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01)
제 202화
“아버지…… 아니지, ‘아버님’은 정치를 너무 잘했습니다.”
보통 자기 부모를 아버님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부른다 해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맞는 표현이다.
그럼에도, 자기 부모를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딱 하나 있다.
바로 돌아가신 부모를 높여 부를 때, 사람들은 보통 아버지가 아닌 아버님이라 칭하는데. 지금 프리드리히는 롬멜을 죽은 사람처럼 취급하고 있었다.
듣는 롬멜은 가슴이 아려 왔다.
“저는 이 왕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귀족이 될 생각인데 아버님의 그늘이 너무 큽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잠시 말을 멈춘 프리드리히가 천천히 팔짱을 꼈다.
“테슬란 왕국은 저희가 가지겠습니다. 그것을 위한 제물이 되어 주십시오. 그게 아버님의 자리입니다.”
아주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롬멜은, 저 말에서 무려 세 가지 뜻을 읽었다.
하나는 문맥 그대로 테슬란 왕국을 지배하겠다는 것.
다른 하나는 테슬란 왕국의 국호를 ‘어센블’로 바꾸겠다는 것.
나머지 하나는.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것.
“잭 발란티에, 일단 그놈부터 사로잡을 겁니다. 그 이후에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선 프리드리히는 생각 외로 평온한 표정이었다.
마치, 이미 뜻을 확고하게 정한 사람처럼.
“아가레스를 비롯해 모든 테슬란의 왕족을 죽일 겁니다. 순서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결국 둘은 죽을 겁니다.”
매우 점잖은 모습에서 어울리지 않는 말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 배후는 ‘롬멜 에인하르트’와 발란티에 가문이 될 겁니다. 근위 기사단을 비롯해 말론 공작가의 모든 병력과 각 귀족가의 사병들, 그 모든 전력이 저희 편에 설 겁니다. 서지 않으면 전부 죽을 테니까. 그리고 저희는 국가를 구한 충신이 되는 거죠. 그리고 국가의 체계를 둘로 나눌 겁니다.”
“……둘?”
“저는 왕이 되고 더글라스는 대공이 될 겁니다. 왕과 대공이 가지는 정치적인 힘의 비율은 6:4. 명령권부터 모든 것을 바꾸고 새로운 국가를 만들 겁니다. 당신은 그것을 위한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 희생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아주 깊은 우애라고 할 수 있었다.
롬멜은 웃었다.
정말.
“푸하하하하하하-!”
배가 아플 정도의 폭소를 터트렸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거든.
두 아들은 분명 멍청하지는 않았다.
멍청했다면 공작 자리에 앉히지 않았을 거고 멍청했다면 마스터가 되지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똑똑하다고 해서 현실감각이 있는 건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별개의 문제고 지금, 그게 문제로 드러난 거다.
이 두 자식 놈은 현실을 모르고 있다.
“잭 발란티에, 그는 만만치 않은 남자다. 그러니…….”
공작이 피식 웃으며 말한다.
“포기해라?”
“그래.”
“싫습니다. 저희가 왜 포기해야 합니까.”
“…….”
침묵하는 롬멜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공작이 천천히 말했다.
“아버님.”
“…….”
“아버님이 그 잭이라는 아이에 대해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저와 더글라스는 모릅니다.”
롬멜은 말없이 장남을 응시했다.
“분명 저희가 본 것보다 많은 것을 보셨겠지요. 그래서 맨티스 백작이 모은 1만 5천이라는 병력이 죽었다는 그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셨을 겁니다. 하지만.”
“하지만?”
“직접 보신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앞서 말한 대로 1%의 사실과 99%의 거짓, 전하는 메신저가 어떤 의도를 담는지에 따라 달리 보였을 뿐입니다. 그저 아버님은 늙으셨고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신 겁니다.”
롬멜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건 그냥 달랐을 뿐이다.
