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24)
제 25화
Chapter 1
먼 길을 돌아, 결국 도착했다.
고개를 들어 어센블 영지의 커다란 성벽을 한 번 바라보고 마지막으로 성문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생략된 이야기가 많은 듯했지만, 사실 할 이야깃거리가 없었다.
나는 바위산이 무너진 뒤 잠시 그곳에서 포션을 물 마시듯 퍼마시며 몸을 회복시켰다.
당연한 소리지만 근육은 단련시킬수록 더욱더 견고해지고 질겨진다.
마나도 마찬가지고, 혼기도 마찬가지다.
마나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거의 차원이 다른 급의 힘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것도 근육과 다를 바 없다.
혼기도 쓰면 쓸수록 익숙해진다.
현재 내 몸에서 끌어 올릴 수 있는 한계치.
딱 그 적정선에 맞춰 힘을 사용했다지만 이게, 전에도 말했듯 몸이 너무 부실하다.
그래서 며칠 정도는 현기증과 통증에 시달렸지만 그것도 결국엔 회복시켰다.
과정도 깔끔했다.
바위산을 벗어나 거의 9시간을 꼬박 걸어 도착한 이름 모를 영지.
그곳에서 여관을 잡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다음 날 영지를 벗어나 마차를 사서 마부 흉내도 내며 이동을 했고 다음 영지에 들러 잠을 자는 등.
그런 지루한 일정이 무려 5일이나 이루어졌다.
그 기간 동안 스승님은, 농담이 아니라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어색한 침묵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지.
어색하다기보다는 스승님은 무언가 깊게 생각할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계속 말을 걸던 나도 첫날을 기점으로 입을 다물었다.
계속되는 현기증에 컨디션이 최악인 것도 한몫했다.
여하튼, 그렇게 아카데미가 있는 어센블에 도착했다.
다시 고개만 슬쩍 돌려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입을 다물고 정면만을 응시하는 스승님의 모습은 고뇌에 찬 예술 작품처럼 보이기도 했다.
솔직히 이해는 한다.
그 공간은 스승님의 과거다.
1년, 10년, 20년을 넘어 무려 400년이나 그 동굴 안에만 계셨다.
또한 그 공간은 스승님의 발목을 잡던 엿 같은 건국왕 새끼의 애증이 덕지덕지 칠해져 있는 곳.
그래서 내가 입을 다문 것이다.
스승님이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기를 바랐으니까.
속으로 입맛을 다시고는 성문을 지나 도시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다 다시 자리에서 멈춰 섰다.
적어도 내가 스승님을 도울 수 있는 게 없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에.
“아직도 생각을 정리 중이십니까?”
[…….]“스승님 입에 거미줄 쳐질 것 같습니다.”
오른손 검지를 스승님의 입가에 가져다 대자 스승님이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그 모습에 실소가 지어진 것도 잠시.
[처음엔.]한마디를 내뱉은 스승님이 잠시 말을 멈춘다.
“처음엔…… 그다음은요?”
[나는 네가 테슬란가家의 후손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물론 입가의 실소도 지웠다.
스승님이 꽤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아니었어. 그 나이에 혼의 기운을 다룬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본적으로 혼의 힘은…….]거기까지 말한 스승님이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나는 스승님이 왜 이러는지 안다.
뒤에 이어질 말을 대신 이어 보라는 뜻이다.
과거에도 몇 번 이런 적이 있었지.
참고로 스승님이 만족하지 못할 답을 내린다면 스승님은 그대로 죽빵을 날리셨다.
“음…… 마스터의 영역에 오른 천재 중의 천재 중 극소수만 사용할 수 있는 힘이죠.”
이 세상에서 마스터라 하면 마나 서클을 심장에 10개를 새긴 존재를 뜻한다.
하지만 그들이 전부 혼기를 쓸 수 있느냐.
절대 아니다.
