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30)
제 231화
해럴드도 눈을 크게 뜨고, 샬롯도 눈을 크게 뜬다.
타노스는, 그냥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공통적으로 셋은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 몰랐다는 듯한 그런 반응을 보이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말이 멀티태스킹이지. 그건 그냥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온전히’ 집중을 못 한다는 거잖아. 너나 타노스가 마스터쯤 되는 이들을 손쉽게 잡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면 또 몰라. 그런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그런 버릇이 들었다? 아주 쓸데없는 걸 배웠네. 내가 말했지. 날 롤모델로 삼지 말라고. 나 정도의 힘을 가진 게 아니면 그딴 행동은 오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그런 걸 했다? 착각하지 마, 너 아직 1학년이야.”
“보스…….”
“매우 실망스럽네. 검술학부 최고 점수? 글쎄. 내 눈에 너희 두 명은 낙제점이야. 신체적인 특성? 검에 대한 재능? 미래에 대한 가능성? 개소리지. 눈앞의 상대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만으로 0점, 그 이상도 아까워.”
신랄한 독설에 샬롯은 거의, 울기 일보 직전이었고 해럴드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옆으로 빠졌다.
“타노스한테도 벌을 내렸으니 너한테도 벌을 줘야겠지. 오늘부터 한 달간 돼지 피만 먹어.”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샬롯이 자리에서 휘청했다.
돼지 피.
내가 샬롯을 데리고 오기 전까지만 해도 샬롯은 돼지나 소 같은 가축의 피를 먹으며 연명했고, 가끔, 오크 피를 사서 먹었었다.
나를 만나고 팔자가 핀 거지, 아니었으면 샬롯.
지금쯤 굶어 죽었다.
“주방에 있는 내 피가 마지막이니까, 아껴 먹든지 아니면 돼지 피에 섞어 먹든지. 그건 알아서 하고 이만 가봐.”
샬롯이 풀 죽은 모습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힘없는 그 걸음걸이와 길바닥에 물방울 같은 게 뚝뚝 떨어지는 걸 보니 우리 샬롯. 지금 울고 있나 보다.
그런 샬롯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타노스는 눈에 안대를 채우고 마법진으로 들어갔다.
그 둘을, 나는 최대한 신경 쓰지 않았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가는데, 어렸을 때부터라도 버릇을 제대로 고쳐야지.
적어도 내 기준에서 샬롯과 타노스는 벌을 받을 만했다.
그 상황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해럴드가 조금 복잡한 어조로 말했다.
“괜히 말했나 싶습니다.”
어깨를 으쓱했다.
“왜? 너 때문에 쟤 둘이 벌 받는 거 같아서?”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요. 그게 사실이니까.”
잠시 소파에 등을 기댔다.
어깨에 앉은 스승님이 내 머리를 쓸어내리신다.
솔직히 말할까.
나도 심정이 조금 복잡하긴 하다.
내가 자식을 가져 본 적이 없어서 이게 맞는 건지 확신할 수 없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말을 바꿀 생각은 없다.
자, 보자.
“그러니까…….”
손에 들린 종이를 대충 쭉- 훑어보았다.
“25명?”
“절대 적은 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편이죠. 5퍼센트를 뽑기로 했지만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로 줄이고 줄인 겁니다. 공자님도 아시다시피.”
“아시다시피?”
“테슬란 아카데…… 아니지, 밀로스 아카데미의 수준은 굉장히 낮습니다. 타 왕국의 아카데미에 비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감이라는 게 있잖아.
내가 봐도 현 테슬란 아카데미의 애들은 수준이 낮거든.
“솔직히 교관직을 하면서도 놀랐습니다. 수준이, 상상도 못 할 정도였거든요.”
“다른 아카데미에는 꽤 인재가 많나 봐?”
“예. 굉장히 많습니다. 타 왕국의 아카데미에는 졸업할 나이쯤 되면 5서클 마나 유저들이 최소 한두 명씩은 튀어나옵니다. 많을 때는 다섯 명도 튀어나온 적도 있고 그들 중 대다수가 대륙에 이름을 떨치는 마나 유저가 되었죠. 당연히 검술학부 마법학부 전부 합친 숫자입니다. 하지만 이곳 테슬란에는…….”
“왜 말끝을 흐려?”
해럴드가 머리를 긁적인다.
