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31)
제 232화
* * *
공방 앞에 서 있던 내 귓가에 셀의 목소리가 꽂혀 든다.
-살려는 드릴게요.
크흐.
우리 셀, 역시 잘 컸어.
[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너는 의외로 엿듣는 것을 좋아하는구나.]어깨를 으쓱했다.
“이게 다 걱정돼서 그러는 겁니다, 걱정돼서.”
[그러냐?]“그렇죠.”
[한데.]벽에 기댄 채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 스승님, 여전히 맑은 두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계신다.
[‘저 녀석’은 어찌할 것이냐?]여기서 말하는 저 녀석이란 것은 셀과 대화하고 있는 그린 드래곤 블랑을 말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통신구도 여유분으로 4천 개 정도 만들었으니 이제 쓸모가 없는데.”
슬쩍 웃었다.
“죽이기엔 아깝긴 하죠?”
[애초에 죽일 생각도 없었지 않았느냐.]정말 새삼스럽긴 한데 우리 스승님 앞에서 연기는 역시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어떻게 아셨습니가?”
[흑의 굴레를 심는 방식을 보면 알 수 있지.]“그렇습니까?”
[네가 심은 흑의 굴레는 정확히 2개월 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더냐. 연장도 없고, 부작용도 없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상태로 돌아가는 그런 걸 심어 놓고 죽이겠다니, 지나가던 고양이가 탭댄스 추는 소리를 하고 있구나.]슬며시 팔짱을 꼈다.
스승님 말씀이 맞다.
나는 블랑을 죽일 생각이 없다.
솔직히 셀을 만나기 전에는 무슨 수를 써서든 결국, 드래곤이라는 종족을 아예 씨를 말려 버릴 생각이었는데.
셀을 만나고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당연히 두 로드는 제외한 거다.
그 두 새끼는 죽을 만한 이유가 충분했으니까.
그리고 마수의 숲에서 지금 왕 노릇을 하고 있는 다섯 마리의 드래곤까지 총 7마리의 드래곤은 무조건 죽일 생각이었고 그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실제로 나는 두 로드를 죽였으니까.
그렇게 남은 다섯.
그 다섯을 제외한 나머지 드래곤을 나는 죽이지 않을 생각이다.
만약 죽여야 한다면,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일단 셀한테 물어보려 한다.
왜냐면 셀은 드래곤이니까.
내가 만약 드래곤이라는 종족을 전부 죽여 버리면 셀은 이 세상에서 유일한 드래곤으로 남게 될 텐데.
그렇게 되면 녀석은 죽을 때까지 상당한 외로움에 시달릴 거다.
유일한 드래곤.
그 타이틀, 아무리 생각해도 좋을 것 같지는 않거든.
그리고 이건 너무 오글거려서 가능하면 하지 않으려던 말인데.
나는 충성을 하는 놈이 아니라 충성을 받는 놈이다.
그런데 내 뒤를 이으려는 셀이 충성을 하는 쪽이 된다?
그만한 넌센스가 어디 있어.
셀도 나처럼 충성을 받는 쪽이 돼야지.
드래곤 정도면 적당하잖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끼익-
공방 문이 열리고 은발 머리의 꼬맹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고는 문 옆에서 팔짱은 낀 채로 벽에 기대고 있는 나를 발견하더니 눈이 크게 떠진다.
짜식.
“이 보스는 조금 섭섭하단다.”
-……왜요?
“우리 누나 따라 여기저기 잘 돌아다녀 놓고 어센블에 오자마자 바로 블랑을 찾아갔네?”
-…….
“이 심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식을 빼앗긴 부모의 심정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어.”
셀이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팔짱을 끼고 있는 내 팔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미안해요, 보스.
웃고 말았다.
미안하긴.
그대로 손을 뻗어 녀석의 머리를 흩트려 주었다.
“잘 갔다 왔냐?”
-네.
“표정 밝은 거 보니까, 여러모로 유익한 시간이었나 보네. 그런데 살려는 드릴게요라니.”
-…….
“당당해서 좋네. 너 그 말 할 때 좀 멋있더라.”
-그런가요?
녀석의 머리를 아주 벅벅 문질러 주었다.
이건 절대로 섭섭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귀여워서 그러는 거지.
“그런데 조금 모자라.”
