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1)
제 22화
* * *
나름 파란만장했던 여정이 끝났다.
바위산.
척박해 보이는 이름과는 달랐다.
빽빽이 박혀 있는 나무들과 들풀들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해 보이는 산.
하지만 어디까지나 여기는 산의 초입 부분이다.
바위산이라는 지명에 걸맞은 풍경은 이 초입 부분을 지나면 시작된다.
지금 중요한 건 여정은 끝났고 의뢰는 끝났다는 사실이다.
나는 품에서 주머니를 꺼내 들고는 대충 10골드 정도를 빼고는 그대로 존 도에게 건네주었다.
주머니를 열어 안을 확인하던 존 도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좀 많지? 나머지는 서비스.”
“그래도 이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하나하나 일일이 세지는 않았지만 대충 40골드는 넘을 거다.
어디 보자.
기본 의뢰금이 선수금으로는 인당 2골드씩이었으니까 10골드에.
도착 시 3골드면 총 25골드다.
그중 10골드는 이미 첫날 밤 식사를 하면서 분배해 줬고, 지금은 15골드를 건네주면 되는데, 지금 내가 건넨 주머니에는 대충 40골드가 넘는 돈이 들어 있다.
즉, 용병들이 받게 되는 돈은 기본 의뢰금에서만 최소 50% 이상 초과된 금액.
존 도가 당황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내가 인간쓰레기도 아니고.
“덕분에 오는 길 지겹지 않았어. 의심했던 건 미안하고. 이쯤에서 헤어지자. 고생들 하고 조심히들 가.”
내 말은 작별 인사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럼에도 용병들 중 그 누구도 먼저 이 자리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 듯했다.
그새 정이라도 든 걸까.
나는 고개를 들어 존 도라는 가명을 쓰는 로맨티스트와 눈을 맞췄다.
나를 조금은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는 이 용병을 보아하니 내게 할 말이 있나 보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주제넘은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만, 해도 되겠습니까?”
뭘까.
솔직히 궁금했다.
“뭔데?”
“용병이라는 직업이 생각보다 나쁜 직업이 아닙니다.”
“그래서?”
“자세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알 만큼은 안다고 생각합니다. 지지하는 사람 하나 없는 귀족가의 삼 공자. 제 자랑은 아닙니다만 보통 그런 위치의 사람이 어떤 결말을 맞는지 저는 수도 없이 봐 왔습니다.”
나뿐만이 아니라 불개미 용병단의 다른 단원들도 존 도를 이상하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정도 말했는데 이해하지 못하면 나는 천치 중에 천치이리라.
거참.
“그래서 나보고 용병이 되라고?”
“방금 전에 말했듯이 용병이라는 직업이 그렇게 나쁜 직업이 아닙니다. 위험 부담이 되는 일만 피하면 세상도 여행할 수 있고, 나름 안락하게 살 수 있죠. 그런 직업은 용병 말고는 거의 없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이 남자는 아무리 봐도 지나치게 마음이 여린 것 같다.
그게 아니고서야 나 같은 꼬맹이를, 심지어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꼬맹이를 이렇게 걱정해 줄 리 없으니까.
거참.
“쟤들은 몰라도 너는 알잖아? 그때 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넌 분명 죽었다는걸.”
비록 혼기를 쓰지 않았다고는 해도 내가 존 도에게 검을 겨눴던 그 순간, 분명 존 도의 생사는 내게 달려 있었다.
다른 용병들은 몰라도 8서클에 기본 감각이 범인의 경지를 아득히 뛰어넘은 존 도라면, 적어도 본능적으로는 확실하게 느꼈을 거다.
그 순간, 내 의지에 따라 자신의 생사가 결정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더더욱 안타깝습니다. 가진 재능은 제가 감히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시고, 그걸 스스로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어깨를 으쓱했다.
칭찬을 뭐 이리 요란스럽게 해 주는 건지.
“그리고 이미 그때의 일을 저는 제 머릿속에서 지웠습니다. 칼밥 먹고 사는 세상에서 동료가 동료에게도 힘을 숨긴 상황이었습니다. 굳이 말하면 다 제 잘못인 거죠.”
존 도의 말이 길긴 했지만 결국, 내 답은 하나밖에 없다.
“마음은 고마운데, 못 들은 걸로 하자.”
“…….”
나는 그대로 손을 들어 존 도의 복부를 툭 쳤다.
“나는 분명 말해 줬어. 다른 대륙은 존재한다고.”
뜬금없는 내 말에 이번에는 존 도가 고개를 갸웃한다.
“용도 존재하고, 세상에는 수많은 몽상가들조차 상상하지 못할 그런 이야기들이 넘쳐 나. 용병아. 이름을 숨긴 용병아.”
나는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너는 다른 용병들이랑 다른 거 같아서 말해 주는 건데, 몇 년 안에 서대륙에 아주 큰일이 터질 거다.”
“…….”
“그땐 그냥, 숨어 있어.”
존 도가 그새를 참지 못하고 되묻는다.
“숨으라고요?”
“지금 용병들이 할 일거리가 떨어졌다고 했지?”
“그거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인간이 사는 데 심부름꾼이 필요 없는 일이 있겠습니까.”
실소가 터져 나온다.
심부름꾼이라.
