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37)
제 238화
* * *
아카데미 교무실 옥상.
나는 그곳 난간에 엉덩이를 걸친 채 앉아 있었다.
고개만 옆으로 돌려 어센블 전경을 내려다보는 내게, 맞은편에 있던 아베이루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주군,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십니까?”
아베이루가 보기엔 내가 꽤 생각이 많아 보였나 보다.
사실 녀석의 짐작대로 생각이 많긴 했다.
우선 애들을 데리고 이스마엘로 가는 거.
마침 타이밍이 딱 맞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지금 테슬란 왕국에서의 모든 일을 끝낸 상황이다.
정치 쪽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정보 쪽도 말할 것도 없으며.
민심이나 그런 것까지, 전부 깔끔하게 해결된 상황이다.
그러고 보니.
“회의는 어땠냐? 괜찮든?”
“예. 문제는 전혀 없었습니다. 전부 협조적이었는데, 아, 그건 조금 신기하더군요.”
“뭐가?”
“의외로 마탑주님이 주군께 큰 호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폐인 생활을 하던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정력적이기도 했고, 그냥 여러모로 신기했습니다.”
이거 참.
요즘 들어 내 주변 사람들 단어 선택이 참 모호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호감이라니.
뉘앙스가 이상하잖아.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그 양반 회춘하더니 마음도 젊어져서 그래.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끼리 통하는 그런 게 있잖아. 안 그래?”
아베이루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됐고.
“요즘 나를 대영웅이라고 부르던데, 네 솜씨냐?”
아베이루가 어색하게 웃는다.
“제 솜씨라기보다는 그냥, 백성들이 그렇게 부르는 겁니다. 부르고 싶어서.”
음.
“걱정거리가 있냐고 물었지.”
“예. 지금 표정이나 분위기가, 평소랑은 다르게 많이 무거워 보이십니다.”
확실히 평소랑 다르긴 했나 보다.
물끄러미 아베이루를 바라보았다.
녀석을 처음 내 사람으로 받아들일 때.
녀석이 이렇게 말했던 것 같은데.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그랬었나?”
“……처음 그때 말씀이시라면 예, 정확히는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씀드렸었죠.”
웃으며 녀석을 바라보았다.
조금 더, 길게 말해보라는 그 시선을 녀석은 읽었는지 녀석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조금 깊게 말씀드리면 저 닮은 삼둥이 낳아서 아내 될 여자랑 곱게 늙어서 죽는 게 제 장래 희망입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어센블 전경이 보인다.
이런 전경이 몇십 년 후에는 초토화가 된다.
그 가시 괴물인지 뭔지 하는 새끼 때문에.
그런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전부인 것 같지는 않거든.
“결혼식에 삼둥이라…… 그거, 꼭 이루게 해 줘야겠네.”
“……예?”
“그냥 그렇다고.”
내가 최근에 정신을 잃은 뒤 보았던 그 전생에서의 한 장면.
분명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얻을 정보는 충분했다.
블랙맨은 굉장히 순수한 오크다.
싸움을 좋아하지만 전쟁은 좋아하지 않으며 그는 가능하면 상대와 대화하는 것을 원했고 분쟁을 원치 않아 했다.
하지만.
그런 그가 전쟁을 택했다는 것은.
그리고 가슴에 나를 상징하는 문양을 박아 넣는다는 것은.
선제공격을 당했다는 뜻이다.
즉 침공이라는 뜻인데.
생명체가, 그냥 자연스럽게 마스터의 기세를 뿜어내는 그런 생명체가 수백이 넘는다?
심지어 그런 생명체가 이 서대륙에 있다?
말이 되지 않는다.
그 생명체는 다른 곳에서 온 거다.
예를 들면 동대륙.
뭐가 있을지 감도 안 잡히는 동대륙.
그곳에서 최소 20년 뒤, 침공이 시작된다.
전에도 말했듯 막을 생각이긴 한데.
거참.
이거 이러다 진짜 영웅이 될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실없이 웃었다.
“주군.”
“왜?”
“혹시 영웅이라고 소문난 게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거면 말씀해 주십시오. 당장 처리하겠습니다.”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일시적인 거잖아. 그냥 내버려 둬. 그런데.”
전에도 느낀 거지만.
“난 진짜 싸이코 새끼가 맞는데, 이상하게 이번 생은 전생이랑 좀 달라질 것 같아.”
“……그렇습니까?”
“한 번 뒤졌으니까, 이번 생에서는 좀 착하게 살라는 건가. 막 그런 메시지가 전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아베이루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는다.
그대로 난간에서 내려왔다.
“갔다가 언제 올지는 모르겠는데,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말해. 통신구는 잘 때도 가지고 있어. 내꺼 일련번호 알지?”
