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ader of the Demonic Cult, Zhuge Se, is reincarnated as the youngest scholar RAW novel - chapter (308)
129화.천유태의 몰락.3
지강백은 주먹을 파르르 떨며 천유태를 노려보고 있었다.
천유태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감추느라 애를 써야 했다.
그는 한쪽 입꼬리를 말아올린 채 지강백을 향해 물었다.
“제갈 가주. 지금 방 대주가 데려온 이들을 아시겠습니까?”
“네놈이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이냐! 저들은 본가의 무사들이다!”
직후, 연회장 내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마냥 일제히 입을 쩍 벌렸다. 죄인 마냥 밧줄로 묶어 끌고 온 피투성이의 사내들이 제갈세가의 무사들이라니?
천유태는 지강백의 악에 찬 고함 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제가 조사한 결과, 이들은 제갈세가에 속한 무인임이 밝혀졌습니다. 바로 마기를 풀풀 풍기는 마인들이지요!”
천유태의 외침이 끝나자마자 지강백의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놈! 감히 내 수하들을 저렇게 만든 걸로도 모자라 본가를 능멸할 셈이냐!”
“조용히 하시오! 정녕 성을 낼 처지라고 보는 것이오?”
천유태는 지지않고 지강백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 오늘 그대의 더러운 낮짝을 낱낱이 밝혀줄 테니, 잠자코 있으시오!”
“뭐라? 더러운 낮짝? 네놈이 감히 누구보고······!”
“끝까지 고고한 척, 당당하게 나오시겠다······. 좋다. 어디 여기 수많은 무림 선배들의 앞에서 진위를 가려보자.”
천유태는 일부러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저는 우연찮게 저를 암살할 무리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암살을 내부에서 도운 인물은 제 아내, 팽연화였습니다.”
“팽 부인이······정말인가?”
“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고, 그 다음에는 극심한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배신자를 즉각 잡아들일까 생각도 했지만, 암살을 주도한 자를 잡아내기 위해 속아주는 척 했지요. 그리고 몰래 암살자들이 모이는 시일과 장소를 알아내 그들을 급습했습니다.”
“잠깐, 그럼 지금 팽 부인은 어디에 있지?”
“그녀는 도망쳤습니다. 암살이 실패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어디로 도망친 것인지는 몰라도 곧 잡아들일 것입니다.”
천유태는 분노로 가볍게 몸을 떨었고, 일부 사람들은 그의 분노에 동조했다.
천유태는 몇 번 숨을 내쉬며 가볍게 호흡을 고른 뒤, 말을 이어나갔다.
“처음에는 사파나 흑도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정파인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지요. 그리고 소인은 보았습니다. 그들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기운과 악취를 말입니다!”
또다시 제갈빈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나섰다.
“모함입니다! 암살도 모자라, 뭐? 마기?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는구나. 선거에 이기고자 나를 무너뜨리려는 수작이더냐?”
“수작이요? 허어······. 소인도 정마대전에 참여했다는 걸 모르십니까? 마인들의 마기를 구분도 못하겠습니까?”
“닥쳐라! 세 치 혀에서 나오는 거짓부렁임을 내 모를 줄 아느냐!”
“제갈 가주는 입을 다무시오! 천 공자가 말하고 있는 중이잖소! 설마 찔리는 거라도 있는 것이오?”
연회장 내 누군가가 소리쳤다. 천유태는 이미 연회장 사람들이 제갈빈을 보는 시선이 냉담해졌음을 눈치챘다. 심지어 일부는 경멸과 두려움이 섞인 시선으로 제갈빈을 노려보고 있었다.
분위기가 과열되자 보다못한 천유성이 중재에 나섰다.
“일단 천 공자의 말을 계속 들어보겠습니다. 제갈 가주도 분노를 집어넣으십시오. 모함이라면 결국 밝혀질 것 아니겠습니까?”
가만히 지켜보던 천유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는 절박해진 제갈빈이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포로들을 죽일 것까지 대비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제갈빈이 무슨 행동을 취하든, 그건 자신의 모함을 증명하는 꼴이 된다.