“심부름 같은 거랑은 차원이 다른 일이 벌어질 건데, 그때가 되면 아마 너도 느낄 거다. 아…… 이건 X나게 어마어마한 일이구나 하고.”
“…….”
“부디 골드 몇 푼에 목숨을 팔지는 마. 돈이 중요해도 살아남는 거만큼 중요한 건 없으니까.”
적어도 전쟁이라는 게 벌어지기 전에는 전조가 있기 마련이다.
다른 건 말할 필요도 없고, 딱 하나.
전국적으로 활발해지는 상인들의 행렬.
그거만 주목하면 된다.
적어도 전쟁이라는 건 어마어마한 물자를 필요로 하는 일이니까.
아마 그때 용병들은 느낄 것이다.
갑자기 일거리들이 어마어마하게 넘쳐 나게 되는 기이한 순간을.
그중 멍청한 이들은 한몫 단단히 잡을 수 있겠구나 하고 호위를 하다 객지에서 군수 물자를 부수려는 다른 세력에 의해 비명횡사할 수도 있고,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뭔가 이상한데?’ 해도 워낙 일거리들도 넘쳐 나고, 심지어 보수도 세고 하니 몇 번 정도는 일을 맡을 수도 있다.
그러다 코 꿰이는 거지.
멍한 표정을 한 존 도의 표정을 감상하다 작게 웃으며 이번에도 그의 복부를 한 번 더 툭 쳤다.
“고생 많았고, 잘 가라.”
별거 아닌 선의.
저 용병이 내 말을 듣고 살아남을지, 혹은 죽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죽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만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배낭을 메고 수풀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였다.
“저기…… 이봐!”
존 도가 나를 불러 세운다.
고개를 돌리기가 무섭게, 그의 목소리가 귀에 꽂혀 든다.
“이름, 이름이 뭔지 물어도 될까?”
슬며시 웃고 말았다.
이젠 말도 안 높이네.
그리고 내 정체,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이렇게 물어본다는 건 직접 듣고 싶다는 건가.
“잭, 그냥 잭이라고만 알고 있어.”
뒤에 붙은 성 따위는 달고 다니고 싶은 생각이 없다.
조금 보태자면 개미 비듬만큼도 없다.
나는 잭, 그냥 잭이라는 이름을 쓰는 꼬마일 뿐이다.
“그쪽은?”
잠깐 망설이던 그가, 자신의 본명을 내뱉는다.
“디나스…… 디나스티스모. 그게 내 이름이다.”
디나스티스모라.
어감을 보니까, 옆 나라 이스마엘 왕국, 그쪽인거 같은데.
하긴, 이제 와서 그게 뭐가 중요해.
“그래. 디나스티스모, 언젠가 인연이 되면 또 만나자고.”
존 도라는 가명을 버린 디나스티스모가 씩 웃는다.
마치 어떤 숨겨진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은 웃음이다.
나는 그런 디나스티스모와 불개미 용병단의 이들을 잠시간 바라보다 그대로 몸을 돌렸다.
* * *
“……뭐라?”
발란티에 후작의 나이는 고작해야 40대 중반에 불과하다.
위치한 자리에 비해서 매우 젊은 축에 속하는 후작은 가는귀가 먹은 게 아님에도, 결국 되묻고 말았다.
“지금 뭐라고 한 것이냐. 다시 한번 말해 보거라.”
“아르벨로아 영지 부근의 야산에서 삼 공자를 호위하던 모든 병력이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이어서 죽은 병사들과 기사들의 상흔을 설명하던 기사의 말을, 후작이 끊는다.
“잠깐. 시체들의 상흔이 다르다고?”
“예, 그렇습니다. 세 명의 하인은 분명 검에 찔려 죽었지만 다른 이들은 마치 ‘수준 높은 마법’에 당한 것 같다는 전문 수사관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후작이 턱을 짚고는 생각에 잠겼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철혈 기사단의 정예가 자리를 비운 지금의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이게 과연 우연일까.’
왜 하필 지금인가.
왜 하필, 그런 병사들을 노린 것인가.
‘우연일 리 없지.’
안타깝지만 우연이다.
모든 것은 우연이었지만 후작은 스스로 생각이 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이 순간 그의 밑천은 오히려 다른 방향으로의 오해를 낳았다.
‘국왕인가? 아니면 공작? 그것도 아니면…… 대체 누구지?’
후작은 조금 더 수준 높고 전문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일은 반드시 배후를 밝혀야 한다. 곤잘레스.”
“예, 후작님.”
철혈 기사단의 삼사자 중 한 명인 곤잘레스는 마수의 숲에 파견된 기사가 아닌 후작의 호위를 맡은 기사였다.
“그러고 보니 막내에 대한 이야기가 없던데, 설마, 살아남은 것이냐?”
“……시체 중에는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아무래도 도망을 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말은 결국.
“그 아이가 무언가 봤을 확률이 높겠구나.”
막힌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은 것처럼 후작의 표정이 일순간 밝아졌다.
“막내부터 조사를 시작하면 되겠군. 전권을 주겠다. 확실한 결과를 가지고 오도록.”
“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던 곤잘레스는 듣고 말았다.
후작의 혼잣말을.
“쓸모없는 놈인 줄 알았는데, 정말, 쓸모가 많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