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ader of the Demonic Cult, Zhuge Se, is reincarnated as the youngest scholar RAW novel - chapter (339)
162화.포섭(包攝).2
“그럼 서소야, 시녀들 말을 잘 듣고 있거라.”
지강백은 서소를 본가의 시녀들에게 맡겼다. 지강백이 막내공자일 시절부터 그를 보살펴왔던, 초향을 비롯한 나머지 시녀들이라면 믿고 서소를 맡길 수 있었다.
“아빠. 전 걱정말고 조심히 다녀오세요.”
어린 그녀였지만 지강백이 큰일을 하러 간다는 것쯤은 금방 알아차렸다. 지강백은 미소를 지으며 서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시녀들을 향해 말했다.
“서소를 잘 부탁하네.”
“네, 맹주님.”
건양왕은 하남의 사가에서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지강백은 날 듯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건양왕은 비록 유배나 다름없는 처지였지만, 왕의 신분을 고려해 고급스러운 대저택에 지내고 있었다.
그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하남 백성들의 고초를 듣고 그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챙겨준 뒤, 저택으로 돌아왔다.
침소에 들어와 차를 마시던 그는, 갑자기 창문을 때리는 빗줄기에 고개를 돌렸다.
“허어. 오늘은 비가 올 날씨가 아닌데······.”
콰르릉!
그때, 번개가 내리치고 방 안에 그림자가 졌다. 그런데 방 안에 진 인영(人影)은 한 개가 아니라 두 개였다.
깜짝 놀란 건양왕은 다급히 호위들을 부르려 했다. 그러나 머릿속에서 울리는 전음이 그의 입을 막았다.
-송구합니다. 전하. 소인은 경엄 군주의 스승이었던 제갈빈이라고 하옵니다. 잠시만 소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머릿속에 울리는 전음은 건양왕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도 한때 무림에 몸담은 적이 있었다. 경엄 군주가 무림에 관심이 많은 이유 역시 그와 관련이 있었다.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던 건양왕은 곧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누군가 침소의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전하. 신첩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건양왕의 부인이었다. 건양왕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잠시만 혼자 있고 싶으니 나중에 들어오겠소?”
“알겠습니다. 허면 반 시진 뒤에 뵙겠습니다.”
그녀가 물러가자 건양왕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그만 모습을 드러내라.”
다음 순간, 검은 그림자가 한데 뭉치더니 이내 허공으로 솟아 사람의 형체를 만들었다.
건양왕은 저런 수법이 다 있나 싶어 눈을 껌뻑였다. 지강백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이리 찾아뵌 소인의 실례를 용서하십시오.”
건양왕은 지강백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도 미약하게나마 내공을 익힌지라 상대방의 강함을 대충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군. 내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경엄의 스승이라면 무림에서도 유명한 그 제갈빈일 터. 소문대로의 사내라면 분명 엄청난 고수임에 분명했다. 그런데 내공은 일반인과 다름없이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 신기한 일이었다.
건양왕은 지강백을 응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대의 이름은 경엄에게 많이 들었다. 내 자식의 스승이니 나 역시 예를 차려야겠지.”
지강백은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저 잠시 폐하의 명을 따라 군주님의 말동무나 된 것입니다. 스승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건양왕은 찬장에서 찻잔 하나를 더 꺼내 탁자에 올리며 지강백에게 말했다.
“일단 앉게. 밤중에 찾아올 정도면 용무가 급한가보군.”
“감사합니다.”
다행히 호위들을 불러 쫒아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강백은 안심하며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지강백은 왕이 친히 채워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동안 건양왕은 찬찬히 지강백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호남 명문가인 제갈세가의 가주직에 있었고, 지금은 무림의 황제나 다름없는 무림맹주의 권좌에 오른 사내.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더 젊었고, 경엄의 칭찬이 무색해질 정도로 신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외모였다.
“그대, 올해로 나이가 어찌 되는가?”
“서른 셋이옵니다.”
“그, 그래? 나이에 걸맞지 않게 동안이로군.”
“과찬이십니다.”
