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21)
제 222화
슈샤이어는 문득, 얼마 전 ‘마수의 숲’에 있었을 때를 떠올렸다.
정확히는 한 남자가 찾아왔던 그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툴칸 제국의 황태자, 이스칸다르 툴칸의 오른팔이자 대륙 최강의 검사.
하인케스 베커만.
갑작스럽게 방문한 그는 아무런 미사여구도 붙이지 않고 그저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폐하께서 너에게 제의를 한 가지 하려 하신다.”
“그게 무엇이오?”
“툴칸 제국으로 귀화해라.”
“…….”
슈샤이어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너뿐만이 아니라, 네가 데리고 있는 모든 병력, 숫자는 상관없다. 핵심은 중급 마스터 슈샤이어 말론, 너 하나니까.”
그 말인즉.
“네가 데리고 오고 싶은 이들은 전부 데리고 와라. 모든 걸 주겠다.”
“진심이오?”
“폐하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신다. 그럴 필요가 없으신 분이니까.”
슈샤이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전 대륙에 딱 세 명만 존재한다는 적색 마나의 소유자 중 하인케스 베커만은 가장 정점에 서 있었다.
즉 대륙 최강의 검사.
인간족 최강의 남자.
그런 남자가 하는 말이다.
신뢰성은 이미 100%를 찍었다.
“툴칸 제국 국경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 생각이 정리되면 오도록.”
베커만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렇게 약 1시간의 시간이 흘렀을 때 슈샤이어는 결정했다.
툴칸 제국으로 귀화하겠다고.
또한 툴칸 제국과 함께 테슬란 왕국 전체를 지도상에서 지워 버리겠다고.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건 다짐, 즉 미래에 해야 할 일에 불과했을 뿐이다.
슈샤이어는 지금 당장, 미칠 듯 치밀어 오르는 이 화를 풀고 싶었다.
그래서 테슬란으로 이동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었다.
귀화를 하기 전, 그 선물로 테슬란 왕국의 국경을 초토화시키는 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짜릿했다.
테슬란이라는 이름 자체에 미련은 당연히 없었다.
그저 그들이 울고, 고통받는 걸 보고 싶었으니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모든 병력을 테슬란으로 끌고 가는 게 맞는 걸까?
가뜩이나 지금도 귀화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으로 내부에 잡음이 끊이질 않는 상황이다.
아주, 귀찮을 정도로.
그러다 슈샤이어는 깨달았다.
왜.
테슬란의 국경을 초토화시킬 생각을 했을까.
굳이 그딴 게 아니더라도 화풀이 할 수 있는 수단은 많았다.
예를 들면 지금 데리고 있는 토벌대의 병사들.
이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전원 테슬란 왕국에 속한 이들이다.
이들을 전부 죽이면 어떻게 될까.
화를 풀 수 있는 방법.
이게 더 확실하지 않을까?
테슬란 왕국의 주민들은 가족을 잃게 된 것일 테고 슬퍼하겠지.
슈샤이어는 웃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강철 산맥을 경유한다.”
주변에 있던 슈샤이어의 측근들이 의문 섞인 표정으로 답을 구했지만 슈샤이어는 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토벌대는 강철 산맥으로 향했고, 산맥 초입에 들어선 슈샤이어는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 핏자국을 새긴다.”
슈샤이어의 시선이 산맥 근처에서 야영을 하는 병사들에게 옮겨진다.
그의 시선은 매우 싸늘했다.
마치 학살자의 시선처럼.
이건 롬멜 총장이 보낸 정보원이 그들과 조우하기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5일 뒤.
롬멜 총장이 보낸 정보원은 피로 물든 강철 산맥에서 말도 안 되는 참상을 보게 되었다.
즉시, 그들은 들고 있던 통신구로 롬멜에게 연락했다.
* * *
그렇게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였다.
“공자님!!”
귓가에 꽂히는 다급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한 남자가, 내가 있는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는데.
그 외모가 조금 익숙하다고 해야 할까.
전에 아베이루는 테슬란 왕국에 있는 모든 모험가 길드 지부를 무명에 흡수시킬 생각을 했고 그 의견에는 나도 동의했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가 오간 그날 나는 어센블 앞마당에 있는 모험가 길드 어센블 지부를 흡수했다.
그때 예비 정보학부 교관과 이것저것 잡다한 일을 처리해 줄 나름의 직원을 구했는데, 그중 책임자라 할 수 있는 남자의 이름은 라그렘.
