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04)
제 205화
침상에 앉아 있는 우리 영감님.
평소와는 뭔가 달라 보인다.
이건 해탈 수준이 아니라 거의 인생을 포기한 것 같은 그런 모습인데?
창살에 몸을 기댄 뒤 물었다.
“그건 아시죠? 제가 굉장히 많은 기회를 줬다는 거.”
“알지, 너무 잘 알지.”
농담이 아니고 영감님이 두 아들을 설득했고, 두 아들이 아주 개과천선해서 변한다면, 건드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셀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고, 정말 ‘귀족답게’ 살았더라면.
농담이 아니고 살려 줬을 수도 있다.
당연히 그건 정이나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다.
나는 영감님이 정말 필요했으니까.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기회.
나는 무려 2개월이 넘는 시간을 주었다.
하지만 영감님은 실패했고 영감님의 두 아들은 기회를 계속 걷어찼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듯, 솔직히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두 아들놈이 영감님의 말을 귓등으로 들을 거라는 사실을.
“원망하십니까?”
“누구를?”
“저요.”
영감님이 피식 웃는다.
“원망은 무슨, 셀은 자네의 사람이야. 거기다 셀이 ‘그런 일’을 당하는 데 내 두 아들놈은 일조를 했어. 충분히 죽을 만한 이유였지. 하지만 자네는 기회를 주었고 그 기회를 둘은 걷어찼어. 거기다 병력까지 끌어모아 왕국 전체를 집어삼키고 새 나라를 건국할 생각을 하고 있더군.”
새 나라 건국이라…….
재미있는 생각을 했네.
“두 녀석은 그러기 위해 자네를 죽이려는 계획을 짰고, 실패했어. 그런데 내가 왜 자네를 원망하겠는가. 다.”
다?
“스스로가 자초한 것을.”
이게 진짜 뭐라고 해야 하나.
나는 영감님 같은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우선순위가 조금 갈리긴 하지만 귀족과 평민을 최대한 공평하게 생각하고, 귀족들이 흔하게 저지르는 살인 사건이나 강간 사건 같은 건 일절 저지르지 않았던.
거의 돌연변이 같은 그런 영감님인데, 지금 모습이 진짜 너무 이상하다.
그래서 그냥 물었다.
“인생을 포기하시려는 겁니까?”
“…….”
“살 이유가 없다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까?”
후우-
영감님이 한숨을 터트린다.
“자네는 아는가?”
“뭘요?”
“아들에게 배신당해 본 아버지의 마음을.”
알 턱이 있나.
“아마 모르겠지. 내가 지금 그런 상황이네. 아들에게 배신을 당했어, 그것도 한 명이 아닌 장남과 차남 둘에게. 정말…… 부족함 없이, 모든 것을 주었다고 생각했네. 키워 주었고 함양시켜 주었고, 설 수 있게 도와주었지. 그래서 내 말년은 편할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네. 그런데 보기 좋게 빗나가더군.”
영감님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내 그늘이 너무 크다고, 내가 죽어야만 자기가 나를 넘어설 수 있다는 아들의 말에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아는가?”
그냥 잠자코 들었다.
“허망함이었네, 정말 허망했지. 잘해 봐야 소용없구나. 그런데 그런 내가 더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짐작대로였다.
우리 영감님.
체념을 넘어 그냥 삶을 포기했다.
철창에 얼굴만 기댄 채로 슬쩍 웃었다.
상황과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냥 웃음이 나온다.
“왜 그런 건지 아십니까?”
“글쎄.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더군.”
모른다……. 조금 아쉽네. 나는 알 거 같은데.
“그냥, 영감님이 X라 만만해서 그런 거예요.”
“……뭐?”
“영감님이 정치 잘하는 거? 다 압니다. 영향력이 큰 거? 다 알아요. 테슬란에 관심 없던 나도 알고 있는데 자국 귀족이 모를 리 없잖습니까. 심지어 어센블 영지 구석에서 식당을 하는 뭐시기 아저씨도 알고 발란티에 영지의 흔한 꼬마들도 압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영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단 한 명도 없습니다.”
