때문에 걱정되는데 저 녀석까지······.”
“막내 도련님이야 늘 그렇잖아요. 당신이 이해해 주세요.”
팽연화의 말에 천유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저 망나니 동생 따위에게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니었다. 한시라도 빨리 제갈빈을 만나 그의 의중을 들어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아버지는 제갈빈이 맹주 후보로 나올 일은 없을 것이라 장담하셨지만······.’
천유태가 아는 대로라면 제갈빈은 아버지가 신뢰하는 측근 정도였다. 그가 정말 아버지의 편이라면 아버지의 명에 따라 자신을 추천하고 자신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다.
그러나 일말의 불안감이 계속 그를 찔러댔다. 정말 제갈빈이 순순히 말을 따를까? 혹 맹주 자리에 욕심을 가지고 후보로 나서면 어떡하지? 하는, 그런 불안감.
“일단 제갈 가주에게 서신을 넣어 빠른 시일 내에 자리를 만들어야겠군.”
그러나 천유태가 서신을 보냈을 땐, 이미 지강백이 천산으로 향하고 난 한참 뒤였다.
***
계단을 내려온 지강백의 앞에 펼쳐진 것은 싸늘한 냉기가 흐르는 지하 복도였다.
성지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인 데다가 무엇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마교의 성지인 만큼 무엇이 나온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듯했다.
지강백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가 숨을 내쉴 때마다 허연 김이 흘러나왔다.
‘꼭 무당산 지하를 갔을 때 같군.’
음양의 조화가 부서진 곳에서 나타나는 이상 현상. 이곳 역시 지나치게 가득한 음기로 인해 차가운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터벅터벅.
복도를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인공적으로 지어진 듯 보이는 거대 건축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란 기둥이 천장을 떠받치고 그 가운데에는 정체모를 해골 하나가 화려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누구의 해골일까. 역대 천마들 중 한 명인가?
지강백이 의자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은 순간이었다.
화악!
해골을 중심으로 터져 나온 거대한 마력이 지하 공간을 가득 메웠다. 마력은 곧 한데 뭉쳐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누구냐!”
지강백이 소리치자 형상은 기분 나쁜 웃음을 터뜨렸다.
『성지에 멋대로 발을 딛은 불경한 자여.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함부로 들어온 것이냐.』
직후, 지강백의 귀에서 뜨거운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단지 목소리만으로 내부에 충격을 가한 것이다.
형체도 없는 한낱 사념에 불과한 존재가 저런 기운을 지니고 있다니. 지강백은 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교조(敎條)! 당신이 초대 천마이십니까?”
『본좌의 질문에 답하라.』
이번에는 목구멍을 타고 피가 울컥 흘러내렸다.
“쿨럭!”
지강백은 입으로 손을 막으며 무릎을 꿇었다. 화경에 오른 육체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때, 지강백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제석천의 혼이 알아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지강백의 전신에서 흘러나온 푸른 전류가 그를 감쌌다.
『이 기운은, 제석천의 기운이 아닌가.』
형상은 적잖게 당황한 듯했다.
지강백은 이 틈을 노려 형상과 대화를 시도했다.
“저는 본교의 마지막 천마이자 제석천의 혼을 받아들인 당신의 후손입니다.”
『마지막 천마라니, 그럼 교가 사라졌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수 년 전, 제국과 무림에 의해 멸교당했습니다.”
『허허······. 어쩐지 신녀의 기운이 근래 느껴지지 않더라니.』
회한에 찬 어조로 중얼거리던 형상이 대뜸 분노를 쏟아냈다.
『헌데 너는 교를 지키지 못한 주제에 무슨 낮짝으로 우리 앞에 기어나왔느냐!』
푸슉!
지강백의 눈과 코, 귀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지강백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삼켰다.
제석천의 힘이 보호해준다고 해도 감당하기 힘든 기운이었다.
거기다, 마교의 멸망이라는 사실에 반응한 것인지 성지에 잠들어 있던 나머지 천마들도 잇따라 분노의 사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크윽······.”
지강백은 무릎을 꿇은 채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죄송합니다. 허나 하늘이 도운 덕에 새 몸으로 환생하여 다시 복수를 꿈꾸고 있습니다. 전쟁 당시 아수라의 혼은 부서진 터라 제석천의 혼을 품었습니다만, 원수들을 상대하기에는 힘이 모자랍니다.”
『네가 성지에 온 이유는 그 힘을 찾기 위함이렷다?』
“바로 그렇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초대 천마가 익혔던 최초의 마공 비급이 이 안에 잠들어 있다고 하여······.”
형상은 잠깐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그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네?”
『마공의 비급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이곳은 오로지 천마의 혼이 잠들어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허나, 그걸 전수해줄 수는 있느니라.』
지강백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황급히 포권을 취하며 간곡히 사정했다.
“부탁드립니다. 교의 복수를 위해 힘을 빌려주십시오.”
『좋다. 허나 천마의 몸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한 번 죽은 목숨입니다. 무엇이 더 두렵겠습니까.”