“······좋습니다. 어디 두고봅시다. 허나 이것 하나만 기억하십시오. 저를 비롯한 제갈의 이름을 가진 모든 이들이 수치를 입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마교? 최악의 오명을 제갈에게, 그것도 수많은 무림 선배들이 보는 앞에서 뒤집어씌운 죄, 마땅히 되갚을 것입니다. 맹주님, 그리고 선배 여러분. 이 제갈 모의 누명이 벗겨졌을 때 여러분이 증인이 되어 정의를 실행토록 도와주십시오.”
살벌한 지강백의 눈빛을 받은 천유태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놈. 대체 뭘 믿고 저리 자신만만한 것이냐?’
천유태는 지지않겠다는 듯 지강백을 노려보며 말했다.
“좋소. 어디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가려봅시다. 거짓을 말한 쪽은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오.”
천유태가 눈짓을 하자 방적영이 포로들을 끌고 단상으로 올라왔다.
“제갈 가주는 마기를 쓰는 자들을 시켜 저를 암살하도록 지시했으며, 암살을 공모한 제 아내 팽연화는 한때 천마의 연인이었던 여자입니다. 조사를 통해 이 사실을 알아내자 결론은 자연스레 이어졌습니다. 바로 저기 제갈빈이 마교의 하수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천유태의 손가락이 입을 다물고 있는 지강백을 가리켰다. 지강백은 냉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당신이 멋대로 내린 결론일 뿐. 확신하듯 말하지 마시오.”
“아아, 물론입니다. 그건 이들이 마인임을 증명하면 자연스레 진실이 되겠지요.”
천유태는 포로 한 명의 뒷목을 잡고 억지로 무릎꿇렸다. 포로는 고통에 신음하며 바닥에 엎어졌다. 방적영이 그의 머리채를 잡고 억지로 상체를 일으켰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마공을 익힌 자들은 기를 불어넣는 것만으로 마인임을 판별할 수 있습니다. 마기가 가득찬 몸뚱아리는 정순한 내기를 결코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천유태는 포로의 등에 손을 얹으며 내력을 주입시키기 시작했다. 만약 포로가 마인이라면 그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마기를 배출할 것이다.
“자, 이제 그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엇?”
다음 순간, 천유태의 눈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일부러 내력을 뭉텅이로 집어넣었는데 검은 마기가 흘러나오기는커녕, 신음조차 흘리지 않고 있었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천유태는 다급히 다른 포로를 무릎꿇린 뒤, 그에게도 똑같이 내력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보게, 지금 내력을 불어넣은 거 맞나?”
누군가의 물음에 천유태는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허둥거렸다. 그러자 보다못한 종남파 도영후가 단상으로 훌쩍 뛰어들었다.
“답답하기는! 이 몸이 확실히 밝혀주겠소이다!”
도영후는 포로 한 명의 등에다 내력을 주입시켰다. 그러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손을 뗀 도영후가 일그러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뭐야. 마기는커녕, 불순한 기운조차 없잖아?”
도영후의 분노한 눈빛이 굳어버린 천유태를 향했다.
“이봐, 천 대주.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보게나.”
“그, 그것이······.”
천유태는 피가 거꾸로 흐르고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이런 상황이 펼쳐질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자 도영후가 고개를 돌려 외쳤다.
“보시다시피 이 자의 몸에 마기는 없소. 믿지 못하겠으면 한 명씩 나와서 내력을 불어넣어 보시오.”
굳이 나설 필요 없다. 종남파 장문인이 확인했으면 그 말이 진실일 테니까.
도영후는 이를 부득 갈며 분노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천 대주. 자네가 지금 우리 모두를 앞에 두고, 거짓을 지껄였다는 걸로 받아들여도 되겠나?”
천유태는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갈빈을 향하던 싸늘한 시선이 이제는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이곳에 자신의 결백을 주장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맹주인 천유성조차도.
-이 멍청한 놈······.
전음이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천유성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아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천유태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이제 내 차례인 것 같군요.”
인파가 좌우로 갈라지고 지강백이 옷깃을 펄럭이며 단상으로 다가왔다. 그의 전신에서 푸른 살기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저는 암살을 지시한 적도, 팽 부인과 공모한 적도 없습니다. 하물며 마인? 수치심에 고개를 들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그러나 내가 무엇보다 분노하는 것은!”
