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142)
제 143화
아베이루는 그 말만 남기고 몸을 돌렸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후작령으로 올 때 같이 왔던 필립이 슬며시 옆으로 따라붙는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아베이루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평온했지만, 필립은 바보가 아니다.
아니, 목소리가 평온하면 뭐해. 지금 주머니에 꽂은 오른손이 덜덜 떨리고 있는데.
“제가 ‘그분’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거는 알거든요. 그분이 저 방 안에 있는 두 분을 굉장히 애틋하게 여기시는 거…….”
필립은 말을 흐렸고, 아베이루도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건너편에 있는 빈 방.
응접실로 사용되는 방으로 들어갔고, 눈치 빠른 필립이 문을 닫는다.
터억-
그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후아-”
아베이루가, 깊은 숨을 토해 냈다.
“와씨, 미치겠네.”
방금 전까지 무겁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이마에는 식은땀마저 흘러내린다.
“이거 공자님이 아시면, 나 뒤지게 쳐 맞는 건 아니겠지?”
“……설마요. 솔직히 틀린 말 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리고?”
필립이 어색하게 웃는다.
“누구 가르치시는 게 아주, 누가 보면 아카데미 교관인 줄 알겠어요.”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농담인 것을 아베이루는 안다.
그건 말을 내뱉는 필립도 알고 있었다.
“거기다가 지부장님 꽤 멋있었습니다. 그런 지부장님을 설마 공자님께서 때리시기야 하시겠습니까? 이리 고생하시는데.”
책상을 짚고 잠자코 듣고 있던 아베이루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거랑은 달라, 인마.”
“뭐가요?”
공자님은 네 생각보다 더 단순하신 분이거든.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나저나, 확실히 대단하시네요.”
“누가? 내가?”
“아니요. 그분이요.”
응접실 의자에 대충 걸터앉은 아베이루가 긍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도 여러 번.
그럴 만도 한 게.
“헤르만 후작가를 지워 버리다니요. 이게 무슨 소설도 아니고.”
지금 대륙은 굉장히 시끄러웠다.
정확히 말하면,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왕국 연합의 출범.
대륙의 주도권이 큰 범주에서 정확히 2파전으로 갈린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툴칸 제국vs왕국 연합.
시끄러운 게 당연했다.
그런 상황에서 헤르만 후작가가 멸문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정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헤르만 후작가가 멸문했다는 소식은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럴 만도 한 게.
테슬란 국왕이 아무리 무능해 보여도 나름 국왕이고 정치 감각도 있다.
헤르만 후작가가 멸문했다…….
이 사실을 반기는 이는 없다.
왕국 연합의 입장에서나 테슬란 국왕의 입장에서나 전혀 원하지 않는 진실.
이유는 간단했다.
왕국 연합으로 쏠린 시선이 분산될 수도 있으니까.
그건 테슬란 국왕도 바라지 않고, 모든 왕국의 왕들도 바라지 않는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해야 하는 행동은 두 가지다.
하나는 숨기는 것.
다른 하나는 다른 화제를 부각시키면서 자연스럽게 묻히게 하는 것.
마자르 테슬란은 후자를 택했다.
잭과 아베이루는 마자르 테슬란이 굉장히 무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정말 의외로 국왕은 생각 외의 능력이 있었다.
비밀 같은 것을 감추는 데에는 도가 텄다고 해야 할까.
소문을 컨트롤하는 그 솜씨만큼은 솔직히 아베이루도 감탄할 정도였다.
이게 얼마나 흥미롭냐면.
오늘 아침에 발간된 테슬란 타임지 메인.
그곳에 실린 내용 중 이런 부분이 있었다.
[헤르만 후작가를 멸문시킨 조직, 그 배후는 툴칸 제국으로 강력하게 추정된다.]줄타기를 잘한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눈치가 있다고 해야 할까.
일단 헤르만 후작가의 멸문 소식을 알린다.
그걸 알리면서 자연스럽게 그 배후를 툴칸 제국으로 지목한다면.
사람들은 ‘아, 툴칸 제국은 정말, 그냥 미친 강아지들의 모임이구나’.
그렇게 생각할 거다.
