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ader of the Demonic Cult, Zhuge Se, is reincarnated as the youngest scholar RAW novel - chapter (302)
지강백은 침상 앞에 걸터앉아 팽연화를 응시했다.
팽연화의 몸상태는 시녀들의 말대로 좋지 않았다. 식은땀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 있고 살짝 열린 입술에서는 고통스런 신음이 흘러나왔다. 간간히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기도 했다.
지강백은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몸이 불덩이였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이 몸에 충격을 준 것인가.’
정말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강백은 그동안 그녀를 오해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진실을 받아들이고 힘들었을 그녀를 위로해줘야 했다. 원한다면 그녀가 행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생각도 있었다.
홀로 자신의 복수를 위해 적진에서 영겁(永劫)의 시간을 보내온 여인이다. 그 대가가 무엇이든 지강백은 거리낌없이 지불할 생각이었다.
“연화야.”
지강백의 부름에 팽연화가 힙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눈앞에 아무도 없자 팽연화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일어나려는 그녀를 가볍게 잡아 다시 눕힌 지강백이 귀음무명공을 해제했다. 팽연화의 눈에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맺혓다.
지강백은 직접 수건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울어도 된다. 처소에 방음진(防音陣)을 펼쳤으니 말이다.”
“가가······!”
팽연화는 조금 전까지 신음을 흘리며 누워있던 모습이 거짓말같이 벌떡 상체를 일으켜 지강백의 품에 안겼다. 지강백의 옷깃을 부여잡은 팽연화가 오열했다.
“정말······보고싶었습니다. 으흐흑······.”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더냐.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한 것이냐.”
“오로지 당신의 복수만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오직 복수 하나만을 위해서요. 복수가 끝나든 끝나지 않든, 당신의 곁으로 가는 그날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팽연화는 지강백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가가. 지금까지 저를 원망하고 계셨지요? 허나 저는 단 한 번도 그자를, 천유태를 마음에 품은 적이 없습니다. 전 언제나 당신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니 제발 저를 용서해주세요······제발.”
“널 알고 지내온 세월이 얼마나 되었느냐. 네가 거짓을 하지 않고 있음을 안다. 그러니 더 이상 마음의 짐을 지우지 말거라.”
지강백의 이 말에 팽연화는 슬픈 와중에도 날아갈 듯 기뻤다.
“정말 무서웠습니다. 홀로······당신이 없는 세상에서 홀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도 무서웠습니다······.”
“이제는 내가 있으니 염려할 것 없다. 천유성도, 그 누구도 너를 위험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팽연화는 그동안 쌓이고 쌓인 한(恨)을 토해내듯 서럽게 울고 또 울었다. 지강백은 그녀의 울음이 그칠 때까지 등을 토닥이며 다독여주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지강백은 팽연화를 다시 침상에 뉘였다. 마음의 응어리를 쏟아낸 팽연화의 얼굴은 눈에 띄게 밝아져 있었다.
팽연화는 지강백의 손을 장난치듯 만지작거리며 배시시 웃었다. 원숙한 나이에 접어든 그녀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소녀처럼 굴었다.
“아아, 이 순간이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꿈이어도 좋은 꿈을 꿨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으냐.”
“가가. 정말 좋은 꿈은 행복한 것을 보고 깨는 꿈이 아니랍니다. 그건 악몽(惡夢)이지요.”
“어째서 그러하냐?”
“행복하고 달달한 기분을 맛보다 눈을 떴는데 그것이 허상임을 실감했을 때. 그때 느끼는 상실감과 공허함은 이로 말할 수 없습니다. 꿈에서 맛본 행복감의 두 배는 더한 고통을 느낄 뿐이니 악몽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팽연화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지강백은 그녀가 지금껏 그런 꿈을 꿔왔음을 눈치채고 말없이 이마를 쓰다듬었다.
“화경에 들었더구나.”
“네.”
“내가 마지막에 가르쳤을 때 분명 화경에 들 것이라 예상하긴 했다만······. 네 성취가 이렇게 높아졌을 줄은 몰랐다. 열심히 수련했구나.”