-뭐가요?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그냥 고개만 뒤로 살짝 젖힌 뒤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엿듣고만 있지 말고 당장 튀어나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당탕탕 하는 의자 넘어가는 소리가 이어진다.
그 소리를 인식한 그때, 나와 셀의 앞에 블랑이 서 있었다.
거참.
“그거 안 좋은 버릇이야. 남의 말 엿듣고 그러는 거.”
블랑이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뭐?”
“……아닙니다.”
피식 웃었다.
“그래, 굳이 길게 이야기해서 뭐 하냐, 블랑아.”
“……예.”
“우리 한번 잘 생각해 보자고.”
뜬금없는 말에 블랑이 인상을 찌푸린다.
이번에는 또 무슨 핑계로 갈구려는지 모르겠다는 그런 표정이라고 해야 하나.
“자, 들어 봐. 마수의 숲을 한번 볼까?”
“……갑자기 마수의 숲이요?”
무시했다.
“마수의 숲에 있는 이종족들이 과연 너희 드래곤을 좋아할까?”
“…….”
블랑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답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저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그 정도의 무게가 담겨 있었을 뿐이니까.
“이종족들이 너희 드래곤들을 뼛속 깊이 존경할까, 아니면 당장이라도 쳐 죽여서 오체분시를 하고 싶어 할까?”
꿀꺽-하고 블랑이 침을 삼킨다.
그동안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직면한 것처럼 보인다고 해야하나.
녀석은 짐작했나 보다.
이 말의 끝이 무엇일지.
그래서 중간 과정 다 건너뛰었다.
“초월자이자 혼의 힘을 사용하는 두 로드가 뒤에 버티고 있었는데, 어라? 두 로드가 뒤져 버렸네? 마수의 숲에 있는 다섯 마리의 고룡만 죽이면, 어이고? 우린 자유네?”
블랑의 이마에서 조금씩,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저 모습을 보고 어떻게 웃지 않을 수가 있겠어.
그래서 웃으면서 마저 말했다.
“그런데 아주 다행스럽게도 그 단계까지는 안 갔어. 지금 두 로드가 뒤진 사실을 이종족들은 몰라. 만약 알게 되면 바로 반란이지. 고룡 다섯 마리, 어려워 보이긴 해도 이종족들의 전력이면 충분히 이길 테니까. 몇몇이 죽긴 하겠지만 그게 뭐가 중요해? 해방됐다는 게 중요하잖아. 그리고 내가 아는 이종족이면 그거 충분히 감수할걸? 어떻게 생각해?”
“무슨, 그러니까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살고 싶지?”
“…….”
“아마 당분간은 조용하겠지.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최소 4년에서 5년 정도까지는 조용할 거야. 그런데 이종족들 중에서도 귀가 밝은 애들 있지? 엘프나 하피 같은 애들.”
“…….”
“걔네들 정도면 조금씩 이상하다는 걸 느낄 거거든. 전조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잖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밖의 상황을 눈치채는 이들이 생길 텐데, 만약 모두가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간단하지. 그때쯤 되면 모든 드래곤이 소집될 거고 이종족들과 니들만의 전쟁을 하게 될 거야. 그런데 자신 있냐?”
“무슨, 자신이요?”
“로드 없이 그 수많은 이종족들과 싸워서 살아날 자신 있냐고.”
슬쩍 걸음을 옮겨 우리 블랑 님에게 어깨를 걸었다.
“지금 네 수준이면 오크 족장인 블랙맨이랑 하피 족장인 빌레아만 나서도 5분 안에 뒤진다에 내 모든 걸 걸 수 있다. 넌 뭘 걸래?”
“…….”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른다고는 하지 마. 내가 볼 땐 넌 분명 답을 알고 있어. 멀리 갈 것도 없지.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어디인지 모를 리 없을 테니까. 그리고.”
블랑의 표정이 점점 썩어 들어갔다.
“그 고룡 다섯 마리, 내가 죽일 거거든. 이종족들한테는 미안하지만 난 전혀 양보할 생각이 없어. 즉, 그 다섯 마리의 편에 선다는 건 나랑 적이 된다는 거지.”
안 그래도 썩어 있던 블랑의 표정이, 더 썩어 갔다.
그걸 감상하다가 천천히 반대 손을 들어 우리 셀의 머리에 툭 올렸다.
“네가 볼 땐 셀의 재능이 어느 정도인 거 같냐?”