그렇게 생각 안 해도, 그렇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마자르 테슬란은 그런 쪽으로 아주 도가 튼 인물이니까.
거기다 왕국 연합으로 어떻게든 득을 보겠다는 그 심보가 아주 노골적이다.
여하튼.
잭이 만든 이 거대한 판의 존재를 아베이루는 알고, 그의 밑에서 손발 노릇을 하는 필립도 안다.
그래서 이 둘은 지금 다른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잭이 의도했던 일들이고 잭이 만든 일이니까.
걱정?
왜 그런 걸 하나.
일을 행한 이가 잭 발란티에라면 이미 말 다 한 거다.
그는 그런 남자니까.
“생각할수록 대단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토벌단이 복귀하지 않은 상황이어도 마나 유저만 해도 최소 천 명이 넘을 텐데, 그걸 다 혼자서 죽이신 거잖습니까. 재능이 진짜…… 범상치가 않네요. 대륙 최연소부터 대륙 최강, 그런 수식어 전부 바뀌는 거 아닙니까?”
필립의 말에 아베이루는 그저 쓰게 웃었다.
엘리자베스한테 했던 이야기들.
그건 그 순간을 피하기 위해서 한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진심이었다.
잭의 비밀.
잭이 말한 회귀.
전생에서 잭이 어떤 일을 했는지.
그 모든 것들을 아베이루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잭에게 소개까지 시켜 주었던 필립, 손발을 자처하는 그런 필립에게조차 잭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지 않았다.
당연히 필립도 굳이 묻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베이루가 후작령으로 갈 때 필립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걱정되시면 좀 참지 그러셨습니까. 아니 잠깐만, 이거 이러다 진짜 그분 여기로 막 바로 뛰어오시는 거 아닙니까? 괜히 겁나는데.”
피식-
“공자님이 온다 해도 설마 뛰어오시겠냐? 날아오시겠지.”
“지금 농담이 나오십니까?”
“농담 아닌데.”
“…….”
“그리고 생각해 봤는데, 우리 공자님께서는 별말 안 하실 거 같아.”
“확신하십니까?”
아베이루는 웃었다.
마치, 언젠가 잭이 론에게 보여 주었던 것처럼.
“나랑 내기할래?”
“……요즘 그 말 입에 붙으신 거 아십니까? 안 합니다. 맨날 지는데 내가 왜 합니까 그런걸.”
두 남자가 시시덕거리고 있을 때.
반대쪽 방의 분위기는 심각했다.
“……저 남자가 잭을 따르는 남자인 거죠?”
엘리자베스의 낮은 목소리에, 론은 최대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 아가씨. 맞습니다.”
벽에 등을 기댄 엘리자베스가 천천히 천장을 올려다본다.
하아.
“모르겠어요.”
“…….”
“그렇게 순수하고 착하기만 하던 내 동생이 어느 순간 달라졌는데, 그걸 나는 모르고 있었네요.”
론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의 넋두리를, 그저 들어 줄 뿐.
“언제부터였을까요. 감옥에서부터였나. 아저씨, 저 6살 때 이후로 처음 봤어요.”
무엇을 처음 봤다는 걸까.
“잭이 우는 거. 제 앞에서 눈물 보이는 거요.”
“…….”
“아버지가 아무리 천대하고, 페일론이 잭을 때려도, 잭은 단 한 번도 제 앞에서 울지 않았던 거, 아저씨는 아세요?”
“예. 압니다. 아가씨 말씀대로 정확히 6살 때였죠. 저도 그때 이후로 도련님이 우시는 거, 본 적 없습니다. 아마 울어도 혼자 우셨겠죠.”
잭은 그런 아이였다.
울분이 있으면 내색하지 않고, 울 일이 있으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우는.
론은 안다.
아무리 마나를 쓰지 않아도 감각은 남아 있다.
잭이 우는 모습.
솔직히 말하면 많이 봤다.
페일론에게 맞고, 클라크 발란티에에게 처음으로 따귀를 맞았을 때.
후작 부인에게 구박받았을 때.
7살, 8살, 9살, 10살, 11살, 12살, 13살.
심지어 14살.
그런 일은 수도 없이 일어났었다.
잭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장미 정원에 혼자 있게 된 순간.
울었다.