“한 명도 없더군요. 엘리자베스 발란티에가 졸업할 때 6서클이었다는데, 확실히 천재 소리를 들을 만합니다. 어떻게 6서클을 만들었답니까? 그리고 최근에는 7서클도 된 걸로 아는데, 거참, 다시 봐도 신기하네.”
픽 웃고 말았다.
우리 누나가 대단한 사람이긴 하지.
더 대단해질 예정이고.
“당초에는 5퍼센트를 뽑으려고 했는데, 보니까 인원 제한이 걸려있더군요. 각 아카데미에서는 최대 25명을 보내야 한다기에, 가서 견문을 넓히고 그나마 성장 가능성이 있는 이들로 압축했습니다. 공자님의 이름을 넣긴 했지만 솔직히 공자님은 아카데미 대전에 관심이 없으실 거 같거든요.”
“그건 그렇지.”
애들 싸우는데 내가 끼어들면 그건 반칙이잖아.
“원하시면 공자님의 이름을 명단에서 빼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그 자리에 중간고사를 치르지 않은 셀의 이름을 넣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찌 생각하십니까?”
말없이 해럴드를 바라보았다.
이것 봐라.
“왜 그렇게 쳐다보십니까?”
“너 상인 한다고 하지 않았냐?”
“……예?”
아니, 별건 아니고.
“상인 한다는 애가 학부장 하는 맛에 재미 들린 거 같아서. 너 지금 되게 신나 보이는데 알고는 있지?”
해럴드가 어색하게 웃는다.
“그래도 맡은 일인데 최선을 다해야지요. 솔직히 재미가 있긴 합니다. 이런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색다른 경험, 그런 거죠.”
어깨를 으쓱했다.
재미있으면 된 거지.
그리고.
“샬롯한테 단검 준 거, 고맙다.”
이제 나라는 놈한테 적응한 것이라도 한 듯, 해럴드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고맙긴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거 비싼 겁니다. 그냥 비싼 게 아니라 진짜 비싼 겁니다.”
생색내는 해럴드가 귀엽게만 보인다.
“내가 장담하는데, 그거 충분히 값어치 할걸. 너도 ‘현재’를 보고 선물한 게 아니라 ‘미래’를 보고 선물한 거잖아. 아니야?”
“맞습니다.”
해럴드도 웃고 나도 웃었다.
왜냐면 우리 샬롯.
나중에 뱀파이어 왕이 되면 대륙전장에 이종족들을 연결시켜주는 선봉장이 될 수도 있거든.
일단 이건 조금 먼 미래의 이야기니 패스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앞서 말한 거, 그 명단에서 내 이름은 빼고 거기에 셀의 이름 집어넣어. 학부는.”
당연히 명단에 이름이 들어간 학생은 아카데미 대전에 참여한다.
검술학부는 검술 부문에, 마법학부는 마법 부문에.
셀은 원래 검술학부지만 이번만큼은.
“‘마법학부’로.”
해럴드가 피식 웃었다.
“우승은 해야겠다, 이겁니까?”
나도 피식 웃었다.
“당연한 거 아니야?”
그렇게 정해졌다.
검술 부문에는 타노스와 샬롯이.
마법 부문에는 셀이.
나는 그냥 방관자 형태로 관광 다녀오는 느낌으로.
“이스마엘 왕국으로 출발하는 날짜는 11월 12일입니다. 오늘이 10월 30일이니까, 대충 2주 정도 남았군요.”
2주.
생각보다 긴 시간은 아니다.
그건 그렇고.
“셀은 지금 뭐 한대?”
chapter 4
어쩌면 이미 벌어졌어야 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마 블랑이 잭과 처음 만났을 때, 그때 나왔어야 할 주제이기도 했고 반드시 짚고 넘어갔어야 하는 일.
방금 전까지 기술공방에서 뭐 빠지게 통신구를 만들던 블랑은 생각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하긴 해요.
“…….”
-바하무트랑 볼리모트, 그 두 드래곤 말고 다른 드래곤을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그린 드래곤이라면서요?
“……예, 맞습니다.”
블랑은 지금 이 상황이 그냥 어려웠다.
답이 있는 문제라면 풀 수는 있었겠지만 이건 답이 없는 문제였다.
뭘 적어 내려가야 할지 모르는.
사과를 해야 할지 무릎을 꿇어야 할지 아니면 핑계를 대야 할지. 그냥 복잡했다.