“……역대 드래곤 중 최고인 것 같습니다.”
“내가 봐도 그래 보여. 10살에 4서클이라니, 거기다 우리 셀, 더블캐스팅도 손쉽게 해내거든. 그럼 이후에는 어떻게 될 거 같아? 우리 셀이 설마 너처럼 일반 드래곤으로 남을까 아니면 진짜 ‘로드’가 될까?”
녀석이 침을 꿀꺽 삼킨다.
확실히 상황 파악이 됐나 보다.
지금 블랑의 입장에서 보면 명단이니 뭐니 이런 걸 적을 때가 아니었다.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일단 스스로가 살아날 방법을 먼저 찾아야 하고 그 이후 명단이니, 대가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데.
이제야 확실히 깨달았나 보다.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런 생각을 한번 해 본 적이 있었어.”
참 맑은 하늘이다.
“만약에 용언으로 충성을 맹세하면 그 맹세는 과연 언제까지 갈까? 평생 유지될까? 이론상으로 보면 유지될 것 같은데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치?”
“…….”
-…….
그대로 블랑의 어깨를 두르고 있던 팔을 치웠다.
그러고 보니 우리 셀.
“밥은 먹었냐?”
-아직요.
“그래? 그럼 먹으러 가자.”
언젠가처럼 셀을 들어 목말을 태우고 별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열 걸음 정도 걸었을 때, 잠깐 고개를 돌렸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블랑.
“하루 줄게. 정확히 지금 시간으로부터 24시간 뒤, 네 심장에 있는 흑의 굴레는 사라질 거야.”
“그 말씀은…….”
“자유라는 거지.”
“…….”
“하고 싶은 게 있고, 해야만 할 것 같다고 생각되는 게 있으면 천천히 고민해 봐. 내일 떠날 거면 떠나기 전에 별장에 잠깐 들려. 그리고.”
인상을 찌푸린 채, 마저 말했다.
“좀 씻고 다녀라. 몸에서 담배 찌든 내가 뭐 이리 심해? 통신구에 냄새라도 배기면 넌 뒤진다. 생각 정리하기 전에 냄새부터 빼. 알았어?”
“……예.”
그대로 몸을 돌렸다.
* * *
기네스가 해 준 스테이크를 아주 맛있게 먹고 있던 셀이 입가에 소스를 묻힌 채 내게 물었다.
-아까 그 말씀은 왜 하신 거예요?
“담배 찌든 내?”
셀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거 말구요.
그럼.
“용언으로 충성이니 뭐니 하는 그거?”
-네.
식탁에 놓인 오렌지 주스를 한잔 쭉 마셨다.
음.
“일단, 너는 10년 내로 마스터가 될 거야.”
-…….
셀은 답하지 않았다.
스스로도 알고 있을 테니까.
지금 몸이 성장하는 속도와 내재된 그릇의 크기가 점점 커져 가는 걸 스스로가 느끼고 있으니까.
말이 10년이지 아마 8년에서 9년 내로 셀은 마스터가 될 거다.
“초급, 중급, 상급. 대충 나눠져 있긴 한데 상관없어. 어차피 그것도 시간문제니까. 그리고 결국 너는 초월자가 되겠지. 즉 로드가 된다는 건데 그런 너한테 네가 부릴 수 있는 수하가 한 명도 없다는 게 말이 돼?”
-음…….
“초월자가 된 드래곤에게 로드라는 이름을 붙여 주는 건 왕의 상징이거든. 군주의 상징인 거지. 우리 누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지금 저기 문밖에서 이 대화를 몰래 듣고 있는 샬롯도 그렇고 자기 수하 정도는 거둬 줘야지.”
-이해했어요. 그 드래곤한테 충성을 받아 내라, 이 말씀이시죠?
“맞아. 네가 내 옆에 있는 한 어차피 그 누구도 너를 못 건드려. 그리고 나는 너를 온실 속의 화초로 키울 생각이 없어.”
셀이 수저를 내려놓았다.
-보스의 뒤를 이으라는 그 말씀에서 연장되는 부분이네요.
“그렇지. 네가 로드가 돼서 드래곤들을 전부 포용하면 먼 미래에 너는 이 세상의 왕이 되어 있을 거야. 그러니까 준비해야지.”
-…….
“너도 느꼈을지 모르겠는데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