인간을 비롯해 지성이 있는 생명체는 어떤 말 같지도 않은 상황을 직면했을 때 두 가지 방식을 취한다.
피하거나, 혹은 맞서거나.
롬멜은 피했다.
맞설 생각? 들지 않았다.
잭이 만 오천의 병력을 죽이기 전부터 잭 발란티에의 비범함을 이미 알아봤고, 그가 비범함을 넘어 괴물 같은 남자라는 걸 눈치챘으니까.
그래서 만 오천이 죽었다고 했을 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애초에 적으로 만들지 않기를 잘했구나.
그건 분명 말 같지도 않은 상황을 피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두 아들놈은 피하지 않고 맞섰다.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서 시야 일부분을 가리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었기에 맞설 수 있는 거다.
이렇게.
“만 오천, 굉장히 많은 병력입니다. ‘소문’으로는 마스터가 네 명이라고 했지만 그 네 명이 전부 그 자리에 있었는지 누가 압니까? 아버지도 아시다시피 툴칸 제국에는 마스터라는 신분을 숨긴 이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세간의 관심을 피하고 유유자적하게 살기 위해서죠. 맨티스 백작이 지급한 돈은 최소 수천만 골드. 유유자적하게 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금액입니다.”
롬멜은 할 말을 잃었다.
앞서 말했듯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기에 저런 결론이 나오는 거다.
“물론 잭 발란티에와 발렌타인 밀로스가 ‘보통 상식’ 보다는 강하겠지요. 많은 소문 중 분명 몇 가지는 진실 된 게 있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정말 네 명의 마스터와 만 명이 넘는 이들이 전부 죽었을까요? 과거와 현재는 미화되고 과장되기 마련입니다. 그럼 다시 생각해 봅시다. 정말 만 오천의 병력이, 네 명의 마스터가 포함된 그 병력이 정말 전부 죽었을까요?”
프리드리히가 비릿하게 웃는다.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 세상이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잘못 키웠다는 생각.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려는 모습을 보였을 때 옆에서 다듬어주어야 했다.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에 꽂히기 시작하면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현실을 무시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저 심성을, 고쳤어야 했다.
회초리를 들었어야 했다.
헛된 욕심이 공상과 현실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그 끝에는 파멸이 있을 거라는 교훈을 진작에 줬어야 했다.
회초리를 넘어 그냥, 죽기 직전까지 팼어야 했다.
“이곳은 그런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 ‘어센블 영지’입니다. 저는 그 영지의 주인이고요.”
롬멜은 착잡한 속내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무르거라.”
피식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건 장남이 아닌 차남, 왕궁 근위기사 단장이자 중급의 마스터인 더글라스 어센블이 내는 소리였다.
“아버님, 그냥 미리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어서 또다시 피식하는 실소가 터져 나온다.
이번에는 장남이었다.
“지금 시간이…… 09시 34분이군요. 아버님께 죄송하지만 오늘 저희가 할 일이 많습니다. 왕족이란 왕족은 다 죽여야 하고 잭 발란티에도 죽이고, 발렌타인 밀로스라는 과거의 영웅…… 그러니까, 과거의 영웅을 사칭하는 ‘그년’도 찾아서 죽여야 합니다. 모든 건 속전속결로 처리해야 하니.”
슬쩍 더글라스와 눈을 맞춘 공작이 실없게 웃었다.
“저녁 먹기 전까지는 오겠습니다. 최후의 만찬 정도는 드릴 수 있으니까 메뉴 정해 놓으십시오. 그때 아버님의 최후에 대해서 깊은 이야기를 한번 나눠 봅시다.”
두 아들은 이미 확실하게 마음을 정했나 보다.
그게 끝이었다.
그대로 몸을 돌려 감옥을 나서는 두 아들을.
롬멜은 그저 바라만 보았다.
계단을 오르고, 감옥 문을 열고 잠시 두 아들이 고개를 돌렸을 때.
롬멜은 눈물을 흘릴 뻔했다.