“예, 압니다. 1번이죠.”
“그래, 난 1번 넌 11번. 데스 나이트 40기가 항상 널 보호할 테니까. 알아서 임무 분담하고, 도청하는 애들은 흑마법을 처음 겪어 보는 애들일 테니까 잘 달래 주고. 정보 정리 잘하고. 등등, 다 알아서 할 수 있지?”
아베이루가 진지하게 날 바라본다.
“제가 주군의 밑으로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다짐한 게 뭔지 혹시 아십니까?”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말도 안 해 줬으면서.
아베이루가 슬쩍 웃는다.
“주군을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다…… 이거 하나입니다. 그러니 맡겨 주십시오.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 전에.
“배 한 척 구해 놓으라고 한 건 어떻게 됐어?”
“…….”
이상하게 말이 없네.
“왜? 무슨 문제 있냐?”
아베이루가 복잡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그러고는 미치겠네, 이런 표정을 짓더니.
내게 말했다.
“이거 진짜, 말씀 안 드리려고 했는데.”
“뭔데?”
“엘리자베스 님이 주군께 드릴 선물을 준비 중입니다.”
대화의 흐름으로 보면.
“그 선물이 혹시 배냐?”
“거함이라고 하더군요. 흑해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갈 정도의 배.”
보니까 이거 그거였나 보네.
“깜짝 선물 그런 거였나 봐?”
“……예, 맞습니다.”
“얼마나 걸린다는데?”
“한 8개월 정도 걸린다고 하더군요.”
“뭐가 그렇게 오래 걸려?”
“음, 그게 설계도가 없답니다.”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조선업에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게 되나? 설계도가 없는데 어떻게 만들어?”
“다행스럽게도 기초 뼈대는 갖춰져 있었다고 하더군요. 부족한 건 뼈대에 맞출 살과 그 살에 새길 마법들인데, 지금 그 배를 처음 만들었던 이들부터, 이름 있는 베테랑 장인들이 죄다 달라붙어서 그 뼈대에 기초한 새로운 설계도를 만들고 있습니다. 아마 대륙에 없던 거함이 탄생할 것 같습니다.”
난간에 등을 기대고는 손으로 턱을 짚었다.
8개월이라…….
“최대한 단축시키면?”
“5개월에서 6개월 정도까지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깨를 으쓱했다.
“뒤에서 몰래 지원해 줘. 거참, 나한테 줄 깜짝 선물을 내가 도와주면 이건 누구한테 주는 선물인 거냐?”
아베이루가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더니 내게 물었다.
“그런데 그 배는 어디다가 쓰려는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냥, 배 타고 어디 좀 갔다 와 보려고.”
아베이루는 그 이상 묻지 않았다.
“뒤에서 최대한 서포트 해 보겠습니다. 주군이 이스마엘에서 복귀하실 때쯤이면 12월 정도 될 테니까. 만약 배 만드는 기간이 거기서 더 줄지 못하고 여전히 5개월을 넘는다면 12월 전으로 다른 배도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튼튼한 거로.”
새삼스럽지만 우리 아베이루, 일 참 잘한다.
그대로 주머니에 손을 꽂고는, 걸음을 옮겼다.
옥상 문을 열고, 내려가려다 잠깐 고개를 돌렸다.
“뭐 선물이라도 사 올까?”
“……예?”
“가지고 싶은 거 없냐고.”
그러자 아베이루가 웃음기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주군의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역시 우리 아베이루.
립서비스가 아주 그냥, 몸에 배었어.
[풋.]이렇게 우리 스승님도 웃길 줄 알고.
너, 생각보다 꽤 재미있는 놈이야.
chapter 6
11월 12일.
그날 아침은 굉장히 부산스러웠다.
기숙사에서 깨어난 마법학부 4학년 틸레망은 분명 그렇게 느꼈다.
성적에 따라 1인 기숙사, 2인 기숙사, 그리고 4인 기숙사로 나눠지는 아카데미 특성상 1인실을 쓰는 틸레망이 부산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면 보통 소란이 아님을 의미했다.
‘무슨 전쟁이라도 났나?’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듯.
틸레망은 빠르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뒤.
벌컥-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이건 전쟁이 아니라.
“잘 갔다 와라, 새끼들아!!”
“쳐 맞고 나서 울지 말고!!”
단순한 학생들의 장난이었다는 것을.
안 그래도 잠을 설친 틸레망은, 분명 짜증을 냈어야 함이 맞지만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기숙사 정문 앞에 포션 모아 놨으니까 그거 하나씩 가져가라!!”
이런 아이들인 걸, 알고 있었으니까.
비록 아카데미 대전에 참석하지는 못할지언정 마음만은 착한 아이들.
