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12)
제 13화
“정말 괜찮겠니? 그냥 나도 같이 가는 게 낫지 않을까?”
고개를 돌려 마차 옆에서 말을 타고 보폭을 맞추고 있는 누나와 눈을 맞췄다.
숨길 수 없는 걱정이 누나의 눈동자에 가득 차 있는 걸 보니, 이번에도 가슴이 찌릿하다.
이어서 누나가 아무도 안 들리게끔 내 귓가에 작게 속삭인다.
“둘째 어머님이 무언가 꾸미고 있는 것 같아. 역시 나도 동행하는 게…….”
“누나.”
“응?”
“원래 나 같은 꼬마는 독립적으로 행동해야 크는 법이야.”
“아…… 그러니?”
누나가 황당하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
“말했잖아, 많은 게 달라질 거라고. 정말 많은 게 달라질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난 안 죽으니까. 그것도 걱정하지 말고.”
“…….”
무슨 말인지 생각하는 듯하던 누나가 기어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누나를 잠시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누나가 후작가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는 알고 있다.
솔직히 모를 수가 없지.
후작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후작 부인은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금만 알고 있으면 쉽게 추측이 가능한 수준이니까.
그럼에도 나는 누나를 여기 남겨 두었다.
후작의 허락, 후작 부인의 허락 그딴 건 의미도 없고 필요도 없다.
이건 내 의지고, 내 계획이다.
“그만 들어가. 어디까지 따라오려고?”
내 말에 누나가 말고삐를 당기며 말의 속도를 늦췄다.
그 옆에서 똑같이 말을 타고 있는 론이 있었는데 누나의 표정이나 론의 표정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론도 누나와 마찬가지의 심정인가 보다.
나는 그 둘을 향해, 그저 작게 웃어 주었다.
이거면 된다.
어차피 론은 이 행렬의 뒤를 따라올 거고, 이후 벌어지는 일을 론은 지켜볼 수 있다.
아마 머릿속에 아주 강렬하게 자리 잡히겠지.
내가 주는 일종의 선물이라고 해야 할까.
마차 문을 닫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얼마나 흘렀을까.
다그닥거리는 발굽 소리가 멎었고 움직이던 마차도 멈추자, 나는 자연스럽게 눈을 떴다.
동시에 주변이 약간 소란스럽게 느껴진다.
닫힌 문을 천천히 열고 밖으로 나왔다.
먼저 날이 꽤나 어두워졌다는 게 눈에 보이고 이어서 병사들과 하인들이 이곳저곳 바쁘게 움직이는 게 보인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야영을 하려나 보다.
문을 열고 나온 나는 어디선가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병아리.
이름은 기억도 나지 않는 녀석이 동정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참, 다른 감정도 아니고 동정이라…….
묘한 표정을 지은 채로, 나는 마차에 기대어 팔짱을 꼈다.
그러고는 잠자코 기다렸다.
부산하게 움직이던 병사들과 소수의 하인들은 순식간에 천막을 지었고 야영 준비를 끝냈다.
이어서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병아리와 6서클 기사 옆에 정렬하기 시작했다.
앞서 말했지만 후작령에서 아카데미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4일이다.
4일은 절대로 짧은 시간이 아니며 홀로 움직이는 여행자들조차 이동 반경에 위치한 다른 영지를 거점으로 동선을 짠다.
그게 당연한 수순이다.
하물며 지금은 20명이 넘는 나름의 대인원(?)이 4일간의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 다른 영지에는 들어서지도 않고 그냥 야영을 한다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닭대가리도 아니고, 지금 당장 전쟁이 벌어져 피난 가는 것도 아닌데 산을 거점으로 동선을 짰다?
야영 준비를 저렇게 착실하게 한 걸 보면 이건 애초부터 이렇게 동선을 짰다는 이야기고, 그런 비효율적인 행동을 한다는 건 결국 이곳에서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뜻이다.
