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124)
제 125화
Chapter 1
긴 시간은 아니었다.
지하 도박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딜러를 하며 스트레스를 풀던 마스터 검사인 해럴드 린치가 왜 저렇게 사색이 되어 있는지.
고작해야 5분.
그 이야기를 듣는 데 5분이면 충분하고도 넘칠 시간이었다.
“…….”
대륙전장의 장주인 롤랜드 린치와 어센블 지부의 콜린 브로스넌.
그 외 롤랜드의 최측근들까지.
모두가 침묵했다.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데, 이제는 대형 사고까지 터졌다.
악재가 쌍으로 겹친 상황.
그렇게 2분이 더 지나고 나서야, 해럴드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그 진심이 느껴졌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무려 4천억이다.
아니, 4천억 골드가 무슨 개집 이름도 아니고.
그런 천문학적인 금액을 도박으로 잃다니.
그리고 한다는 소리가.
죄송합니다……라니.
그건 진작 했어야 하는 소리잖아.
모두가 할 말을 잃은 상황.
그런 상황에서 롤랜드는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아들인 해럴드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해럴드는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롤랜드 린치가 말했다.
“죄송하다……? 참으로 쉽게 말을 하는구나.”
“…….”
침착한 목소리였지만, 음성은 가라앉아 있었고 어조는 뜨거웠다.
“사람은 살면서 많은 실수를 한다. 그 실수로부터 배움이 있었고, 그 배움으로부터 세상이 만들어졌지.”
롤랜드는 그저, 화가 났을 뿐이다.
“너는 35살에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 그때 너는 세상 전부를 가진 모습이었다.”
“…….”
“아직도 기억이 나는구나, 처음에는 마법을 배웠지만, 마법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 하여 검으로 진로를 변경했고, 이후 너는 스스로가 검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실수로부터 배운 것이다. 마스터가 된 네가, 내게 처음으로 했던 말을 기억하느냐?”
“……기억합니다, 아버지.”
해럴드 린치는 바보가 아니다.
바보라면 마스터의 자리에 오를 수 없을 테니, 오히려 똑똑하다고 할 수 있었다.
“너는 마스터라는 힘을 도구로 삼고, 그 도구로 대륙전장을 지금보다 더 높은 곳에 끌어올리겠다고 내게 말했다. 각국에서 오는 온갖 작위들도 마다하고 대륙전장을 택한 너의 모습이 나는 대견스러웠고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은, 고작해야 2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
“처음으로 묻고 싶구나. 2년 전, 네가 했던 그 말은 전부 가식이었던 것이냐.”
“절대…… 아닙니다.”
롤랜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스터는 아니지만 대륙전장의 장주다.
각국의 정치판이 치열하게 얽혀 있는 상업이라는 부분에서 대륙전장이 여태껏 중립을 선언한다느니 하면서 독보적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간단하다.
그냥, 여태껏 장주를 맡았던 이들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전전대 장주이자 창설자인 에드워드 린치.
그리고 전대 장주이자 롤랜드 린치의 아버지인 본 린치.
그리고 현 장주인 롤랜드 린치.
에드워드 린치는 씨앗을 심었고, 본 린치는 거름을 뿌렸으며, 롤랜드 린치는 주변 풍파를 막아 내고 열매를 거두었다.
그런 그가, 지금 분노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너는 지금 이 대륙전장을 무너지게 하고 싶어서 발악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진심이라고? 4천억 골드?”
“…….”
“대륙전장의 첫 번째 원칙을 말해 보거라.”
“신의 성실입니다.”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대답이었지만, 롤랜드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 시선을 눈치챈 해럴드가 빠르게 말을 잇는다.
“신의信義와 성실誠實, 그리고 원칙原則. 대륙전장은 신의와 성실을 따르며, 그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과한 이득을 취하지 않고, 부당하지 않게 하며 또한 정당하게.”
회의장은 조용했고, 그곳에 해럴드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린다.
“그것이 신의 성실의 원칙이자, 우리 대륙전장의 가장 핵심적인 이념입니다.”
