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3)
제 24화
스승님이 어이없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인 걸 어찌하랴.
침묵하던 스승님이 입을 열었다.
[나는 이야기꾼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 아느냐?]안다.
모를 수가 없다.
“그들의 허풍과 주관이 섞인 이야기는 과거의 진실과 역사를 왜곡하기 때문이지요.”
[너를 보니 딱 그런 이야기꾼이 떠오르는구나.]쉽게 말하면 나를 허풍쟁이로 보는 것이다.
어깨를 으쓱했다.
“아직 직업을 정할 생각은 없는데요.”
[그럼, 이야기꾼이 될 자질을 가진 아이라고 하자꾸나. 자, 한번 답해 보거라.]의아한 표정으로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미래에서 온 아이야. 너의 이야기 속에 ‘나’라는 등장인물이 존재한다면,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했을 것 같으냐? 한번 말해 보거라.]스승님의 코앞에 털썩 주저앉은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거참.
이거 꼭 말해야 하나.
“꺼지거라…… 뭐 그렇게 말씀하시겠죠?”
[확실히 이야기꾼의 재주가 있구나. 진로는 미리 정해졌다고 볼 수도 있겠어.]“조금 섭섭해지려고 합니다. 스승님.”
[나는 네 스승이 아니다.]물끄러미 스승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여전하시구나.
그리고 내 기억 속의 스승님이 맞구나.
웃음을 머금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천천히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었다.
스승님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본다.
“지금부터 제가 할 행동이 조금은 무례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하려고 합니다. 한 대 때리셔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스승님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장난기 넘치던 내 모습과 지금 검을 쥔 모습의 온도 차가 극심했기 때문일까.
혹여, 그게 아니라면.
[혼기魂氣를…… 쓰는구나.]이렇게, 내가 혼의 기운을 끌어 올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내 눈은 스승님을 묶고 있는 ‘드래곤의 사슬’을 넘어 그 뒤쪽의 기둥에 집중되어 있었다.
나는 저걸 석벽이라고 칭했지만, 정확한 재질은 ‘드래곤의 척추뼈’다.
“율리우스 테슬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만약 제가 그놈을 봤다면 저는 그놈을 죽였을 겁니다.”
나는 지금, 스승님을 묶고 있는 저 사슬과 기둥을 모조리 끊어 내려 한다.
두근-!
심장이 크게 뛰고, 형용 못 할 마魔의 기운이 주변을 잠식한다.
후작가의 병사들을 죽였을 때랑은 달랐다.
그때는 내 격을 일부분만 개방했던 거고, 지금은 아니다.
전력.
지금의 내가 뽑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혼기.
스승님의 구속을 풀어 버리겠다는 내 혼의 외침.
[잠깐! 이 사슬…… 아니, 이 기둥을 부순다면 이곳은…….]“압니다.”
스승님의 말을 끊고, 한 번 심호흡을 한 뒤 다시 말을 이었다.
“다 알고 있습니다. 이 기둥을 부수면 이곳은 무너져 내린다는걸. 그래서 부수는 겁니다.”
나는 스승님만 한 로맨티스트를 본 적이 없다.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상황만 보자면 간단하다.
이곳에 스승님을 가둔 것은 현재 세상에서 영웅이라 불리는 율리우스 테슬란이다.
그리고 테슬란은 스승님께 ‘약속’했다.
언젠가 이곳으로 돌아오겠다고.
하지만 그 개새끼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거짓된 약속이었지만, 그래도 스승님은 믿었을 거다.
그렇게 10년을 기다리고, 40년을 기다리고, 50년을 기다렸을 때 스승님은 깨달았다.
아, 나는 버려졌구나.
묶여 있는 쇠사슬에서 벗어나고, 이 동굴에서도 벗어날 수 있던 스승님이었지만, 그러지 않으셨다.
그저 세상에 나서지 않고, 이 자리에서 죽음을 기다릴 생각이었을 거다.
실제로 전생에서 스승님은 그 의지를 관철시켰다.
나는 그게,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언령도, 맹약도 아닌 그저 주둥이로 나불거린 율리우스 테슬란의 약속은, 놈에게는 거대한 명예를, 스승님에게는 지독한 외로움을 남겼을 뿐.
나는 분명 말했었다.
테슬란이라는 이름을 쓰는 왕족들을, 발란티에 후작가를 싫어하는 것의 약 10배 정도는 더 싫어한다고.
말하고 보니 우습네.
10배가 뭐야. 100배라고 해도 모자라지 않겠네.
여하튼, 전생에서 내가 이곳에 오지 못했더라면 스승님은 홀로 쓸쓸하게 죽었을 거다.
“저는 율리우스 그 새끼랑 다릅니다. 주둥이로 나불거리지 않을 거고 오직 행동으로만 보여 줄 겁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지금 스승님과 내가 있는 이 자리는 정확히 바위산 한중간이다.
깊이는 약 3000m.
저 드래곤의 척추뼈를 박살 내면 이곳은 무너진다.
즉, 완전히 매몰된다는 이야기다.
