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34)
제 235화
chapter 5
다른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놀고먹는다고.
일정 부분은 맞다.
맞긴 하지만 그래도 할 일은 한다.
지금처럼.
“총 몇 개냐?”
“일반형은 정확히 3000개입니다.”
“프리미엄형은?”
“250개입니다.”
내 앞에 놓인 수많은 통신구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팔짱을 꼈다.
오늘 날짜는 11월 1일.
예약이 밀린 통신구의 모든 물량이 준비됐다.
일정보다 조금 빠르긴 하지만 나쁜 건 아니잖아.
“주군, 괜찮으십니까?”
옆에 있던 아베이루의 목소리가 조금 무거워 보인다.
이상하네, 뭐 걱정거리라도 있나.
녀석뿐만이 아니었다.
내 어깨에 앉아 있던 스승님이.
[모든 일에는 선택이 있기 마련이고 지금 너는, 아직 선택을 내리기 전이다.]이렇게 말했거든.
고개를 돌렸다.
우리 스승님.
평소처럼 무감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하지만 저 눈이 실제로는 약간의 걱정을 담은 것이라는 걸 나는 안다.
[통신구를 만들고 통신소를 만들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아직 ‘시작’을 한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이 멈출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데, 그래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한 것이 아니더냐? 혹시, 불안한 것이냐?]아니라고 말하려던 그때, 아베이루가 끼어들었다.
“주군, 세상에 완벽한 결과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음.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해.”
새삼스럽긴 한데 아베이루는 묘하게도 나랑 닮았다.
당연히 외모를 말하는 건 아니다, 사고 방식을 말하는 거지.
“대륙의 모든 정보를 독점한다,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죠. 4년 혹은 5년, 그리고 10년, 50년, 100년.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언젠가는 세상에 알려지게 될 겁니다.”
“도청하는 게?”
“예. 주군께서도 아시다시피 그 결과는 단순히 ‘도의적인 부분’에서 그치지 않을 겁니다. 도의적인 부분으로 한정하는 건 매우 부적절하죠.”
잠자코 들었다.
우리 아베이루가 얼마나 능력 있는지는 아는 것과는 별개로 지금은 그냥 녀석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듣고 싶었거든.
“이건 경계입니다.”
모르는 척 되물었다.
“무슨 경계?”
“공포로 지배하느냐, 하지 않느냐.”
아베이루의 말이 맞다.
대륙에 마법 통신구를 풀고, 그 통신구에서 오가는 모든 이야기를 엿듣는다.
이건 단순히 사람이 마땅히 지키고 행하여야 할 도덕적 의리를 비난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게 걸리면 나는 대륙 공공의 적이 될 테니까.
지금 도청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아베이루와 우리 스승님, 그리고 그린 드래곤 블랑.
이게 전부다.
“‘그때’가 되면 주군은 만인의 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승자는 주군이 되시겠지요. 하지만 주군이 쌓아 올린 모든 게 전과는 다를 겁니다. 예컨대 명성이나.”
“기반 같은 것들?”
“……예.”
슬쩍, 웃고 말았다.
전에도 말했듯 미래는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거다.
명성을 얻고 싶다, 왕이 되고 싶다, 정치가 하고 싶다, 영지를 다스리고 싶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 이런 개개인의 욕망이 미래를 만들고 세상을 만든다.
“이런 말이 있더라.”
“어떤 말이요?”
“시작의 지점에는 항상 모순이 있다.”
순간 아베이루와 우리 스승님의 표정이 굳어진다.
[추상적인 말이구나.]“반대로 구체적인 말이기도 하죠.”
천천히 손을 뻗어 스승님의 다리를 툭, 두드렸다.
“저는 영웅이 될 생각이 없습니다. 욕먹는 거, 익숙하거든요.”
멈출 생각? 애초에 그런 건 생각도 안 했다.
내가 이 마법 통신구들을 바라보며 잠시 멈칫했던 건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하는 한가한 고민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걸 우리 스승님과 아베이루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 거고.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아베이루나 스승님의 걱정은 분명 일리가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내릴 결정은 아마 먼 훗날 내게 비수가 되어 날아와 꽂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수가 꽂힐 때쯤이면 내가 원하는 건 모두 이루고 난 이후일 거다.
그거면 된 거잖아.
수도 없이 말했지만 나는 세상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내전을 막고, 전쟁을 막았을 때 나는 그 누군가에 대가를 요구하거나 그런 적도 없다.
그냥.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다.
동대륙에 있는 무언가가 서대륙을 멸망시키는 것 같은 그런 미래도 가능하면 막을 생각이다.
