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169)
제 170화
[사라질 뻔한 뱀파이어족의 진조를 구해 너의 사람으로 만들었고, 암담한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던 셀을 구해 그 아이도 너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 둘에게 너는 미래를 주었어.]스승님이 조용히, 고기를 한 점 들더니 내 입에 먹여 주신다.
[장담하는데, 너는 사상 최악의 폭군, 혹은 사상 최고의 성군, 둘 중하나로 불리게 될 것이고 너의 죽음에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슬퍼할 것이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느냐.]이번에는 내가 고기를 집어 스승님의 입가에 넣어 주었다.
슬슬 쿨타임 찼으니까 물어보자.
“더, 사실 생각 있으십니까?”
[…….]“제가 폭군이나 성군, 둘 중 뭐로 불리게 될지 끝까지 지켜보시면 안 됩니까?”
결국, 스승님은 웃었다.
그제야 내가 왜 갑자기 이런 이상한 주제의 이야기를 꺼냈는지 알아챘다는 그런 의미의 웃음.
이어서, 스승님이 수저를 내려놓는다.
[50년.]스승님의 맑고 투명한 눈동자가.
빛을 받아 반짝인다.
[50년 정도라면, 더 살아도 될 것 같구나.]“50년이요?”
[그래, 50년. 네가 사랑하게 될 이를 보고 싶기도 하고, 너의 피를 이은 아이도 한번 보고 싶구나. 네가 결혼하는 것도 보고 싶고. 나는 스승이지 않느냐?]스승님의 밝은 웃음을 바라보며, 나도 웃었다.
“아마, 보게 되실 겁니다. 제 ‘아내’도, 제 ‘자식’도.”
그런 내 웃음은, 음.
뭐라고 해야 할까.
꽤.
의미심장하다고 해야 할까.
우리 스승님만 모르시나 보다.
여전히 웃고 계시네.
새삼스럽지만 우리 스승님의 웃음은 다른 이의 웃음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너무.
밝다고 해야 하나.
눈이 부실 지경이다.
* * *
아주 좋은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 누나가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까부터, 계속 저런 눈빛이었는데.
뭔가 할 말이 있나 보다.
그걸 눈치챈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할 말이 많아 보이는데, 자리를 비켜 주었으면 하느냐?]“아…… 발렌타인 님, 아니에요. 그냥.”
[그냥?]“동생한테 할 말이 있어서요.”
스승님이 슬쩍 웃으며,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때마침 스승님을 바라보던 나와 눈이 마주쳤고, 서로 웃었다.
뭔지는 몰라도 우리 누나, 나한테 ‘부탁’할 게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
“뭔데?”
“음…….”
말끝마저 흐린다.
대체 무슨 부탁이길래.
“전에 네가 말했잖아.”
“어떤?”
“필요한 거 있으면 다 말하라고.”
빙긋 웃었다.
“그랬지.”
누나가 얼굴에 철판을 깔며 내게 말했다.
“돈, 필요해.”
얼마나 필요하냐고 물으려 했지만, 못 물어봤다.
누나가 바로 말해 줬거든.
“그것도 아주 많이.”
우리 누나.
이제야 좀 귀족 같네.
서슴없이 삥 뜯는 거 봐.
하하.
* * *
그렇게 ‘아침’ 식사가 끝났다.
클라크 발란티에가 싸 놓은 똥은 누나와 아베이루가 최대한 처리하긴 했지만, 그래도 모자라다.
왜냐면.
우리 누나가 꽤 큰 사업을 하려는 것 같거든.
예술 지구를 만들겠다는데, 솔직히, 나는 영지민들이 웃는 거 거의 못 봤다.
연극이나 오케스트라 같은 예술가들도 불러서 영지민들이 문화생활을 할 수 있게 영지 차원에서 지원한다…….
이건 좋다.
다음으로는 성벽을 새로 세우고 군인을 새로 모집하겠다고 했다.
그것도 괜찮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세율을 낮추겠다고 한다.
기존 세율은 70퍼센트로 굉장히 높은 편에 속했다.
사실,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연도 2월인가 3월인가.
