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120)
제 121화
그레이 시어런?
아, 이 양반.
농담이 아니고, 정말 보고 싶었던 사람이다.
슬며시 셀을 옆자리에 내려놓았다.
“튀어오라고 해. 당장.”
그 말을 들은 마당쇠가 밖으로 나간 지 정확히 1분.
그레이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여전히 구릿빛 피부에 우락부락한 근육이 참 인상적이다.
군기도 잡혀 있는 듯한 자루의 장검을 보는 것 같은 느낌.
그런데.
“오랜만이네?”
“예. 오랜만입니다.”
거참.
“아니,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레이 학부장은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그레이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예?”
“내가 일주일 동안 누워 있었는데, 외롭더라고. 아 아카데미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우리 자랑스러운 그레이 학부장은 대체 뭘 하고 있을까, 밥은 먹었을까. 그게 목구멍으로 넘어갈까……. 아주 걱정이 되더라.”
“……예??”
아니. 이렇게 말해도 몰라?
“날 모시겠다며? 삽질도 할 줄 안다며? 그런데 어떻게 얼굴 한 번을 안 비치냐? 아 오해하지 마. 내가 절대 섭섭해서 그러는 건 아니고. 그냥 속상해서 그래, 속상해서.”
내 말에 반응한 것은 옆에 있던 스승님이었다.
피식하고 터져 나오는 그 실소가 적나라하게 들려온다.
아니, 봐 봐.
조금 그렇잖아.
아카데미가 개강한 지는 이미 3주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중 내가 아카데미 수업에 참여한 게 단 한 번도 없긴 하지만 그래도 한 번을 안 오는 게 말이 되냐.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제가 하루에 한 번은 꼭 이곳에 들렀었습니다.”
응?
“올 때마다 밖을 지키는 데스 나이트가 주군의 수련이 끝나지 않았다면서 볼일이 있으면 다음에 오라는 말을 되풀이해서…… 별장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었습니다.”
아, 이거 참.
슬쩍 고개를 돌려 우리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짓고 있는 걸 보니.
날 골탕 먹여 주고 싶었나 보다.
복수 같은 건가.
한 번 더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착오가 있었네. 그래, 온 김에 보고할 거 있으면 보고해 봐.”
고개를 갸우뚱한 그레이가 내게 여러 가지 사실을 알려 주었다.
우선 첫째.
그레이 시어런은 6일 전 검술학부 학부장이 되었고, 원래 군사학부 수석 교관이었던 갈라디너는 군사학부 학부장이 되었다.
둘째. 왕성을 비롯해 온갖 곳에서 ‘나’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셋째. 테슬란 왕국을 비롯해, 나머지 왕국에서 강경파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중이다.
넷째. 아카데미에서 교관을 구하는 일이 생각보다 더 어렵다.
그 외 몇 가지가 더 있긴 하지만, 알 필요 없는 일들이다.
중요한 건 저 네 가지다.
첫째는 내 이해와 영감님의 이해가 일치했다는 이야기고.
둘째는 진작에 벌어졌어야 하는 일이고, 실제로 이미 벌어졌던 일인데, 이렇게 그레이의 귀에 들어갔다는 건, 왕국 전역에 있는 온갖 잡다한 가문들까지 전부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 말은, 반대로 보면 대륙 전체에 알려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셋째도 첫째와 비슷한 이유인데.
저 말은 내가 만든 판에 장기짝들이 속속 입성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마, 머지않아 왕국 정상 회담이라든지, 그런 게 벌어지지 않을까.
넷째.
이게 가장 중요하다.
“교관이라…….”
음.
그레이에게 슬쩍 몇 명의 교관이 충원되었냐고 물었더니, 3명이라고 답했다.
3명.
와…… 3명.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닌데…… 애매하네.”
내가 벌인 일은 불특정 다수를 적으로 돌리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걸 떠나서, 아카데미 교관.
실제로 보면 꽤 있어 보이고 명예도 나름 있는 자리다.
그런데 오지 않는다는 건, 순전히 나라는 존재 때문이겠지.
꼬투리만 잡히면 잡아 죽이는 미친놈.
그런 놈이 위에 버젓이 버티고 있는데 누가 오겠어.