“그런데.”
롤랜드의 말에 해럴드가 고개를 들었다.
“그걸 아는 놈이 4천억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잃었구나.”
“…….”
“지하 도박장을 만든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알고 있느냐?”
“예…… 알고 있습니다.”
지하 도박장.
말만 들어 보면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대륙전장은 비밀 도박장을 운영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이익을 거둔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적자를 본 적도 없었다.
아이러니하겠지만, 그게 진실이다.
그건 일반 도박장도 마찬가지였다.
적은 돈을 잃은 이는 있어도, 파산한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만약 파산한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대륙전장의 도박 시설을 이용한 게 아니라 다른 시설, 혹은 사적으로 도박을 하다 망한 것이다.
“비밀 도박장은 일종의 서비스 시설이다. 대륙전장을 이용하는 이들 중 권력이 있는 이들에게 주는 일종의 유희라고 할 수 있지. 우리는 돈을 버는 것을 추구하지만 과정을 더 중요시한다. 그게 대륙전장이 여태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고 여태껏 상업계에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다. 너는 그걸 알고 있음에도 욕심을 부렸구나.”
대륙전장이 도박이라는 것을 주된 무기로 삼지 않은 이유.
이것도 간단하다.
도박 같은 걸로 큰 이익을 얻지 않아도 벌 만큼 버니까.
중립을 지키기 위해서는 적을 만들지 않아야 하고, 적을 만들지 않으려면 누군가와 적대해서는 안 된다.
기본이고, 핵심이다.
해럴드는 롤랜드의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도저히 바라볼 수 없었다.
대륙전장은 단순히 이익만을 추구하는 상업 집단과는 다르다.
없는 이들에게 베풀고, 길을 모르는 이들에게 길을 알려 주며, 돈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는 목적을 지니고 있는 대륙전장.
어릴 때 그 이념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가.
그런데 지금, 모든 게 틀어져 버렸다.
‘귀신에 홀린 기분이다.’
말은 안 했지만, 당연히 돈을 걸고 하는 게임이기에 상한선이 정해져 있다.
그 선은 최대 500만 골드.
그런데, 40만 골드에서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시가 뜰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분명 투페어가 나오도록 조작을 했는데, 로티플?
솔직히 어찌 된 영문인지 지금도 모른다.
문제는 그 40만이 그 순간을 기점으로 4000만이 되었다는 거다.
실수였겠지.
너무 즐기다 보니 대충 했던 걸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상한선을 무시하고 한 번에 그 돈을 회수하려고 했다.
그리고 졌다.
세상에.
로티플이 연달아 무려 세 번이나 뜰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4000억이다.
무엇을 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냥, 눈 뜨고 코가 베인 거다.
그놈은, 그 꼬마는 아주 악마 같은 놈이었다.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다시 부를 때까지 자숙하고 있거라. 벌을 논하는 것은 그 이후가 될 것이다.”
그게 끝이었다.
대륙전장의 장주.
롤랜드 린치가 그 말만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어디로 향하는지는 묻지 않았지만, 해럴드는 알고 있었다.
그 꼬마.
말도 안 되는 술수로 자신을 농락한 그 꼬마에게 가는 것이겠지.
후우.
저도 모르게 해럴드는 한숨을 터트리고 말았다.
* * *
귀빈실로 안내된 지 정확히 7분.
다과를 내오고, 음료수를 가져다주는 등의 온갖 서비스가 이어졌지만 별 감흥은 없었다.
다과를 나르던 직원에게 시선을 옮겼다.
“언제까지 대기해야 되냐?”
“……예?”
“시간도 꽤 지난 거 같은데 아무도 안 오잖아.”
느낌이 참 묘하네.
“여기 위치도 밀실인데, 혹시, 여기서 몰래 슥삭하려는 건 아니지?”
직원이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대륙전장은 그런 집단이 아닙니다.”
어깨를 으쓱했다.
장난삼아 한 얘긴데, 쟤는 왜 저렇게 진지해.
