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180)
제 181화
“용서는 무슨. 야, 사람이 밥 먹다 보면 무언가 집중해서 생각할 일도 있고 그런 거지. 기왕 잘못을 따질 거면 잘 먹는 너를 부른 내 잘못이잖아. 그러니까 표정 풀어. 누가 보면 내가 식인종인 줄 알겠어.”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런데 조금 궁금하네.”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아니, 음식 맛도 좋은데 아까부터 계속 초상집 분위기인 거 같아서. 혹시 집안에 우환이라도 있냐? 휴가라도 갔다 올래?”
“아…… 아닙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별일 아닙니다.”
별일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고개를 갸웃하자, 갈라디너의 옆에 있던 그레이가 살짝 덧붙인다.
“학부장으로 올라온 지 얼마 안 돼서 잠깐 겪는 적응 장애인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점심시간에 모든 교관들을 대상으로 한 회의가 소집되어 있습니다. 갈라디너도 여러모로 준비할 게 많기도 했으니, 여러모로 확실히 겪을 만도 하지요.”
적응 장애라.
“너 나이가 몇이었지?”
“올해로 34살, 몇 달만 지나면 35살입니다.”
생각 외로 젊네.
진짜, 생각 외로 젊네.
얘 나랑 동갑이었어?
생긴 거 보면 40대쯤으로 보였는데.
군인 출신이라 그런가.
음.
“학부장 하는 거, 많이 힘드냐?”
“……아, 절대 아닙니다. 힘들지 않습니다.”
“그래?”
“예.”
뭐, 힘들지 않다는데 어떻게 해.
“무슨 일 있으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레이나 나한테 말해. 그게 뭐든 들어줄 테니까. 오케이?”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대답하려 하자, 슬쩍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녀석이 내게 말한다.
“감사합니다. 기대에 부흥하겠습니다.”
그게 끝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그레이와 갈라디너를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언가 걸리는 게 있느냐?]“예.”
내 시선은 그레이가 아닌 그 옆에 있는 갈라디너를 향해 있었다.
“학부장, 해 본 적은 없지만 업무량을 보면 절대 편한 자리는 아니죠. 그런 자리에 총사령관 출신인 그레이도 아니고 고작해야 수석 교관을 앉힌 건데, 힘들지 않으면 말이 안 될 겁니다.”
[그게 전부는 아닐 것 같은데, 아니더냐?]슬쩍 웃고 말았다.
우리 스승님, 역시 날 잘 아신다.
“아무리 봐도 뭔가 더 있는 것 같거든요. 예를 들면.”
[예를 들면?]“아카데미 내부의 알력다툼, 그런 거?”
아베이루가 말했듯.
이 대륙에 있는 모든 아카데미에서는 ‘평민’을 학부장으로 세운 적은 없었다.
명예 작위가 괜히 있는 게 아니지만 그래도 평민 출신은 알게 모르게 무시를 받는 게 당연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면 하나밖에 없다.
실력을 보여 주는 거.
대부분은 서클의 우위를 앞세우거나 가문의 위세를 뒤에 업은 뒤 주변을 찍어 누른다.
하지만 갈라디너는 그 두 개에 해당되지 않았다.
고작해야 4서클 마나 유저.
명예 작위가 있긴 하지만 거기까지다.
배경도 평민 출신에 서클마저 낮은 갈라디너가 형식적으로는 아카데미 내부에서 절대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학부장의 자리에 앉았다.
그레이 학부장과 총장이 표면상으로는 내 쪽에 서 있는 상황이기에 평상시였으면 문제는 안 일어났을 거다.
하지만.
이젠 아니잖아.
대륙전장에서 파견된 마스터들과 고서클 마나 유저들.
그 숫자가 대충 60이 넘어가고 그들 중 갈라디너보다 경지가 낮은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뿐일까.
행정학부는 굳이 마나 유저가 아니더라도 행정 쪽에서 능력이 있으면 학부장도 해 주고 수석 교관도 해 준다.
그건 어디까지나 행정학부가 ‘예체능’ 계열로 취급되는 경향이 짙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사학부는 예체능 계열이 아닌 나름 아카데미의 핵심 부서이고, 그걸 넘어서 왕국 내에서도 핵심적인 자리다.
전시 상황에서 병사들을 지휘할 장교를 길러내는 곳이니까.
그 자리에 군단장 출신도 아니고 총사령관 출신도 아닌 고작해야 대대장 출신에 평민, 그리고 4서클밖에 안 되는 마나 유저를 꽂는다?
그런 상황에서 고서클 마나 유저가 60명이 넘게 보충되었다?
이거.
문제가 안 생기면 개연성을 의심했어야 한다.
‘새끼들이, 여기서도 힘싸움을 하고 있네.’
한 번쯤 서열 정리를 해 줄 필요도 있겠지.
그러고 보니.
점심시간쯤에 회의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고개를 돌려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갈 것이냐?]거봐.
나에 대해 잘 아신다니까.
“예. 제가 벌인 일이니 사후 처리도 제가 하는 게 맞겠지요.”
스승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나는 아카데미로 향했다.
* * *
“죄송한 말씀이지만 예산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동안 대부분의 예산은 검술학부와 마법학부가 40프로씩, 나머지 20프로를 군사학부와 행정학부가 나눠 쓰는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군사학부만 해도 물자 부족이 심각한 상황인데 지금 남아 있는 아카데미 1년 예산 중 40프로 이상을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상업학부에서 사용하겠다니요. 너무 지나친 거 아닙니까?”
갈라디너의 어조는 격했다.
그런 갈라디너의 말에 검술학부 학부장, 그레이가 말했다.
