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181)
제 182화
목에 철심을 심은 건지 고개가 빳빳한 놈도 있다.
아주 가관이다.
그냥 이런 생각이 든다.
재들 머릿속에는 지금 이런 생각이 들고 있지 않을까.
내가 대체 어디서부터 들었을까.
정확히 말하면 물자가 한정되어 있다고 갈라디너가 이야기한 그 순간.
정확히 그 순간부터 모든 대화를 들었다.
갈라디너의 기를 살려 주려 그레이가 나름 노력하는 것과, 해럴드 린치가 베네딕트라는 마스터 유저를 타박하는 것과 그 이후 베네딕트가 갈라디너를 서클이 낮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그 모든 과정. 그리고 갈라디너가 분을 삭이며 탁자 밑으로 주먹을 쥔 채 부들부들 떤 것까지.
전부 보고 들었다.
그래, 어찌 보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왜냐면 마나 유저들의 습성이 그렇거든.
서클을 하나 올리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은 숫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렇다면, 그런 시간을 투자하는 이들은 대체 어떤 심정인 걸까.
간단하다.
경쟁심, 그리고 권력.
더 나아가 강해지고 싶은 마음.
쉽게 말하면 서열 정리라고 뭉뚱그려 말할 수 있었다.
8서클 유저가 되면 적어도 7서클 이하의 유저들에게 갑질이 가능하고.
9서클 유저가 되면 8서클 밑의 유저들에게 갑질이 가능하다.
마스터면, 뭐 더 말할 게 있나.
귀족이라는 특수 작위가 변수가 되긴 하지만 그게 없는 이들은 그냥 서클로 위아래를 정한다.
나이? 필요 없다.
그런 상황에서 마스터인 수석 교관이 4서클 마나 유저인 갈라디너를 윗사람으로 모실 리 없다.
그래도 대륙전장의 장주인 롤랜드 린치가 당부한 말이 있어서 따르는 시늉이라도 하는 거지, 롤랜드가 말도 안 했으면 어떤 개판이 벌어졌을지는 안 봐도 훤했다.
그러니까.
내 말을 뒷구멍으로 들었다는 이야긴데.
“어이.”
베네딕트가 제 발 저린 듯 대답했다.
“……저 말씀이십니까?”
맞아, 너.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진다.
“뒤지고 싶어?”
“……예?”
말없이 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깔끔한 포마드 머리에, 균형 있게 잡힌 몸.
길거리에 있는 흔한 청년들처럼 보이겠지만 실제 나이는 39살에, 저 균형 있는 몸의 근육은 전부 강철보다 단단한 근육들이다.
마나 유저로서 정점에 선 마스터.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놈은 나름 대단한 놈이다.
인간들 기준으로.
그러니까.
“내가 지금 무슨 생각 하는지 한번 맞혀 봐.”
“…….”
“왜? 못 맞힐 거 같아?”
여전히 대답이 없다.
그래서 그냥 친절하게 알려 주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너를 토막 쳐 버릴까, 아니면 목만 깔끔하게 잘라서 야산에 파묻어 버릴까, 아니면…….”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대륙전장 소속의 모든 마나 유저들을 씨몰살시켜 버릴까.”
꿀꺽-
누군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리고, 베네딕트의 표정이 석고상처럼 굳어진다.
놈뿐만이 아니라, 해럴드부터 나머지 대륙전장 마스터까지.
전부가 굳어졌다.
그럴 만도 하지. 왜냐면 저 세 명, 전에 대륙전장에 있을 때 나한테 쓴맛 한번 본 애들이거든.
롤랜드 린치 구하러 들어왔다가 밖으로 튕겨져 나갔었지.
“여기 있는 갈라디너랑 그레이는 내 메신저야. 그레이는 ‘내 사람’이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갈라디너는 애매하지. 그럼에도 나는 갈라디너가 마음에 들어. 열심히 하려는 게 보이거든. 그래서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아카데미에서만큼은 지켜 주고 싶어, 체면도 세워 주고 싶고. 그런데.”