“복수을 위한 일념으로 수면을 취하는 시간을 빼면 대부분을 무공 수련에 투자했습니다. 아직 멀었지만요.”
팽연화는 마치 칭찬을 바라는 아이처럼 지강백을 향해 웃었다.
“가가. 그럼 환생한 직후 지금까지 복수의 계획을 준비해오고 계셨던 겁니까?”
“그래. 이제 남은 건 천유성과 마태룡 뿐이다.”
“선거에 후보로 나선 이유는 맹을 접수하고 천유성을 죽이기 위함이지요?”
“선거는 놈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과정 중 하나일 뿐. 나는 놈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은 뒤 끝으로 목숨을 앗아갈 것이다.”
“가가. 천유성은 이번 선거를 위해 무슨 짓이든 서슴없이 저지를 생각입니다. 이미 아셨겠지만 재야에 숨겨둔 화경의 실력을 지닌 수하들까지 꺼내들었지요. 선거에서 확실히 이기기 위해서는 내부자의 도움이 필요할 것입니다. 제가 그 역할을 하겠습니다.”
팽연화가 적극적으로 나서자 지강백은 그녀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물론 그녀를 내부자로 하여금 천유성의 내부를 뒤흔들자는 계책은 지강백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곧 자신의 계책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연화야. 넌 지금까지도 아주 잘 해주었다. 난 더 이상 네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하지 않을 것이야.”
“가가. 천유성에게 복수를 하는 것은 저의 염원이기도 했습니다. 수 년에 걸친 복수의 끝맺음을 함께 맺을 수 있게 해주세요.”
“연화야······.”
“그렇게 미안하다는 눈으로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가께서 원하시면 저는 손에 피를 묻히든 똥통에 발을 담구든 즐거이 할 테니까요.”
팽연화는 진심으로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에서 진심을 읽은 지강백도 더는 만류하지 않았다.
“연화야. 천유성의 복수가 끝나면 내 너를 위해 무엇이든지 이뤄줄 것이다. 중원 제일의 갑부이자 권력자인 제갈빈이 바로 나다. 고작 산해진미와 궁궐같은 대저택, 화려한 비단옷이 네 상처와 고통을 치유해줄 수는 없겠지만······.”
“가가. 제가 원하는 건 단 하나입니다. 가가와 함께 살아갈 수만 있다면 저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직후, 지강백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그는 부드럽지만 단호히 말했다.
“연화야. 내 너를 평생 연모했다. 온갖 시련과 오해가 우릴 막고 있었던 것도 안다. 허나 그 시간동안 너를 향한 마음은 떠나보낸지 오래다.”
이번에는 팽연화의 표정이 굳어졌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머릿속에 한 여인의 모습이 그려졌다. 남궁세가의 차녀이자 현재 그의 옆자리를 꿰차고 있는 여인. 남궁미향이.
“가가······. 설마 그녀를 마음에 품으신 겁니까?”
지강백은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은 곧 긍정을 의미했다.
분명 정략으로 맺어진 혼인이었고, 남궁미향에게 있어서 지강백은 아버지를 죽이고 가문을 흡수한 인물이다. 지강백에게 있어서도 남궁미향은 원수의 딸이었다. 이 둘이 이어질 확률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어째서!
“가가. 저에 대한 원한이 그녀를 향한 연심으로 바뀐 것이 분명합니다. 저도, 가가도 아직 서로를 사모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물론 너를 향한 원망도 있었지만 그것과는 상관이 없다.”
“아뇨. 그게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여자를 마음에 품으실 리가 없습니다. 분명 그럴 겁니다.”
방금 전까지 마음속에 불던 봄바람은 사라지고, 싸늘한 냉기만이 흘렀다. 팽연화는 억울함과 섭섭함에 눈물이 울컥 차올랐다.
“시간. 그래요.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줄 겁니다. 천유성의 복수가 끝나고 원래대로 돌아가면, 가가의 마음도 틀림없이 바뀔 겁니다.”
“그녀가 내 아이를 회임했다.”