-제가 실험을 당하고 있을 때. 저 정말 힘들었거든요.
“…….”
-가끔 생각했어요. 혹시 나를 구하러 오지는 않을까, 바하무트랑 볼리모트가 아니더라도 다른 드래곤이라면 나를 구하지 않을까. 아니라면 다른 누군가라도 나를 구해 주지 않을까.
기술공방 안에는 정말 생각 외로 많은 물품이 비치되어 있었다.
오래전에 대장간으로 쓰기도 했는지 거대한 모루도 있었고 용화로도 있었다.
셀이 말을 이어 갈수록, 불씨도 없던 모루와 용화로에 불이 붙는다.
타닥- 탁.
-팔이 잘리고, 내 팔이 해제되는 걸 두 눈으로 봤어요. 제 몸을 해체하고, 장기를 꺼내는 걸 제가 실시간으로 지켜보게 만들더라고요. 아프면 말하라고, 죽을 것 같으면 말하라고. 하루하루가 그런 삶이었거든요.
그래서 블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거다.
로드가 셀을 인간들에게 던져 주겠다는 결정을 했을 때 반대를 하긴 했었다.
하지만 로드가 괜히 로드겠는가.
그저 소극적으로 반대합니다, 이렇게 한마디 했고 그냥 그 이후로 드래곤들과 연을 끊고 살았다.
그건 그냥 두 로드와 그 결정에 동의를 표한 드래곤들에게 정이 떨어졌기 때문이지 절대로 셀이 걱정되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블랑은 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셀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있었으니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세 달이 지나고. 개처럼 기고 살려 달라고 빌었어요. 다 무시하더라고요. 그렇게 포기했어요. 희망이 없었거든요.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나. 살아날 수 없겠구나. 여기서 무조건 죽겠구나.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2년 정도가 될 때쯤에 기적이 일어났어요. 보스를 만났거든요. 같은 종족인 드래곤이 아닌 보스가, 저를 구해준 거예요.
“…….”
-그래서 설마 했어요. 저 말고 다른 드래곤이 있긴 있었네요.
블랑은 정말로, 정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염치가 있다면 주둥이를 닫는 게 답이었고 지금 블랑은 주둥이를 닫았다.
그런 블랑에게 셀이 말한다.
-보스는 저한테 빛, 그 이상이에요. 구원자이기도 하고 제 모든 걸 줄 수 있는 그런 분이죠. 저는 보스가 죽으라고 하면 죽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거든요.
침묵하던 블랑이 그제야 묻는다.
“그게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셀은 웃었다.
블랑의 저 질문을 마치 기다렸던 것처럼.
-저를 실험체로 던져 버린 드래곤, 그 결정에 동의를 표했다는 모든 드래곤. 그리고 저를 실험했고 그 일에 관련된 모든 ‘존재’를, 전부 죽이는 거요. 정말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죽일 거예요.
화로에 타오르는 불은 절대 작지 않았다.
오히려 거대했다.
그런데도 블랑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착각은 아닐 거다.
불빛에 그슬린, 그리고 옆으로 살짝 기울어진 셀의 얼굴은 웃고 있었고 그 웃음은 매우 차가웠으니까.
블랑이 침을 꿀꺽 삼킨다.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셀의 웃음이 짙어진다.
-우리 보스는 위원회라는 곳에 속한 이들의 명단을 구했어요. 왜인지 아세요?
“…….”
-그게 편하니까. 명단이 있으면 피아를 제대로 식별할 수 있고 죽일 놈만 죽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저도 보스처럼 준비해 보려고요.
블랑은 바보가 아니었기에 셀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바보였어도 이 정도의 대화면 전부 이해하고 알아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그 명단을 작성해서 저한테 주세요.
“그걸 드리면 저는…… 음.”
반사적으로 물었던 블랑은 황급히 말을 멈추고 말았다.
말을 꺼내는 즉시.
정확히 7개의 음절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을 때 깨달았다.
이건 하지 말았어야 하는 질문이었다고.
하지만 셀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손을 뻗어 모루를 슥슥 휘저었다.
-무언가 받고 싶으신가 봐요.
타닥- 탁.
셀은 이번에도 웃었다.
받고 싶은 게 있다면 줘야지.
셀이 천천히 말했다.
-살려는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