그대로 고개를 돌리자, 나를 호위하듯 대각선 방향에 서 있는 그레이 학부장이 보인다.
신경 쓰지 않고, 이번에는 반대로 고개를 돌렸다.
내 어깨가 아닌 탁자에 양반다리를 한 채 앉아 계신 스승님.
우리 스승님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묘하게 여유롭구나.]“그래 보이십니까?”
묘한 데자뷔라도 느끼신 걸까.
[처음 모험가 길드에 갔을 때가 떠오르는구나.]피식 웃었다.
아베이루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녀석을 협박했다.
정확히는 위협이라고 해야겠지.
지금 느낌상 흘러가는 상황도 묘하게 그때랑 비슷하다.
[거기다 네 태도와 모습을 보아하니 단순히 교관을 구하러 온 것 같지는 않은데,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내가 전에 이런 말을 했었던 적이 있다.
똑똑한 사람들은 하나하나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한발 앞서서 생각을 한다고.
스승님은 내가 살면서 본 이들 중 가장 똑똑한 사람이다.
똑똑하다는 것은 눈치가 빠르다는 뜻이기도 한데, 내가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스승님은 못 속이지.
이쯤 됐으니 조금 진지하게 이야기해 볼까.
“조금 뜬금없는 질문인데요. 기억하십니까?”
[무엇을?]“최초의 학생들 숫자 말입니다.”
아카데미.
문득 든 생각인데, 누가 나를 보면 내가 아카데미에 굉장히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지 않을까.
물론 부정은 못 한다.
실제로 나는 아카데미에 집착하고 있었으니까.
이유를 살펴보면, 우선 나는 과거에 아카데미를 졸업하지 못했다.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거다.
가출했으니까.
그때 하지 못했던 걸 하려 한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건 아니다.
내가 이 아카데미에 집착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슬쩍 고개를 돌렸다.
스승님.
우리 스승님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했다.
스승님은 인간이라는 종족이 피라미드 꼭대기 층에 자리할 수 있는 모든 배경을 만들었고, 지금껏 인간들이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
그런 스승님이 세상에 남긴 것은 ‘거의’ 없다.
심지어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다.
‘테슬란 제국’이 건립되었을 때 도움을 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조력자’ 정도로만 알려졌을 뿐이다.
배은망덕하고, 인간이라는 종 자체에 환멸감을 느낄 지경이지만 죄를 따지기에는 시기가 너무 늦었다.
그런 스승님이, 유일하게 ‘직접’ 만들었던 게 바로 아카데미다.
앞서서 거의 없다고 말했었는데, 그 거의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건 이 아카데미 하나뿐이다.
과거에 만들어졌던 테슬란 제국?
그건 스승님이 만든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테슬란이라는 이름에 미련도 없고 관심도 없다.
하지만 아카데미는 다르다.
미래를 만들고 싶어 했고, 사람들이 웃으면서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던 스승님의 염원.
그런 것들이 담긴 유물이자, 희대의 영웅인 내 스승님이 세상에 남긴 유일한 진짜 흔적.
살아 있었다고.
나는 존재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흔적.
그게 아카데미다.
그래서 내가 집착하는 거다.
다른 곳은 더러워지고, 무너지고, 쓰레기가 되고 오물 범벅이 되어도 상관없다.
관심도 없고 그냥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카데미는 아니다.
여기는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
더러워지는 꼴? 못 본다.
무너지는 꼴? 못 본다.
설령 더럽혀지고 무너진다 해도 그 주체는 나나, 스승님이 되어야 한다.
다른 놈들은 이 아카데미에 지분이 없다.
이 아카데미는 스승님의 것이니까.
이곳만큼은 깨끗하고 고결해야 하며, 세상의 중심으로 남아 있어야 하니까.
그런데.
“기억, 안 나십니까?”
재차 묻는 내 질문에 조용히 허공을 응시하던 스승님이 대답했다.
그것도 그리움이 담긴 어조로.
[잊을 수가 없는 숫자였지. 5만. 5만 명이었다.]새삼스럽지만, 저건 어마어마한 숫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