이건 당연한 거지.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이거, 꽤나 심각한 문제다.
“아카데미의 정상화가 상당히 늦어진다…… 이건데.”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내가 아카데미에서 나오면 된다.
이 일은 순전히 나라는 미친놈이 미쳐 날뛰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고, 원인 제공자인 내가 사라지면 비어 있는 교관의 자리가 자연스럽게 채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런데.
그렇게 되면 그걸 ‘정상화’라고 할 수 있을까?
똑같은 놈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텐데?
“이러면 어쩔 수 없지.”
순간, 듣고만 있던 그레이의 눈동자가 빛난다.
“묘안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침대 옆에 앉아 있던 스승님도 조금은 기대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번에는 어떤 사고를 칠지 궁금해하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 같다고 해야 하나.
대답 않고 웃고만 있자 그레이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교관으로 적합한 이들을 알고 계시는 겁니까?”
알지.
모를 리가 없지.
난 회귀자잖아.
솔직히, 내가 여태껏 미래의 지식을 활용하지 않았던 이유는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좀 써먹어 봐야겠다.
“너, 도박 좋아해?”
그레이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도……박이요?”
당황할 만도 하다.
부족한 교관을 어떻게 채울까 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도박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니 당황할 수밖에.
그런데 내가 괜히 이런 이야기를 꺼냈겠어?
“이 대륙에서 돈이 가장 많은 놈은 과연 누구일까?”
내 질문에 그레이가 잠시 생각한다.
아마 지금 그레이의 머릿속에는 몇몇 인물들의 이름과 단체들의 이름이 스쳐 지나가고 있을 거다.
그중, 그레이는 한 단체의 이름을 꺼내 들었다.
“대륙전장입니다.”
확신 어린 어조와 확신 어린 표정.
“전 대륙에 지부를 두고 있는 대륙전장. 그들 말고는 없습니다. 그들이 이 대륙에서 가장 돈이 많을 겁니다.”
몇 번 스쳐 지나가듯 언급된 단체.
바로 대륙전장大戮前場.
거대한 상인들의 연합이다.
그곳에 속해 있는 상인들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규칙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정치적으로 완벽한 중립에 속해야 한다는 거다.
아카데미의 이념과 흡사하다고 느낄 만도 한데, 사실 흡사할 수밖에 없다.
대륙전장을 최초로 만들고 상인들을 한자리로 끌어모았던 인물.
에드워드 린치.
그는 150년 전의 인물이자 테슬란 아카데미 출신의 인재였으며, 배경 하나 없이 돈과 감각으로만 각 왕국에서 명예 공작 자리를 받은 천재 중의 천재다.
이게 참 모순처럼 보일 수 있는데.
분명 대륙전장은 상인 연합이다.
상인은 정치적으로 중립이 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대륙전장은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결과.
전에도 말했지만 결과만 보면 된다.
대륙전장은 거대하다.
지금 내가 거대하다는 말을 두 번 이상했는데, 계속 강조하는 이유가 그냥 거대한 게 아니라 정말로 거대하기 때문이다.
대륙전장을 이용하는 귀족은 국가 불문, 이 대륙의 모든 귀족들 중 95% 이상일 거다.
왕족은 물론, 돈 많은 평민들도 이용하는.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상인 연합.
놈들은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지만,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일에는 절대 끼어들지 않는다.
이게, 좋게 말하면 중립인 거고, 현실적으로 보자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알기로 툴칸 제국이 대륙을 통일한 후 가장 먼저 정리한 조직이 바로 대륙전장이다.
그들의 정보 라인과 전 대륙에 퍼져있는 각 지부들, 그리고 어마어마한 자금.
그런 조직이 대륙에서 절대적으로 중립을 취하겠다는데, 그런걸 그 어떤 왕이 반길 수 있을까.
내가 아는 황태자는 그거, 절대 반길 놈 아니거든.
뭐 이건 어차피 나중 일이니까 일단 넘어가고.
“그거 알려나 모르겠네.”
“……어떤?”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놈들이 운영하는 도박장이 있거든.”
간땡이가 부은 놈이 그 무엇인들 못하랴.
“공개 도박장과 비밀 도박장으로 나눠지는데, 비밀 도박장은 입장료만 기본이 10만 골드거든?”