화악! 지강백의 일갈과 함께 거대한 내력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내 형제와도 같은 가문의 수하들의 피를 흘렸다는 것이다. 심지어 마인이라는 수치스러운 오명까지 씌워? 네놈이 본가를 얼마나 우습게 여기는지 알겠다.”
지강백이 어디론가 손을 뻗자 허공을 가르며 검 한 자루가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멀리 떨어진 검을 내력만으로 조종할 수 있는 어검술(魚劍術)의 경지였다.
스릉!
지강백은 검을 뽑아 천유태를 향해 겨누며 소리쳤다.
“네놈이 조금 전 한 말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렷다! 나 제갈빈과 제갈세가, 그리고 내 수하들에게 오명을 뒤집어씌운 죄! 그리고 수많은 강호 선배들의 앞에서 거짓부렁을 내뱉은 죄! 그리고 정의로운 무사들의 목숨을 멋대로 앗아간 죄! 이 자리에서 그 대가를 받아가겠다!”
연회장 내 분위기는 일촉즉발(一觸卽發). 깨지기 직전의 유리처럼 아슬아슬한 상태였다.
바로 그때, 천유성이 지강백의 목에 손을 얹으며 나직이 경고했다.
“제갈 가주. 검을 거두시게.”
“맹주, 지금 누구의 편을 드는 겁니까!”
“두 번 말하지 않겠다. 검을 거두어라!”
“맹주의 자리에 앉은 자가, 저 쓰레기를 아들이라고 감싸는 것이냐!”
“이놈!”
참다못한 천유성이 지강백에게 살초를 날렸다. 반쯤 지강백을 이 자리에서 죽여버리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러나 지강백 또한 현경에 오른 몸이다. 게다가 미리 대비까지 한 상태. 그는 천유성의 살초를 받아침과 동시에 뒤로 나가 떨어졌다.
“제갈 가주!”
깜짝 놀란 도영후를 비롯한 고수들이 넘어지는 지강백의 등을 받쳐주었다. 지강백은 일부러 신음을 흘리며 휘청거렸다. 그러자 도영후가 폭발했다.
“맹주, 이게 무슨 짓이오! 지금 제갈 가주에게 살초를 날린 것이오!”
지강백이 받아낼줄 몰랐던 천유성이 이를 부득 갈았다. 방금 전 일격은 화경이라고 해도 꼼짝없이 당할 일격이었는데! 그러나 그런 걸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연회장 내에 있는 모든 고수들의 적개심이 자신과 천유태, 두 부자(父子)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두 진정하십시오! 이 오해는 추후 반드시······.”
“오해는 무슨 오해! 맹주 당신의 눈에는 피를 흘리며 짐승처럼 포박당해 있는 내 수하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많은 고수들의 만류에도 몸을 일으킨 지강백이 내력을 끌어모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사방에서 튀어들어온 맹의 고수들이 앞다투어 지강백에게 칼을 겨누었다. 그러자 천유성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빌어먹을. 최악의 상황이다······!’
그러자 도영후를 비롯한 강호의 고수들이 반대로 지강백을 지키기 위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 순간, 천유성과 천유태 부자는 정파 무림의 적이 되었다.
“보십시오. 맹주는 제갈세가를 마교의 하수인으로 몰아넣은 천유태를 보호하며, 맹의 무사들 역시 저놈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정파의 연합체인 무림맹입니까! 천유성 개인의 세력이나 다름없지요!”
천유성은 이를 악물고 지강백을 노려보았다.
지강백은 고개를 돌려 수많은 고수들에게 외쳤다.
“구파, 오대세가, 그리고 수많은 강호 동도 여러분. 저희는 맹주가 그릇된 길을 갈 때 그를 억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바로 그때, 인파를 헤치고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발견한 천유성이 눈을 부릅떴다.
“진광현······!”
풍운검대의 대주, 진광현은 초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사실대로 고하겠습니다. 천유성 맹주는 저를 비롯해 자신의 측근들을 맹의 요직에 앉히고 맹을 장악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비밀리에 수많은 병력들을 키우고 힘을 비축하고 있었지요. 이 강호무림을 집어삼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 입 닥치지 못할까!”