“솔직히 자네 말대로 검술학부는 예산이 부족하지도, 물자가 부족하지도 않아 오히려 남는 편이지, 그걸 전부 군사학부로 보내 주겠네.”
그에 반해 마법학부 학부장 ‘대리’인 8서클 마법사 쿠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럴드 린치도 마찬가지였고.
상황은 간단했다.
아카데미는 기본적으로 보급제를 택한다.
학생들에게 품위유지를 빌미로 한 용돈 비슷한 것을 넘어, 아카데미에서 지내는 동안 필요한 모든 것들을 지원해 준다.
그것도 무상으로.
식비, 의류비, 훈련용 무기, 교재 등등.
하지만 아카데미 예산은 한정되어 있다.
기존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면 문제를 삼는 이들이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전체적으로 아카데미가 개혁된 상황이다.
거기다 추가로 창설 예정인 상업학부의 교관을 맡을 대륙전장의 마나 유저들까지.
그들은 현재 검술학부, 마법학부에 배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그들의 경지가 높다는 데에 있었다.
자그마치 마스터가 3명이다.
고서클 마나 유저들의 숫자도 60이 넘어가는데, 그들의 발언권이 커지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으리라.
이건 개혁의 문제가 아니었다.
책임의 문제였지.
갈라디너가 말했고, 그레이가 말한 그때.
대륙전장 소속 마스터인 ‘베네딕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희 ‘상업학부’에는 할당된 예산 그 이상이 필요하고 의류비부터 식비, 그 외 부족한 것들을 채우기 위한 예산이 더욱더 필요합니다. 그러니 저희 상업학부는 양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현재 아카데미 예산은 약 240만 골드가 남은 걸로 압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저희는 그 예산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전부’.”
그레이가 한숨을 푹 내쉰다.
갈라디너의 표정은 굳어졌고, 뚜벅이처럼 자리만 잡고 있는 마법학부 학부장 대리인 쿠베리와 행정학부 학부장 모르본은 그저 침묵만 했다.
갈라디너가 말했다.
“검술학부의 여유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군사학부에서는 학생들이 최근 세 달 이상 품위 유지비를 받지 못했다는 거 알고는 계십니까? 찢어진 학생복을 세탁소에 맡길 돈이 없어서 바늘로 자기가 직접 꿰매고 다니는 이들이 수십 명이나 됩니다. 그런데 아직 창설도 되지 않은 상업학부에서 240만 골드 전부를 가져다 쓴다는 게 말이 됩니까?”
예비 상업학부장이자, 마스터이며 롤랜드 린치의 아들이기도 한 해럴드 린치가 무언가 말하려던 그때.
처음 갈라디너에게 트집을 잡았던 베네딕트가 실소를 터트린다.
“4서클 주제에 말이 많네.”
분명 혼잣말이었다.
혼잣말을 넘어서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지금 회의장이 매우 조용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 목소리.
모두의 귓가에 아주 또렷하게, 그것도 또박또박 한 글자씩 제대로 박혀 들었으니까.
갈라디너의 표정이 굳어진다.
하지만.
뭐라고 말을 하지는 못했다.
베네딕트라는 이름에 궁술을 주로 쓴다는 정보는 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의 경지가 마스터라는 데 있었다.
마스터.
마나 유저로서 정점에 선 존재.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 어느 국가에서건 두 팔 벌려 환영할 만한 인재人才, 아니 그 이상의 인재人災.
4서클 마나 유저인 갈라디너는 절대 올려다보지도 못했을 존재.
그래서 이 순간 갈라디너는 학부장인 것을 넘어 자존심이 상했다.
그럼에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베네딕트, 아카데미 내에서 자네 지위는 수석 교관이야, 학부장인 갈라디너 님한테 그 무슨 말버릇인가.”
해럴드 린치가 타박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학부장이 학부장다워야지, 능력이 있다는 건 알겠지만 고서클 마나 유저도 아닌 그냥 수습 유저 수준이지 않습니까.”
그레이의 인상이 찌푸려지고, 해럴드의 인상도 찌푸려지는 그 상황에서도.
갈라디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탁자 아래로 숨긴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 있을 뿐.
‘빌어먹을.’
이 상황에서 갈라디너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였다.
‘빌어먹을!’
스스로 분을 삭이는 것.
그걸 지켜만 보던 그레이가 분노 섞인 표정으로 무언가 말하려던 그때.
“개판이네.”
회의장에서 들릴 거라 생각도 하지 못한 목소리가 울린다.
꽤나 여린 목소리.
회의장에 자리한 약 90명이 넘는 이들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이동했다.
언제부터였을까.
회의장 구석, 창가 자리에 한 남자가 난간에 등을 기댄 채로 서 있었다.
그의 어깨에 앉아 있는 인형과, 그 남자의 찌푸려진 얼굴을 본 순간.
모두의 표정이 굳어진다.
“혹시나 해서 와 봤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구경거리였어.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을 텐데, 이거 연출한 거지? 연극하는 것처럼.”
남자가 웃는다.
아니.
잭 발란티에는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을 기분 좋은 웃음으로 받아들인 이는 이 자리에 단 한 명도 없었다.
잭 발란티에가 걸음을 옮기고.
상석, 원래라면 총장인 롬멜이 앉아 있어야 할 그 빈자리에 앉고.
싸늘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그 순간까지.
모두는 침묵했다.
“말 없는 거 보니까, 연극은 아니었나 보네.”
실실 웃는 그 모습에 모두는 굉장히 큰 위화감을 느꼈다.
압도적인 존재감.
이 존재감을 방금 전까지 아무도 느끼지 못했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마스터 3명과, 심지어 그레이마저 당황했을 정도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
‘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 들은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