병아리의 동정 어린 시선과 나를 바라보는 병사들의 거슬리는 시선들로 미루어 보면, 상황은 아주, 매우, 몹시 간단했다.
천천히 팔짱을 풀었다.
“우리 병아리, ‘그렇게’ 결정했나 보네?”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 네 선택인데 내가 뭘 어쩌겠어.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고개를 들어 병아리 쪽에 서 있는 놈들을 바라보았다.
내 뒤쪽에 있는 천막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세 명의 하인을 제외하고 모든 병사들, 그리고 병아리와 6서클 기사까지.
놈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거의 동일했다.
일종의 동정과, 약간의 적의.
새삼스럽지만 장미 정원에 파견되는 병사들은 내 사람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후작의 사람이고, 조금 더 자세히 보태자면 후작 부인의 사람이기도 하다.
이어서 레종이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
“눈치채신 거 같으니, 길게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군요.”
“아니야. 길게 말해 봐. 들어 줄게.”
여유롭게 말하자 놈이 피식 웃는다.
“공자님께 개인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아카데미까지 가는 요 4일 중 마지막 날을 제외하고 항상 야영을 할 겁니다.”
“그리고?”
“야영을 할 때마다 우리는 공자님의 두 팔과 두 다리를 부술 것이며 야영이 끝날 때 포션을 먹이고 치료를 할 겁니다.”
꽤나 악독하다고 느껴질 정도였지만 나는 그저 조용히 되물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게 저희에게 하달된 명령이고, 후작 부인께서 저에게만 따로 지시하신 일이 있습니다.”
뭔지 살짝 궁금해진다.
도저히 안 물어볼 수가 없었다.
“뭔데 그게?”
“공자님이 서클을 만들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몇 서클인지는 모르겠지만, ‘요행’으로 제임스를 제압한 것을 보면, 적어도 2서클에서 3서클쯤 되는 마나 유저겠지요. 솔직히, 지금도 조금 놀랍습니다.”
“칭찬해 주는 거야? 몸 둘 바를 모르겠네.”
“……그 서클을 부수려 합니다.”
이야, 이거 악독한 수준이 아니다.
마나 유저에게 심장의 서클을 부순다는 건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았다.
물론 부서진 서클을 다시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은 혹독하며, 온갖 고통을 겪고 이겨 내야 한다.
마나 서클이 부서진 마나 유저가 다시 마나를 만들 확률은 대충 천에 한 명, 많으면 두세 명 정도의 확률이다.
그냥, 쉽게 말하면 졸라게 힘들다.
힘들다 뿐일까, 서클이 부서지면 그 충격으로 마나가 통하는 통로인 혈맥이 전부 망가지고 뒤틀린다.
세간에서는 마나 회로가 꼬여 폐인이 된다고 하는데, 그거랑 같은 이야기다.
내가 괜히 사형 선고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걸 나한테 내리겠다네?
말없이 조용히 웃자 놈이 말을 덧붙인다.
“제임스에게 들었습니다. 마나의 재능뿐만이 아니라 검에 대한 재능도 있으시다고.”
“별거 아닌 재주지.”
“요행으로라도 그런 몸으로 제임스를 이길 정도의 재능이라면, 저희 같은 기사들에게는 별거 아닌 게 아니겠지만 공자님의 경우에는 별거 아닌 재주가 맞습니다. 처지도 그렇고, 마나와 검술의 재능만으로는 많은 걸 바꿀 수 없으니까요.”
정말이지 웃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을 정도의 개소리다.
“나도 너처럼 철없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천천히 허리춤에 채워져 있는 철검의 손잡이를 가볍게 움켜쥐었다.
그러자 레종도 자기 허리춤의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린다.
“부디 반항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반항을 하면 더 힘들 겁니다.”
참 재미있는 상황이다.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가라앉은 분위기, 그 속에서 감도는 적의와 적나라하게 표현되고 있는 폭력의 기운까지.