“10만 골드…… 많군요.”
많지.
“재미있는 건 대륙전장이라는 이름을 등에 짊어진 딜러랑 게임을 할 수가 있다는 거야.”
그레이가 긴가민가한 표정을 짓는다.
“딜러를 이기면 대륙전장의 돈을 따게 되는…… 그런 식이군요?”
“그렇지. 내가 알기로 대륙전장이 직접 키운 마스터가 대략 6명 정도 되거든?”
“아……!”
눈치 챘나 보다.
“걔들을 좀 데려와야겠어.”
대화의 흐름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낀 걸까.
그레이가 복잡한 어조로 물었다.
“그게 도박이랑 무슨 상관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슬쩍 웃었다.
“나 도박 잘해.”
전에 말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싸움에 한해서 단 한 번도 져 본 적이 없다.
져 본 적이 없는 그 범위에는 검으로 치고받고 싸우는 것뿐만이 아니라 도박도 포함된다.
도박도 일종의 싸움이잖아.
그리고.
“대륙전장에 돈이 얼마나 있을지 나도 궁금하다. 그래서 한번 다 털어 보려고.”
“……예?”
“다 털다 보면 걔들도 눈치채겠지. 아…… 이놈 이상한 놈이구나…… 조사해야겠구나…… 뭐 그런 거.”
그레이가 입을 떡 벌린다.
눈치챘나 보다.
“돈으로 마스터를 사는 거, 한 번도 해 본 적은 없는데 안 될 것 같지도 않고, 대륙전장의 대가리랑 할 이야기도 있었는데, 잘됐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그전에.
“밥은 먹었냐?”
“아직 식전입니다. 아카데미에 교관이 부족하다보니 식사를 할 시간도 없더군요.”
지금 시간이 10시가 넘었는데.
어휴.
고개를 돌려 셀에게도 물었더니, 녀석도 식전이라고 한다.
그럼.
“일단 밥부터 먹을까?”
싱긋 웃었다.
* * *
발란티에 후작령의 분위기는 평상시와 달랐다.
불안감이 조성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
영지민들은 생각했다.
요즘 들어 왜 이렇게 타지에서 온 이들이 많이 보이는 걸까.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우선 입고 있는 옷가지들이 하나하나 범상치가 않았으며, 왼쪽 가슴에는 각 귀족가를 상징하는 온갖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으니까.
거기다 문양의 종류만 해도 족히 20가지는 넘어가는 상황이니 영지민들이 의문을 품는 것도 당연했다.
더욱이, 그 20가지가 넘는 가문의 전령처럼 보이는 이들이 후작가에서 화난 표정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면 그 의문이 불안감으로 변하는 것도 당연하다.
요즘 들어 국가의 분위기가 흉흉하다는 것을 영지민들이 모를 리 없다.
테슬란 타임지라는 신문에서 매일매일 떠들어 대는 말이 발란티에 후작가의 막내가 미쳐 날뛰고 있다는 소식이었으니까.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새롭게 발간된 테슬란 타임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발란티에 후작가의 막내가 꼭두각시라고.
이 정도면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영지민들도 눈치 챌 수밖에 없다.
영지민 중 몇몇은 혹시 이러다가 영지전이라도 벌어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적중했다.
“뭐라고!!”
발란티에 후작이 집무실에서 고성을 내지른다.
그의 앞에 있던 한 남자.
철혈 기사단의 부기사단장인 곤잘레스가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헤르만 후작가에서 영지전을 신청했습니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클라크 발란티에는 귀를 의심했다.
“영지전…… 이라고?”
잘못 들었기를 바랐다.
하지만.
“예, 영지전입니다. 헤르만 후작가가 왕궁에 정식적으로 공문을 보냈고 왕궁은 두 가문의 영지전을 보증하겠다며 이렇게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곤잘레스가 건네는 서신을 받아들인 클라크는 곧바로 서신을 펼쳤다.
그리고, 머지않아 서신을 강제로 찢어발겼다.
빌어먹을.
젠장.
온갖 욕설이란 욕설이 목 끝에서 맴돌았다.
맙소사.
“영지전이라니…… 영지전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