그쯤에 국왕이 귀족들에게 걷는 세금을 올린 적이 있었거든.
당연한 소린데, 귀족이 왕에게 내야 하는 세금이 올라가면 귀족이 영지민에게 걷는 세금도 올라간다.
그리고, 나는 이 전체적인 상황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세율을 낮추겠다느니, 올리겠다느니 그런 게 마음에 들지 않은 게 아니라.
애초에 세금을 왕한테 내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왜, 정확히는 우리가 왜 테슬란한테 세금을 내야 되는데.
‘나’라는 존재가 왕국 내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왕은 고마워해야 되는 거 아닌가?
돈을 받았으면 받았지 내는 건 우습잖아.
그래서.
나는 누나한테 말했다.
앞으로 왕성에 세금 내지 말라고.
맨티스 백작가도 통합하면, 거기서 나오는 돈도 왕한테 주지 말라고.
누나는 그래도 되냐고 물었지만 내가 하면 다 된다.
나름 잘 설득했고, 누나는 내 설득에 넘어갔다.
그리고 누나가 빌려달라는 돈에 대한 건 당연히 쉽게 해결됐다.
대륙전장에 가서 백지수표 받아 왔거든.
그걸 그대로 누나한테 주니까 놀라더라.
그렇게 아침 10시경에 발란티에 영지에서 새로 시작될 사업이 발표됐다.
소식을 들은 영지민들은 열성적으로 환호했고, 나도 거기 껴서 같이 환호했다.
‘엘리자베스 후작님 만세’ 외치니까, 다 따라서 외치더라.
그런 나를 멀리 있던 론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지.
그리고 뭣 모르는 우리 꼬맹이들도 옆에서 같이 만세 외쳐 주고 방방 뛰면서 놀던데, 그때는 진짜 어린애들 같더라.
그리고 지금.
나는 모든 무명 조직원이 자리한 ‘상단 건물’ 지하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숫자는 최소 500이 넘어가는 것 같은데, 옆에 있는 아베이루에게 슬쩍 물어보니 총 620명이란다.
아베이루의 명을 따라 움직인 620명의 사람들.
남녀노소 다양하다.
그리고, 말은 안 했지만 나는 지금 저들을 처음 본다.
중간중간 상단 건물로 왔을 때 몇 번 마주친 이들과 철혈 기사단의 수습 기사 몇 명과 수습 마법사 몇 명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 모든 이들과 직접적으로 대면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너희가 뭘 보고 온 건지는 몰라, 맹목적으로 뭘 그렇게 믿는 건지도 잘 모르고. 사실 아는 게 이상한 거잖아? 지금 거의 초면이나 다를 바 없는 상황인데.”
실실 웃었지만 다른 이들은 아무도 웃지 않았다.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사람 행복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잖아. 누구는 예쁜 아내를 얻고, 누구는 잘생긴 남편 얻어서 자기를 꼭 닮은 꼬맹이 낳고 오순도순 사는 거.”
아베이루도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라고 전에 말한 적도 있었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권력? 다 부질없다.
“그런데 지금 세상을 봐.”
이어서, 오른손 검지로 한 남자를 가리켰다.
“너, 말해봐.”
“무……엇을요?”
“지금 세상이 어때? 살만한 세상인 거 같아?”
“…….”
“침묵이라……. 그것도 나름대로 대답이라면 대답이겠지.”
이번에는 그 옆에 있는 여자를 가리켰다.
“너는?”
“……적어도 살만한 세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내면을 보지 못하고, 단면만 본 이들은 그 내면을 자기 멋대로 예측한다.
그게 인간을 포함한 모든 지성체의 습성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단순히 단면만 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이 아니다.
내면을.
확실하게는 몰라도 그 내면이라는 걸 조금이나마 엿본 이들.
그런 사람들이 지금 모여 있는 것이다.
“살만한 세상이 아니다…… 맞아. 틀린 말은 아니지.”
지금 세상.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절대 평온한 세상이 아니다.
백성들은 모르고 있었다.
얼마 전 내전이 벌어질 뻔했고, 만약 내전이 벌어졌다면 자기들은 병사로 동원되어 얼굴도 모르는 왕이나 왕에게 대적하는 이를 위해서 목숨 걸고 싸웠을 것이라는 사실을.