틸레망은 아카데미 온 것이 인생 최고의 선택임을 다시 한번 확신했다.
그렇게 씻은 뒤, 짐을 챙긴 틸레망은 약속된 시간인 08시에 기숙사 앞으로 집합했다.
그곳에.
그가 있었다.
아카데미의 괴물.
규격 외의 존재.
과거에는 저능아라 불렸다지만 그게 말도 안 되는 개 잡소리라는 걸 틸레망뿐만이 아니라 모두는 안다.
잭, 발란티에.
그가 담장에 등을 댄 채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었는데.
틸레망은 신기했다.
이 남자.
저기 앉아서 개똥폼을 잡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저게 저렇게 잘 어울릴까.
그런 생각을 한 건 틸레망뿐만이 아니었는지 주변 기숙사 현관에는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 있는 여러 명의 학생이 보였다.
그렇게 몇몇이 더 오자.
잭이 눈을 떴다.
“총원 25명, 다 왔네.”
잭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앞에 포션 보이지? 자그마치 상급 포션이야. 아카데미 애들이 돈 모아서 샀다고 하더라, 일단 챙겨.”
틸레망을 비롯해 학생들 전원이 포션을 바라보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포션이 생각보다 많았으니까.
“이 말을 깜빡했네. 총 50개거든. 상급 포션 25개 최상급 포션 25개, 그러니까 각각 1개씩 챙겨.”
“…….”
“최상급 포션은 내가 주는 건데, 저거 외에 여유분으로 삼백 개 정도 챙겨 왔으니까. 다치는 애 있으면 바로바로 말하고.”
엉덩이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 내던 잭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자, 길게 말할 거 없겠지? 깔끔하게 전달 사항만 전하고 바로 출발한다. 우선 마차를 타고 이동할 거야. 마차는 6인승이고 무려 20개나 준비했으니까, 친한 애들끼리 앉아도 되고 혼자 앉아도 돼.”
틸레망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이상하게 저 잭이라는 남자의 말을 듣고 있자면 온몸이 굳어지는 게, 무슨 병이라도 걸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마차를 타고 어센블을 벗어날 거고, 서쪽으로 이동할 거야. 야영은 안 할 거고 중간에 있는 영지에 계속 들를 거거든. 경유하는 영지는 총 3개, 오늘을 포함해 최대 4일 안으로 이스마엘에 도착할 거니까. 주변 구경하고 싶은 애들 있으면 구경하고. 기념품 사고 싶은 애 있으면 말하고. 이탈해야 하는 이유가 있으면 여기.”
잭의 손이 옆에 있는 한 남자의 어깨로 옮겨졌다.
아주 짧게 친 머리.
교관이라기보다는 마치 사냥꾼처럼 생긴 그 남자는 아카데미에서 굉장히 유명한 남자였다.
전에는 대륙전장의 마스터 전력이었고 지금은 ‘밀로스 아카데미’의 교관.
대륙에서 유일하게 궁술을 사용하는 보우 마스터 베네딕트.
잭이 그를 가리킨 것이다.
“베네딕트 교관님한테 말하면 될 거거든. 그 외에 세부적인 건 인솔하는 교관들한테 물어보면 될 거고. 딱 하나만 강조하자.”
틸레망은 한 번 더 침을 삼켰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새삼스럽지만 국가 간 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세상은 아니잖아. 너네 중 용병이 될 이가 그렇게 많을 것 같지도 않고, 대부분 어느 한 영지나 어느 한 국가에 정착할 텐데, 너네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 다른 왕국을 왔다 갔다 해 보겠어. 그러니 견문을 넓힌다는 생각으로.”
잭이 웃는다.
“세상을 본다는 생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으로 가 보자. 너네들 안전은 내가 확실하게 책임질 테니까. 웃으면서 가자고. 오케이?”
틸레망은 이번에도 느꼈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예’라고, 답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외쳤다.
“예!!”
재미있게도 그런 느낌을 받은 건 25명의 학생 전원이었나 보다.
“그럼 탑승해.”
착각일까.
잭이 탑승하라는 말을 하는 순간, 틸레망을 비롯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은 느꼈다.
방금, 어떤 ‘바람’이 자신들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고.
잭은 이들의 안전을 약속했다.
안전을 책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다.
이들의 모든 위치를 알고 있으면 된다.
방금 이들의 몸을 스친 바람은 잭이 펼친 추적 마법이다.
일종의 마킹인데, 잭의 머릿속에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마치 체스판의 말처럼 그려지고 있었다.
“탑승 안 하고 뭐 하냐?”
잭의 말에 아카데미 학생들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때, 묘하게 병풍이 되어 버린 베네딕트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학생들에게 손짓했다.
그게 끝이었다.
그렇게, 밀로스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이스마엘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