차를 한 모금 넘긴 건양왕이 지강백을 향해 물었다.
“날 만나러 온 이유가 뭔가. 그것도 남몰래 침소에 숨어서.”
지강백은 진중한 눈빛으로 건양왕을 바라보며 말했다.
“근 두어 달 간에, 북경 황궁에 다녀오신 적이 있으십니까?”
“작년 중양절(重陽節) 이후로 없다. 폐하께서 황족을 굳이 불러들일 이유가 있겠는가? 허허.”
“그럼 달라진 폐하의 모습을 보지 못하셨다는 말씀이시군요.”
“달라진 모습? 그건 무슨 소린가.”
“전하. 지금부터 소인의 말을 놀라지 말고 들어주십시오.”
황제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양왕은 어떤 반응일까?
지강백은 황제의 칙명을 받은 것과 대내관과 접촉한 것. 그리고 황제를 알현한 것까지 전부 얘기했다.
“······해서, 폐하께서는. 아니, 폐하의 탈을 쓴 껍데기는 무림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생각입니다. 소인은 전쟁에 대비할 준비를 끝내고 전하를 뵈러 온 것입니다.”
설명을 마쳤으니 이제 건양왕의 반응을 볼 차례다.
한동안 굳어진 표정으로 침묵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그럼 자네가 날 만나러 온 이유는 그걸 막기 위함이겠군. 황상을 제외하면 황좌에 가장 가까운 날 필두로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비밀리에 온 이유도 황상에게 들킬까 염려한 것이고.”
“거기까지 생각해내실 줄은 몰랐습니다. 실로 대단하십니다.”
지강백은 나직이 감탄했다. 건양왕은 소문대로 영민하고 혜안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굳어진 표정은 좀처럼 펴질 줄 몰랐다.
“그 말을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소린가?”
“믿기 어려우시다는 걸 잘 압니다. 허나 믿으셔야 합니다. 누군지 모르는 천한 몸뚱이가 황좌에 앉아 주인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황실의 일원으로서 방관하고 계실 겁니까?”
지강백은 문득 궁금해졌다. 만약 자신의 말이 거짓이라고 해도 명분은 충분했다.
과연 건양왕에게는 황좌를 차지하고자 하는 욕심이 조금도 없는 것일까? 기회가 왔음에도 순순히 물러설까?
그때, 침묵하던 건양왕이 나직이 말을 꺼냈다.
“만약 내가 그대의 말을 믿는다 해도 문제는 크다. 일단 내가 조정에서 갖는 권력은 없다시피 하다. 일찍이 황상께서 날 강남에 보낸 이유도 그 때문이지.”
“전하. 지금 대소신료들 역시 작게나마 의심을 품고 있사옵니다. 전하께서 대내관과 함께 그들을 설득하신다면······.”
“만약 들킨다면? 헛되이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들키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면 됩니다. 소인이 황제의 눈을 피해 대소신료들과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건양왕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평생 황좌에 앉을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한 차례 숙청의 피바람이 불고 살아남았을 때는 평생 목숨을 부지하고자 필사적으로 황제에게 메달리기만 했다.
그렇게 물 좋은 강남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냈는데······.
어쩌면 이건 하늘이 다시 내려준 기회인지도 모른다.
“전하. 가짜는 무림을 파멸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고 그 가운데 백성들의 피해는 이로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건 오직 전하께서만 막으실 수 있습니다.”
건양왕은 지강백을 가만히 응시했다.
지강백은 자신을 탐색하는 눈빛을 똑바로 마주했다.
이내 건양왕은 낮고 메마른 목소리로 물었다.
“한 가지 묻겠다. 굳이 나를 앞세운 이유가 무엇이냐.”
“그게 무슨 말씀······.”
“제국의 태조 역시 한때는 천한 농부에 불과했다. 혁명을 일으키고자 한다면 네 무력과 따르는 이들로도 해볼만 할 터. 만약 성공한다면 황좌는 네 것이 될 수도 있다.”
지강백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나를 떠보는 건가.