내가 그걸 막은 거지만, 내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삼분지 일은 죽었을 거다.
시야를 넓혀볼까.
대륙 전쟁.
아니지.
대륙 전쟁이라는 이 큰 주제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잖아.
한 남자의 야망이 주변 이들을 끌어모았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살인, 공작, 강간, 전쟁, 방화 등등.
그냥 대륙 전체가 화마에 휩싸이는 거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귀족이나 마나 유저들이 아닌 ‘평민’들이다.
왜냐면.
졸라게 만만하니까.
고개를 들었다.
“너희도 잘 알겠지만, 어릴 때의 난 이 후작령에서 행복했던 적이 거의 없었어.”
거짓이 아닌 진실이다.
저능아, 머저리.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그 소문을 더 가까운 곳에서 들어왔던 발란티에 영지의 영지민들이다.
이들 모두가 안다.
이 후작령에서, 잭이라는 아이는 매우 불쌍하게 살았다는 것을.
“너희가 후에 낳게 될 애들이나, 지금 키우고 있는 애들은 적어도 행복해야 하지 않겠냐? 나처럼 불쌍하게 살면 안 되잖아.”
“…….”
농담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지금 진심이다.
순도 100퍼센트의 진심.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려는 새끼들이 있으면, 그것과 반대로 세상을 좋게 만드는 애들도 있어야지. 난 너희가 후자의 사람이었으면 한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명이라는 조직, 내 가족처럼 생각할 거라고는 약속 못 해.”
진심이다.
사조직이어도.
아베이루가 나를 위해 만들었다고 해도.
가족처럼 생각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빈말로라도 나는 그런 말 못 한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약속한다.”
무명의 조직원.
그들 모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희가 나를 위해 일하거나, 우리 누나를 위해 일하다 죽게 된다면.”
마나를, 끌어올렸다.
후웅-!
바람이 불며, 옷깃이 나풀거린다.
“내 목을 걸고, 내 모든 걸 걸고 복수해준다. 가족이 살아 있으면 남은 가족에게 부귀영화를 줄 거고, 가족이 전부 죽는다면 복수 대상의 가족도 똑같이 만들어준다. 꼬마, 햇병아리, 세 살배기, 의미 없어. 핏줄 하나 남기지 않고 이 세상에서 책임지고 지워준다.”
분명, 나는 진심이었다.
잠시 수백의 무명 조직원들을 바라보다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때.
털썩-
뒤에서, 누군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렸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그건.
쓰러지는 소리가 아니라 무릎 꿇는 소리였다는 것을.
처음 내게 지목당했던 남자가 무릎을 꿇었고, 그 옆에 있던 여자도 무릎을 꿇는다.
그게.
시작이었다.
털썩-
털썩-
털썩-
눈치 보는 이들은 없었다.
모두가.
이 자리에 있는 수백이 넘는 이들이 ‘자유의지’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일제히 고개를 숙인다.
왕이 탄생하고, 새로운 왕이 즉위할 때 수도의 주민을 비롯한 모든 귀족들은 수도로 집합을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왕을 향해 무릎을 꿇는다.
하지만 그것은 형식적인 예의에 불과하다.
지금.
이들이 내게 보여주고 있는 예의는 최상의 예의.
형식적으로 하는 그런 게 아니라 진심을 담은.
심지어 눈물까지 흘리는 이들도 있는데 이런 걸 형식적이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나가 죽어야 한다.
잠시 그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한번 한 약속은 무조건 지킨다.
그게 무엇이건 무조건 지킨다.
내 사람은 아니지만 나를 위해 일하는 이들에게 그 정도의 약속.
어렵지는 않다.
그렇게,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때, 엎드려있던 아베이루가 재빨리 일어서고는 내 뒤를 따랐고.
함께 건물을 벗어났다.
화창한 날씨.
햇빛을 받으며 기지개를 켰다.
“후우-”
날씨 좋네.
정말 날씨가 좋다.
옆에서 느껴지는 아베이루의 뜨거운 시선만 빼면.
더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