그 충격이 어느 정도냐면, 일단 바위산 주변은 전부 초토화되고, 그 여파가 왕궁에 있는 왕의 엉덩이에까지 전해질 정도라고 해야 할까.
“눈 감으셔도 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검을 휘둘렀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일검.
끼기기기긱!!
주변 공간이 일그러지고 공기가 찢어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린다는 것만 빼면 위에서 아래로 내려 베는 단순한 동작에 불과했다.
그렇게, 내 검이 사슬을 넘어, 기둥과 맞닿는다.
서걱-!
사슬과 기둥이 너무나도 쉽게 끊어지고, 끊어진 것들은 자연스럽게 가루가 되었다.
드래곤의 뼈가 얼마나 단단한지 아는 이가, 이 현상을 보았다면 분명 할 말을 잃고 눈을 비볐을 거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일단 멍하니 앉아 있는 스승님을 한 손으로 감싸 안았다.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이렇게 스승님을 안아 보는 게.
“저는 스승님의 제자가 맞습니다.”
여전히 스승님은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쿠구궁-!!!
높디높았던 천장 위에서 묘한 떨림이 생긴다.
이어서 쩌저적 하는 소리와 함께 주변 바위들이 거울에 금이 간 것처럼 균열이 생겨났다.
천장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그 상황에서도 나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스승님을 왼쪽 어깨에 올리고는 가볍게 웃어 주자, 스승님의 미간이 슬며시 좁혀진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걸까.
여전히 내 정체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려나.
콰과광-!!
결국 천장이 무너져 내린다.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는 거대한 돌무더기를 바라보며, 천천히 검을 역수로 고쳐 잡았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오직 나만의 대지.]”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언령言霊에 스승님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져 간다.
“[내 땅에는 그 무엇도 침범하지 못하고 범접하지 못하리.]”
영검靈劍 초반 4식 풍림화산風林火山 중 산山.
공격이 아닌 방어에 치중되어 있는 식式.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던 거대한 돌덩이가 나와 충돌하려던 그 순간. 내 검이 땅에 꽂혔다.
쩌어어어엉-!!
거울 깨지는 소리와 함께, 세상이 멈췄다.
멈춘 세상 속에서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은 마치 시간의 흐름을 역행하듯 거꾸로 움직였다.
떨어져 내리던 돌무더기는 천천히 하늘 위로 솟아올랐고, 양옆에서 굴러들어오던 돌덩이들도 그 자리에서 정지하더니 천천히 밖으로 밀려갔다.
그리고 이건, 찰나의 순간 벌어진 일이다.
고작해야 0.5초가 지나기도 전에.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내 주변, 모든 것들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돌덩이들은 가루가 되어 흩어졌고, 가루와 먼지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존재 자체가 사라지듯, 내 주변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
1m.
10m.
100m.
1km.
범위는 점점 넓어졌다.
그렇게 나를 기준으로 사방 4km 내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딱 이 정도가 ‘지금의’ 내 한계다.
쿠웅-!
콰아앙-!
그 너머 수십 킬로미터 밖에서 산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안전하니까.
파스슥-!
묘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꽂힌 검이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그 상태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너는…… 대체 누구냐.]스승님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든 생각은, 이런 어조의 목소리는 꽤 오랜만에 들어 보는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스승님의 제자라고.”
[그 나이에 어찌 혼의 기운을…….]“미래에서 온 스승님의 제자는 그 정도까지 성장했습니다.”
씩 웃으며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스승님의 눈가가 그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지만, 그 이상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스승은 스승이니까.
“수명이 이제 13년 정도 남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13년, 저랑 함께 세상 구경이나 하시죠.”
잠깐 말을 멈추자, 스승님이 팔을 들어 올렸다.
뭘 하려는 건지, 그 작은 몸짓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스승님의 앙상한 손이 내 귓불 아래를 짚는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본다.
상대가 진실을 말하는지 구라를 치는지 확인하는 스승님만의 습관이다.
별 신빙성은 없지만, 그러려니 하자.
스승님이 묻는다.
[정말…… 미래에서 온 것이냐?]“정확히는 회귀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실이구나.]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언제였더라.
귓불 쪽의 맥박과 근육의 움직임으로 상대가 거짓을 말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나름의 기술이라고 하기에, ‘그거 그냥 감으로 때려 맞히는 거 아닙니까’라고 물었다가 한 대 얻어맞았던 적이 있었다.
한때의 추억이었는데, 이거 의외로 다시 재탕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스승님의 무거운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렇게 강제로 시작하는 것은 무례한 것이다.]“강제로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맺어지지 않았을 일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강제로 맺어야만 맺어지는 인연이라면 그걸 어찌 인연이라 할 수 있겠느냐.]“인연에 새겨진 자의와 타의의 경계를 어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입을 다문 스승님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말 한마디를 지지 않는구나.]“당연하죠. 제가 누구 제잔데요.”
내 어깨에 앉은 스승님이 조용히 나를 응시했다.
아, 그러고 보니. 뭔가 빼먹었다고 생각이 들었었는데, 그게 뭔지 이제야 떠올랐다.
“제 이름은 잭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스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