전 알라베스 모험가 길드 부관이었던 그가 지금 저렇게 달려오고 있는 거다.
나무 아래에 있던 나와 영감님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내 쪽으로 도착한 라그렘이 숨을 몰아쉬지도 못하고 외쳤다.
“토벌대가 귀화했습니다!”
내가 잘못 들었나.
뭔 개소리야, 이게.
“귀환이 아니고 귀화?”
“예, 그게 끝이 아닙니다.”
말없이 라그렘을 바라보았다.
더, 해보라는 듯.
라그렘이 참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토벌대의 절반이 죽었습니다. 몬스터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토벌대’에 의해서.”
조금 당황스럽다고 해야 하나.
토벌대의 절반이 죽었는데 몬스터에 의해 죽은 게 아니라 토벌대에 의해 죽었다?
문맥상으로 미루어보면 답은 딱 하나가 나온다.
“슈샤이어 말론을 주축으로 한 ‘귀화 세력’이 ‘불 귀화 세력’을 죽인 겁니다.”
오랜만에 할 말을 잃었다.
* * *
나는 사람을 잘 본다.
롬멜 총장.
정말 괜찮은 사람인 건 맞다.
아베이루와 관계가 껄끄러워 보이는 것처럼 보이긴 해도, 아베이루는 시도했고 영감님은 수긍했다.
그렇게 해서 영감님은 나를 모시기로 했고 내게 말했었다.
토벌대의 움직임이 어떠냐고.
더 나아가 그들이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냐고.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직감이란다.
그냥 느낌상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것 같다고, 폭풍 전의 고요함 같다고.
그러더니 자기가 기존에 키우고 있던 정보원들 몇몇이 있는데 그들을 마수의 숲으로 파견시키는 게 어떻겠냐고 말하더라.
그거 그냥 오케이 했다.
혹시 모를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 가지고 있던 프리미엄형 통신구도 무려 두 개나 건네주었다.
그리고 방금 그 소식이 전해진 거다.
“하아.”
술기운인지 모르겠는데, 몸이 조금 뜨거워졌다는 느낌이 든다.
토벌대.
놈들이 정말 생각이 있으면, 정말 머리가 있으면 알아서 복귀하겠지 하며 생각했었다.
안일했다는 표현이 나올 수도 있는데 솔직히 안일하다는 단어는 적절하지 않다.
왜냐면 토벌대가 원래 토벌을 끝내고 왕국으로 복귀하는 시기는 내년이다.
하지만 지금은 고작해야 10월.
토벌대가 출발한 게 약 8월이니까, 현 시점으로는 고작 2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거다.
거기다 대규모의 인원이 이동하는 것이기에 가는 데에만 보름 정도가 걸렸을 테고, 실제로 마수의 숲에 도착한 뒤 진지를 꾸미고 정찰을 하고 전투를 치른 시간은 길어야 약 40일.
내가 예상한 토벌대의 복귀 시기는 정말 길어야 10월 말, 나도 예상 못 하는 변수까지 감안한다면 11월 초.
최소 그사이에는 복귀할 거라고 생각했다.
즉, 기존에 최소 6개월이 넘게 진행될 전쟁을 나는 고작해야 2개월 안으로 줄여 버린 거다.
심지어 전쟁 초반에는 상대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 정찰대 같은 것을 꾸리고 진형을 갖추는 게 정석이다.
즉 병력의 소모가 굉장히 적다는 이야기지.
이건 분명 공공의 이익에 부합했고 그 정도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름 신경을 써준 거지.
그런데.
콰직-
손에 들린 술잔이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약을 처먹었나. 뭘 했다고?”
“……토벌대에 포함된 인원은 총 6만 명입니다. 그중 마나 유저가 2만이었고 기타 보급을 담당하는 병사들과 장교, 그 외 여러 귀족가의 사병들까지 정말 다양합니다. 그중 4만 명이 죽었습니다. 토벌대 총사령관인 슈샤이어 말론과 말론가의 잔당, 그 외 기타 귀족 가문의 잔당들까지, 모두가 합심한 겁니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그래, 다시 생각해 보니까 술기운은 아닌 것 같다.
나.
지금 화가 조금 난 것 같다.
어쩌면 많이.
“이유는?”
“……증거 인멸이 아닐까 생각해 봤는데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냥…… 그냥 핏자국을 새긴 겁니다.”
나는 토벌대에 대해서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었다.