“…….”
“왜냐면 영감님이 얼마나 우유부단한지 다 아니까. 영감님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인망은 얻었을지언정 두려움은 얻지 못했습니다. 그냥 아, 롬멜 어센블? 귀족이잖아. 거기다 공작 출신이기도 하고. 이야, 귀족 중에서 공작이면 되게 높은 거 아닌가? 어이코, 무서워라. 이게 끝이죠. 그게 문제인 겁니다.”
창살에 대충 몸을 기대고 있는 내 모습.
아마 누군가 보았다면 되게 장난기 어린 모습처럼 보일 테지만 나, 지금 진지하다.
“저를 보세요. 이 대륙에서 저를 만만하게 보는 놈이 있습니까?”
“…….”
“없어요. 있으면 미친놈이지. 현실 감각 없는 멍청한 놈들이나 저를 만만하게 보는 건데, 그런 놈들 제가 장담하는데 한 다섯 번 정도만 치우면 다시는 없을 겁니다. 그게 진짜 두려움, 공포라는 겁니다.”
“나를 가르치는 것이냐?”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예. 가르치는 겁니다. 영감님은 너무 착했어요. 세상은 인망으로만 다스릴 수 없습니다. 공포와 인망이 공존해야 하죠. 그 누구도 감히 넘보지 못할 괴물이 위에서 버티고, 그 괴물의 아래에서 인망이 있는 이가 아무런 걸림돌 없이 움직이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레퍼토리지 않습니까?”
나랑 아베이루.
나랑 그레이.
나랑 우리 꼬맹이들.
그 외 등등.
얼핏 보면 달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 똑같다.
‘나’라는 괴물이 버티고, 그 괴물의 뒤에서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그게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이고, 그게 이상적인 신하의 모습이다.
내가 왜 계속 이런 말을 하냐면.
일종의 밑밥을 까는 거다.
“이제 선택하세요.”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선택? 무엇을?”
“저와 계속 가실 건지, 아니면 여기까지만 하실 건지.”
“…….”
“삶을 포기한다? 말은 쉽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요. 특히 영감님처럼 이미 나이도 드실 만큼 드시고 세상도 겪을 만큼 겪으신 분은 쉽게라는 말을 써서는 안 되죠. 그냥, 변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내가 영감님을 계속 꺼림칙하게 여겼던 거다.
이미 영감님은 스스로의 인생을 살았고 그 인생으로부터 깨닫고 정립한 철학과 나름의 기술이 있다.
그 모든 게 어우러져 만들어진 롬멜 어센블이라는 존재를 내 입맛대로 바꾼다?
그거.
장담하는 게 그 누구도 못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을 포기하신다고요? 정말 포기할 수 있습니까?”
“…….”
“영감님의 손자와 손녀는 다 살아 있습니다. 걔네들 버리고 하늘나라 가시려고요? 가능하시겠습니까? 내가 보기엔 아닌데? 그래서 갈등하시는 거고, 아닙니까?”
“……전에도 느꼈지만 정말 네놈은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 들지가 않는구나.”
뭘 새삼스럽게.
“영감님이 얼마나 살지는 모르겠습니다. 나이도 꽤 드셨고 지금도 충격 때문인지 심적으로 굉장한 타격을 받은 거 같거든요. 그런데 지금 퇴장하시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다른 문제다?”
“네.”
“무슨 말이냐?”
음.
말은 안 했는데.
지금 좀 막막하다.
“뒷수습 좀 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하거든요.”
“뒷수습?”
“테슬란 왕국에 있는 모든 가문의 숫자는 총 44개입니다. 그중 34개 가문의 수장이 죽었거든요. 그것도 방금 전에.”
“…….”
“아, 하나 더 추가해야겠네요. 왕세자도 뒤졌으니까.”
“…….”
“이거, 이대로면 내전 벌어질 겁니다. 더 나아가 국가 간의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고요.”