“천유성은 협의를 위해 싸우는 의인이 아닙니다. 오히려 야욕을 숨긴 흑도만도 못한 인물이지요. 애초에 흑도는 야욕을 숨기려고 하지도 않잖습니까? 떳떳하기로는 그들이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강백은 마지막으로 쐐기를 단단히 박았다.
“타락한 무림맹은 더 이상 무림맹이 아니다! 나 제갈빈, 타락한 무림맹을 이 손으로 쓸어버리고 정의를 실현시키겠다. 각오해라!”
지강백은 포로들을 부축해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연회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천유성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다 주먹을 쥐었다.
끝.
130화.집결하는 영웅들.1
무림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선거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제갈세가가 천유성 일가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이 전쟁은 누구 하나가 무너질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원로원은 구파를 비롯한 군소세력에게 이 전쟁에 개입하지 말 것임을 알렸다. 두 세력의 충돌은 명분이 갖춰진 싸움이고, 제삼자는 명분이 없었다.
전쟁은 한 번의 결전으로 끝날 것이다. 어차피 고수들의 싸움이다. 그리고 수많은 병력이 움직이면 말 그대로 내란이었다. 황실에서 나설 것은 불보듯 뻔했다.
과연 결전이 끝나고 마지막에 웃는 자는 누구일 것인지, 온 강호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지강백은 살아남은 제갈세가의 무사들을 곧장 의원에게 보였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백 명의 무사들 중 살아남은 무사들은 지강백의 손을 부여잡고 힘겹게 말했다.
“가, 가주님.”
“수고했다. 내 너희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이전에 약조하셨던 가족들의 보상은······.”
“이미 자네 가족들은 강남의 노른자위 땅 수천 평을 손에 넣었네. 고래등같은 기와집도 지어주었고. 처자식이나 노모도 평생 걱정없이 돌볼 수 있을 것이야. 재물 또한 평생 써도 마르지 않을 만큼 채워주겠네. 죽은 동료들의 유가족들에게도 이와 같은 보상이 돌아갔어.”
“감사합니다. 가주님······. 이제야 안심이 됩니다.”
이들은 자진해서 마인으로 위장하겠다고 나선 이들이었다. 물론 지강백이 풍족한 삶을 보장했지만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지강백은 이들에게 큰 빚을 진 셈이었다.
“이것밖에 해줄 수 없어서 미안하네.”
지강백은 의원에게 잘 좀 부탁한다는 당부를 남기고 의방을 나섰다. 의방을 나선 그는 곧장 강남의 제갈세가 본부로 향햇다.
***
호남 제갈세가 본가로 돌아온 지강백을 유희연이 반겼다.
지강백은 집무실로 이동하며 오랜만에 본가의 경치를 감상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식솔이나 무사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죽을 상이었다.
“유 당주. 혹시 본가의 식솔들 중에 장례 치른 사람이 있나?”
“분위기야 당연히 무거울 수밖에요. 가문의 명운(命運)이 걸린 싸움이 코앞이지 않습니까?”
유희연은 짐짓 대수롭지 않게 말했으나 그녀의 표정 역시 좋지 않았다.
만에 하나 천유성이 전쟁에서 이기면 그의 첫 번째 제거 대상은 제갈세가가 될 것이 분명했다. 지강백이 없는 제갈세가는 천유성의 칼날을 결코 피할 수 없다.
지강백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유희연을 향해 말했다.
“혹시라도 내가 죽으면 즉시 조정에 도움을 청해라. 그동안 정계에 심어놓은 인맥을 총동원해서 가문을 지켜. 그리고 구파에도 도움을 청해라. 화산은 당연히 도와줄 것이고 나머지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여차하면 경엄 군주한테 손이라도 벌려보고. 그래도 한때 스승된 몸이었는데.”
“가주님!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지강백은 펄쩍 뛰는 유희연을 진정시키며 웃음을 흘렸다.
“그래. 그냥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지강백은 유희연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집무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미 제갈세가의 삼대 고수, 제갈근, 제갈총, 제갈연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지강백을 향해 일제히 예를 갖췄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지강백이 의자에 앉았다.
