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14)
제 15화
* * *
론은 잠시 주변에 벌어진 참상을 훑어보았다.
죽어 있는 25명의 인간.
그들의 몸에는 딱 하나의 상처가 새겨져 있었다.
일검.
아니, 이걸 일검이라고 불러야 할지조차 애매하다.
모든 시체들은 심장이 꿰뚫렸는데 잭이 직접 철검을 심장에 쑤셔 넣은 세 명을 제외하고는 상처의 근원을 따지기가 너무 어려웠다.
검으로 쑤신 것도 아니고, 벤 것도 아니고 그냥 뚫렸을 뿐인데 마치 9서클 마법사가 시전 한 윈드 커터를 본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윈드 커터는 대륙의 모든 마나 유저들이 알다시피 광범위 공격 마법이다.
아무리 서클이 높고, 그 수준이 뛰어나다고 해도 윈드 커터라는 마법은 결국 수도 없는 바람의 칼날을 날려 다인에게 최대한 많은 상처를 주기 위해 고안된 마법.
공식도 그렇고, 애초에 그렇게 설계된 마법인데, 이렇게 일시에 모든 적의 심장을 꿰뚫는 바람의 칼날을 날린다?
이건 윈드 커터라는 마법의 수준을 월등히 뛰어넘은 수준이다.
정확히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보면 볼수록 감탄이 새어 나온다.
‘죽이는 데 망설임도 없고. 상처는 깔끔하며 수법은 기상천외해.’
최상급 포션을 먹었음에도 여전히 비틀거리는 잭의 모습에 론은 침을 꿀꺽 삼켰다.
거대한 힘은 거대한 반발 작용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런 힘은 과연 얼마나 큰 반발 작용을 불러일으킬까.
그렇다면 그걸 버티는 잭은, 도대체 얼마나 고통에 익숙하기에 저렇게 버틸 수 있는 걸까.
‘대체 어떤 인생을 사셨던 겁니까. 도련님.’
최상급 포션이면 잘린 신체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치유 효과가 뛰어나다.
재생의 범주를 논하는 엘릭서라는 신의 물약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최상급 포션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모든 약품 중에서는 최고의 효율을 자랑한다.
그런데도 지금 잭의 모습은 완벽히 치유가 되었다고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상처가 치료되기 전에 잭이 느꼈을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는 뜻인데, 그런 상황에서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하인들의 심장에 검을 박아 넣는다?
론의 상식으로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도련님,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아까처럼 마차에 기대 숨을 늘어트리는 잭의 모습은 이상하게 숭고해 보였고 드높게만 보였다.
“이 빌어먹을 몸뚱이, 시발.”
잭의 험한 말에 론은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아, 괜찮냐고? 안 괜찮아. 힘들어 뒤지겠어.”
“……그렇군요.”
그러다 론은 무언가 퍼뜩 생각난 것처럼 시체들의 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약 5분간의 시간이 흐르자 론의 손에는 5개의 상급 포션과 63골드 40실링이라는 돈이 들려 있었다.
“역시 맨티스의 개새끼라 그런가. 들고 다니는 돈도 차원이 다르네.”
잭의 말에 론은 망설임 없이 그 모든 것을 잭에게 건네주었다.
잭은 론이 건네준 골드를 주머니에 구겨 넣고, 포션을 손에 쥐고는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론이 묻는다.
“안 드십니까?”
“먹어도 소용없어.”
자세히는 몰랐지만 론은 길게 묻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그때, 잭이 들고 있던 포션 중 세 개를 론에게 건넸다.
일단 건네받은 론은 실소를 내뱉고 말았다.
연금술도 아니고 최상급 포션 1개가 상급 포션 3개로 변했네.
“그런데 이 시체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냥 내버려 둬. 들짐승들이 뜯어 먹거나 지나가던 행인이 알아서 발견하겠지.”
“……여기 도련님만 없으면 의심받을 텐데요.”
“누구한테?”
론이 고개를 갸웃한다.
“누구긴 누구예요. 후작이죠.”
마차의 발걸이 부분에 털썩 주저앉은 잭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의심해도 그 양반은 나한테 아무 해코지 못 할걸.”
“……저라면 당장 도련님 소환했을 거 같은데.”
잭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나랑 내기할래?”
“……아니요. 또 질 것 같아서 안 하렵니다.”
“역시 론은 현명해.”
그런 잭을 론은 한동안 조용히 바라보았다.
시간 회귀라.
장미 정원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역시, 전혀 속을 알 수가 없다.
“무언가 믿고 있는 게 있다고, 그렇게 믿겠습니다. 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도련님.”
* * *
아, 맞다.
깜빡했다.
나는 후작가로 돌아가려는 론을 붙잡았다.
“잠깐만, 여기 오는 거 누구한테도 안 걸린 거 맞지?”
“당연하죠.”
“확실해?”
론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잇는다.
“일루전 펼치고 왔습니다. 아마 지금 저는 장미 정원에서 청소하고 있을걸요?”
일루전.
9서클 마법이다.
일종의 환상 마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간단하게 분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현재 가문의 최정예라 할 수 있는 철혈 기사단은 몬스터 토벌로 마수의 숲에 파견되어 있는 상태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다.
“혹시라도 지금 여기서 벌어진 일에 대해 후작이 론을 추궁할 수도 있어. 분위기가 뭔가 싸하다 싶으면 그땐 그냥 솔직히 말해. 내가 다 죽였다고.”
“……정말요?”
“어, 그리고 이건 정말 만약의 경우인데, 후작이 론을 죽이려는 그런 낌새를 보일 거 같으면 이 말도 전해.”
“뭐라고 전할까요?”
론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본능적으로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챈 게 확실하다.