이 모든 게 마음에 든다.
마치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전쟁터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검을 휘둘렀다.
죽이고, 또 죽이는 전쟁.
내가 요 며칠 동안 나름 평화에 젖어 있었다고는 해도 내 심장에 깊숙이 새겨진 과거의 상흔, 아니 과거의 경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검귀劍鬼.
발란티에라는 이름 따위 없이 이 서대륙 전체를 지배하던 툴칸 제국을 혼자서 무너뜨린 남자.
인간이 아닌 악마라고도 불린 희대의 괴물.
그게 나다.
“론, 거기 있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론은 분명 근처에 있을 것이다.
“난 말이야. 10년을 산속에 틀어박혀 있었어.”
“……예?”
레종이 되물었지만 당연히 무시했다.
나는 그저 저 수풀 속 어딘가에 있을 론을 향해 넋두리처럼 말을 이어 갔다.
“거기서 스승님을 만났고, 많은 것을 배웠지. 그러다 스승님이 돌아가시고 산을 내려오니까…… 참 많은 게 달라져 있더라고.”
“…….”
“우선 발란티에 가문은 멸망했고. 왕국도 멸망했어. 그냥 내가 아는 모든 게 사라져 있었지. 그런데, 솔직히 애초에 관심도 없었던 곳들이라 멸망해도 그러려니 했었거든? 아니, 왕 새끼가 뒤지든 말든, 후작이 뒤지든 말든. 툴칸이 대륙을 통일하든 말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난 정말 관심 없었어.”
“삼 공자. 지금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스르릉-
레종의 말을 무시하고 이번에는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그래도 딱 하나가 걸리더라, 누나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 그렇게 예쁜 누나니까, 그래도 나름 괜찮은 남자를 만나서 잘 살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했었지.”
잠시 말을 멈췄다.
누나의 최후.
그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미래니까.
“중간에 스승님이 배려해 줘서 밖으로 나갈 수도 있었는데…… 그냥 안 나갔거든. 핑계 대는 건 아닌데, 그때는 그냥 스승님이랑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고 싶었어. 나보다 더 가여운 분이셨거든. 시간 지나고 보니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만약, 정말 만약에, 내가 한 번이라도 밖에 나갔더라면 어땠을까. 밖에 나가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걸 알고 있었더라면, 그걸 알아챘더라면, 정말 많은 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삼 공자, 진정 미치신 겁니까?”
이번에도 놈의 말은 무시했다.
정신병자 바라보듯 하는 레종의 시선은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다.
“론은 해 봤는지 모르겠는데, 복수라는 거 말이야, 생각 외로 달콤해. 아주 미치도록 달콤하지. 그냥 죽이고 또 죽였어. 여기 이 머저리의 말은 일정 부분은 맞아. 단순한 재능, 단순한 검술 따위로는 많은 걸 할 수 없어. 하지만 압도적인 재능과 압도적인 힘으로는 매우 많은 걸 할 수 있더라고.”
조용히 검을 늘어트렸다.
레종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모든 병사들이 나를 정신병자 바라보듯 쳐다본다.
자세하게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솔직히 나는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후작을 자극하고 후작 부인을 자극했는데 아무런 ‘벌’이 없다는 건 애초에 말이 되지 않으니까.
론에게 말했듯 팔다리를 부수는 선에서 끝날 거라고 생각했고, 딱 거기까지가 내 인내심의 마지노선이었다.
그냥 똑같이 팔다리만 작살내고 돌려보낼 생각이었는데, 내 마나 서클을 부숴 버리겠다?
생각해 보니, 내가 참 유순하게 행동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짐승이 왜 짐승인지, X신이 왜 X신인지.
모자란 새끼들은 왜 모자란 새끼들인지.
왜 괴물은 괴물이라 불리는 건지.
지금부터 보여 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