마스터가 되는 마나 유저는 천재 중의 천재라 불리는 이들이며, 그 천재 중에서도 극소수만 혼기를 사용하는 ‘초월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초월자라고 다 같은 초월자냐.
그것도 아니다.
나는 혼기를 깨우친 극소수의 천재들 중 극소수에 해당하는 천재다.
내 얼굴에 금칠하는 것 같지만 사실인 걸 어찌하랴.
나는 희대의 천재다.
전략을 잘 짜거나, 공부를 잘한다거나 하는 그런 천재가 아니라 싸움의 천재.
마나나 혼기를 사용하는 데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 더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아마, 스승님보다 더한 재능일걸.
[그래,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은 강자로서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지. 하지만 너의 혼에 쌓여 있는 살의 업이 심상치가 않아.]“제 과거를 말씀드리기엔 요 며칠 스승님이 아무 말씀도 안 하셔서 저도 아무 말씀 못 드린 건데요.”
스승님이 못 들은 척 입을 연다.
[너의 손에 묻은 피는 내 손에 묻은 피보다 더하더구나. 너는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느냐.]“뭘요?”
[시간을 되돌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확히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야겠지. 그게 일반적인 상식이다.]“그렇긴 하죠.”
[시간을 돌린다. 과거로 돌아간다…… 너는 네가 스스로 회귀를 주도하지 않았다고 했었지. 회귀를 당했다는 말인데, 아마 너도 이게 비현실적인 일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더냐?]“맞습니다.”
[시간을 되돌린다는 것은 그게 누구건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왜 하필 그런 일생일대의 기회가 너에게 주어졌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이냐?]스승님의 어조는 꽤 진지했다.
요 며칠간 무슨 생각을 하나 싶었는데, ‘회귀’에 대해서 생각하고 계셨나 보다.
이쯤 되니 조금은 자세히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희대의 천재이자, 희대의 살인마.
내 손에 죽은 생명체의 숫자는 많다.
농담이 아니고,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다.
론에게 내가 이 서대륙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거짓이 아닌 진실이다.
나는 이 서대륙의 지배자였고, 내가 무엇을 하려고 마음먹는다면 그건 무조건 이루어졌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면, 그 누군가는 죽는다.
누군가를 살리고 싶다고 한다면 당연히 그 누군가는 산다.
나는 지배자이자, 폭군이었고 또한 성군이었다.
그리고, 희대의 괴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과거로 돌아왔다.
“왜 내가 과거로 돌아온 건가 하는 생각. 솔직히 말씀드리면 해 봤습니다.”
[그래서 네가 내린 결론은 무엇이냐?]“모릅니다.”
[…….]“그냥, 생각만 했거든요.”
스승님의 미간이 좁혀진다.
속으로 뜨끔했다.
아무래도 화가 나신 것 같은데, 여전히 성격이 더럽…… 아니, 자유로우시네.
“스승님. 저는 만족합니다.”
[무엇이?]“이렇게 스승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이요.”
[…….]“누군가 저를 ‘특정’해서 회귀시켰다면 목적이 있겠지요. 혹은 저 말고 다른 회귀자가 있다 해도, 솔직히 지금은 관심 없습니다. 인과라는 게 있는데, 결국 시간이 지나면 회귀에 관련된 누군가가 제게 접근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뭐, 그냥 넘어가는 거죠.”
왠지 느낌상 어마어마한 일에 얽혀 든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이거야 뭐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알게 될 일이다.
결국 스승님이 피식하고 웃는다.
정말이지.
“아직도 꿈만 같습니다. 스승님과 이렇게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게.”
작게 웃고 있던 스승님의 입이 살짝 꿈틀했다.
“과거에 하지 못했던 걸 하려고 합니다. 스승님에게 세상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회귀를 한 이유를 언젠가는 찾아야겠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저는 스승님과 함께 있는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 무게 좀 그만 잡으십시오. 스승님은 혼자가 아닙니다.”
잠시 말을 멈춘 나를, 스승님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투명한 시선.