“가주님의 이름으로 보낸 서신이 전부 당도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곧, 서신을 받은 대륙의 고수들이 전부 본가로 집합할 것입니다.”
전쟁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세 고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천유성 측의 별다른 움직임은 없소이까? 유 당주.”
“천유성 역시 휘하 고수들을 소집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맹에 틀어박힌 채 두문분출하고 있습니다. 격전지가 맹의 본산이 될 것임을 직감한 모양입니다.”
유희연은 수하에게 커다란 두루마리 하나를 건네받았다.
“이건 천유성 휘하 고수들의 명단과 정보를 상세히 기록해놓은 자료입니다. 전투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두루마리를 살펴본 세 고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사천왕이라 불리는 화경의 고수가 셋, 그 외에도 칠절이라 불리는 노련한 절정의 고수들이 일곱. 그 아래로 절정의 고수가 몇 명 더 있군······.”
“대부분 이름이 알려진 고수로군요. 하나같이 무공실력이 출중한 자들입니다.”
“숫자는 대략 백 명 정도. 생각보다 많군요.”
세 고수들 중 제갈총이 유희연에게 물었다.
“유 당주. 그럼 이쪽의 전력은 정확하게 파악되었는가?”
“네. 우선 세 분을 포함해 질풍대주 연시환. 청룡대주 섭유를 비롯해 주력 부대의 대주들이 참가할 것이며, 각각 남궁세가와 당가, 모용세가, 공손세가에서 고수들을 차출해 데려오겠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일찍이 불러들인 강호의 이름난 협객들이 대기중에 있습니다.”
“사천왕이라 불리는 화경의 고수는 누가 맡고? 총대주 천유태 또한 화경의 고수일세.”
“그들에게도 걸맞은 상대를 붙일 것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강백이 직접 말하자 세 고수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꼭 확인해야 될 게 남아 있었다.
“그럼 천유성은 누가 맡습니까?”
천하제일인이자 현경의 경지에 든 괴물. 그를 상대할 사람은 한 명 밖에 없었다.
“천유성은 내가 직접 상대합니다.”
지강백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
천유성은 침통한 표정으로 맹주전 집무실에 앉아 있었다.
젊은 시절, 가진 것 없는 떠돌이 협객부터 시작해 수많은 사선을 넘나들며 경험과 인맥을 쌓았다. 온갖 멸시와 천대를 겪으며 흙바닥을 굴렀고, 날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맹주의 자리는 지난날 자신이 쌓아온 노력의 결과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정파인으로서의 신뢰와 명성이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 것이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이 자리에서 보는 광경도 이제 마지막이 되겠군.”
원로원으로부터 맹주직에서 퇴임할 것임을 강요받았다. 이제 강호 어디에도 정파인으로서 설 자리는 없다.
“후후후······.”
천유성이 나직이 웃음을 흘렸다. 그걸 지켜보던 사천왕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지금 가장 가시방석인 사람은 천유태였다. 그는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죄, 죄송합니다. 아버지.”
“네 잘못이 아니다. 잘못이 있다면 너 같은 머저리를 맹주로 세워 큰일을 도모하려 했던 내 어리석음을 탓해야지. 안 그러냐?”
천유태는 극심한 모멸감에 고개를 푹 숙였다. 천유성은 따귀라도 한 대 걷어붙일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힘조절이 잘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관뒀다. 하나뿐인 아들놈마저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천지후가 행방불명된지도 몇 달이 지났다. 막내는 이미 제갈빈의 손에 죽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천유성은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천유성의 개인 정보조직 음영당의 대주가 서 있었다.
“팽연화와 진광현, 이 둘의 행적은 알아냈느냐?”
“진광현과 그 수족은 작정하고 숨어 당장 찾기가 어려우며, 팽연화는 강남으로 내려간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제갈빈이 집결시킨 고수들과 함께 할 것으로 보입니다.”
천유성은 또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측근인 진광현마저 자신을 배신할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오랜 시간동안 잊고 있었던 강호의 통념 하나를 떠올렸다.
강호에서 믿을 건 가족도, 측근도 아니다. 거짓을 말하지 않는 건 오직 차가운 쇠붙이밖에 없었다.
‘그래. 어쩌면 처음부터 이 방법을 써야 했는지도.’