“!”
“잔인한 말로 들릴 수 있으나, 너를 더 이상 상처주지 않으려면 지금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듯 싶구나. 내가 다시 너에게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를 원망해도 좋으나, 그것만큼은 명심하거라.”
지강백이 팽연화를 잘 아는 만큼, 팽연화 또한 지강백이라는 사내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도 안다.
지강백이 남궁미향의 어떤 면에 넘어간 것인지는 모르나, 팽연화의 입장에서는 그의 마음을 빼앗아 간 도둑에 불과했다. 더군나다 그의 아이를 회임까지 했다니.
팽연화를 입술을 질끈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시린 눈동자에 독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아니요. 저는 확신합니다. 당신은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아니면······제가 그렇게 만들 겁니다.’
***
강무영은 홍련과 함께 천마림이 위치한 영산에 도착했다. 이미 그곳에는 몸을 회복한 호야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네가 호야로구나. 가주님께 말은 많이 들었다.”
“네가 강무영이로군. 나를 훈련시킨다지? 어디 실력이나 좀 보자!”
호야는 다짜고짜 강무영을 향해 달려들었고, 강무영은 보란 듯 호야를 굴복시켰다.
“허허. 이거 참 짐승같은 놈일세.”
강무영은 지강백이 왜 호야를 탐냈는지 얼추 알 것 같았다.
흔치 않은 야성과 신체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깊은 투지를 읽을 수 있었다.
홍련 역시 흔치 않은 재능을 지닌 검사였다. 확실히 잘만 키우면 능히 제 몫을 할 물건들이었다.
“나쁘지 않군. 앞으로 혹독히 단련시킬 테니 각오하거라.”
환마진을 통해 천마림 안으로 들어온 강무영은 홍련과 호야를 데리고 천마림의 지하로 향했다.
천마림의 지하에는 널찍한 공동이 있다. 천마의 묘인 만큼 내구도도 뛰어나 무술 수련에 더없이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무엇보다 천마림 지하에는 마기(魔氣)가 짙게 흐르고 있어 정순한 내공을 익힌 자들에게는 버겁다. 최악의 환경에서 몸을 단련하면 분명 몇 배의 효과를 낼 수 있을 터.’
역시, 지하로 내려오자 호야와 홍련의 움직임이 마치 물 속에 가라앉은 것마냥 부자연스러워졌다.
“이익······! 뭐야, 몸이 잘 안 움직여!”
“오호라. 아주 재미있는 공간이로구만.”
강무영은 짐을 내려놓으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자, 지금부터 첫 번째 수련 목표를 알려주겠다. 첫 번째 목표는 이곳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호야와 홍련은 이를 악물고 손발을 움직였다. 강무영은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며 검을 뽑아들었다.
“그럼 두 번째 목표다. 지금부터 나를 공격해서 한 번이라도 공격을 성공시키면 이 수련을 끝이 난다. 물론 옷깃을 스치기만 해도 공격에 성공한 걸로 해주마. 간단하지?”
전혀 간단하지 않다. 홍련과 호야는 도검을 뽑아 자세를 취하는 데에만 엄청난 기력을 소모했다.
“자, 그럼 시작할까?”
“잠깐만요! 적응할 시간 정도는 줘야······!”
“괜찮다. 목숨이 위태로워지면 알아서 적응할 테니까.”
활짝 웃으며 엄청난 소리를 내뱉은 강무영이 검을 휘둘렀다.
직후, 무형(無形)의 검격이 호야와 홍련의 가슴팍을 가격했다.
쩌저정!
호야와 홍련은 방어는커녕, 대응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한참을 날아가 쓰러졌다.
“크억!”
“쿨럭!”
홍련과 호야가 엎어진 채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강무영이 사나운 눈빛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하고 있느냐. 가만이 있을 셈인가? 그럼 바로 죽을 것이다.”
“······.”
“움직여라. 네놈들이 가주님께 쓸모있다는 것을 증명해!”
“!!!”
또 다시 무형의 검격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호야와 홍련은 괴성을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화경을 향한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