그냥 그러고 싶으니까.
도청을 하는 이유는 그냥, 필요해서다.
이 대륙의 쓰레기들을 청소하려면 방대한 양의 정보가 필요하고 더 나아가 이 대륙에서 나 모르게 벌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나는 군림할 거고, 내 기준에서 군림이란 그런 거니까.
뒷일?
내가 언제부터 뒷일을 생각했나.
그건 향후에 천천히 해도 된다.
지금의 나는 앞만 바라볼 거다.
고개를 들었다.
“아베이루.”
“예, 주군.”
“가서 해럴드랑 예비 정보학부 교관들, 그리고 너랑 같이 온 무명 애들 전부 불러와.”
“그 말씀은…….”
입가에 웃음이 피어오른다.
“그래, 시작하자.”
천천히 기지개를 켰다.
“보이지 않는 진짜 전쟁을.”
* * *
솔직히 반 정도는 속는 셈 치고 산다…… 이게 대륙전장에서 마법 통신구를 예약 구매한 부자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까 장난이 아니다.
한 남자가 손에 들려 있는 통신구에 마나를 집어넣는다.
우우웅-!!
통신구가 떨리기 시작하더니 위쪽으로, 검은 가면을 쓴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가 말했다.
“무명 통신소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남자가 묻는다.
“왜 가면을 쓰고 있지?”
“불쾌감을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이건 저희 통신소에게 내려진 명령입니다. ‘왕명’이자 ‘왕국법’으로 정해진 명령. 그렇기에 제가 감히 이 가면을 벗을 수가 없습니다.”
왕명, 그리고 왕국법.
그 정도면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왜냐면 국제법이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
각 왕국에는 제정되어 있는 법이 다르다.
그렇기에 다른 왕국 소속의 이들이 국외에서 다른 국가의 사람을 만날 때 지켜야 하는 법.
그게 국제법이다.
국제법의 제1원칙.
국가가 다른 이들이 만날 경우 각 국가의 법을 서로는 존중한다.
그렇기에 넘어갈 수 있었다.
“이스마엘 왕국에 있는 파나메로 공작에게 연결해 주게.”
가면을 쓴 남자가 물었다.
“누구라고 전해 드릴까요?”
“요람 왕국의 치프라스 후작일세.”
“치프라스 후작님이시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화면에서 가면을 쓴 남자의 얼굴이 사라졌다.
그러고는 고작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한 남자가 등장했다.
익숙한 얼굴이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얼굴.
마치 야만인처럼 생긴 남자.
바로 이스마엘 왕국의 파나메로 공작이다.
우연히 만나 ‘뜻’을 나누기로 한 동지이기도 했고.
솔직히 화면 앞에 그의 얼굴이 나타났는데도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왜냐면, 매우 당황했으니까.
그건 파나메로 공작도 마찬가지였다.
수십 킬로는 우습게 여길 정도의 거리다.
정확한 거리는 지도상으로 약 980km.
거기다 그 거리는 해상을 포함한 직선거리를 뜻한다.
요람 왕국은 중앙에 툴칸 제국을 끼고 거의 고립되어 있는 국가였으니까.
툴칸 제국을 넘지도 않고, 누군가를 거치지도 않고 무려 수백 킬로가 넘어가는 거리에 있는 남자와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짧은 침묵 끝에, 파나메로 공작이 말했다.
“이건…… 혁명이군.”
치프라스 후작은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아니, 정확히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으니까.
이게 잭이 만든 일반형 마법 통신구를 사용한 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었다.
* * *
자리에 앉아 있던 롤랜드는 천천히 자신의 손에 들린 프리미엄 통신구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슬쩍 통신구에 마나를 담자.
우우웅-
코앞에 작은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숫자가 0부터 9까지 적혀 있는 마나로 이루어진 네모난 원형판.
지금 롤랜드가 들고 있는 통신구의 일련번호는 3.
롤랜드는 여러 번 사용해 본 사람처럼 손을 들어 통신구의 번호를 입력했다.
길게 갈 것도 없었다.
1이랑 0을 한 번씩 눌렀을 뿐이니까.
즉 10번.
이어서 코앞에 있던 홀로그램에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대륙전장 어센블 지부의 지부장이자, 대륙전장 내에서 서열이 높은 콜린 브로스넌.
“배송은 끝났는가?”
“예, 장주님. 현재 요람 왕국과 툴칸 제국에 모든 통신구의 배송이 완료되었습니다.”
브로스넌에게 연락하기 전 이미 다른 이로부터 이스마엘과 다른 왕국 전체에 배달이 완료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즉, 1차 예약 구매에 대한 할당량이 전부 배송되었다는 뜻이다.