어차피 여기까지 와버렸다. 더는 돌아갈 곳도, 돌아갈 생각도 없었다. 이제 자신에게는 이 강호를 무력으로 집어삼키는 선택지만 남았다. 그 시작은 제갈빈과 그 수하들이 될 것이다.
“칠절과 휘하 고수들은 전부 도착했느냐?”
“네. 맹주님. 조금 전 도착해 대기중입니다.”
이제는 적들을 조용히 맞이할 일만 남았다.
그러나 그 전에, 처리해야 할 일은 처리해놓을 생각이었다.
천유성은 음영당주에게 두 가지를 명령했다.
“맹에 보관해놓은 재물들과 내 이름으로 맡겨놓은 수표, 금은보화를 챙겨 안전한 곳으로 운반해놓거라.”
전쟁에서 질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에서 이기고 난 뒤, 맹에서 쫒겨났을 때를 대비하려는 것이다.
천유성은 자신이 이 전쟁에서 질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운남 흑무림맹으로 전서구를 하나 띄워야겠다.”
“흑무림맹의 힘을 빌리시려는 겁니까? 그들이 응답할까요?”
음영당주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천유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놈이 미쳤다고 우릴 도와주겠느냐? 얼씨구나 좋다 하며 전쟁을 구경할 놈이다. 어차피 그놈의 입장에서는 나와 제갈빈, 둘 다 눈엣가시같을 테니까. 우리 둘이 싸워 양패구상하면 좋고, 한 놈이 살아남으면 상처입은 승리자를 노릴 생각이겠지.”
음영당주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눈치없는 아들놈이 화들짝 놀라며 나섰다.
“그건 안 됩니다, 아버지! 흑도의 힘을 빌린다니요! 그럼 그나마 남은 명성도 더럽혀질 겁니다!”
“넌 일단 입좀 다물어라.”
천유태의 입을 막은 천유성이 말했다.
“전쟁이 시작되면 각 세력의 총전력이 이곳, 맹의 본산으로 집결할 것이다. 그 말인즉, 제갈세가에는 아무런 방비도 되어있지 않다는 뜻이다.”
천유성의 뜻을 알아차린 음영당주가 말을 받았다.
“마태룡으로 하여금 제갈세가를 집어삼키게 하실 생각이시군요. 좋은 기회이니 마태룡 그자도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고 말입니다.”
마태룡은 항상 강남 진출을 꿈꿔왔다. 그간은 천유성이 막고 있느라 그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를 막을 사람이 없었다.
“그래. 전쟁에서 제갈빈, 그놈이 살아남는다고 해도 더는 돌아갈 곳이 없도록 만들어줘야지. 놈에게도 나와 같은 절망을 맛보아야 공평하지 않겠느냐?”
천유성은 스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그 시각, 지강백은 운남성의 곤명(昆明)으로 향했다.
그는 평소와 다르게 화려한 귀족 차림에 마차를 타고 이동했으며, 뒤따르는 수레에는 누군가에게 바칠 선물로 가득했다.
이윽고 마차가 거대한 장원에 멈춰섰다. 이곳은 바로 운남성 도지휘사(都指揮使) 율승목(傈昇穆)의 저택이었다.
미리 연락을 받은 시종이 지강백을 맞이했다.
“도지휘사 나리께서 가주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율승목은 반갑게 웃으며 지강백에게 인사를 건넸다.
“강남의 젊은 대부호의 얼굴을 이렇게 보게 되는군.”
“제갈세가의 제갈빈이 장군님을 뵙습니다.”
“내 그대의 소식은 많이 들었다네. 떠오르는 유명인사가 아닌가. 듣던대로 용모가 아주 아름답구만. 허허.”
“과찬이십니다.”
차려놓은 식사를 해치우고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율승목이 물었다.
“그래서, 나를 보자고 한 용무가 무엇인가?”
다른 자였다면 애초에 겸상 자체를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지강백은 정계에도 많은 인맥이 있으며 제갈 씨를 쓰는 많은 관료들의 수장이다. 또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대부호이기도 하며, 동시에 북해와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충신(忠臣)이기도 했다.
율승목은 과연 이자가 자신에게 어떤 부탁이 있어 자리를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