직후, 검은 형상이 꾸물거리며 제대로 된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네 뜻이 그렇다면 내 무공을 전수하겠다.』
형체는 곧 젊은 사내의 몸이 되었다. 검은 무복을 입은 장발의 청년이었다. 지강백은 초대 교조의 얼굴을 마주하고 탄식을 흘렸다.
『이곳은 내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허나 현신(現身)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니 속성으로 가르칠 것이다. 각오 단단히 하거라.』
“감사합니다.”
『그 전에, 일단 너의 경지를 가늠해 봐야겠다.』
우선 싸우고 시작하자는 건가.
그렇잖아도 초대 교조의 힘이 궁금하던 지강백이었다. 월영검을 뽑아든 지강백은 잴 것 없이 처음부터 전력을 꺼내들었다.
콰르릉!
제석천의 번개가 지하 공간을 가득 뒤덮었다.
“그럼, 한 수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터엉! 바닥을 박찬 지강백은 질풍처럼 쇄도했다. 최강의 초식으로 일격에 끝을 볼 작정이었다.
『새 몸을 얻었다더니, 한심하구나.』
교조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주먹을 날렸다.
다음 순간, 지강백의 옆구리에 구멍이 생기며 일시적인 진공(眞空)이 일어났다.
뼈가 부서지고 근육이 뒤틀리는 충격이 지강백을 덮쳤다.
“크억!”
지강백이 끌어모은 기운은 바람처럼 흩어져 버렸다. 바닥에 엎드린 채 손으로 상처를 막은 지강백이 신음을 흘렸다.
‘대체 뭐였지? 어떻게······.’
대응은커녕,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전생의 몸이었다고 해도 막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때, 지강백의 앞으로 다가온 교조가 싱긋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뭣하고 있느냐. 어서 일어나지 않고.』
파파팟!
지강백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낸 지강백은 푸른 벼락이 되어 교조를 향해 쏘아졌다.
콰르릉!
그러나 이번에도 교조는 한 손을 들어 지강백의 공격을 막았다. 심지어 두 손가락만으로 월영검을 잡은 채였다.
“이럴 수가!”
지강백이 경악해 소리쳤다.
『제법 좋은 검이군. 허나 이까짓 걸로는 내 무공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느니라. 그냥 버려라.』
콰직!
교조는 손가락에 힘을 줘 월영검을 부서뜨렸다. 지강백은 산산히 조각나 흩어지는 검의 파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월하선녀의 검이자 신물로 평가받는 월영검이 이렇게 쉽게 부서진단 말인가!’
이걸로 확실해졌다. 교조는 자신이 전생에 가졌던 힘을 월등이 상회하고 있었다!
직후, 교조의 손바닥이 지강백의 뺨을 사정없이 갈겼다.
쩌저정! 지강백은 포탄처럼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다시.』
후두둑.
바윗더미에 깔린 채 숨죽이고 있던 지강백이 몸을 일으켰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도 굴복하기는커녕, 오히려 눈이 빛나고 있었다. 그 눈빛을 마주한 교조가 처음으로 흥미를 내비쳤다.
『좋은 눈빛이다..』
“아직 멀었습니다.”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지강백이 말했다.
교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까딱였다.
『물론이다. 오랜만에 유희(遊戱)를 즐길 기회인데, 쉽게 끝낼 수는 없지. 오너라.』
파팟!
지강백은 이를 악물고 교조를 향해 달려들었다.
***
그 시각, 남궁미향의 저택에는 사뭇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해가 질 즈음, 그녀의 저택에 두 사람이 찾아왔다. 홍련은 그들을 데리고 남궁미향의 방으로 향했다.
“아가씨. 의원님들을 모시고 왔습니다.”
“수고했어. 련.”
남궁미향의 앞에 앉은 의원들은 그녀를 진찰하며 맥을 짚었다. 홍련은 그 모습을 걱정스런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요 근래 식사도 제대로 못 하시고 몸이 무겁다고 하세요.”
신중히 맥을 짚던 의원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가 물었다.
“부인. 혹시 달거리를 언제 마지막으로 하셨습니까?”
“네?”
남궁미향이 입을 조금 벌렸다. 설마?
의원은 확신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희미하지만 태맥(胎脈-아이를 베었을 때 잡히는 맥)이 잡힙니다. 회임하셨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홍련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얼마나 놀랐는지 말까지 더듬었다.
“자자자, 잠깐만요! 그럼 이게 다 회임 증상이었다고요?”
“네. 축하드립니다.”
홍련은 뛸 듯이 기뻐하며 남궁미향의 손을 잡았다.
“어떡해! 너무 잘 되었어요, 아가씨!”
남궁미향의 얼굴이 놀라움에서 환희로 바뀌었다.
내가 그 사람의 아이를······.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행복감이었다.
“아아, 스승님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잠깐, 이럴 게 아니라 당장 서신을 보내 알려야······.”
호들갑을 떨며 중얼거리는 홍련에게 남궁미향이 말했다.
“아무한테도 목적지를 말하지 않아서 알릴 수가 없어.”
“그럼 어서 돌아오시기를 바라야겠네요. 어떤 표정을 지으실지 기대돼요.”
남궁미향은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가 돌아왔을 때 기쁜 소식을 전해줄 마음에 벌써 두근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