“누나랑 론, 둘 중 한 명이라도 죽으면 그 날로 후작가는 멸문할 거라고.”
“……알겠습니다. 도련님.”
이미 론은 내 힘을 겪었다.
하지만 론이 겪은 내 힘은 극히 일부의 일면일 뿐이며 론은 정확히 내가 어떤 놈인지 모른다.
참고로 나는 한다면 하는 놈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만약에 만약을 가정한 거니, 그렇게 심각한 표정 짓지는 말고.”
“괜히 불안해지는데요?”
나는 웃었고 론도 웃었다.
어찌 보면 내 말은 전부 과장이 심하게 보태진 말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하건대, 나는 지금도 7서클 마나 유저인 후작을 죽일 수 있다.
조금 정확하게 덧붙이자면 마스터가 아닌 모든 마나 유저는 나를 죽일 수 없다.
내가, 지금 당장 후작가를 뒤집지 않는 이유는 누나가 슬퍼하기 때문이며 일이 괜히 복잡해질 게 뻔하기 때문이지, 그 외에 별다른 이유는 없다.
모든 일에는 순서와 타이밍이 있는 법.
하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누나나 론이 죽는다면 후작은 그 날로 내 손에 죽는다.
후작뿐만이 아니라 후작 부인도 죽을 거고 그들과 손가락 하나 스친 놈들은 물론 조금이라도 연관되어 있는 놈들은 한 놈도 남겨 두지 않고 하나하나 찾아서 전부 죽일 거다.
맨티스 백작가? 그들의 정치적인 뒷배가 국왕이다?
관심 없다.
그 날로 그 뒷배가 어디건 간에, 모조리 내 손에 죽는다.
그저 나는 바랄 뿐이다.
후작이 눈치껏 누나에게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해 주기를.
‘일종의 기회를 준다고 해야 하나.’
나는 지금처럼 상황이 바뀌고, 입장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려 주는 힌트들을 조금씩 뿌릴 것이다.
“후작이 조금만 일찍 깨달았으면 좋겠는데.”
내 넋두리 같은 말에 론이 어색하게 웃는다.
“그런데 꼭 아카데미로 가셔야 하는 겁니까?”
“어.”
론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아까 했던 말을 그대로 한 번 더 내뱉는다.
“그러다 후작이 도련님 소환하면요?”
슬며시 웃고 말았다.
앞에서는 가볍게 넘어갔지만 사실, 론의 말대로 지금 이 산에서 일어난 일로 후작이 나를 소환하거나 하는 일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왜냐면, 아카데미에는 절대적인 규칙이 하나 있거든.
“정확한 문장은 기억이 안 나는데, 학기가 시작된 경우 집안에 가주가 죽었거나 가주의 직계 혈족이 사망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본가로의 귀환이 불가능하다…… 뭐 이런 말이 있었던 거 같은데?”
“……비슷하긴 합니다.”
웃음이 짙어진다.
“왕국법은 영지법에 우선하지. 일개 후작이 왕의 말을 어떻게 거역하겠어?”
결론만 말하자면 후작은 나를 소환할 수 없다.
이내 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린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진짜로 가 보겠습니다.”
말속에 약간의 아쉬움 같은 게 남아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나랑 같이 여행 비슷한 걸 하고 싶었나 보다.
그것도 나름 재미는 있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론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몸조심하고, 가는 길 몬스터도 조심하고.”
“……그럼 이제 4년 뒤에나 보는 겁니까?”
“그건 또 모르지. 여하튼, 누나 잘 보살펴 줘.”
그렇게 론은 사라졌다.
후작가에서 이곳까지 걸린 시간은 약 9시간.
하지만 론이라면 1시간, 아니 30분 정도 안으로 후작가에 도착할 수 있다.
홀로 남은 나는 조용히 상황을 정리했다.
후작가의 삼 공자와 함께 아카데미로 향하는 호위단이 전멸했다.
하나같이 심장이 꿰뚫린 그들의 시체 중에는 삼 공자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건 납치당했거나, 어디로 도망갔다는 의미가 될 텐데. 아마 누나라면 내가 납치당했을 거라고 생각할 확률이 높다.
그리고 또 슬퍼하다가 후작한테 나를 구출해야 한다고 애원하겠지.
마차 발걸이에 앉은 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을 너무 크게 벌인 것 같기도 하지만, 역시 신경 쓰이지 않는다.
후작이 론을 의심한다고 해도 현재 후작가에는 론을 제압할 만한 마나 유저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후작이 론을 제거하려면 그만한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데, 굳이 그런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
라고, 내 이성은 판단하지만, 세상이라는 게 어디 내 뜻대로만 흘러가면 그게 세상인가.
퇴로가 막힌 쥐새끼가 포식자인 고양이를 향해 덤벼드는 것처럼 세상에는 별의별 일이 일어난다.
됐다.
이미 엎어진 물이고 쓸어 담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 이상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하는 건 무의미하다.
나는 다리를 꼬며 생각에 잠겼다.
‘어디 보자, 후작가에서 출발하고 아카데미에 도착하는 동선 중에 산에서 야영을 세 번 한다고 가정한다면…….’
바로 고개를 저었다.
체력 소모가 심하고 고되며 짜증마저 솟구치는 게 바로 산행이다.
그걸 어떻게 포장하든 결국 산행은 산행이라는 뜻.
이미 최적의 길은 상인들이나 보부상들이 닦아 놨으며, 앞서 말했듯 후작가에서 아카데미까지 4일이 걸린다는 말은 그 길을 토대로 동선을 짰을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 산행으로 이동하는 데 똑같이 4일이 걸린다?
이건 더 생각할 것도 없다.
말만 산행이지 실상은 정형화된 길을 따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즉.
‘주변, 그것도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하나 있다는 이야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