이게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잭에게 두 아들을 설득하겠다고 했고, 실제로 설득을 했지만 두 아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들이 살 수 있는 길이 있는데도 보지 못하고 ‘먼저’ 잭 발란티에에게 검을 겨누고 있었다.
그 모임에 가지 않고, 롬멜 자신을 보내면 정말 이야기가 편해질 수도 있는데.
두 아들은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자식을 둔 아버지로서, 롬멜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가지 말거라.”
두 아들은 롬멜을 무시했고, 문을 닫았다.
그래서 둘은 듣지 못했다.
“가면 죽어…….”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 * *
대회의실 건물 앞에서 잠시 대기했다.
꽉 닫혀 있는 문.
그리고 그 문을 지키는 꽤 많은 수의 기사들이 보인다.
신기한 건 대부분이 근위 기사단과 어센블 가문의 기사들이라는 거.
분명 대회의실에서부터 최소 20여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대기하라고 전했을 텐데 이건 뭘까.
아니, 분명 아까만 해도 병력들이 한곳에 모여 있던 걸로 아는데 걔네들이 왜 이렇게 퍼져 있어?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전쟁 경험이 꽤 있는 내 눈에는 이렇게 보였다.
갖춰진 진형.
마치 이곳 아카데미 총회의실을 ‘포위’한 것 같은 그런 진형.
허허.
“저기요, 기사님.”
“……예?”
꽤 단정한 머리를 한 기사 한 명이 침을 꿀꺽 삼킨다.
이것 봐라.
“많이 더우신가 봐요. 식은땀을 흘리시네.”
“……아닙니다.”
아니긴, 땀이 비처럼 주륵주륵 흘러내리는 게 뻔히 보이는데.
“어라? 생각해 보니까 이상하네, 이렇게 코트까지 껴입은 나도 조금은 쌀쌀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왜 그렇게 식은땀을 많이 흘려요? 포션이라도 가져다드릴까?”
“괜찮…… 크흠, 걱정 안 해 주셔도 됩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피식 웃고 말았다.
이건 뭐 뻔하잖아.
그레이가 준비한 판은 솔직히 급조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그레이로서는 최선의 판단을 한 거고, 내 기준에서도 꽤 최선의 판단을 한 거다.
결과만 보면 죽일 놈들이 전부 모였잖아.
문제는 꼼꼼하게 생각한 뒤 벌인 판이 아니라서 역으로 그레이가 만든 판을 이용하려는 놈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다.
그 가능성을 무시하면 안 된다.
그게 전쟁이고 책략이니까.
그런데 근위기사단이 이렇게 회의실을 철통같이 지킨다?
슬쩍 돌아보니 대충 이 주변에만 백 명이 있고 안쪽에는 내 생각보다 많은, 무려 수백의 인기척이 느껴진다.
와, 얘네는 언제 이렇게 준비했데?
마탑 꼭대기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와서 내가 못 봤나 보다.
여하튼.
앞서 말한 대로 정말 상관없다.
책략이나 전쟁.
그건 ‘비슷한 전력’일 때나 통하는 거지, 나 같은 놈한테 그딴 게 통할 리 있나.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짜증 섞인 표정을 짓고 있는 녹색 머리의 남자가 보인다.
그린 드래곤 블랑.
그냥 느낌이 싸해서 데려왔는데 잘 데려왔네.
“들어가면 눈치껏 행동해라, 오케이?”
“……예.”
그러고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내가 지금 입고 있는 복장은 평소에 입는 트레이닝복이 아니었다.
누나도 오고 론도 오고 다 와서 볼 역사적인 장면인데 후줄근하게 입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
정복이라고 해야 할까.
검은 코트에 검은 면바지.
어깨 쪽에는 붉은색 장식 같은 게 붙어 있었는데, 나도 이런 건 처음 입어 본다.
먼지를 툭툭 털어 내고는 회의실 문을 잡았다.
아, 잠시만.
이걸 깜빡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