아주.
처절하게.
그걸 아는 론이 굳이 입으로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한 것은 그냥, 그러고 싶었기 때문이다.
잭이 왜 그렇게 혼자 삭이고 있었던 건지, 론은 알고 있으니까.
“그런 모습을 아가씨께서 보게 되면 아가씨도 슬퍼할까 봐 최대한 조심했던 거죠. 도련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이어서.
엘리자베스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그 모습에, 론은 조금 의아했다.
왜.
왜…….
웃지?
희미하게 피어난 미소는 조금씩 짙어졌고.
엘리자베스의 눈은 붉어진다.
그건 분명 슬픔.
슬펐기 때문이다.
“……하하…….”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고.
“아하하하…….”
두 방울, 세 방울.
그렇게 떨어졌을 때.
“아하하하하하하.”
엘리자베스는 웃었다.
눈물을 흘리면서 웃는.
마치 광대와도 같은 그녀의 모습에 론은, 순간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이런 모습.
분명 언젠가 본 적 있다.
십수 년 전.
노아와 함께 ‘그곳’을 탈출하던 그때.
알 속에 갇혀 있는 한 생명체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그때’의 노아는 지금 엘리자베스처럼 울며 웃었다.
분명, 그때와 흡사하다.
“바보가, 된 기분이에요.”
웃음은 그쳤다.
하지만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울면서 엘리자베스가 말한다.
“잭은 무언가를 했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하게 있었던 걸까요.”
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감옥에서 잭이 저한테 그랬거든요. 언제까지 애로 남을 수는 없다고. 그건 자기 자신한테 하는 말이 아니라 저한테 하는 말이었네요.”
“…….”
“잭은 누군가에게 보호받을 정도가 아닌데, 무언가를 겪고, 변한 게 확실한데…… 저만 자꾸 제자리걸음이었어요. 그걸 이제야 깨닫네요.”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침묵하던 엘리자베스가.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론을 스쳐 지나가고.
끼익-
닫힌 문을 열고, 복도를 걷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론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론이 반응한 것은, 그런 생각을 한 후.
정확히 10초 뒤였다.
엘리자베스가 들어간 곳.
분명 감각에 의하면 아베이루와 필립이 들어간 응접실이었으니까.
상황파악.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론은 자리를 박찼다.
설마 엘리자베스가.
아베이루를 죽인다거나…… 그러지는 않겠지?
닫힌 응접실 문.
그 문을 빠르게 열려던 론은, 순간 멈칫했다.
안쪽에서 들린 말.
내가, 잘못 들었나.
* * *
-아하하하하하하.
응접실과 집무실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당연히 집무실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응접실에 있는 두 남자는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웃음소리 아닙니까?”
나름 방음을 철저하게 했지만 의미 없었다.
아베이루의 표정이 굳어지고, 그 옆에 있는 필립도 굳어진다.
아마 그 굳기를 순위로 표현했다면 필립은 1위, 아베이루는 2위였을 거다.
뭔가, 묘하다.
“……제가 이런 상상을 한번 해 봤습니다.”
뜬금없는 필립의 말에 아베이루가 고개를 돌린다.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분의 재능과 엘리자베스 님의 재능은 누가 봐도 특출 나잖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둘째인 페일론은 왜 그럴까요.”
모르고 한 질문은 아닐 거다.
“그야 부계 쪽이 아닌 ‘모계’ 쪽의 차이 때문이겠지.”
유전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생물학자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건 그냥 누가 봐도 답이 나온다.
잭 발란티에와 엘리자베스의 재능은 둘의 어머니인 노아라는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건 확실하다.
그리고.
“……그 핏줄, 솔직히 지부장님도 모르잖습니까.”
알 턱이 없다.
물어본 적이 없고, 잭이 말해 준 적이 없으니까.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조사해 보고 싶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잭을 주군으로 모시기로 했는데 모시는 사람의 뒤를 판다?
양아치도 그런 양아치가 없다.
아베이루는 그런 양아치가 아니었다.
“가끔 역사 속에서 등장하는 걸로 압니다.”
“뭐가?”
“폭군이요.”
아베이루의 표정이 괴상하게 변했다.
이건 뭔, 참신한 개소리 2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