영감님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왕국 연합? 그거 누가 줄만 살짝 건드리면 무너지는 허술한 조직입니다. 지금 상황이 걔들 귀에 들어가면 걔네들 바로 군대를 끌어모을 겁니다.”
툴칸의 황태자인 이스칸다르라면 분명 왕국 연합이 사상누각沙上樓閣 같은 조직이라는 것을 진작에 파악했을 거다.
당연히 그런 판을 만든 내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전쟁 막는 건 쉽습니다. 일어나기 전에 왕국을 하나로 묶어 버리면 되거든요. 그걸 저 혼자서 한다? 가능합니다. 가능한데…… 정말 저 혼자서 할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까?”
나.
새삼스럽지만 미친놈이다.
그것도 일 터지면 원흉까지 싹 다 잡아 죽이는 미친놈.
“헤르만 후작가는 선례에 불과했는데, 더 늘어나길 원하시면 그렇게 하고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까?”
영감님이, 결국 헛웃음을 터트린다.
“확실히 너의 말이 맞구나.”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내 말이 맞다고?
갑자기?
“공포라…… 내게는 공포가 부족했다…… 이해가 가, 만약 네가 나였다면 두 아들은 내 말을 들었겠지. 진작에 엄해졌어야 했는데 엄하지 못했고 우유부단했기에 실수를 저지른 거다…… 그러니까.”
영감님의 눈에 조금씩 힘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다? 같은 실수는 저지르지 마라? 아직 가르칠 수 있는 자식은 남았다?”
확실히 눈치가 빠르시다.
정치밥 괜히 먹었다고 한 게 아니라니까.
“한 번이면 족하긴 한데, 굳이 변할 필요는 없습니다. 못 변할 거 아니까. 다만 누군가를 가르치는 방식을 조금 바꾸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 외에는 그냥 평소처럼 행동하세요. 정치하고, 귀족들이 문제 일으키지 않게 잘 화합시키고. 그 뒤에 제가 서 있을 뿐입니다. 그거면 되잖아요?”
영감님이 손을 들더니 철창을 툭툭 두드린다.
열어 달라는 신호 같아서, 그냥 손에 힘준 채 철창을 아예 뽑아 버렸다.
그러고는 뒤에다 냅다 집어 던졌다.
철컹-!
콰아앙-!
잠깐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영감님이 허탈하게 웃더니 내게 물었다.
“이번에는 속이는 것 없이, 연기하지도 말고 거짓말도 없이, 축소하지도 않은 진짜 진실을 말해 주게.”
질문을 하나 던지려는 거 같은데, 그게 뭘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영감님이 곧바로 물었으니까.
“자네는 대체 누군가?”
영감님은 전에도 비슷한 질문을 던졌었다.
그때 나는 ‘잭 발란티에’라고만 말했었지.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축소하지도 않은 진실이면, 간단하잖아.
슬쩍 어깨에 앉은 스승님을 바라보고는, 그대로 대답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후의 미래에서 회귀했습니다.”
“……뭐?”
“저는 하프 블러드가 판을 치던 세상에서 살았고 그 세상에서 모든 하프 블러드를 죽였습니다. 모든 드래곤도 죽였고 툴칸 제국도 무너뜨렸습니다. 제 사람? 없었습니다. 저는 혼자 움직였고 혼자 행했습니다. 영감님.”
벽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있는 내 모습이 지금 영감님의 눈에는 어찌 비쳐 보일까.
“저는 그런 놈입니다. 세상에서 군림했고 거슬리는 모든 것을 죽였습니다. 폭군? 저를 폭군이라고 매도하시는 건 저에 대해서 단 하나도 모르는 겁니다. 역사에 남았던 수도 없는 폭군들을 저와 놓고 비교하면 놈들은 저보다 까마득한 아래에 자리해야 할 테니까요.”
입가에 자연스러운 미소가 지어진다.
“그게 접니다. 미래에서 온 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