왜냐면 토벌대에 속한 이들 중 툴칸 제국에 끈을 댄 놈들은 지금 왕국의 상황이 변했다는 것과 툴칸 제국과 왕국 연합 사이에 긴장 상태가 만들어졌다는 것까지 눈치챘을 거다.
즉, 그들이 설 자리가 사라졌다는 거다.
그렇다고 생판 모르는 다른 국가에 몸을 의탁할 바에야, 자기 왕국이고 가족이 있는 테슬란으로 복귀를 서두르는 게 어딜 봐도 가장 베스트고, 상식이었다.
뿐일까.
나는 놈들을 달래 주는 말도 했었다.
언제였더라.
아카데미로 모든 귀족을 불러 모았고 모두 죽였던 그 날.
영감님은 회의를 하고 마자르 테슬란을 허수아비로 세웠던 일만 했던 게 아니었다.
나는 영감님에게 따로 해야 할 일 하나를 지시했었는데, 그게 바로 토벌대에 보내는 메시지였다.
정확히는 허수아비가 된 마자르 테슬란을 이용해 그놈의 이름으로 보냈지.
이렇게.
무사히 테슬란 왕국으로 복귀하면 자리는 다 보전해 주겠다, 어차피 왕국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할 게 참 많으니, 얼른 복귀해서 이야기 좀 나누자.
안 그래도 죽은 이들이 많아서 자리가 텅텅 비었다고, 와서 자리 좀 차지해줘라.
당연히 저 말을 그대로 쓴 것은 아니었다.
조금 고풍스럽게 꾸며서 보냈거든, 귀족처럼.
당연히 살려주겠다는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
죽일 놈은 거기도 많았으니까.
이건 그냥 달래주려는 의도 그 이상도 이하도 없었다.
그리고 왕국의 모든 일을 한꺼번에 끝내려는 밑 작업 중 하나였을 뿐 큰 의미는 없었다.
영감님이 불안감을 느끼고 정보원을 파견하는 게 어떻겠냐고 나한테 의견을 구했던 그 일은 마자르의 이름으로 토벌대로 넘어간 사신들이 며칠이 지나도록 복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 상관관계가 있었던 거지.
그런데, 진짜 사고가 터졌네.
“일단 놈들은 왕국을 완전히 버리겠다는 그 의지를 툴칸 제국에 보여 줬다는 거네?”
“그렇습니다. 심지어 죽은 이들 대부분이 평민입니다. 그중 마나 유저들도 굉장히 많다고 하는 걸 보면 안에서 내분도 벌어졌던 것 같고, 거기다 마수의 숲에서 산맥으로 이동하는 내내 슈샤이어는 일부러 속도를 늦추는 등의 행동까지 했으며 따로 별동대를 꾸려 훈련까지 했었습니다. 즉, 애초에 슈샤이어 말론은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겁니다. 귀화는 그저 핑계에 불과했던 거죠.”
슈샤이어 말론.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신 말론 공작의 양아들이다.
실제로 본 적은 없다.
관심도 없어서.
그런데 이제는 관심이 생겼다.
내가 왜 토벌대에 신경을 쓰지 않았냐면.
정말 복귀하는 게 상식이기 때문이다.
귀화를 문제로, 그것도 마스터라는 새끼가 자기 뜻에 반대하는 이들을 전부 죽인다?
그 이유가 고작 핏자국을 새기기 위해서다?
이게 얼마나 얼토당토 않는 일이냐면.
전생에서 소년병까지 끌어모아 나를 죽이려 했던 툴칸 제국의 황제와 귀족 새끼들도 웬만해서는 자기 병사를 죽이지는 않았다.
필요에 의해서건 뭐건 그 어떤 이유를 가져다 붙일 수는 있겠지만 결과만 보자면 죽이지 않았다.
그런데 슈샤이어라는 그 새끼가 지금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행보를 보여준 거다.
함께 싸웠던 전우고, 짧지만 함께 목숨을 걸고 마수의 숲에서 칼을 휘둘렀던 놈들이.
고작 그딴 이유로 동료이자 전우를 죽인다?
제 3자에 불과한 걔들은 무슨 죄가 있는데.
이건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정말 상상도 못했다.
아무리 지성체라는 종족이 가끔 무뇌아처럼 행동한다고 해도 이 정도의 일은 무뇌아도 하지 않을 일이다.
선을, 완전히 넘은 거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개새끼들, 지금 어디에 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