롤랜드는 물었다.
어떤 답이 나올지 스스로도 알고 있는 질문을.
“만족하던가?”
“예. 최곱니다. 다만.”
“다만?”
“누가 이 통신구를 제작했는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것 같습니다.”
롤랜드가 피식 웃는다.
“대륙전장의 신변 보호 정책은?”
“읊어 주었습니다.”
그거면 충분했다.
대륙전장은 판매자를 보호하고 소비자도 보호한다.
판매자의 이름, 출신지, 그 외 모든 것들, 심지어는 키가 몇이고 성별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그 모든 것들을 공개하지 않는다.
공정한, 단체니까.
그래도 아마 알 만한 이들은 알고 있을 거다.
롤랜드가 말했다.
“그럼 고생하시게.”
“장주님도 고생하십시오.”
그렇게 통신이 끊겼다.
천천히, 들고 있던 통신구를 책상에 올려놓은 롤랜드는 생각했다.
이게 한 사람이 벌일 수 있는 일인가?
솔직히 통신구 사업을 벌이겠다고 했을 때, 롤랜드는 회의적이었다.
기존에 있는 통신구가 비싸다고는 해도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있기 마련이니까.
롤랜드가 그러했고 지금 구매를 하지 않은 수많은 귀족들이 그러했다.
그런데 이거.
확실히 다르다.
처음 시연용으로 프리미엄형을 받아서 썼을 때, 그때부터 느낌이 싸하다 싶었는데, 일반형까지 공개된 걸 보니 그냥 상상 이상이다.
“일반형과 프리미엄형이라…… 일반적인 대화와 은밀한 대화를 구분한 것처럼 보이는데.”
롤랜드의 옆에 서 있던 해럴드가 기다렸다는 듯 묻는다.
“구분, 이요?”
“그래, 구분. 일반형 통신구는 통신소라는 곳을 거쳐 먼 거리에 있는 이들과 생각보다 싼 값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하지만 프리미엄형인 이 통신구는 어때 보이느냐.”
“아버님 말씀대로…… 아니, 장주님 말씀대로 매우 은밀해 보입니다. 상대가 가지고 있는 통신구의 일련번호만 알면 그 통신구에 바로 연락할 수 있다는 점이 은밀하다 못해 조금 소름이 돋을 정도로요.”
롤랜드는 천천히 팔짱을 꼈다.
그러고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
당연히 맨 처음부터 했어야 할 질문을 꺼내 들었다.
“대체 어떤 원리일까.”
“……솔직히 말씀드립니까?”
“말해 보거라.”
해럴드가 침을 꿀꺽 삼킨다.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말을 해 놓고도 해럴드는 거대한 위화감에 휩싸여 있었다.
자그마치 금색 마나의 소유자다.
마스터 중에서도 중급 마스터.
그런 해럴드는 이 통신구에 대해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작동시키면 마나가 빠져나가는 것 같긴 한데, 이게 웃긴 건 그 마나가 굉장히 적다는 거다.
너무 적어서 방향조차 제대로 잡을 수 없는.
분명 허공에 있는 다른 마나를 사용하는 건 맞는데 이걸 연결하려면 분명 마나와 마나가 이어져야 되거든.
그런데 그게 아예 잡히질 않는다.
그러니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을까.
뭔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처음 이 프리미엄형 통신구를 받고 계속 연구했지만 답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일반형의 경우에는 마나가 움직이는 게 보이긴 하더군요. 하지만.”
“하지만?”
“역시 모르겠습니다.”
결국.
“하…… 하하하하하.”
롤랜드가 폭소를 터트렸다.
이게 정말로 가능한 일이라고?
아니.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하하, 맙소사, 이게 천재라는 건가?”
아니지, 이런 일을 성공시킨 남자를 어떻게 ‘천재’라는 말로 규정할 수 있을까.
천재는 모자란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역대 존재하지도 않았던 전무후무한, 그래, 괴물이구나. 진정 괴물이야.”
롤랜드는 그렇게 한동안 웃었다.
그렇게 웃는 롤랜드의 머릿속에는 이제부터 벌어질 일이 그려지고 있었다.
아마 이 통신구를 분해하려는 이들이 생길 거다.
궁금하잖아.
어떻게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통신구를 제작할 수 있었던 건지, 더 나아가 어떤 원리인지.
해부만 제대로 해 보면, 심지어 그게 성공하면.
얻을 수 있는 게 한두 개가 아니다.
돈도 벌고 뽕도 따는.
그냥 모든 걸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잭 발란티에가 그걸 예상 못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