다시, 그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웬, 뭣도 아닌 새끼가 깝죽대고 있네. 다시 물어볼게. 뒤지고 싶어?”
“……아닙니다.”
“아닌데 왜 깝죽거려? 야, 해럴드.”
“예……?”
“어벙한 표정 짓지 마, 쳐 죽여 버리고 싶어지니까.”
“……죄송합니다.”
눈치가 빠른지 알아서 눈을 깐다.
그래.
눈치챘겠지만 나 지금 화가 많이 났거든.
굳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상황 파악을 못 한 건지. 아니면 너희를 여기로 보낸 롤랜드 린치 대가리가 썩은 건지 이해가 안 가네. 상업학부에서 필요한 물자? 그걸 왜 아카데미에서 쓰려고 하냐?”
“……예?”
“너네가 여기 왜 온 건지 몰라?”
“…….”
“빚 갚으러 온 거잖아. 그 빚 갚으려고 개처럼 일하라고 데려온 건데, 누가 여기서 서열 정리하라고 했냐?”
“…….”
“아직 창설도 안 된 상업학부에 남은 예산의 전부? 그 이상? 야 갈라디너.”
“……예. 감찰단주님.”
“네가 볼 땐 이게 상식적인 상황으로 보이냐?”
“……아닙니다.”
“그래, 내가 봐도 아니야. 창설이 된 뒤라면 모를까 아직 창설 준비 중인 상업학부에서 뭐? 돈이 필요하고 물자가 필요하면 니들 돈으로 써 새끼들아. 한 달에 받아 처먹는 돈이 얼만데 이 개새끼들이 단체로 약을 처먹었나. 진짜 다 뒤지고 싶어?”
세 명의 마스터가, 생각 외로 빠르게 태세를 변환한다.
“죄송합니다!”
어이가 없네.
내가 전에 그레이를 처음 만났을 때 식당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힘이 없는 이가 힘 있는 이에게 몸을 의탁한다면 자유로울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그거 빈말로 한 소리 아니다.
“죄송? 고작해야 마스터밖에 안 되는 새끼들이 주제를 모르고 깝치고 있네. 야, 해럴드.”
“……예.”
“분명히 그 말 들었을 텐데, 못 들었어?”
“무슨 말…… 말씀이십니까?”
“너희의 생사 여탈권을 내가 가진다는 그 말. 못 들었냐고.”
“…….”
모두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진다.
앞서 말했듯,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전부 안다.
내가 말도 안 되는 괴물이라는걸.
마스터 3명?
이미 마스터 4명과 1만이 넘는 병력을 세상에서 지워 버린 나다.
그런 내 앞에서 칼을 겨누고 무력을 앞세운다는 건 지옥으로 보내 달라는 말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안다.
“도통 이해가 안 가네 대체 뭐야? 진짜 죽여 달라고 발악 하는 거냐? 아니면 나도 모르는 굉장한 뜻이 숨어 있는 거냐? 한번 말해 봐.”
녀석들을 비롯해, 대륙전장 소속의 모든 마나 유저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그러고는.
내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진심이 느껴지는 것과는 별개로 띠꺼운 표정도 사라져서 그나마 낫긴 한데, 거기까지였다.
전체적인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대충 손을 휘젓자 놈들이 자리에 착석했다.
“똥오줌 못 가리고 미쳐 날뛰는 놈들인데 쓸 만은 하다…… 참 애매해, 짜증은 나고 죽이기는 아깝고 귀찮기도 하고.”
잠시 말을 멈추고는 해럴드 린치를 바라보았다.
“할 말 없냐?”
“…… 죄송합니다.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생각했던 것보다 매우 저자세인 게, 확실히 뉘우치고 있는 것 같긴 하다.
한 번의 기회라…….
“좋아, 딱 한 번, 정말 마지막 기회를 줄게.”
슬쩍 갈라디너를 바라보았다.
녀석의 표정은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만큼이나 굳어져 있었다.
손을 들어 베네딕스틀 가리켰다.