인형의 눈동자, 그리고 동공, 홍채, 그것들은 인간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스승님의 ‘본체’ 눈동자의 절반 정도 되는 신비로움을 갖추고 있다고 해야 하나.
그 시선을 받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스승님 곁에 있겠습니다. 평생.”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던 걸까.
스승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스승님을 나는 계속 바라보았고, 스승님도 나를 바라본다.
그렇게 침묵이 자리하고, 시간이 흐른다.
[……그래서, 이제 너는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스승님의 질문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제 사단을 만들 겁니다.”
[사단?]“정확히는 저만의 병력이죠.”
[병력이라…….]전에도 말했지만, 내게 필요한 건 두 가지다.
시간과 세력.
시간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거고, 세력이 필요한 이유는 첫 번째인 시간을 위해서다.
무슨 말이냐면, 내 몸은 지금 어리다.
후작가의 병사들을 죽였을 때와 스승님을 동굴에서 빼내 올 때.
나는 그때, 전생의 힘을 약 2할 정도를 끌어 썼다.
그런데 어떠했는가.
후작가의 병사들을 죽였을 때는 몸에 균열이 일어났고 살갗이 터졌으며 온몸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론이 준 최상급 포션이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그 자리에서 피칠갑이 되어 있었겠지.
스승님을 꺼내 올 때도 마찬가지다.
말은 안 했지만 몰래 상급 포션 두 개를 연달아 퍼먹었다.
그럼에도 5일 가까이 현기증에 시달렸는데, 이런 몸 상태로 누구를 지키겠어.
그래서 세력이 필요하다.
내 말에만 절대적으로 따라 줄 내 손발.
나를 신뢰하고, 내가 어떤 사람을 가리키며 ‘저 사람은 사실 똥이 폴리모프를 한 거야’라고 말을 하면, ‘아, 그렇군요. 저 사람은 똥이었군요.’라고 말하며 믿어 줄 그런 이들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아카데미로 온 거다.
쉽게 말하면, 여기를 ‘거점’으로 삼는 거지.
[그래서 아카데미로 온 것이냐?]“예. 테슬란 왕국의 아카데미는 온갖 인재들이 모여드는 장소죠. 평민 귀족 가릴 거 없이 나름 ‘검증된’ 인재가 모여드는 곳인데…… 스승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질문은 내가 했는데 오히려 질문으로 대답하는구나.]조용히 웃고만 있자 결국 스승님이 답했다.
[나라면 검증된 인재들 중 가능성이 있는 이들을 고르고 고를 것이다.]내 생각도 같다.
분명 나름 검증된 인재들이기는 하지만 내 눈으로 직접 판별한 게 아닌 이상, 누가 돌멩이인지 보석인지 모른다.
돌멩이와 보석이 섞여 있는 그 광산에서, 나는 보석만 골라내 내 것으로 만들 생각이다.
애들만 그렇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 애들을 가르치는 교관들도 포함된다.
고개를 돌렸다.
스승님이 조금은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처음에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세상을 구경시켜 드리겠다고.”
잠깐의 침묵이 이어진다.
음.
“스승님은 항상 ‘미래’를 생각하셨습니다.”
[미래?]“예. 귀족이건 아니건, 힘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공통적인 의무는 후예들이 살아갈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제게 가르치셨죠.”
스승님이 묘한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무엇이 말이냐.]“스승님이 없던 400년,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고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존재할지. 그리고 그런 이들이 만들어 갈 미래가 어떤 미래일지.”
스승님이 아무 말 않고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 스승님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확신했다.
아, 기대하고 계시구나.
그런데 이거 참, 뭐라고 해야 되나.
미래도 미래 나름인데, 솔직히 지금 테슬란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스승님이 알게 되면, 아마 화부터 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과연 여기 아카데미에 나랑 스승님의 눈에 찰 만한 ‘인재’가 정말로 있긴 할까.
피식 웃고는 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고 했다.