어쩌면 정말 궁금한 것일수도 있다. 지강백은 고개를 숙였다.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십니다. 천한 신분으로 어찌 황좌를 탐내겠습니까? 그리고 그 시절은 암군(暗君)의 폭정으로 백성들이 황실에 등을 돌렸으나,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잠시 지강백을 노려보던 건양왕이 식은 차를 들이켰다.
“좋다. 일단 계획대로 움직이도록 하지. 대신들과 비밀리에 자리를 마련하겠다. 일이 잘 성사되면 내 직접 황도로 향할 것이다. 그대도 동행하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대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
‘당부’가 아니라 ‘부탁’이라고 했다. 뭘까?
“만에 하나, 내가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하면 그 대가로 황제는 구족을 멸할 것이다. 그대는 경엄을 반드시 지켜줄 수 있겠나? 경엄은 그대의 제자이기도 하지. 그러니 부탁하마.”
지강백은 건양왕의 눈에서 낮익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부성애(父性愛).
자신은 황좌를 노리다 죽더라도, 자식만큼은 살리고 싶은 아비의 마음이었다.
“그대도 자식이 있나?”
“예. 딸이 하나 있습니다.”
“나와 같군. 그렇기에 자네는 내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겠지.”
지강백은 그가 진 마음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대답했다.
“소인이 반드시 군주님을 지키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충분하다.”
고개를 끄덕인 건양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시종을 불렀다.
그러자 곧 시종이 누군가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놀랍게도 그녀는 경엄 군주였다.
그녀는 건양왕의 침소에 있는 지강백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아바마마. 저분이 왜 이곳에······.”
“놀라지 마라. 이 아비가 부른 것이니.”
얼떨떨한 경엄 군주를 자리에 앉힌 건양왕이 말했다.
“지금부터 이 아비의 말을 잘 들어라. 아비는 곧 황도로 올라갈 것이다. 너는 이곳에 얌전히 있다가 아비가 사람을 보내면 황궁으로 올라오면 된다. 만약 제갈 가주가 널 데리러 온다면 아비에게 변고가 생겼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뒤로는 제갈 가주가 널 보살피며 지켜줄 것이야. 알겠느냐?”
아버지의 영민함을 그대로 물려받은 여인이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는 건 이 말만으로 충분했다.
경엄 군주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부정하듯 중얼거렸다.
“말도 안 됩니다. 아바마마, 설마 반란을 꾀하시는 겁니까?”
“성공한다면 반란이 아니라 혁명으로 기억될 것이다.”
건양왕은 경엄 군주의 어깨를 잡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너도 알다시피 우린 평생 황상의 눈치를 보며 살아왔다. 언제 목숨이 달아날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말이다. 네가 나를 위해 황상에 눈에 들려 노력한 것도 알고 있다.”
그렇군. 경엄 군주가 황제의 총애를 받는 것도 가족을 지키기 위한 그녀의 피나는 노력이었나.
처음 군주와 무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녀는 이상하리만치 무림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어쩌면 그 또한 아버지를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거사의 성패는 하늘이 좌우할 일이다. 그러니 부디 이 아비가 거사에 성공하기를 빌어다오.”
잠시 침묵하던 경엄 군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 언제나 아바마마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지강백은 걱정하는 경엄 군주를 위해 입을 열었다.
“군주님. 황도로 올라가신 뒤에도 소인이 계속 전하를 지킬 것입니다. 그러니 심려치 마시지요.”
“그럼 스승님만 믿겠습니다.”
지강백은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소인이 준비를 끝내면 다시 오겠습니다. 전하께서는 비밀리에 회동을 가지신 다음, 거사를 진행시키기 위해 황도로 모시겠습니다.”
“알겠네. 수고하게.”
지강백은 이곳에 왔을 때처럼 눈 깜짝할 새 사라져 버렸다.
건양왕은 긴 한숨을 내쉬며 어둑해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록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던 사이였지만 이 아우가 황좌를 차지하고 나면 정성을 다해 장례를 치루겠나이다. 황상. 아니······형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