“오체투지 알지?”
“……예?”
“못 들은 거 아니잖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더라. 군사학부 학부장의 자존심을 깔아뭉갰으니, 똑같이 네 자존심도 깔아뭉개져야지. 회의 끝날 때까지 갈라디너를 향해 오체투지 한 채로 엎드려 있어.”
“…….”
“왜? 하기 싫어? 무릎이 무겁나 본데, 잘라 줄까?”
잠시 망설이던 베네딕트가 이를 악물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모두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그때.
베네딕트가 갈라디너를 향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학부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무례했습니다.”
그리고는 두 팔꿈치를 땅에 대고, 이마까지 땅에 댄다.
완벽한 오체투지.
굴종의 의지를 넘어 목숨을 건 뉘우침.
무시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뭐 하고 있냐? 회의 재개해.”
* * *
긴 회의는 아니었다.
정확히는 긴 회의였겠지만, 길어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자리한 그 순간부터.
모든 편의는 검술학부와 군사학부에 집중되었으니까.
여기서 조금 묘한 게 하나 있었다.
그레이나 갈라디너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마법학부에 대한 거.
정확히는.
왜 마법학부 학부장인 마탑주가 자리에 없고 수석 교관을 하고 있던 애가 대리로 앉아 있는 걸까.
생각해 보니까.
전에 아카데미를 청소했을 때 마탑주는 나를 막으려 했다.
그래서 나는 마탑주를 제압했고 몇가지 대화를 나눴는데.
그 이후로 마탑주의 행방이 묘연하다.
자살했거나, 죽었다면 롬멜 총장이 뭐라고 한마디 했겠지만 그런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공기처럼 사라진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어디 잠적이라도했나? 아니면 마탑에 박혀 있나.’
조금 궁금하긴 하지만 일단 넘어갔다.
그렇게 회의가 끝났다.
모든 교관들이 자리에서 일어서 밖으로 나가려던 그때.
“그레이랑 갈라디너는 자리에 남아.”
“……예.”
둘을 제외한 모든 교관이 회의장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리한 침묵.
“갈라디너야.”
“……예.”
“많이 힘드냐?”
“……아닙니다. 참을 만합니다.”
슬쩍 웃고 말았다.
참을 만하긴, 전혀 아닌 거 같던데.
“전에 말했잖아, 힘이 없는 이는…….”
“힘이 있는 이에게 몸을 의탁하면 자유로울 수 있는 기회를…… 죄송합니다.”
무의식적으로 내 말을 끊고 이어 가던 녀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내게 고개를 숙인다.
정말이지 너무 지나칠 정도의 예의다.
“공자님, 죄송합니다. 갈라디너가 많이 당황스…….”
“그레이.”
“……예?”
“나 지금 너랑 대화하고 있는 거 아닌데?”
“……죄송합니다.”
그레이가 갈라디너를 챙겨 주려는 건 확실하다.
확실한데.
조금 자제할 필요는 있다.
“갈라디너 나이가 34살이라며, 애도 아닌데 왜 자꾸 애처럼 취급하는 건데? 내가 널 애처럼 취급하디?”
“……아닙니다.”
“섭섭해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알고는 있어. 끼어들 때 끼어들고 끼어들지 말아야 할 때는 끼어들지 마. 너도 애가 아니고 갈라디너도 애가 아니잖아. 안 그래?”
훈계 비슷하지만 적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레이는 빠르게 처신했다.
“주의하겠습니다.”
그거면 된다.
그러니.
“이제 그만 나가 봐.”
“예?”
“방금 저 말 하려고 남게 한 거였어. 이제 했으니까 된 거잖아? 그만 나가 봐. 갈라디너랑 단둘이 이야기 좀 하게.”
그레이는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선 뒤, 회의장을 벗어났다.
당연히 내게 고개도 한 번 숙였다.
갈라디너가 왜 저렇게 툭하면 고개를 숙이는 건지 조금 의아했는데 그레이를 보고 배웠나 보다.
그렇게, 또다시 침묵이 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